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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5. 쩨펠린 공습 (Zeppelin Raid)

[쩨펠린 비행선의 선단, 폭격 대형으로 비행중인 모습을 다른 비행선에서 촬영한 장면]

1차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 바다를 끼고서 막강한 해군의 보호를 받는 영국민들에게 그야말로 전쟁은 남의 이야기나 다름없었다. 전쟁은 항상 유럽 대륙에서 일어났으며, 영국군은 바다를 건너 남의 땅에서 전투를 했던 것이다.영국민들은 전쟁에서 분리되어 있었으며, 전선의 상황과는 무관하게 생업에 전념을 다할 수 있었다. 자기땅에는 총탄하나 날아오지 않는 그야말로 유럽의 최대 안전지대였던 영국도 1차대전부터 점점 자리를 잡아가는 항공무기의 사정권안에 들어가고 있었다.

독일 수뇌부는 이 얄미운 영국에게 뭔가 한방을 먹이는 데에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세계최강의 전력을 자랑하는 영국해군이 지키는 바다를 건널 방법은 하늘을 제외하고는 없었다. 그렇지만 당시의 기술로는 먼 영국까지 날아갈 만한 항속거리를 가진 항공기는 없었다.

결국 독일은 영국공략을 위한 비밀무기를 집중 연구했으며, 곧 그 해답을 찾았다. 그것은 독일이 가장 앞선 기술을 가지고 있던 비행선 Zeppelin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영국측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으로 속도도 느리고 기관총이나 대공 사격에 취약한 비행선을 폭격에 사용하려는 것이었다. 독일측은 많은 분석을 통해서 해가 저무는 여명을 이용하여 비행선을 출격시키면 비행선은 느린 속도에도 불구하고 높이 상승하면서 야밤의 하늘을 몰래 비행할 수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등화관제의 개념이 없었으므로 런던과 같은 대도시는 불야성을 이루어 야간의 하늘에서도 쉽게 찾아 낼 수 있을 것이며, 방어 전투기들도 없을 것이고, 폭격을 끝내면 새벽의 어둠을 이용해서 안전하게 귀환할 수가 있을 것 같았다. 이러한 구상하에 비행선을 이용한 폭격작전이 감행되었고, 그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독일이 개발한 회심의 신무기 쩨펠린 비행선 - 전형적인 쩨펠린의 형태를 보여주는 일러스트로 추후 많은 개량형이 개발되어 폭격 임무에 투입되었다.]

1915년 5월 31일, 일부 런던시민들은 달이 환하게 비추는 음산한 밤하늘에, 타원형의 그림자가 모습을 나타내는 것을 목격했다. 바로 독일의 쩨펠린 비행선 LZ-37호 였다. 아무도 그것이 무엇인줄 몰랐고, 사실 런던시민들은 비행기나 비행선을 구경해본 적이 없는 사람도 대부분이었다. 곧 귀를 찢는 폭음이 런던시내 곳곳에서 터져 나오면서 불길이 타올랐다. 이날의 최초 공습의 성과는 미미 했으나 그 심리적인 효과는 대단한 것이었다. 1915년 9월에는 다른 쩨펠린 비행선이 다시 런던 상공에 나타났다. 쩨펠린 LZ-13호는 성공적인 런던 폭격을 감행하여 13명의 런던 시민이 사망하고 87명이 부상했다. 런던시민들은 공포에 빠져들었고, 곧 그것이 독일의 폭격 비행선이라는 것이 알려지게 되었고, 영국 본토도 이제 전쟁권에 들었음을 의미하는 사건이었다.

이후 점점 쩨펠린의 공습이 증가하게 되었고, 1916년 9월 2일에는 런던에 최대규모인 14척의 쩨펠린이 출현하여 폭격을 감행했으며 수백발의 폭탄이 투하되었다. 밤하늘을 울리는 폭탄의 굉음과 멀리서도 보이는 불빛은 런던 전체를 아비규환의 소용돌이로 몰아갔다. 새벽이 되어보니 런던시민 수백명이 사상하고, 여러 군수공장이 대파되는 피해가 있었다.

[당시 한 영국 신문에 실린 그림으로 괴물처럼 표현된 쩨펠린의 모습은, 영국민들의 공포감이 어느정도였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사실 이시대에서 쩨펠린 공습이 일으킨 공포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머리위로 날아와서 폭탄을 떨어뜨리는 기괴한 모습의 쩨펠린 비행선들은 사실상 폭격자체의 성과는 크지 않았지만 이들이 일으큰 공포감으로 인해서 영국을 당혹하게 만들었다. 영국 시민들은 이러한 공습에 대비해야 했고, 밤마다 방공관제를 받아야 했다. 방공호를 만들어야 했으며, 이곳으로 대피하는 생소한 훈련까지 곳곳에서 시행되었다. 이후 영국은 본토방위를 위해서 100여대의 전투기들을 전선에서 빼내와 해안선에 배치했다. 결국 전선의 영국 항공전력이 약화되게 되는 것이었다. 결국 쩨펠린 공습은 상당한 전략적 효과를 거두었다.

