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ct 1. 전쟁을 향한 경주 (Racing to war) ◇

 This document was updated at 2000. 11. 28

1차대전이 끝난 후 패전국 독일은 연합국으로부터 많은 수치스런 조치를 당했다. 특히 위세당당하게 유럽하늘을 누볐던 독일공군은 그 날개를 완전히 잃어 버렸고 조종사들은 패전의 치욕속에 해산한후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연합군들의 요구에 의해서 패전국의 굴욕을 강요한 베르사이유 조약이 체결되어 독일공군의 모든 공군기들이 폐기되었으며 독일은 공군을 가지는 것 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바르세이유 조약의 결과로 독일인들은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고 언젠가는 몇배로 복수를 해주겠다는 마음을 다짐하고 있었다.

[ 1차대전 말기 영국의 SE5에게 격추되는 독일의 포커 Dr 1, 이 그림이 상징하는 것처럼 전쟁이 끝나자 독일공군의 영광은 과거의 것이 되어 버렸다. 과연 독일의 독수리는 이대로 주저않고 말 것인가? ]

반면 승리한 연합군은 대전말기에 등장했던 최신형 공군기들을 대규모로 보유하고 있었고 더욱 최신의 모델들이 대규모의 생산 시설에서 설계, 생산되고 있었다. 승전하고 돌아온 조종사들은 영웅이 되어 국민들의 환영속에 창공의 시대를 확립한 주역들이 되었다. 많은 곡예비행이나 비행시범행사가 개최되었고 미래의 주역으로서 공군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사실 1차대전이 끝난후에도 공군의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 육군과 해군의 압력에 의해서 많은 나라에서 공군이 새로운 전력으로 인정되는데에 많은 진통이 있었다. 영국만 하더라도 1925년까지 여전히 폭격기 또는 전투기 비행대 단 1개를 정식으로 공군 소속으로 배치하는 것도 육군의 견제를 받고 있었다. 육군과 해군의 장성들은 공군의 존재는 형식적으로 인정하더라도 항공기는 육군이나 해군 소속으로 두기를 원했다. 하지만 영국공군을 열열하게 옹호하던 휴 트렌차드경의 노력으로 영국 공군은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미국에서도 항공전력이 정착하는데는 많은 진통이 있었다. 사실 미국은 최초로 항공기를 날려 창공의 시대를 개척한 나라이면서도 이 무렵에는 전쟁을 통해서 발달한 유럽의 항공기술에 많이 뒤쳐진 상태였다. 따라서 일부 뜻있는 인사들은 이점을 심각하게 걱정하고 있었다. 특히 열렬한 공군 옹호론자였던 빌리 미첼 장군은 항공전력의 개발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이며 독자적인 공군을 독립시켜야 한다는 자신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직접 항공력의 위력을 보여주는 실험을 공개적으로 시행하기도 했다. 1921년과 23년 마틴 MB-2 폭격기를 사용하여 1차대전에서 노획한 독일 군함 3척을 폭탄으로 명중시켜 가라앉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이 실험을 관전한 미육군의 관계자들은 항공기의 위력에 충격을 받았으면서도 대부분 이의 의미를 격하시켜 상부에 보고했다. 여전히 미군부는 공군의 독립에 대해서 부정적이었으며 많은 선구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10여년의 세월이 지난후에야 겨우 육군항공대라는 이름으로 항공전력이 유지될 수 있었다. 따라서 미국의 항공전력은 2차대전 발발시에도 육군항공대라는 명칭으로 운영되었으며 정식으로 공군이라는 군대는 없었다.

[ 이것이 바로 공군의 실력이다! 1921년 9월 열렬한 공군 옹호론자 미첼 장군이 미군부를 설득하기 위해서 MB-2 폭격기를 사용하여 독일 전함을 명중시키는 장면이다. 폭탄이 전함의 마스트에 적중하여 이런 멋진 장면을 연출했다. -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공중전력이 인정받는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

하지만 공군이 미래전장의 주역이 될 것을 예견하고 주창한 많은 선구자들에 의해서 결국 공군이라는 전혀 새로운 군대의 존재가 부각되었고 아무리 아니라고 부인을 해도 이미 새시대를 열고있는 항공의 물결은 막을 수 없었다. 점차로 그 가능성을 인정한 유럽 각국과 미국은 독립적인 공군을 창설하거나 육군 예하에 항공대를 만들어 공중전력의 강화에 국력을 쏟기 시작했다.

