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별

북아프리카 항공전 편

◇ 북아프리카 하늘에 빛나는 두 요헨 ◇

This document was updated at 2004. 2. 8

* 전설속의 두 요헨

독일에서는 '요아힘 (Joachim)'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을 호칭할 때 친근감있는 표현으로 '요헨 (Jochen)'이라고 줄여서 부르는데, 다른전선의 항공전에 비해서 유독 전투기 조종사들의 독무대가 되어버려 이른 바 '전투기의 전쟁'이라고 불리운 지중해-북아프리카 항공전에서 독일공군은 수많은 에이스 조종사들을 배출했지만, 이 중에서도 유독 다른 조종사들과는 한눈에 구별되는 특출한 기록을 남기게 되는 2명의 요헨이 있었다.

첫 번째 '요헨'은 비록 서부전선을 근거지로 하고 있었던 JG 26 전투비행단 소속이었음에도, 이 부대의 특공대겪인 7중대를 이끌고 몰타, 발칸반도, 리비아등 지중해-북아프리카 전장의 모든 전투지역을 무대로 전설적인 행적을 남긴 요아힘 뮌히버그 (Joachim Müncheberg)이다.

그리고 두 번째의 '요헨'은 치열한 전투가 전개되던 북아프리카의 하늘에 혜성과 같이 나타나 엄청난 활약을 펼치며 '아프리카의 별'이라는 전설적인 칭호와 함께 전세계 어느시대의 조종사들과 비교하더라도 단연 최고의 공중전 실력을 가졌던 인물로 평가받는 한스 요아힘 마르세이유 (Hans Joachim Marseille)이다.

이 두명의 조종사들은 북아프리카에 나타났을 때 그들의 나이가 각각 22세, 21세에 불과했던 젊은이들로서 이때부터 짧은 기간동안 활화산처럼 타오른후 두명 모두 북아프리카에서 영원히 잠들게 되는 운명을 가지고 있었다.

* 모든 전선의 에이스 요아힘 뮌히버그

[ 미남 에이스 요헨 ]

2차대전이 발발할 때까지만해도 히틀러는 '동시에 2군데의 전선에서 싸우는 1차대전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며 공공연하게 외치고 다녔지만 영국본토 항공전의 실패로 인해서 영국을 배후에 두고 소련을 침공하게 되면서 결국 그의 공언은 허공으로 떠 버렸다. 여기에다가 제 3의 전장인 지중해-북아프리카에도 전력을 분산시킴으로써 두군대의 전선에서 싸웠던 1차대전때보다도 오히려 더 전력을 분산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던 것이다.

이로인해 독일군은 전쟁이 중반을 넘기면서부터는 모든 전선에서 연합군에게 수적으로 크게 열세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런 상황은 공군에게도 예외가 아니어서 모든 독일 조종사는 전쟁 중반부터는 항상 수적으로 크게 열세인 상황에서 그야말로 죽을 때까지 싸워야 했다.

이런 와중에서 서부전선, 지중해-북아프리카 전선 그리고 동부전선까지 독일군이 싸우던 모든 전장의 하늘에서 특출한 전과를 올린 에이스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훗날 '스핏화이어 킬러'라는 별명으로 유명해지는 요아힘 뮌히버그였다. 그의 최종전과는 총 격추대수 135기로서 독일공군 전체에서는 49위에 해당하는 평범한 (?) 기록이었지만 그는 독일공군이 싸웠던 모든 전장에서 고른 격추기록을 올렸으며 특히 서부전선에서의 전과만을 놓고보면 총 102기를 격추시켜 에곤 마이어, 베르너 슈뢰어등과 함께 서부전선 7위의 에이스로 기록되었다. 이 요아힘 뮌히버그는 서부전선을 대표하는 JG 26 슐라게터 비행단에서 주로 활동했는데, 왜 지중해-북아프리카의 에이스의 리뷰에서 언급하는가? 하는 의문을 가지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점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은 그의 격추기록을 참고하면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주요 전투지역

격추대수

동부전선

지중해-북아프리카

서부전선

위에서 볼 수 있듯이 뮌히버그는 그가 기록한 총 135기의 격추기록중에서 지중해와 북아프리카 전장에서도 무려 48기의 격추기록을 올렸던 것이다. 더욱이 뮌히버그가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은 그가 단지 전투에서만 뛰어난 조종사였기 때문만이 아니라 전투기부대 지휘관으로서의 높은 자질과 훌륭한 업적때문이다.

* 슐라게터의 특공대장

요아힘 뮌히버그는 21세의 젊은 나이에 JG 26 3연대에 배속되어 1939년 11월 17일 영국공군의 블렌힘 폭격기를 격추시켜 첫 번째 전과를 올리게되며, 이후 계속되는 서부전선의 전격전과 영국본토 항공전에서 맹활약하며 총 20기의 연합군기를 격추시켜 탑에이스의 반열에 들어섰다. 이때의 전과를 인정받은 뮌히버그는 중위로 진급함과 동시에 기사철십자장을 수여받았으며 JG26의 7중대장으로 임명되었다.

[ 몰타상공에서 허리케인을 격추한후 환하게 웃으며 조종석에서 내리는 뮌히버그, 안테나에 부착된 작은 흰색 깃발은 뮌히버그가 애용하던 7 중대장의 표식이다. ]

서부전선에서 맹활약하던 뮌히버그가 지중해-북아프리카 지역으로 진출하게 되는 과정은 항공전사에서 이미 언급했던 것처럼, 몰타섬을 둘러싼 항공작전에서 제 10 항공군단이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JG 26 전투비행단장 아돌프 갈란트가 가장 믿음직한 부하였던 7중대장 뮌히버그와 그의 중대를 파견하기로 결정하면서 부터였다. 이때부터 뮌히버그가 이끌던 JG 26의 7중대는 약 8개월의 기간동안 지중해-북아프리카 전역에서 맹활약하며 인상적인 기록을 남기게 된다. 뮌히버그도 그의 경력에서 가장 특별한 행적을 남기게 된다.

그가 이끌던 7중대는 1941년 2월 12일 시칠리에 도착하자마자 뮌히버그의 주도하에 몰타상공의 영국공군 전투기들을 쓸어 버리며 단숨에 지중해의 제공권을 장악했고, 이후 2개월간 몰타의 영국공군을 철저하게 유린하면서 거의 빈사상태로까지 몰아넣었다. 이후 독일군이 유고와 그리스를 침공하자 이지역의 우군을 지원하게 위해 7중대는 4월 6일부터 약 일주일간의 기간동안 지중해 저편의 발칸반도 지역까지 진출해 제공권을 장악하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몰타로 복귀한 7중대는 어떻게든지 살아나고자 몸부림치전 몰타섬의 영국공군을 끊임없이 두들겨대며 1941년 5월까지 몰타섬을 둘러싼 지중해상의 제공권을 완벽하게 장악했었다.

1941년 3월 이탈리아 시칠리섬의 젤라 비행장에 주둔중이던 '흰색 12번' Bf 109E-7, JG 26 전투비행단 제 7중대장 요아힘 뮌히버그 탑승기이다.

그러나 7중대는 5월말에 크레타섬 공략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다시 남부 그리스지역으로 이동했다가, 이후 시칠리의 제 10 항공군단이 독소전의 개전에 대비해 동부전선으로 이동하는 결정이 내려지면서 제 10 항공군단에 파견형식으로 배속되었던 7중대는 그 근거지를 잃게되어 모부대인 JG 26으로 복귀하려는 계획을 세웠으며, 다시는 몰타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러나 독일공군의 이런 결정은 몰타섬에서 거의 벼랑끝까지 몰렸던 영국공군이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며, 절대절명의 위기에서 되살아난 몰타섬의 영국공군기들은 추축군의 해상보급로에 심대한 타격을 입혀 롬멜장군과 아프리카 군단의 숨통을 조르게 된다.

몰타섬을 떠날 때까지 뮌히버그는 몰타섬과 발칸반도의 하늘에서 총 20기의 격추기록을 올려 그의 기록을 44기로 높였다.

