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본토 항공전 편

창공의 삼두마차

 This dicument was updated at 2001. 1. 4

* 리히토펜에게 도전한 사나이들

1940년 6월, 프랑스를 점령한후 영국침공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독일 공군의 영광이 하늘 높은줄 모르고 뻗어나갈 무렵, 수많은 조종사들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활약을 하면서 독일국민의 사랑과 기대를 한몸에 받던 새로운 시대의 영웅들이 있었다.

[ 영국 본토 항공전이 시작될무렵 독일 신문에 실린 그림으로서, 격추왕을 향한 경쟁을 벌이는 두 에이스, 묄더즈와 갈란트의 경쟁을 삽화로 표현하고 있다. ]

* 원조 슈퍼 에이스 베르너 묄더즈

이 세명의 쟁쟁한 에이스중의 선두는 단연 베르너 묄더즈였다. 2차대전이 발발하기전 스페인 내전에 콘돌 군단 소속으로 파견된 묄더즈는 일찌감치 그의 전술적인 재능을 만개시켰다. 그는 용맹하고 결단력있는 조종사였을 뿐만 아니라 새시대의 항공전에 대한 영감을 가지고 있었던 전술의 대가였던 것이다. 마치 1차대전에서 공중전술의 기초를 확립한 오스발트 뵐케처럼 베르너 묄더즈는 스페인 내전의 경험을 통해서 독일 공군 전투기 조종사들에게 교범과도 같은 새로운 전술을 창안했다.

2차대전 내내 독일 공군 전투기들의 기본 편대대형인 로터와 슈밤이 그것으로 (유럽 항공전 - 전쟁전의 전쟁편 참고) 이 편대 전술은 당시 독일 공군의 신예 전투기 Bf 109E의 우수한 성능과 결합되어 빛을 발하게 되었다. 이후 전쟁이 진행되면서 이 편대 대형은 전세계의 공군의 기본편대 대형으로 정착되게 된다. 스페인 상공에서 불과 4개월만에 14기의 격추라는 대기록을 수립한 될더즈는 이후 전격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전에 독일로 귀환하여 JG 51의 지휘봉을 잡고 창공을 누비면서 전격전의 하늘을 주도했다. 여러 가지 면에서 베르너 묄더즈는 1차대전의 오스발트 뵐케와 너무나 흡사했다. 독일 공군내부에서 그의 인품과 지도력은 전 독일 공군내에 소문이 자자해서 독일 공군 병사들은 그를 아버지라는 뜻의 '파티 (vati)'라고 불렀다.

* 쌍두용 아돌프 갈란트

한편 이에 뒤질세라 기세를 올리고 있던 또 한명의 영웅이 있었다. 베르너 묄더즈가 스페인 내전에서 이미 에이스에 등록하고 기세를 올리는 동안 기회만을 기다리던 아돌프 갈란트는 전격전이 시작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서유럽의 하늘로 날아올라 연합군기들을 보이는 족족 격추시키기 시작했다. 결국 독일군의 공세에 무너진 프랑스가 항복하는 시점에서 그는 17기의 격추를 기록하여 베르너 묄더즈를 위협하는 존재가 되었다. 게다가 묄더즈와 마찬가지로 주위사람들을 따르도록 만드는 훌륭한 인품과 뛰어난 조종술, 그리고 진정으로 조국을 사랑하던 애국자였던 이 사람이 바로 아돌프 갈란트였다.

그도 역시 조종사로서의 자질뿐아니라 뛰어난 지도자로서의 자질도 겸비하고 있었다. 독일 공군이 최고의 영광을 누리고 있던 이 시기에 이들 두 사람은 전 국민의 스타가 되었으며 대전 초기에 가장 훈장을 많이 받은 군인이기도 했다. 독일 언론과 공군은 이들의 활약상을 1면에 크게 실어 전 국민의 사기를 높이는데 이용했다. 프랑스 전투가 끝난후 영국 침공작전이 시작될 무렵 두 젊은 소령은 독일 국민에게 가장 주목받는 인물이 되어 있었고 묄더즈는 JG 51, 갈란트는 JG 26의 지휘관을 맡아 영국 본토 항공전에 나서게 되었는데 이때 그들의 나이도 27세, 28세로서 전성기를 맞고 있었다.

* 젊은 투사 헬무트 뷔크

한편, 또 한명의 에이스가 이들 두사람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사람이 전격전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에이스가 된 25세의 젊은 청년 장교였던 헬무트 뷔크였다. 스페인 내전에서 베르너 묄더즈휘하에서 공중전술을 연마하면서 묄더즈에게 큰 영향을 받았던 뷔크는 곧 전투기 조종사로서 뛰어난 재능을 가진 것을 인정을 받게되었고 그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격전이 시작되자 헬무트 뷔크도 눈부신 격추 행진을 계속 하면서 영국 본토 항공전이 시작될 무렵 25세라는 가장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묄더즈와 갈란트를 뛰어넘는 최고 에이스가 되겠다는 야망에 불타고 있었다. 전투가 벌어질 때면 항상 선봉에 서기를 좋아했던 헬무트 뷔크는 싸울 기회만 주어지면 주저없이 출격행에 나섰으며 이런 전투 의욕과 함께 뛰어난 실력도 겸비하고 있었다. 결국 프랑스 전투가 종료될무렵 14기의 격추를 기록하여 묄더즈와 갈란트의 뒤를 이어 서열 3위의 위치에까지 올랐다. 프랑스의 항복이후 독일공군은 영국침공작전을 실행에 옮기게 되는데, 1940년 여름하늘을 뜨겁게 달구게될 영국 본토 항공전이 바로 헬무트 뷔크가 그토록 기다리던 기회였다.