항공전력에 대한 승전국들의 기대는 매우 컸으며 프랑스, 영국, 미국에서는 항공산업이 매우 전망이 밝은 유망 산업으로 각광 받았다. 그러나 1920년대에 들어서 전세계적으로 경제활동이 둔화되고 각국의 정치가들은 그들의 국민이 환상에서 깨어나 자신들에게 부과되는 세금이 무기개발로 인해서 더욱 무거워 지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새로운 군용기들의 개발에는 제동이 걸렸으며 공군은 1차대전때 사용했던 기체들을 사용할 것을 강요받았다. 정부가 주도하는 지원이 사라지자 많은 항공기 제작사들이 자금 부족으로 압박을 받게 되었고 군용 항공기를 개발하는 것에 대해서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 1925년 첫 번째 슈나이더 컵 스피드 경주에서 우승을 차지한 지미 둘리틀과 그의 커티스 수상기, 이로서 국가의 자존심을 건 스피드 경쟁이 절정을 향하고 있었다. 훗날 둘리틀은 특공대를 조직하여 일본 본토를 기습적으로 공격하는 작전을 이끌 게 된다.]

그러나 이런 시기에도 민간분야의 항공기술은 계속 발전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 초반까지 명예와 상금이 걸린 많은 기록 대회가 속속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점차로 대중의 관심은 자국의 항공기들이 각종 기록을 갱신하는데에 집중되어 있었다. 어떤 나라의 어느 회사의 비행기가 얼마나 오래 날았다더라, 아니면 얼마나 높이 날았다더라하는 것은 매스컴을 타고 급속히 퍼져나갔으며 특히 가장 주목을 받았던 최고 속도 분야에서는 더욱 경쟁이 치열했다. 물론 이런 대회에서 새로운 기록을 작성한 조종사들도 최고의 유명세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과열된 경쟁속에 사고도 빈발하여 자신들의 젊음을 하늘에 바치는 조종사들도 속출했다.

이 당시에 항공기술 발전에 가장 큰 기여를 한 대회는 유명한 바로 슈나이더컵 스피드 레이싱이었다 (항공 애니메이션 '붉은 돼지'에도 인용되는 대회지요..). 이 대회는 수상기를 대상으로 개최되는 스피드레이싱으로서 각국의 수상기들이 1년마다 슈나이더트로피를 놓고 벌이는 속도 경쟁은 세상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주요 이벤트가 되었다. 특히 3년 연속으로 트로피를 차지하는 나라는 이 트로피를 영구적으로 소장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질수 있다는 규정이 있어 최초로 3연패를 달성하고자, 나라와 회사의 명예를 걸고 항공기 제작사들이 매년 새로운 기체를 디자인하고 보다 강력한 엔진을 개발하는데 여념이 없었으며 조종사들도 이 대회에 참가하는 것을 큰 영예로 생각하게 되었다.

[ 슈나이더컵 3연패를 달성한 슈퍼마린 S6B 수상기, 기체의 실루엣이 척봐도 스핏화이어와 닮았음을 알 수 있다. 후에 용명을 떨친 명전투기 스핏화이어는 갑자기 태어난 것이 아니라 이처럼 축적된 기술의 결실이었다. ]

1925년, 훗날 도꾜 기습 폭격작전을 지휘하게되는 미국인 지미 둘리틀이 복엽수상기인 커티스 R3C-2 수상기를 몰고 시속 232.5마일이라는 놀라운 기록으로 첫 번째 우승을 차지 하면서 슈나이터 컵은 더욱 각광 받게되었다. 하지만 이 기체는 복엽기로서 이 대회에서 우승한 마지막 기체가 되었고, 이후 모든 우승은 고속 성능에서 우세한 단엽 수상기가 차지 하게되었다. 1926년에는 이탈리아의 마키사의 기체가 우승을 하였지만 이후부터는 영국의 항공기 제작사인 슈퍼마린사의 기체들이 위세를 떨쳤다.