[ 부대원들로부터 축하를 받는 장면 ]

한편, 이무렵 롬멜장군이 이끄는 돌일 전차부대가 영국군을 밀어붙여 토브룩을 포위한후 멈춰섰는데, 이후 영국군이 계속 반격작전에 나서면서 제공권 쟁탈전이 치열해지자 아돌프 갈란트는 뮌히버그에게 서부전선으로의 귀환을 잠시 늦추고 중대원들과 함께 북아프리카로 날아가 우군을 지원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영국의 대반격작전인 '배틀액스'가 시작되려고 하던 6월초에 뮌히버그는 북아프리카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었던 JG 27 전투비행단 1연대의 전우들을 돕기위해그리스를 떠나 리비아의 아인 엘 가잘라에 도착했으며, 이무렵부터 시작된 치열한 북아프리카 항공전에서 뮌히버그와 7중대원들은 약 2개월의 기간동안 북아프리카의 전장에 머물면서 JG 27 1연대를 도와 영국 사막공군에 맞섰다.

그러나 북아프리카의 조건은 너무나 열악했다. 건조한 날씨와 지독한 파리떼, 항상 모자라는 보급품 그리고 숨을 막히게 하는 엄청난 모래먼지 속에서 작전하던 뮌히버그는 북아프리카에서 5기의 추가격추를 달성했지만 점점 마음의 고향인 서부전선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더구나 그의 중대는 단기간의 지원을 목적으로 갑자기 북아프리카에 파견된 것이기 때문에 7중대가 장비한 Bf 109E는 모래먼지로부터 기체를 보호할 방진필터등의 개조가 되어 있지 않아 사막에서 오래 작전할 수가 없었고, 언제 고장이 날지 모르는 불안한 상태였다.

* 서부전선으로의 복귀

어느덧 1941년 8월이되어 서부전선을 떠난 지 7개월에 접어들자 뮌히버그는 '이러다가 영영 JG 26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걱정을 하게되었으며 부대원들을 데리고 서부전선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그는 아돌프 갈란트에게 '혹시 저를 잊으신건 아니겠지요?'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걱정은 전선이 안정적인 상태로 접어들면서 항공전도 소강상태에 빠져들자 해결되었다.

1941년 8월 드디어 독일공군 사령부로부터 서부전선으로 귀환하라는 명령이 내려와 7중대는 드디어 서부전선으로 복귀하게 된 것이다. 그들은 JG 26의 모기지가 있는 프랑스로 복귀하기위해 북아프리카를 떠났으며 1941년 8월말에 드디어 모든 기체들이 프랑스에 도착하게 된다. 그러나 지상요원들은 수송기를 타고 와야 했기 때문에 9월까지도 프랑스에 도착하지 못했는데, 마지막 순간에 지상요원들이 탑승한 수송기가 영국 전투기의 공격을 받아 지상요원 2명이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전사하게 되었다.

[ 애견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뮌히버그 ]

뮌히버그는 이 지상요원들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슬퍼했지만 이 2명의 지상요원들이 7개월간의 지중해-북아프리카 지역의 작전기간동안 7중대가 잃은 유일한 대원들이었다. 이 기간동안 뮌히버그의 지휘속에 활약했던 12명의 조종사들은 총 52기의 영국공군기들을 격추시켰으면서도 단 한명의 조종사도 손실되지 않아 공중전에서만은 그야말로 믿기힘든 퍼펙트 게임을 달성했던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이 뮌히버그의 지휘력이 높은 평가를 받았던 배경이다.

지중해와 북아프리카를 활보하면서 몰타섬의 영국공군에게 사신과도 같은 존재로 군림했던 JG 26의 7중대와 이들을 지휘했던 무서운 에이스 '요헨'은 이렇게 몰타섬과 북아프리카전장을 떠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가 떠난 북아프리카의 하늘에는 그보다 더 무서운 또 한명의 '요헨'이 점점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 품행불량의 만년 소위후보생 한스 요아힘 마르세이유

공중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최고의 전투 조종사는 누구였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적이 있을 것이다. 물론 시대를 뛰어넘는 조종사들의 비교는 어려울 것이며 평가의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이러한 질문을 해본다한들 정답은 없을 것이다.

[ 밝게 웃고있는 한스 요아힘 마르세이유 ]

하지만 굳이 한명을 선택해보라고 한다면, 80기를 격추한 1차대전의 전설적인 에이스 만프레드 폰 리히토펜이나 연합군 최고 격추왕이자 신기의 사격술을 가졌다고 하는 프랑스의 르네 퐁크를 최고 조종사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2차대전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352기의 전무후무한 격추기록을 작성한 독일공군의 슈퍼에이스 에리히 하르트만을 꼽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여러 가지 의견에도 불구하고 순수한 공중전 실력만을 놓고 평가해 보았을때 인류 항공의 역사를 통털어 최고의 기량을 가진 천재 조종사로 추앙받는 사람이 있으니 그가 바로 '서부전선 최고의 에이스'이자 '아프리카의 별' 한스 요아힘 마르세이유이다. 비록 격추대수는 158기로 격추 1위인 에리히 하르트만의 절만에도 미치지 못하며 전체 독일공군 조종사중에서 30위에 랭크되었지만, 그를 최고의 전투기 조종사라고 말하는 것에 이견을 던지는 사람은 거의 없다.

마르세이유라는 성에서 알 수 있듯이 한스 요아힘 마르세이유는 프랑스계 독일인으로서 요아힘 뮌히버그보다 1년늦은 1919년 12월 13일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항상 비행기그림을 그렸으며 1차대전의 영웅 리히토펜의 일대기에 큰 감동을 받아 하늘을 동경하되어, 언제나 전투기 조종사가 되기를 희망했던 요헨은 부모를 설득해 조종사가 되는 것을 허락받았으며, 그의 나이 18세가 되던 1938년 독일공군에 지원했다.

그러나 개성이 강하고 반항아적 기질이 있었던 요헨은 비행학교의 훈령병 시절에는 군특유의 엄격한 규율에 잘 적응하지 못했으며, 훈련중에 비행규칙을 어기는 일이 잦아 선배들이나 동료들과 자주 다툼을 벌이곤 했다. 결국 요헨은 교육연대의 상관들로부터 미움을 사게되어 낮은 성적을 받아 소위임관에 실패했으며, 동기생들이 모두 소위로 임관한후 최전선에 배치되어 독일공군이 최고의 영광을 구가하고 있었던 전격전의 하늘에서 맹활약하는 동안 '품행불량의 소위후보생'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훈련비행대의 기초비행 교관으로 일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이 무렵 요헨은 그가 훈련부대에 쳐밖혀 있는동안 전쟁이 끝나 버리지는 않을까하는 걱정을 하며 매우 불안하고 초조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

* 사막으로 퇴출되는 요헨

그러나 이 소위후보생에게도 실전무대로 데뷔할 기회가 주어지게되니 그것이 바로 1940년 여름을 달구었던 영국본토 항공전이었다. 영국공군과 대규모 항공전이 벌어지게되면서 조종사 자원이 부족하게되자 이를 충원하기 위해서 아직 장교가 아닌 마르세이유도 전투기 부대인 JG 54에 배속되어 전투에 투입된 것이다. 그는 2번째 출격일인 8월 10일 허리케인 전투기를 격추시켜 첫 번째 전과를 올린이래 계속 영국본토 항공전에 참가하여 꾸준히 전과를 올렸으며 1941년 2월까지 총 7기의 격추를 기록해 에이스가 된다.

[ 최고 에이스가 된후 애기의 조종석에서 미소짔는 요헨, 그러나 전투기 조종사로서 그의 출발은 매우 불안했다. ]

그러나 이런 전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돌출행동을 일삼는 그를 좋아하는 상관은 없었기 때문에 그는 매번 소위임관자 명단에서 빠지게 되었으며 동료들로부터 '독일공군 최고참 소위후보생'이라는 불명예스런 별명을 얻었다. 툭하면 편대를 이탈해 단독으로 적편대에 뛰어들어 싸우다가 결국 벌집이 되어 격추되거나 간신히 살아돌아오곤 했던 (6회이상의 피격기록이 있음) 이 소위후보생은, 영국본토 항공전기간동안 그를 지켜보던 JG 52 전투비행단장 요하네스 슈타인호프에게 저질 조종사로 낙인찍혀 결국 1941년 2월 다른 부대로 전출되게 된다. 사실 이것은 말이 전출이지 퇴출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는데, JG 52에서 쫒겨난 요헨이 몸을 담게될 새로운 부대가 바로 운명의 부대 JG 27 전투비행단 1연대였다.