* 전투에는 이겼으나 전쟁에 지다.

영국 본토 항공전이 시작되자마자 이들 격추왕 3두 마차는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이 하늘로 날아올라 영국 전투기들을 격추시켜 나갔다. 하루는 묄더즈가, 그 다음날에는 갈란트가, 또 그다음 날에는 뷔크가 격추 스코어를 올리면서 격추왕을 향한 경쟁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들이 계속 용전 분투하면서 싸웠음에도 불구하고 전황은 좀처럼 진전이 없었다.

[ 자신의 애기 Bf 109E-4의 20mm 기관포구를 들여다보며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헬무트 뷔크, 그는 영국 본토 항공전이 끝난후에 격추왕 자리에 올랐다. ]

궁지에 몰린 영국 공군의 저항은 독일 공군이 예상했던 수준을 넘어서고 있었으며 독일 조종사들도 예상외의 큰 피해에 과중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영국 전투기들의 집중 요격을 받았던 독일 폭격기대의 피해가 매우 심각하여 전투기의 호위를 더욱 강화해 줄 것을 요청받으면서는 영국 전투기들을 찾아다니면서 싸우던 Bf 109E 전투기 조종사들이 폭격기 호위라는 수동적인 임무로 돌려졌다.

그러나 전황은 더욱지지부진해져서 독일공군을 당황하게 만들었으며 조종사들마나 넘쳐나던 초반의 기세는 온데간데없이 영국공략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다. 결국 영국 공군을 완전히 섬멸하겠다던 괴링의 다짐과는 다른 양상으로 소모전이 지속되면서 9월 15일 대규모 공중전을 기점으로 독일군의 영국 상륙작전은 물건너가게 되었다. 결국 이들 에이스들과 Bf 109E 조종사들은 영국의 스핏화이어와 허리케인을 상대로 격추교환비에서는 앞서는 분투를 했음에도 전략에서 지는 결과가 나타났다.

하지만 영국 상공에서의 전투는 산발적으로 계속 벌어졌으며 이들 3인방의 격추 기록경쟁은 계속되었다. 업치락 뒤치락 하던 격추왕 경쟁은 40기 격추기록을 달성하는 날짜에서는 갈란트가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갈란트는 9월 25일, 묄더즈는 9월 26일, 뷔크는 10월 3일에 40기의 격추기록을 넘어섰다.

* 별 셋은 하나가 되고...

하지만 독일 공군의 영광의 시기가 절정을 지나면서 이들에게도 운명의 날이 찾아오고 있었다. 운명의 여신은 3인방중에서 가장 어린 헬무트 뷔크에게 먼저 손짓을 했다. 이때 뷔크는 그의 인생에서 최고조에 달한 절정의 영예를 얻고 있었다. 그는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의 전공을 인정받아 25세라는 최연소나이에 Jagdgeschwader의 지휘봉을 잡는 영광을 얻었는데 그의 부대가 바로 리히토펜 비행단의 칭호를 가지고 있던 JG 2였다. 하지만 헬무트 뷔크는 전투기 조종사로서는 베르너 묄더즈도 인정하는 최고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부대를 통솔하는 지도자로서는 함량 미달이었다. 독일 공군내부에서는 승승장구의 분위기 속에서 격추 전과를 많이 올린 에이스들에게 부대의 지휘봉을 맡기는 경우가 많았었는데 이런 와중에 헬무트 뷔크같은 젊은 장교까지 JG의 지휘관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절정의 기량의 과시하면서 격추행진을 계속하여 42기째 격추 스코어를 기입할 무렵의 헬무트 뷔크의 Bf 109E-4, 노란색의 기수와 JG 2의 부대마크인 'R'자, 그리고 JG 2 제 3중대의 마크(칼)를 볼 수 있다.