1929년 슈퍼마린사의 수석 설계사인 레지널드 미첼이 설계한 슈퍼마린 S-5 수상기가 대회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 기체는 저익 단엽기 설계를 도입하고 700마력의 네피어 라이온 엔진을 장착하였으며 시속 281.65마일의 세계 신기록으로 우승을 하면서 세상을 놀라게 하였고, 이듬해인 1930년에는 더욱 강화된 롤스 로이스엔진을 장착한 슈퍼마린 S-6 수상기가 시속 328.63마일이라는 놀라운 속도 신기록을 수립하여 다시 우승하였다. 그리고 1931년 드디어 S-6B 수상기가 다시 우승을 차지하면서 슈나이더 대회의 3년 연속 우승이라는 대 기록을 달성했다. 규정에 따라서 영국은 슈나이더 트로피를 영구히 거머뒤게 되었고 스피드에 있어서는 슈퍼마린사의 기체들이 최고라는 것을 인정받게 된 것이다. 이 슈퍼마린 S 시리즈의 우수한 설계는 훗날 풍전등화 같은 운명의 영국을 지켜낼 불멸의 전투기 슈퍼마린 스핏화이어의 바탕이 되게 된다. 슈나이더 컵과 같은 대회로 인해서 항공기의 성능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게 되었다.

[ 최초로 대서양을 무착륙으로 횡단한 찰스 린드버그가 그의 애기 spirit of St. Louis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항공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대사건이었다. ]

1920년대의 항공기술의 황금기에 이루어진 또 하나의 위대한 성과는 불가능에 대한 도전이었다. 바로 대서양을 무착륙으로 횡단하는 것에 대한 도전이 성공한 것이다. 1927년 5월 20일 미국인 찰스 린드버그가 '센트루이스의 정신 (Spirit of St. Louis)'라 명명된 자신의 애기를 몰고 홀로 뉴욕을 출발하여 33시간 39분이라는 긴 시간을 논스톱으로 비행한 끝에 결국 파리에 착륙한 것이다. 이것은 대서양으로 인해서 배가 아니면 왕래할 수 없었던 미국와 유럽이 항공기라는 다리에 의해서 하나의 생활권이 되어버렸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떤면에서보면 이제부터는 미국도 유럽에서 전쟁이 발발하는 경우 이제는 항공공격의 사정권에 들게 해버린다는 것을 의미했다. 따라서 미국은 유럽의 정세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와 같이 여러 항공 분야에서 많은 새로운 기록들이 작성되어 세인들의 관심과 찬사를 받음에 따라 항공기 제작사들은 새로운 스폰서를 확보 할 수 있었고, 1930년대 중반에는 많은 항공사들이 더욱 뛰어난 성능을 가진 새로운 항공기들을 제작하고 있었다.

1920년대 후반에 민간항공 기술자들은 점차 단엽기의 장점에대해서 알게되었다. 1차대전의 주역은 쌍엽기들이었지만 항공기술의 발달은 단엽기의 개발이라는 대세를 향해서 나아갔고 이에대한 기술이 점차로 쌓여갔다. 기체 설계 기술의 발달로 단엽기도 복엽기 못지않은 안정성을 가질수 있게되었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군용항공기는 1차대전의 복엽기에서 약간 발전된 쌍엽기들이 표준이었다. 이것은 쌍엽기가 단엽기보다는 우수한 기동성과 안정성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이때까지도 선회전시에 유리한 기동성이라는 것이 전투기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 평가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1920년대 영국은 글로스터 게임칵, 페어리 파이어플라이, 브리스톨 불독등과 같은 쌍엽 전투기를 계속 생산했다. 하지만 전투기에게 꼭 필요한 성능은 기동성이라는 선입견에 쌓여있던 공군 관계자들은 단엽기가 가진 빠른 속도라는 장점에 대해서는 인지하지 못하는 실수를 범했다. 이제 1차대전당시의 기술보다 훨씬 향상된 단엽기 제작 기술로 인해서 더욱 속도가 빨라지게 되었지만 이러한 점에 주목하는 군 관계자는 거의 없었다.