그리고 이 JG 27 1연대가 롬멜장군을 지원하기 위해 운명적인 북아프리카행에 나서는 부대로 결정되면서 요헨도 부대를 따라 미지의 땅 북아프리카로 이동하게 되었다. 물론 이 사막의 하늘에서 이 말썽꾸러기 소위후보생이 천재 전투기 조종사로 새롭게 태어나 찬란한 빛을 발하게될 것이라는 것을 아무도 예상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 격추대수 50기의 약속

북아프리카에 도착한 요헨은 여전히 적의 편대에 단독으로 뛰어드는 무모한 공중전을 일삼았고 그의 기체는 항상 상처투성이가 되어 귀환했다. 한번은 그가 전투중 자유 프랑스군 조종사가 몰던 허리케인에 의해 격추되는 일이 있었는데, 다행히도 불시착에 성공한 요헨이 기지로 돌아오자 연대장 에두아르트 노이만 대위는 요헨을 불러 그의 독단적인 행동과 무모한 공중전에 대해서 지적하며 나무랐다.

"도대체 왜이리 너죽고 나죽자는 식으로 싸우는 건가? 지금 귀관이 살아있는 것은 실력이 좋아서가 아니라 오로지 운 때문이다!"

그러나 노이만 대위는 이 젊은 조종사에게는 남다른 전투조종사로서의 자질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의 문책은 하지 않고 그를 계속 전투에 참가시켰다.

[ 귀환한후 기수의 피탄 흔적을 가리키는 요헨, 초창기에 그가 일삼았던 무모한 (?) 공중전의 결과이다. 요헨을 담은 대부분의 사진은 그가 인기를 얻기 시작한 후에 촬영되었으므로 그가 북아프리카 전선의 초기에 Bf 109E를 몰던 장면이 담긴 사진은 거의 없다고 한다. 이 장면이 요헨의 Bf 109E형이 담긴 유일한 것 이라는데... 109E형 특유의 방진 필터를 잘 볼 수 있는 사진이다. ]

1941년 4월 21일, 최전방의 아인 엘 가잘라로 이동하기 위해서 그의 중대원들과 트리폴리를 이륙한 요헨은 얼마안가 그의 Bf 109E가 엔진고장을 일으켜 사막 한가운데에 불시착했다. 그의 동료들은 머리위를 잠시 선회하며 그가 무사한지를 확인한후 800km 떨어진 가잘라로 날아갔다. 황량한 사막한가운데 홀로 남겨졌지만, 운이 좋았던 요헨은 근처를 지나던 이탈리아군의 차량을 발견하고 이를 얻어탈 수 있었다. 이 트럭이 도착한 곳은 근처의 독일군 보급부대였는데, 넉살좋은 요헨은 부대 사령관과 직접 면담을 요청한후 장군과 대면한 자리에서 자신은 빨리 전투에 참가해야하니 즉시 비행장으로 데려다 달라는 당돌한 요구를 했다. 이 맹랑한 소위후보생으로부터 웬지 좋은 인상을 받은 보급부대 사령관은 웃으면서 그에게 농담을 던졌다.

"좋아! 내일 내차를 빌려주지! 대신 조건이 있네, 자네 이제 나한테 빛이 생겼으니 적기 50기를 떨어뜨리도록 하게, 이건 약속이야!"

물론 요헨도 이 제안을 쾌히 받아들였다. 다음날 그는 장성깃발이 휘날리는 장군전용 승용차를 타고 그의 부대로 복귀할 수 있었고, 동료들은 운전사가 딸린 장군용 승용차 뒷자리에서 손을 흔들며 나타난 요헨의 모습에 깜짤 놀랐다. 그러나 적기 50기를 격추하는 조건으로 장군용 승용차를 타고왔다는 요헨의 말을 들은 동료 조종사들은 그의 배짱에 혀를 내둘렀지만, 이 약속에 대해서만은 말도 안된다며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이때까지 그가 이 농담같은 허황된 약속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감잡은 천재

1941년 여름, 드디어 소위로 임관한 요헨은 그동안 그가 가진 재능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특히 그가 중요시 여긴 것은 사격연습이었다. 그는 항상 '적기의 후방에서 고속으로 강하하며 공격하라'는 전통적인 공중전 교리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가 추구하고 있었던 것은 적기들과의 공중전에서 자신의 위치가 적기의 후방이 아니더라도 위쪽, 아래쪽, 측면, 정면을 가리지 않고 어느 방향에서도 적기를 일격에 명중시킬 수 있는 기술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기지로 귀환할 때는 늘 편대를 벗어나 급상승, 급하강, 급선회등의 곡예비행을 반복하면서 Bf 109의 기동성을 최대로 발휘하는 연습을 하면서 귀환하는 동료기들을 가상의 목표로 해서 조준연습을 했다. 그의 동료들은 이런 요헨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지만 이러는 동안 천재 조종사는 어느덧 자신만의 특별한 공중전 기술을 완성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북아프리카에 도착한지 3달이 지난 9월초, 요헨은 마음을 열고 있었던 동료인 슈탈슈미트 소위에게 의미있는 한마디를 던졌다.

"나 말인데, 이제서야 뭔가 알 것 같아..."

이 알 수 없는 말에 슈탈슈미트 소위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얼마뒤 그는 요헨이 무엇을 알았다는 것인지를 알 수 있었다. 피나는 수련을 통해 드디어 감을 잡은 천재가 그 능력을 과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1941년 9월초부터 요헨은 그동안의 피나는 수련을 통해 얻은 감각으로 영국 전투기들과의 공중전에서 연일 놀라운 전과를 올리기 시작했다. 출격할 때마다 그는 적기를 격추시켰으며 하루에 2기이상의 적기를 잡아내는 경우도 자주 있었다. 10월 12일이 되자 그의 격추기록은 22기가 되었으며, 그동안 그를 불신의 눈으로 바라보던 동료들도 이제는 모두들 그를 진정한 에이스로 인정해 주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것들도 요헨에게는 아직 서막에 불과했다.

[ 그가 사냥한 허리케인을 배경으로 촬영한 요헨, 종군기자의 요청으로 홍보를 위한 포즈를 취했다. ]

이무렵 그의 중대는 기체를 신형인 Bf 109F형으로 교체하기 위해서 한달간 독일에서 휴가를 보낸후 새로운 Bf 109F형을 타고 11월에 다시 사막에 나타났다. 이 Bf 109F 형은 Bf 109의 모든 시리즈 중에서 가장 비행성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기체였으며 비행성능에서는 동시대의 라이벌 스핏화이어 마크 V 형을 상회한다는 평가도 받고 있었다. 비록 E형이 장비했던 주익의 20mm 기관포 2문이 폐지되고 기축으로 이동되면서 1문으로 축소되어 화력면에서는 E형에 비해 약해졌지만, 이 기체가 자랑하는 뛰어난 운동성은 이런 약점을 커버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바로 이 Bf 109F형야말로 요헨이 마음속으로 항상 바라고 있었던 바로 그런 전투기였던 것이다.

[ 신품 Bf 109F-4 trop에 오르는 요헨, 이 기체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기축의 기관포구와 카울링 좌측의 특이한 방진 필터를 잘 볼 수 있다. 이 기체야말로 요헨에게는 천사의 날개와도 같았을 것이다. ]

황색 14번이 새겨진 Bf 109F으로 기종을 변경한 요헨은 마치 적토마를 얻은 관운장처럼, 이때부터 3개월간 사막의 하늘을 종횡무진 날아다니며 30기의 영국전투기를 제물로 삼아 1942년 2월 21일에는 50기의 격추기록을 달성했다. 독일공군 사령부는 연일 아프리카에서 승전보를 날려와 국민의 사기를 올려주는 이 새로운 영웅에게 기사 철십자장을 수여하기로 했다. 요헨은 아프리카에 도착한지 1년도 지나지 않아 모든 동료들이 말도 안되는 약속이라며 비웃었던 '50기 격추'를 달성해 버렸던 것이다.