[쩨펠린의 공습을 경고하는 영국의 포스터 -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집에 머무르며 가족을 보호할 것을 권유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영국 본토 방위부대의 전투기들이 쩨펠린을 막아내기 시작했다. 쩨펠린은 수소로 가득찬 비행선이었으므로 기관총 사격에 매우 취약했다. 첫 격추는 영국해군 항공대에 의해 달성되었다. 영국 해군의 레기 월렌포드가 벨기에 해안을 초계비행하던중 영국으로 향하는 쩨펠린 LZ-37호를 발견했다. 그가 조종했던 기체에는 불과 6발의 작은 폭탄밖에 없었으므로 그는 비행선보다 높은 고도로 비행을 해야 폭탄을 떨어뜨리는 시도를 해볼 수 있었다. 하지만 쩨펠린의 승무원들도 그의 기체를 발견했고 다시 기지쪽으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월렌포드의 모랑솔니에L형보다 높이 비행하는 쩨펠린을 따라 잡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상승률에서도 쩨펠린 쪽이 더 우월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추격을 계속한 월렌포드는 결국 기회를 잡았다. 비행선이 기지근처에서 하강하기 시작한 것이다. 기지근처의 대공사격이 맹렬하게 계속되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월렌포드는 비행선의 위쪽을 향해서 직선을 날아갔다. 그리고 결국 비행선의 바로위에 위치할수 있었으며 주저없이 6발의 폭탄을 투하하여 비행선을 화염에 휩쌓이게 하고는 이탈했다. 이 최초의 전공으로 그는 빅토리아 십자 훈장을 수상했다.

[레기 월렌포드가 쩨펠린을 추격하는 장면]

점점 영국 본토 방위가 증가하게 되면서 쩨펠린 비행선이 영국에 침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되었다. 그러나 1차대전 전기간을 통해 영국에 대해서 총 51회의 쩨펠린 공습이 있었고 쩨펠린의 뒤를 이어 폭격에 투입된 LVG C II나 고타 폭격기(Gotha G IV)와 같은 폭격기들이 총 52회의 폭격을 더 감행했다. 대략 총 280여톤에 달하는 9000여발의 폭탄이 투하되었으며, 이로인해서 1413명의 영국시민이 사망했고, 340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1917년에 이르러 연합군의 전투기들의 성능이 매우 향상되게 되고 수적으로도 증가하게 되면서 쩨펠린 비행선은 점점 영국 침투가 어렵게 되었다. 사실 1917년 중반을 넘어서면서 부터는 쩨펠린이 영국상공에 나타나는 것은 곧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상황에 까지 이른 것이다.

하지만 쩨펠린 비행선들의 침투시도는 계속 되었고, 가장 영국에 혼란을 유발한 폭격은 1918년 1월 28일에 있었던 쩨펠린 폭격이었다. 폭탄 한발이 오드햄 근교의 제방에 명중되어 홍수가 일어났고 이로 인해서 일대의 공장에서 조업중이던 노동자들이 한꺼번에 100명이 넘는 사상자를 냈던 것이다.

[독일의 LGV C II - 최초로 영국 공습 임무에 투입되었던 독일 폭격기의 시초겪인 기체이다.]

독일의 공습으로 인한 피해가 커지고 대중의 혼란이 계속되자 영국의회는 본토방위를 위한 공군의 창설의 압력을 계속 받았다. 사실상 1918년에 창설된 영국 공군 (Royal Air Force)은 이 쩨펠린 공습의 영향이 매우 컸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독일은 쩨펠린의 효용성이 떨어져가기 시작하면서 다른 침투방법을 고려해야 했다. 그리고 결론은 LGV C II와 같은 대형 기체를 제작하여 영국을 폭격하는 것이었다. 1916년 11월 28일부터 이러한 폭격기에 의한 침투가 시작되었고, 1917년 두 개의 260마력 메르세데스 벤쯔 엔진을 탑재한 고타 G IV가 등장하여 영국 폭격 임무에 투입되었다. 최대 시속이 시속 90마일에 육박하는 속도에 300마일정도의 항속거리와 1100파운드의 폭탄을 장비할 수 있었던 고타폭격기는 방어용으로 2정의 파라벨럼 기관총을 장비하고 있었다. 이 고타 폭격기가 비행선보다 뛰어난 장점은 편대 대형을 구성하여 서로를 효과적으로 전투기들로부터 방어할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고타 폭격기에서 시작된 영국 폭격은 4개의 엔진과 4정의 방어용 기관총을 장비하고 2200파운드의 폭탄을 탑재했던 날개 길이 138피트의 쩨펠린-스타켄 R VI라는 거대한 폭격기의 등장을 이끌어 냈다. 이 폭격기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소수가 제작되어 영국 폭격에 사용되었다.

[쩨펠린 비행선의 침투 루트 및 주요 폭격지점]

쩨펠린으로부터 시작되어 고타 폭격기까지 이어지는 폭격작전의 결과, 이제는 영국도 전쟁에서 안전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했으며, 훗날 1940년의 런던 대공습을 영국민이 이겨낼 수 있었던 데에도 이때의 경험이 큰 역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