영국공군이 전후에 생산한 복엽전투기중 하나인 불독 II, 기동성은 우수했으나 속도에서 새로운 단엽기보다 느렸다. 하지만 영국공군은 복엽기의 한계에 대해서 인식하는 것이 늦었다.

만일 빠른 속도를 가진 단엽 폭격기가 등장한다면 제아무리 기동성이 우수한 복엽전투기가 요격해오더라도 빠른 속도로 따돌려 버리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우려는 1930년대 중반에 들어서 현실이 되어버렸다. 단엽기이면서 영국의 일선 전투기보다도 시속 80km정도나 빠른 시속 450km의 속도를 가진 영국의 브리스톨 블렌힘 폭격기가 등장하면서 당시 영국 공군의 최신 전투기였던 글로스터 글라디에이터와 같은 쌍엽전투기로는 이 폭격기를 따라 잡기조차 힘들게 되어 버렸다. 이와 같은 결과로 인해서 고속 폭격기라는 새로운 전술기가 등장했으며 '전투기는 폭격기를 따라잡을 수 없으며 따라서 폭격기는 무적의 존재이다'라는 주장을 하는 공군 장성들이 나타났고 이들이 영국공군 폭격기부대를 양성을 주장하게 되었다. 물론 이런 생각은 당시의 상황으로 볼 때 일리는 있었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속도가 빠른 단엽 전투기가 나타나는 경우 폭격기는 식탁위의 파리같은 존재가 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전의 영국 군관계자들은 아무도 이런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이로서 영국공군의 관계자들이 이런 오판을 인식하는데는 10여년의 세월이 필요했던 것이다.

독일과 이탈리아등이 우수한 단엽 전투기를 개발하면서 비로소 위기의식을 느낀 영국은 유럽의 국가들중에서 가장 늦게 단엽 전투기를 개발해야하는 처지에 처했으며 많은 정신적인 압박을 받게 되었다. 이때부터 영국의 2대 유명전투기 허리케인과 스핏화이어의 전설이 시작되게 된다.

[ 영국공군은 군세확장을 시행하여 1934년에는 본토 방위 비행중대가 52개에서 75개로 늘었다. 하지만 대부분이 전투기들은 이처럼 복엽기였다. 사진은 편대 훈련중인 데몬 전투기들이다. ]

미국의 경우에는 이러한 점에 대해서 몇 년 빨리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역시 군부내에 폭격기 무적론이 대두되어 단엽기 제작기술을 전투기를 설계하는데 도입하기보다는 전투기보다 빠르고 요격기의 도전을 쉽게 물리칠 수 있는 강력한 무장을 가진 폭격기를 개발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1932년 마틴 B-10 폭격기가 선을 보여 유럽보다 폭격기 기술에 대해서는 몇 년 빨리 진척하고 있었다. 특히 영국공군이 경폭격기를 개발하고 있던데 반해 적략적인 목표를 강타하는 전략 폭격기의 중요성을 주창했던 빌리 미첼 장군과 같은 선구자들 덕분에 마틴 NBS-1, 커티스 B-2와 같은 폭격기들이 계속 개발되게 되어 세계에서 가장 앞선 중폭격기 기술을 가질 수 있었다. 1936년 1월에는 미래에 유럽 하늘의 지배자가 될  4발 중폭격기 B-17이 실전 부대에 인도되었다.

그러나 이 무렵 수치스런 베르사이유 조약하에서 복수의 칼날을 갈고있던 독일의 히틀러가 독일의 재무장을 추진하고 있었고 특히 독일 공군의 재건이 비밀리에 이루어졌다. 독일은 지난 전쟁에서의 교훈으로 전장에서 위력을 발휘할 새로운 항공기들을 비밀리에 개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독일이 본격적인 재군비를 추진하면서 세계 각국은 마치 결승점을 향해 질주하는 자동차들처럼 새로운 전쟁을 향한 경주에 뛰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