* 공중전의 도사

연일 신들린 격추행진을 계속하고 있던 요헨은 싸울 때마다 전투력이 몇배씩 올라가고 있었으며, 그의 격추페이스도 더욱 급상승 커브를 그리고 있었다.

특히, 1942년 6월 3일에는 그의 이름을 아프리카에서 싸우고 있었던 모든 독일군 병사들과 심지어 적군인 영국군에게도 널리 알리는 엄청난 활약을 하게된다. 이날 그는 애기를 타고 중대원들과 슈투카 편대를 호위중이었는데 매복중이던 수십기의 영국전투기들이 남쪽으로부터 반격해오는 것을 목격했다.

가장 먼저 적기들을 발견한 요헨은 적기의 접근을 동료기들에게 무선으로 알리고 위기에 몰린 슈투카들을 구원하기 위해 단독으로 적의 대편대 속으로 돌진해 들어갔다. 뒤늦게 전투지역에 도착한 그의 동료들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엄청난 광경에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요헨의 Bf 109F는 무수히 많은 영국 전투기들속을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면서 적기들을 한 대씩 계속 떨어뜨리고 있었던 것이다. 요헨의 기관포가 불을 뿜을 때마다 여지없이 토마호크 전투기의 엔진은 불을 토했으며 기체는 검은 연기를 내뿜었다. 전투를 시작한후 우군기들이 전투공역에 도착할 때까지 약 11분의 시간동안 요헨이 격추한 영국전투기는 6기였다. 사실 요헨 자신은 적기들과 싸우느라 자신이 몇기를 떨어뜨렸는지 제대로 세지도 못했으며 전투상황을 지켜보던 전우들이 최소한 6기를 떨어뜨렸다고 증언함으로서 인정된 전과였다고 한다.

[ 오스프리 출판사의 '북아프리카전선의 독일공군 에이스들'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요헨의 공중전 장면 ]

더구나 이날 기지의 정비요원들이 귀환한 황색 14번의 잔탄을 확인해 보았더니 그가 이날의 공중전에서 사용한 탄환은 겨우 360발이었다고 했다. 요헨은 적기 1기당 60발의 탄환밖에는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그야말로 감을 제대로 잡은 명사수였다. 이날의 원맨쇼로 인해서 요헨은 '공중전의 도사'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그의 격추기록은 75기까지 올랐으다. 그의 화려한 무용담은 병사들의 입소문을 타고 전군에 널리퍼졌으며, 북아프리카 파견 초창기만해도 그의 자유분방하고 제멋대로인 행동에 불만을 품은 동료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요헨이 이제는 JG 27 전투비행단의 최고 인기인이 되어 있었다. 이제는 모든이들이 농담을 좋아하고 규율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말썽꾸러기 요헨을 좋아했다.

"요헨은 항상 농담과 장난을 좋아했다. 하루는 그녀석이 화려한 폭스바겐을 타고 우리 8 중대로 놀러왔었는데 커피와 술을 대접받고는 갑자기 씩 웃더니 내 천막이 어디있느냐고 물었다. 내가 손가락으로 나의 천막을 알려주자. 갑자기 자신의 차에 올라타더니 내 천막으로 돌진해 몽땅 걸래로 만들어 버렸다. 내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쳐다보자 요헨은 크게 웃으며 '따라올테면 와봐!'하고는 차를 타고 도망가 버렸다."

- 독일공군 베르너 슈뢰어 -

그러나 이 '공중전의 도사'는 잠시도 쉬려고 하지 않았다. 이무렵 북아프리카의 독일공군은 수적인 우세를 자랑하는 영국 사막공군의 거센 도전속에서 조종사 한명이 하루에 6-8회에 이르는 출격행에 나서야 했다. 하지만 이런 불타오르는 하늘은 요헨과 같은 천재에게는 잘 차려진 밥상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이후의 보름동안에 매일 2기 이상의 적기를 잡아냈고 결국 26기의 영국전투기를 추가로 떨어뜨려 1942년 6월 17일에는 101번째 격추를 달성했다. 이날 요헨이 귀환하자 이날 오전부터 그가 100번째 격추를 돌파하리라는 예상을 하고 미리 기지에서 대기하고 있던 종군기자들이 몰려들어 취재경쟁을 벌였으며 독일 언론은 그의 101번째 격추를 대서특필했다.

[ 100기 격추를 돌파한후 귀환하는 ' 황색 14번'을 주제로한 항공아트 ]

그는 이제 전독일국민에게 사랑받는 국민적 영웅으로까지 떠올랐다. 어떤 베를린의 신문은 1면에 그의 사진과 함께 커다랗게 '요헨, 베를린은 그대가 자랑스럽다!'라는 문구를 넣기도 했다. 그의 활약상에 사기가 크게오른 북아프리카 전선의 병사들은 이무렵부터 그를 가리켜 '아프리카의 별 (Der Stern von Afrika)'라는 전설적인 칭호로 부르기 시작했으며 요헨의 애기 '황색 14번'의 인기도 상한가로 올랐다.

[ 요헨이 최전성기를 구가할 무렵에 촬영된 컬러 사진들 ]

사실 요헨은 독일공군 전체를 놓고보면 12번째로 100기 격추를 돌파한 조종사였지만 다른 조종사들이 모두 수준이 한참 떨어지는 동부전선의 소련공군기들을 상대로 대부분의 전과를 기록한데 반해 그는 모든 전과를 서부전선과 북아프리카의 영국공군을 상대로 그것도 전과의 대부분을 전투기를 격추한 것이었으므로 더욱 높은 평가를 받았다. 독일사령부는 이 영웅의 활약상에 육해공 전군을 통털어 12번째의 백엽검 기사철십자장을 수여함으로써 화답했다. 요헨은 훈장을 받기위해 약 2달간의 휴가를 받아 국민적 환영을 받으며 베를린으로 날아와 쉴새없는 강연요청, 수많은 권력가들과의 오찬모임 등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 아프리카의 하늘에 영원히 빛나는 별

다시 북아프리카로 돌아온 요헨은 1942년 8월 31일 다시 출격을 시작해서 영국전투기들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그는 돌아오자마자 즉시 하늘로 날아올라 전투를 시작했는데, 아마도 귀환 다음날인 9월 1은 그의 생애에 있어서 최고의 날이었을 것이다.

[ 요헨의 '황색 14번 (Gelbe 14)' Bf 109F-4 trop은 Bf 109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기체일 것이다. ]

이날도 하늘은 더욱 거세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영국 사막공군의 전투기들은 끝도없이 전투지역으로 몰려왔으며 수적인 열세의 독일공군기들도 필사적으로 맞서 싸웠다. 9월 1일의 첫출격에서 요헨은 11분만에 2기의 토마호크와 2기의 스핏화이어를 잡아냈다. 그리고 돌아오자마자 재급유와 재무장을 마치고 다시 날아올랐는데 이 2회째의 출격에서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으니, 오전 10시 55분부터 11시 5분까지의 불과 10분간에 벌어진 전투에서 8기의 P-40 (토마호크, 키티호크)을 격추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3회째의 출격에서는 5기의 P-40 (토마호크, 키티호크)을 추가로 잡아냈다. 이것이 바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기 힘들어하는 '하루동안의 17기 격추'의 기록인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중 8기는 단 10분동안의 전투에서 올린 전과였다. (비록 동부전선에서 소련기들을 상대로 하루에 18기를 격추시킨 에밀 랑이 이 분야에서 수치상으로는 최고의 기록을 가지고 있지만, 서부전선에서 영국전투기들을 상대로 이루어낸 요헨의 전과가 더 높은 평가를 받게된다.)

[ 롬멜장군으로부터 대위계급장을 받은후 악수를 나누는 요헨, 지상의 별과 창공의 별의 만남이 담긴 의미있는 사진이다. ]

이 무시무시한 활약상은 또다시 세상을 놀라게 만들었으며 그는 이날의 활약을 포함해 9월 첫주동안에만 무려 38기의 격추를 기록했다. 이러한 격추기록은 대부분 전투를 목격한 동료들의 증언으로 확인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믿기 힘들 정도의 전과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맘때 기지로 귀환한 황색 14번에 남아있는 탄환을 지상요원들이 점검한후에 격추대수랑 비교해보았더니 요헨은 적기 한 대를 격추할 때마다 평균적으로 불과 15-20발의 탄환을 사용하고 있었다는 결론이 내려졌다고 한다. 이제 그의 사격술은 가히 신의 경지에 올랐다고 할 수 있었다.