1940년 11월 28일 55기의 격추기록을 기록하면서 최고 에이스에 등극한 헬무트 뷔크는 54기를 격추시킨 묄더즈와 52기의 격추기록을 수립한 갈란트와의 경쟁에서 추격을 허용하지 않고 앞서나가고 싶다는 공명심에 사로잡혀 있었다. 결국 이날 출격에 나선후 대등한 수의 영국 전투기들과의 치열한 교전에 빠져든 헬무트 뷔크는 1기의 스핏화이어를 격추시켰으나 다른 스핏화이어에게 명중탄을 맞아 연기를 끌면서 도버의 찬 바닷물에 떨어져 내렸다. 독일 공군은 추락 장면이 확인되지는 않았다는 이유로 그를 행방불명으로 처리되었다가 결국 공식적인 전사자 명단에 올렸다. 결국 25세의 젊은 청년 헬무트 뷔크는 그가 그토록 원했던 최고 에이스자리를 빼았기지 않은 셈이 되었다. 그가 죽는 날까지는 56기의 격추기록이 독일공군내에서 최고의 기록이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1941년 6월부터 독일의 침략정책이 영국에서 선회하여 소련을 겨냥하게 되면서 중령으로 진급한 베르너 묄더즈는 그의 JG 51을 이끌고 동부전선으로 향했다. 서부전선에서 영국 공군과 전투를 계속맡게된 JG 26의 아돌프 갈란트와 헤어져 소련공군기들을 사냥하게된 묄더즈는 바바로사 작전이 시작되자마자 영국 전투기 조종사들과는 한참 아래의 수준이었던 소련 조종사들을 상대로 눈부신 격추행진을 계속했다. 결국 1941년 6월 30일에 드디어 묄더즈는 불가능한 것으로만 보였던 리히토펜의 80기 격추기록을 넘어섰다.

소련군을 상대로 눈부신 격추 전과를 올릴 무렵의 묄더즈의 애기 Bf 109F, 묄더즈는 이 기체의 우수한 비행성능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1941년 7월 101기의 격추를 기록했을 당시의 격추마크가 그려져 있고 JG 51의 부대마크도 자세히 볼 수 있다.

이제 묄더즈는 단연 독보적인 존재가 되어 있었고 1941년 7월 25일에는 100기의 격추기록을 달성하여 전 독일 최고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괴링은 이 사랑하는 부하에게 전투기부대 총감직을 내려 화답했다. 하지만 전투기 부대 총감이라는 높은 직책에도 틈틈이 출격을 계속한 묄더즈는 115기까지 격추기록을 올려놓았다. 하지만 그에게도 운명의 여신은 찾아왔다. 1941년 11월 18일 독일 공군의 상관이었던 에른스트 우데트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서 He 111 폭격기를 타고 독일로 향하던 묄더즈는 갑작스런 기상 악화로 He 111 폭격기가 불시작하는 과정에서 기체가 폭발하는 사고로 어이없게도 사망하고 말았다. 베르너 묄더즈 역시 헬무트 뷔크처럼 최고의 자리에서 죽음을 맞은 것이다. 그리고 그의 죽음과 함께 동부전선의 독일군은 소련군에게 밀리기 시작했다.

* 홀로남은 영웅

[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출격 대기중인 갈란트, 전방창에 개인적으로 망원 조준경을 설치했고 후방 방탄판을 없애 후방시야를 개선하도록 하는 개인적인 개조를 했다고 한다. ]

개전초기 가장 주목받던 3인방중에 홀로남은 갈란트는 튜튼 여신이 배려를 한 것인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살아남았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이라면 상대가 누구이든간에 직언을 서슴지 않았던 갈란트는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전황이 뜻대로 전개되지 않게되자 전투기 조종사들을 질타하던 공군 원수 괴링에게 '그렇다면 우리에게 스핏화이어를 주십시오.' 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여 괴링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묄더즈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전투기부대 총감직을 맡게된 갈란트는 이후 출격기회가 줄어들어 103기의 격추기록을 남겼지만 세상은 죽은 영웅보다는 살아남은 영웅에게 더 많은 할 일을 주었다. 그는 이후 계속 불리해지는 전황속에서도 독일 공군의 지도자로서 끝까지 독일공군을 이끌면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 전투기부대 총감이 된후에도 항상 야전 부대를 시찰하면서 조종사들과 대화를 했던 갈란트는 전 독일 공군의 진심어린 존경을 받던 인물이었다. ]

세계최초의 제트전투기 Me 262의 개발에도 갈란트의 노력이 숨어있었고, 무능한 공군원수 괴링과 대립하면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거침없는 직언을 한 갈란트 덕분에 독일은 그나마 공군전력을 어느정도 유지하여 연합군 공군에게 대항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전쟁말기에 계속 옳은 소리를 하는 것이 문제가되어 괴링의 미움을 사게된 갈란트는 죽음의 부대라고 불렸던 JV 44 제트 전투기부대로 좌천되었지만 그는 그와 뜻을 같이한 여러동료들과 함께 제트전투기를 타고 날아오를 수 있을 때까지 날아올라 조국을 위한 전투를 계속했다. 결국 갈란트는 중과부적의 상황에서 벌어진 치열한 공중전중에 피격되어 부상을 입고 그의 날개를 접어야 했으며 전쟁이 끝난후 연합군의 포로가 되었다. 이후 갈란트는 살아있는 전설이 되어 많은 2차대전 뒷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었고, 1996년 84세를 일기로 묄더즈와 뷔크가 기다리는 하늘로 영원히 날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