결국 독일사령부에서는 전군 4번째로 '다이아몬드검 백엽기사철십자장'을 수여하기로 결정하게 되었다. 더욱이 그의 활약상에 크게 고무된 롬멜 장군이 그에게 대위 계급장을 같이 수여하기로 했다. 사실 이무렵 롬멜은 공공연하게 독일공군의 지상지원이 미흡해서 고전하고 있다면서 불만을 내비치곤 했었지만, 요헨에게 계급장을 수여하는 자리에서는 그를 극찬했다.

"정말 잘 싸워주었네, 진정으로 자네가 자랑스럽다. 만일 귀관이 없었다는 우리는 승리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 부관이 그러는데 우리 병사들 사이에서 나보다 더 인기가 많다고 하더군!"

불과 1년전 간신히 '만년 소위후보생' 딱지를 떼고 소위로 임관했던 요헨은 1년만에 전투기 조종사로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으며 이제는 22세의 나이에 대위로 승진해 독일공군내의 최연소 대위가 되었던 데다가 독일군 최고의 훈장까지 수여받았으니, 1942년 9월은 그의 생애 최고의 한달이었을 것이다. 이제 그 누구도 조만간 '아프리카의 별'이 독일공군 최초로 200기 격추를 달성할 것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 요헨의 애기 - Bf 109F-4/trop 황색 14번의 도색 *

[ 1942년 2월, 리비아의 마투바에 주둔할 무렵의 일러스트 ]

[ 1942년 5월, JG 27의 3 중대장으로 임명될 무렵의 일러스트 ]

[ 1942년 6월, 리비아의 아인 엘 가잘라에 주둔할 당시의 일러스트 ]

[ 1942년 9월, 이집트의 쿼타피야에 주둔할 무렵의 일러스트 ]

그러나 운명의 여신은 마치 이 천재가 누리고 있었던 찬란한 순간을 시기라도 하고 있었다는 듯이 요헨이 생애 최고의 영광을 구가하고 있을 때 찾아왔다.

1942년 9월 30일, 총 158기의 격추기록을 올리고 있었던 요헨은 387회째의 출격행에 나서게 되었다. 오전 10시 47분 슈튜카 폭격기들과 함께 이륙한 요헨은 그날따라 적기를 만나지 못해 격추기록을 올리지 못하고 슈투카들이 공격을 마치자 동료기들과 귀환길에 올랐다.

오전 11시 35분, 며칠전 새롭게 수령한 그의 '황색 14번' Bf 109G-2의 엔진이 갑자기 이상한 소음과 함께 진동하기 시작했고 조종석안으로 검은 연기가 배어들어 왔다. 요헨은 어떻게든지 이 기체를 몰고 기지로 귀환하고자 했지만 어느새 검은 연기는 점점 조종석안에 차올랐고, 잠시뒤에는 앞이 전혀 안보일 정도까지 배어들어왔다. 점점 더 비틀 거리는 황색 14번을 본 동료들이 안타깝게 외쳤다.

"힘내라! 요헨, 아직은 적진이다. 우리 진영까지 얼마 안남았다."

"기체 밖에는 연기가 보이지 않는다! 조금만 더 가면된다. 힘내라!"

그러나 4분뒤인 11시 39분 드디어 기체가 독일군의 세력권인 시디 아브드 엘라만 근처까지 도달하자, 너무 많은 연기가 배어들어와 이제 더 이상 비행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요헨은 동료들에게 마지막 무선을 남겼다.

"틀렸어! 가망이 없다. 전혀 앞이 안보이고 이제는 숨도쉬지 못할 정도다. 탈출하겠다!"

그리고 요헨은 탈출을 위해 기체를 기울이고 캐노피를 열어젖힌후 고도 1만피트에서 기체밖으로 몸을 날렸다. 그러나 짙은 연기로 인해 요헨이 착각한 때문이었는지 요헨이 탈출할 때 그의 황색 14번은 수평비행이 아니라 이미 시속 600km이상의 속도로 반전 급강하에 들어가 있었다. 그의 주위를 맴돌면서 탈출장면을 애타게 지켜보던 동료들은 곧이어 벌어진 참상에 모두들 비명을 질렀다.

"요헨이 뛰어내렸다. 아! 낙하산이 펴지지 않는 것 같다!"

"요헨! 요헨! 빨리 낙하산을 펴!! 제발! ... 아악~!"

너무나도 허망하지만 바로 이렇게 역사상 가장 뛰어난 공중전의 달인이었던 한스 요아힘 마르세이유는 사막으로 떨어져 최후를 맞이했다.

[ 너무나도 허망한 죽음을 맞은 슈퍼 에이스의 마지막 모습 ]

이것이 너무나 순간적으로 벌어진 일이었기 때문에 그의 마지막 순간을 목격한 조종사들마다 약간씩 증언이 다른데 요헨이 탈출하는 순간 균형을 잃고 고속 급강하던 애기 황색 14번의 수평미익에 충돌해 그 순간 이미 사망했을 것이라는 설도 있으며, 충돌후에 큰 부상을 입어 낙하산을 펴지 못하고 돌처럼 떨어졌다는 설도 있다. 또는 무사히 탈출에 성공했지만 낙하산이 작동불량으로 펴지지 않아 그대로 추락했다는 설도 있다. 심지어는 그를 암살하기위해 영국스파이가 황색 14번의 엔진을 몰래 고장내놓았다는 억지스런 추측까지 난무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이 어떤 것인지를 이제와서 따져 무엇을 할 것인가? 사실이야 어떻든간에 너무나도 안타깝지만 항공전사에 빛나는 불멸의 기록을 남긴 천재 조종사는 그의 생애 최고의 순간에서 이렇게 최후를 마쳤다.

갑작스런 비보를 접한 JG 27의 1연대의 전대원들은 큰 충격을 받았으며 그렇지 않아도 보급부족에 시달리며 수적인 열세속에서 힘겹게 전선을 지키고 있는 와중에 발생한 이 어이없는 사건으로 연대 전체가 깊은 좌절감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결국 독일공군 사령부는 전투의욕이 바닥까지 떨어진 JG 27 1연대 전체를 최전선에서 후퇴시켜 한달간의 휴식을 취하게 했을 정도이다.

[ 요헨의 장례식은 알베르트 케셀링 장군의 주재로 독일공군장으로 치뤄졌다. 그의 묘는 이집트의 더나에 위치하고 있는 독일군 묘지에 있다고 한다. ]

모든 아프리카 군단의 장병들 역시 그들이 하늘의 수호신으로 믿으며 경외하던 '아프리카의 별'이 추락했다는 믿기지 않는 소식에 크게 실망했으며 사기도 크게 떨어졌다. 그리고 그가 어이없는 죽음을 맞은지 얼마되지 않아 보급과 물자부족으로 어려운 싸움을 하고 있던 독일 아프리카 군단도 급격하게 패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 요헨을 기리기 위해 엘 알라메인에 세워진 피라미드, 애초에는 그의 죽음후 그가 추락했던 시디 아브드 엘 라만에 작은 피라미드로 세워졌었는데, 1989년에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다. 이 사업은 요헨과 함께 JG 27에서 싸웠던 조종사들중 그때까지 살아있던 노병들이 의기 투합해서 진행했다고 한다. ]

* 돌아온 뮌히버그

한편, 아프리카와 운명을 같이하게될 또 한명의 별 요헨이 다시 북아프리카로 돌아왔다. 그가 바로 1년전 지중해의 하늘을 휩쓸며 '몰타의 사신'이라 불렸던 요아힘 뮌히버그였다.

1년전 지중해-북아프리카에서의 여행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서부전선으로 복귀했던 요헨 - 요아힘 뮌히버그는 이후 JG 26 전투비행단 2연대장으로 승진했으며 신예기 Fw 190을 몰고 계속 서부전선의 상공으로 출격해 맹활약하고 있었다. 마르세이유가 북아프리카에서 맹활약하며 눈부신 기록을 달성하는 동안 서부전선의 하늘에서 역시 영국전투기들을 상대로 역시 눈부신 전과를 달성했던 것이다. 뮌히버그는 1941년 8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10개월의 기간동안 서부전선의 항공전에서 35기의 영국전투기를 격추했는데, 그가 격추한 전투기들은 모두 영국공군 최고의 전투기 스핏화이어였던 것이다. 이 놀라운 전과로 뮌히버그는 '스핏화이어 킬러'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 뮌히버그가 주로 활약했던 JG 26의 엠블렘과 비행단장직을 맡게된 JG 77의 엠블렘, 그는 JG 26의 7중대장 시절부터 붉은 심장 마크와 인연이 많았던 것 같다. ]

이무렵 동부전선의 상황이 악화되면서 독일공군 사령부는 서부전선의 에이스들을 상당수 동부전선으로 차출했는데 뮌히버그 역시 동부전선으로 발령이 났다. 이로서 그는 서부전선, 지중해-발칸반도-북아프리카 전선에 이어 동부전선까지 독일군이 싸우고 있던 모든 전장에 참가해 모든 전장에서 에이스가 되는 이색적인 기록을 올리게 된다. 그는 JG 51의 사령관대행으로 승진했으며 동부전선에서 파견된지 약 2개월정도의 기간동안 무려 33기의 소련공군기들을 격추하는 성과를 올렸다. 9월 5일에는 100기 격추를 넘어서게 되어 전군에서 19번째의 백엽검 기사철십자장을 수여받는 영예를 누렸다. 이런 활약상으로 소령으로 진급한 뮌히버그는 JG 77 전투비행단장으로 임명되었다.

* 북아프리카 하늘에 지다

이무렵 점점 악화되기 시작하는 북아프리카 전선의 상황으로 인해 독일공군 사령부는 동부전선에서 일부 비행단의 전력을 돌려 북아프리카로 보내기로 했는데, 우연히도 뮌히버그의 JG 77이 북아프리카 지원부대로 결정되었다. 뮌히버그가 아프리카로 향하라는 명령을 받은날은 마르세이유가 요절한 바로 다음날인 1942년 10월 1일이었다.

시칠리와 튀니지를 배경으로 뮌히버그가 이끄는 JG 77의 조종사들은 숙적이었던 영국 사막공군과 다시 교전에 들어갔으며, 이후에는 북아프리카 전장에 가세한 미공군에 맞서 계속 사투를 전개했다. 요헨은 비행단장의 자리에 있었음에도 부하들과 함께 항상 그의 애기 Bf 109G-2를 몰고 최전선으로 출격행에 나서 싸웠으며, 이 기간동안 북아프리카의 하늘에서 연합군기 24기를 격추시켰다. 그는 진정한 야전 전투기부대 지휘관으로서의 자질을 갖추고 있었으며 모든 조종사들로부터 진심어린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전장의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었다. 엘알라메인의 대반격이후 영국 제 8군은 북아프리카 군단을 계속 몰아붙이고 있었으며 아프리카 전선의 독일공군은 터무니없는 수적열세와 보급부족에 시달리면서 그야말로 죽을 때까지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끝없는 전투에 지친 수많은 에이스들이 불타는 하늘속에서 하나 하나 사라져갔고, 뮌히버그도 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다.

[ 미소를 짔는 뮈히버그, 그러나 이 위대한 에이스도 운명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

1943년 3월 23일, 이날은 마침 뮌히버그가 500회째의 출격에 나서는 의미있는 날이었다. 이날 뮌히버그의 편대는 튀니지 상공에서 미공군 제 52 전투비행단의 스핏화이어들과 마주쳤고 이내 양측의 전투기들이 뒤섞여 격렬한 공중전이 벌어졌다.

뮌히버그는 공중전중에 1기의 스핏화이어를 따라잡아 기관포를 퍼부었고 이 스핏화이어가 갑자기 공중폭발하면서 그의 135번째 격추를 달성했다. 그러나 이 135번째 격추를 마지막으로 뮌히버그는 실종된후 다시 귀환하지 못했다. 그의 최후에 대해서는 약간 논란이 있는데, 가장 유력한 것은 이 스핏화이어가 공중폭발하면서 너무 가까이 접근해 사격하던 뮌히버그의 기체가 폭발에 같이 휘발렸다는 것이다. '스핏화이어 킬러'라는 별명을 가졌던 뮌히버그가 아이러니 하게도 스핏화이어와 최후를 같이했던 것이다.

북아프리카 하늘을 호령하던 또 한명의 요헨도 그의 애기와 함께 가장 눈부신 활약을 했던 사막의 하늘로 영원히 날아오른 것이다.

* 영웅이 남긴 전설과 진실

비록 아프리카의 별은 영원히 하늘로 사라졌지만, 너무나 특출한 기록을 남긴 이 위대한 에이스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전설과 논란거리가 있다.

독일공군의 기록에 의하면 요헨은 영국공군기만을 상대로 총 158기를 격추했으며 이중 7기를 제외한 151기는 그가 북아프리카에서 활약한 단지 18개월동안의 짧은 기간에 올린 성과이다. 더욱이 그가 기록한 158기의 격추기록 중에서 4기의 폭격기를 제외한 154기는 모두 전투기였다. 게다가 이중 17기는 단 하루만에 격추시켰다고 하며 특히 이중에서 8기는 10분동안에 격추시켰다고도 하고, 1주일에 38기를 잡아냈다는 믿을 수 없는 기록들도 요헨의 명성을 드높이고 있다.

북아프리카 전장에서 공식적으로 기록된 요헨의 전과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격추기종

격추대수

허리케인

토마호크 & 키티호크

스핏화이어

쌍발폭격기

101

합계

151

물론 그의 이런 기록에 대해서는 전후의 조사를 통해서 과연 진실이었는지에 대해서 많은 논란거리가 있었왔다. 그가 이룩한 전과가 너무나 믿을 수 없는 대 기록이었므로 이에대한 반론도 많이 있다. 당연히 이런 반론은 그의 희생양이었던 영국공군측에 의해서 많이 제기되었는데, 요헨의 기록에 대한 영국측의 반론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나는 전투기 파일럿중 가장 걸출한 명수라고 불리는 유명한 독일공군 에이스 (마르세이유)의 행적을 조사해 보았다. 아프리카 서부 사막에서 그가 최대의 전과를 올린날은 1942년 9월 1일인데 그는 이날 17기를 격추하고 그중 8기는 10분만에 격추시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영국측의 기록을 살펴본 결과 이날 사막공군의 실제 손실은 모두 11기로 되어 있었으며, 손실된 기체중 2기는 그가 언급하지 않았던 허리케인이었다. 분명 그의 주장은 상당히 과장된 것이다."

- 자니 존슨, 2차대전 영국공군 최고 에이스 -

"우수한 파일럿의 개인 기록은 재미있기는 하지만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이들의 기록은 나치의 선전기관에 의해 조작된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닌가? 연합군과 독일공군의 에이스를 비교해보면 독일의 에이스들은 뭔가 슈퍼맨처럼 보인다. 단 1회의 전투에서 우리 영국 전투기들을 6기이상이나 격추하고 하루에 12기 이상을 격추할 수 있는 인간 (마르세이유를 빗댐)이 도대체 어디 있다는 말인가?"

- 영국공군 롤란드 비몬트 -

하지만 그의 기록에는 별 무리가 없다는 주장들도 많다. 우선 북아프리카에서 그와 함께 싸웠던 동료들의 증언에 의하면 요헨은 자신의 전과를 자랑하거나 떠벌리는 스타일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가 기록한 대부분의 전과는 그가 혼자서 주장한 것이 아니라 동료들의 확인증언이 있었으며, 미확인 전과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 웃고 있는 요헨, 이 밝은 웃음이야 말로 그의 트레이드 마크이다. ]

더욱이 요헨은 북아프리카에 파견된후 그 실력을 인정받기까지의 상당기간 동료들로부터 별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었으므로, 그가 막 신화를 만들기 시작할 무렵에는 그의 기록을 깍아내리려는 동료들은 있었을 지언정, 그의 전과를 부풀리는데 동의했던 동료는 없었을 것이다. 그후 공중전에 감을 잡고 화려한 격추전과를 올릴무렵의 요헨에 대한 평가는 오히려 그와의 격추경쟁을 사실상 포기했던 동료 조종사들 사이에서 더 높았다.

"우리들 대부분은 요헨이 싸우는 것을 보고 그를 따라해보려고 했었다. 나를 포함해서 슈탈슈미트도, 뢰델도 모두 요헨의 전술을 흉내내보려고 애썼다. 그러나 요헨이 그의 전술을 설명할 때는 모두 고개를 끄덕였지만 실전에서는 아무도 그를 조종술을 따라잡기는커녕 비슷하게 흉내조차도 낼 수 없었다. 요헨은 항상 우리의 머리위에 있었다. 그는 진정한 공중전의 예술가였다."

- 독일공군 프리드리히 쾨르너 -

만일 요헨의 기록이 상당히 과장된 것이라면 다른 조종사들의 기록도 이에 비례할 정도로 과장되었어야 하겠지만 북아프리카 전선 2위의 에이스 베르너 슈뢰어의 기록은 그가 북아프리카 전투가 종료될 때까지 싸웠음에도, 요헨의 기록과 비교해볼 때 1/3을 겨우 넘어서는 61기에 불과했다. 나찌의 선전기관이 요헨의 기록을 턱없이 과장해서 발표했다는 추측에 대해서는 Salamander 출판사의 Hitler's Luftwaffe에서는 다음과 같은 반박하고 있다.

"만일 나찌의 선전기관이 북아프리카 전선의 영웅만들기에 열을 올렸다면 다른 조종사들의 기록도 과장해서 많은 영웅을 만들어 내면 더 좋았을 것인데, 다른 쟁쟁한 에이스들을 남겨두고 유독 요헨의 기록만을 이렇게 독보적인 것으로 과장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참고로 북아프리카 전장에서 활약한 독일공군 에이스들의 격추순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격추순위

이름

격추대수 (북아프리카)

총격추대수

한스 요아힘 마르세이유

베르너 슈뢰어

한스 아놀드 슈탈슈미트

구스타프 뢰델

에른스트 빌헬름 라이트너

하인츠 베어

151

158

114

174

220

결국 그가 남긴 기록에 대한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 기록에 대해 조사를 해본 대부분의 군사전문가들의 결론은 모두 비슷하다. 이들의 공통된 의견은 "요헨의 기록의 100%가 모두 진실이 아닐지는 모르나 그가 이에 육박하는 엄청난 전과를 올린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나도 마르세이유의 전과를 보고받은후에 도저히 이것을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것이 분명하다. 그는 그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공중전의 대가였다."

- 독일공군 아돌프 갈란트 -

* 마르세이유의 전술

요헨의 일대기를 살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의 화려한 전과 만큼이나 흥미를 보이며 주목하게 되는 것이 바로 요헨만이 구사할 수 있었다는 특유의 공중전 기술이다.

사실 요헨은 가끔씩 동료들에게 전술을 말로 설명한 것 이외에 그의 전술을 구체적으로 문서로 남긴적이 없으므로 그가 구사했던 비행기술과 사격술에 대해서는 대부분 동료들의 증언과 그를 담은 사진에 나타난 모습등을 종합해서 설명할 수 밖에는 없다.

[ 동료에게 공중전 상황을 설명하는 요헨, 이런 사진들에서 그의 전술을 짐작할 수 있다. ]

우선 북아프리카 하늘에서 요헨이 구사했던 공중전술은 '반드시 편대원과 함께 적기의 후상방에서 고속으로 하강하며 공격한후 이 속도를 이용해서 적기가 대응하지 못할 때 다시 상승하여 고도를 얻거나 이탈한다.'는 독일공군의 표준전술을 정면으로 뒤없는 것이었다. 요헨은 이런 안전한 (?) 공격전술을 별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고 한다.

북아프리카에 파견된 초기에 요헨은 늘 자신이 조종하는 Bf 109E가 가진 성능의 한계가 과연 어디까지인지를 테스트하고 있었다. 그는 늘 아슬아슬한 곡예비행을 일삼았고 쓰로틀을 최대한 열어 급상승 또는 급하강한후 갑자기 닫아 엔진을 정지직전까지 죽이면서 급격한 선회를 하곤했다. 심지어는 반전 공격에 필요한 선회반경을 줄이기 위해서 전투중에 사용이 금지된 (속도를 잃을 우려로 인해) 러더까지도 완전히 펼쳤다가 접었다가 하는 동작을 연습하기도 했다.

그는 이런 곡예비행연습을 통해서 Bf 109E가 가진 성능을 그 극한까지 몰아갔다. 사실 이런 위험한 곡예비행은 사고의 위험이 있어서 야전 부대의 상관들은 부하들에게 절대로 쓸데없는 곡예비행을 금한다는 명령을 내렸지만 이 천재의 넘치는 끼는 이런 평범한 (?) 안전수칙을 따르지 못하게 했다.

결국 이런 수련의 기간이 끝나자 요헨은 Bf 109E가 가진 성능을 완전히 알 수 있었다. 그는 이 Bf 109E를 잘만 다루면 어떤 기체도 따를 수 없는 뛰어난 기동성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결국 그는 고도에 구애받지 않고 어느 위치에서든지 자유롭게 적기를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사실 북아프리카 전장의 공중전은 지상군의 바로 머리위쪽의 중-저고도에서 벌어졌으므로 적기의 위쪽으로 급상승한후 적기를 따라잡아 기습적으로 공격하는 독일공군의 표준적인 일격이탈 전술로는 확실한 승리를 얻을 수는 있을지는 몰라도 공격기회가 매우 제한될수밖에는 없었으므로 한두차례의 공격후에 전투 양상이 저고도의 근접 선회전으로 바뀌게 되면 수적으로 불리해진 독일전투기들은 전투지역에서 이탈해야 했다. 이런 한계점에 불만을 가진 요헨은 곡예비행을 통해서 적기들과 선회전을 벌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지려고 애썼던 것이다.

[ 정비를 받고 있는 요헨의 애마 Bf 109F-4/trop 황색 14번 ]

하지만 수적으로 불리한 쪽이 근접 선회전에 빠져들게되면 적기의 꼬리를 잡으려고 적기의 후방에서 선회하는 동안 다른 적기가 선회평면의 후방으로 들어와 조준사격할 수있는 시간을 주게된다는 큰 위험이 있었다. 요헨은 바로 이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적기의 선회평면으로 들어가서 같이 선회하는 방법을 절대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선회평면의 바깥쪽에서 공격하기 위해 어느각도에서도 적기를 향해 기수를 돌려 순간적인 교차시점에서 정확하게 사격을 가하는 능력을 훈련했다. 이미 수많은 곡예비행훈련을 통해 Bf 109E의 능력을 극한까지 구사할 수 있었던 요헨은 그의 전투기가 적기의 위쪽에 있건, 아래쪽에 있건, 옆쪽에 있건간에 순식간에 기수를 돌려 적기를 조준할 수 있었으므로 그에게 고도나 위치의 약점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의 능력은 비행성능이 훨씬 뛰어난 Bf 109F형으로 기종 변경을 하게되면서 부터 더욱 강력해졌다.

[ 전술을 배우려는 동료들에게 공격방법을 전수하는 요헨, 매우 유명한 사진으로 그가 적기의 측면을 공격하는 장면을 설명하고 있다. ]

또한 요헨은 바로 이런 공격전술을 완성하기 위해서 그만의 사격술을 연마하고 있었다. 그는 편대가 귀환할 때 이리저리 편대주위를 맴돌면서 우군기의 하방, 상방, 측면 또는 대각선의 비행방향에서도 조준연습을 했다.

이런 공격방법은 적기를 따라다니며 공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적기와의 비행경로가 달라져 적기와 교차하는 짧은 순간에만 적기를 조준하고 사격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는 단점이 있었지만 만일 이 타이밍을 적절하게 잡을수만 있다면 이 공격방법은 적 조종사가 도저히 예측하기 힘들 게 되며, 다른 적기들도 대응해오기 힘들다는 이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요헨이 그가 가진 천재적인 감각으로 이런 짧은 순간에서의 정확한 사격술을 완성했다. 요헨은 적기와 순간적으로 교차하는 상황에서도 적기의 진행방향을 완벽하게 예측하여 절묘한 공격타이밍을 잡아낼 수 있었다. 그는 기관총을 절대 난사하지 않았으며 교차순간에만 짧은 사격으로 적기를 정확하게 명중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요헨은 이런 기술을 완성했다는 느낌을 가졌을 때 비로소 그의 동료인 아놀트 슈탈슈미트에게 '이제는 뭔가 알 것 같아'라는 유명한 말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때부터 그는 실전에서 그의 이론을 테스트 했으며 그의 천재적인 재능이 완벽한 기술과 결합하면서 비약적인 격추기록을 올리게 되었다.

특히 영국 사막공군의 허리케인이나 P-40계열기들이 수적 우세를 이용해 전개하는 방어원형진은 이미 어느 각도에서도 공격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된 요헨에게는 그야말로 마음에 드는 것을 먹고싶은 데로 골라먹는 '뷔페 요리'나 다름없었다.

[ 요헨이 방어 원형진을 공격하는 장면을 설명하는 일러스트 ]

그는 적기들이 방어원형진을 만들기 시작하면 적 조종사들이 예측하지 못하는 변칙적인 공격전술로 이 원형진을 깨뜨렸다. 요헨은 우선 원형진에 접근하면 쓰로틀을 풀로열고 원형진을 향해 강하해 들어갔다. 그러나 요헨은 강하시에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짧은 하강을 통해서 속도를 얻으면서 방어원형진의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이후 순간적으로 쓰로틀을 죽이면서 러더를 펼쳐 급격하게 상승코스로 반전하면서 선회원의 정하방에서 공격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때 적기는 수평 선회중이므로 아래쪽 후방에서 공격해 들어오는 황색 14번을 발견하지 못하게 되는데, 요헨은 플쓰로틀로 상승해들어가 대략 50미터 정도까지 접근한뒤 적기가 바로 앞에 나타나는 교차 타이밍에 정확한 사격으로 첫 번째 기체를 명중시킨다.

공격 각도로 볼 때 가장 어려운 첫 번째 공격이 성공하면 급상승을 통해 얻은 고도로 방어원형진의 선회평면 약간 위쪽으로 올라가게 되는데 이때 기체는 속도를 거의 잃어 스톨직전까지 다다른다, 그러나 이순간 요헨은 이 스톨을 절묘하게 이용해서 (심지어는 일부러 스톨과 스핀을 유발하기도 했다고 함), 다시 급격하게 반전 하며 하강에 들어가 두 번째 공격을 하게된다. 대개 두 번째 공격목표는 30도 정도의 완만한 교차각을 그리며 앞쪽에 위치하게 되므로 요헨은 급선회를 할필요가 없어 조종간을 약간 당기면서 속도를 계속 얻으면서 사격을 퍼부을 수 있었다. 이 두 번의 공격이 너무나 빨리 이루어 이루어지기 때문에 첫 번째 적기가 추락하기도전에 두 번째 적기를 명중시키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 두 번째 공격이 성공하면 연이어 급하강에 들어가 비슷한 공격을 반복하게 된다.

[ 1942년 9월, 격추페이스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의 전형적인 공중전 장면을 담은 항공아트, 원형진에 대한 첫 번째 공격패스에서 적기를 명중시킨후 상승중인 요헨, 곧 반전해서 2차 공격패스로 들어간다. ]

이쯤되면 이미 1-2기의 동료기를 잃은 방어원형진은 그 대형이 깨지기 시작하며, 놀란 영국조종사들은 완전히 당황해서 서로 후방을 경계하지 못하고 점점 흩어지기 때문에 이들을 노리는 요헨에게 한 대 한 대 추가로 격추되는 것이다. 요헨은 한번의 공격에 매우 짧은 시간만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아군기의 후방을 지켜주던 영국 조종사들은 예측이 불가능한 측하방이나 측상방에서 전광석화처럼 공격하고 순간적으로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엉뚱한 (?) 방향으로 이탈해 버리는 황색 14번을 막아낼 수 없었다.

요헨과 로터 (Rotte)를 이루어 공격을 지원하는 동료기는 대부분의 경우 도저히 그의 이 화려한 공격을 따를 수 없었으므로 요헨이 공격을 시작하면 그저 방어원형진의 상공으로 올라가 높은 고도에서 머물면서 요헨의 전투를 구경했다고 한다. 이런 멋진 구경거리를 볼 수 있었던 동료들은 기지로 돌아오면 정작 요헨보다도 더 신이나서 정황을 설명하고 했다고 한다.

지겨운 글을 여기까지 읽어주신 불타는 하늘의 식구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며, 여기서 요헨과 함께 싸웠던 전우들의 증언을 마지막으로 이번회의 연재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나는 요헨과 로터를 이룬적이 많았는데, 요헨이 공격에 들어가면 그 엄청난 곡예비행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저 상공으로 올라가 전투를 구경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 그의 비행을 따라다니는 것만으로도 중노동이었다. 전투가 시작되면 요헨의 판단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확해서 그가 사격을 할 때마다 탄환들은 정확하게 적기의 엔진과 조종석을 강타했고 적기에서는 불꽃이 튀어 날았다. 빗나가는 총탄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내가 할 일이라곤 그가 몇 대나 격추시키는 지 세어주는 것과 후방을 경계해주는 것 정도였다. 만일 다른 적기가 요헨을 공격하려고 하면 강하해서 도와주려고 했지만 그럴 필요도 전혀 없었다."

- 독일공군 라이너 푀트겐 -

"나에게 있어서 진정한 사부는 오로지 요헨뿐이다. 나는 영국공군의 방어원형진을 공격하는 요헨의 멋진 공중전을 목격한후 이것이야말로 이 방어원형진을 깨는 방법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기지로 돌아온후 오헨으로부터 그 전술을 배우고자 했는데, 설명을 들은데로 정말로 열심히 따라했지만 사실 성과는 거의 없었다. 그가 구사하는 기술중에서도 특히 거의 스톨에 가까울 정도로 속도를 죽이면서 급하강과 급상승을 반복하면서 다시 가속해서 속도와 고도를 얻는 기술이 가장 따라하기 힘들었다. 내 생각으로 요헨을 흉내내어 방어원형진을 깨트릴 수 있는 조종사는 또 있을지도 모르지만 요헨처럼 완벽하게 격파할 수 있는 조종사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독일공군 베르너 슈뢰어 -

* 뒤돌아 보면서...

foxmouse: 비록 그가 아프리카에 뼈를 묻은지 6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이 위대한 에이스의 발자취는 항공의 역사가 존재하는한 하늘을 동경하는 이들의 가슴속에서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홈지기 개인적으로도 1999년 11월 11일에 불타는 하늘이 개장한지 햇수로 5년만에 늘 마음속에 품어왔던 요헨의 이야기를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참으로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요헨의 일대기에 대해서는 그동안 많이 보셨을 것이기 때문에, 불타는 하늘의 연재에서는 이야기를 조금 다른 관점에서 재미있게 전개해보기위해 요아힘 뮌히버그라는 에이스의 이야기를 가미해보았습니다. 그러나..영...시원치 않은 것 같습니다.

[ thammer님의 작품 - 한스 요아힘 마르세이유와 그의 애기 '황색 14번' ]

이번의 북아프리카 항공전 Side Story 업데이트로서 '북아프리카 항공전' 연재는 홈지기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서 약 3개월간 중단할 예정입니다. 물론 이 기간동안은 홈페이지 업데이트 및 관리를 전혀 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당연히, 게시판의 정회원 가입처리도 2월 8일 이후부터 3개월간은 중단되게 됩니다. 홈지기가 예상하는 복귀시일은 대략 5월 중순이 될 것 같네요. 물론, 더 빨라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동안 숨돌릴 사이없이 개인적으로 매달렸던 연재를 잠시 쉬게되니 시원섭섭합니다. 그동안 찾아주시고 격려와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던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제 따뜻한 5월이 되면 다시 연재가 재개될 것을 약속드리며 이만 인사드리겠습니다.

불하의 식구여러분! 늘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