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프리카-지중해 항공전

유럽 항공전 3 부 - Desert Wings (북아프리카의 결전)

(The Western Desert Airforce)

This document was updated at 2004. 6. 6

* 악전 고투하는 영국의 사막공군

[ 미소를 짓고 있는 롬멜, 그가 이끌던 아프리카 군단은 역사상 가장 인상적인 부대의 하나로로 기억될 것이다. ]

1941년 5월과 6월, 롬멜의 아프리카 군단에 비해 수치상으로 우세한 전력이었던 영국군은 그들이 야심차게 감행했던 브레비티 작전과 배틀액스 작전의 연속적인 실패로 인해서 사기가 땅에 떨어진 상태였다. 롬멜이라는 단 한명의 독일 장군에 의해 북아프리카 사막의 전황은 급속도로 바뀌어 이제는 독일군이 주도권을 쥐게 되었으며 사막의 맹주를 자처하던 영국군은 자존심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주눅이 들어 버렸던 것이다.

더구나 지상전의 연속적인 패배에 더해서 북아프리카 사막의 하늘에서 벌어지던 제공권 쟁탈전에서도 영국공군은 북아프리카에 파견된 독일 아프리카 항공군에게 연일 큰 피해를 입으며 밀리고 있었다. 비록 영국본토 항공전에서는 끈질긴 방어전을 펼쳐 독일공군의 기세를 꺾었지만 북아프리카 전선에서는 1년전의 서부유럽전에서 독일공군에게 당했던 치욕적인 패배가 재현되고 있었던 것이다.

[ 위장 도색이라면 이정도는 돼야지! 북아프리카 항공전 초기에 상공을 장악했던 Bf 109E, 이 기체의 점박이 도색이 사막의 환경에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진이다. ]

이렇듯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영국공군 수뇌부는 1941년 중반부터 영국본토에 대한 독일공군의 직접적인 침공위협이 적어졌다고 생각하고 사막지역에서의 제공권 쟁탈전에서 절대로 밀려서는 안된다는 결론을 내리고 본토 방위에 필수적인 전력을 제외한 가용 가능한 모든 전력을 북아프리카 전선에 투입하기로 했다. 사자의 나라를 자처하던 영국의 공군 조종사들은 북아프리카라는 새로운 전장에서 독일의 독수리들과 다시 본격적인 운명의 대결을 벌이게 된 것이다.

영국공군은 실패로 끝난 배틀액스 작전을 분석한 결과, 공군과 육군의 유기적인 협조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큰 실패요인 이었다는 결론이 내려지면서 이집트 주둔 영국공군 전력의 전면적인 개편을 실시하기로 했다. 특히 위협적인 전력을 과시하고 있었던 독일 아프리카 항공군에 맞서 전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력의 대대적인 증강이 필요했는데 이에 기존의 '사막공군 (Desert Airforce)'의 전력을 2배이상으로 강화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 이집트의 항구로 수송된후 트럭에 실려 전선으로 운송되는 가조립 상태의 허리케인 전투기들, 야전비행장에 도착하게 되면 정비사들에 의해 즉시 조립작업이 이루어진후 전장에 투입된다. ]

그러나 문제는 영국공군이 아직 본토방어와 북아프리카 전투를 동시에 수행할 만큼의 충분한 전투기와 조종사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었다. 이에 영국은 미국에 급히 무기사절단을 파견하여 쓸 만한 전투기의 긴급원조를 요청하는 한편으로 영연방인 호주, 캐나다, 남아프리카 공화국등에 공군 조종사를 급파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런 영연방 국가들은 영국이 위기에 몰렸을 때 군사적인 지원을 하기로 되어 있었으므로 북아프리카에 파견될 조종사들을 소집한후 급히 파견했다. 그외에 영국공군에 지원한 벨기에, 체코, 폴란드 출신의 조종사들도 북아프리카 전선에 투입되었다. 대부분의 외국인 조종사들은 전쟁에 즉시 투입될 정도의 충분한 전투비행 훈련을 받지 못했지만 거의 모든 조종사들이 스스로 지원해서 북아프리카로 왔으며 독일군과 맞서 싸우겠다는 투지만은 넘치고 있었다.

[ 영국군을 돕기위해 이집트에 도착한 남아프리카 공화국 공군 제 4 전투비행대대 소속의 조종사들 ]

전력증강을 위한 노력의 결과로 영국 공군은 9개 전투비행대대, 6개 중형폭격기대대, 1개 전술정찰기대대로 구성된 총 16개의 비행대대로 이루어진 새로운 공군전력을 구성할 수 있었으며, 분위기를 일신하기 위해서 명칭도 '서부 사막공군 (Western Desert Airforce, WDAF)'으로 바꾸었다. (이후에도 전력 증강사업은 계속 추진되어 훗날 북아프리카 전투가 종료될 시점에는 무려 29개 비행대대가 서부 사막공군에 소속되어 있었음)

그러나 다시 태어난 서부 사막공군은 비록 양적인 면의 증강은 이루어졌으나 질적으로 볼 때는 아직 미흡한 면이 많았다. 무엇보다 '전투기들의 전장'으로 대변되는 사막하늘에서 가장 중요한 전투기의 성능면에서 독일공군의 전투기에 비해 큰 격차가 있었던 것이다. 영국은 아직도 독일공군의 Bf 109E에 맞설 수 있는 최강의 전투기 스핏화이어를 본토 방어 이외의 임무에 투입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이미 1년전의 서부 유럽전에서 독일공군의 Bf 109E에게 일방적인 패배를 당했던 2선급 전투기 허리케인이 전력의 중핵을 이루고 있었다.

[ 북아프리카 전투에서도 맹활약했던 허리케인, 기수아래쪽의 방진필터가 돋보인다. ]

비록 허리케인이 영국 본토항공전에서는 홈그라운드의 절대적인 이점을 살려 독일공군에게 쓴 맛을 보여주었지만 동등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전투에서는 Bf 109E에게 승리할 확률은 매우 낮았다. 그나마 허리케인조차도 양적으로 충분치 못했으므로 영국이 미국으로부터 황급히 수입한 커티스사의 토마호크 전투기 (P-40B/C)들도 서부 사막공군의 주력 전투기로 공급되었다. 이 토마호크 전투기는 점점 더 많은 수가 투입되어 북아프리카에 첫 선을 보인지 몇 개월이 지나자 개량형인 키티호크 (P-40E/F)와 함께 수적인 면에서 볼때는 허리케인을 제치고 서부 사막공군의 주력 전투기로 자리잡게 되었을 정도였다. 토마호크 전투기는 조종성은 비교적 좋은 편이 었지만 이 전투기에 장착된 미국제 앨리슨 엔진이 중-저고도 작전용으로 설계된 것이었기 때문에 20000피트이상의 고도에서는 도저히 Bf 109E와 맞서기 어려웠다. (GWP란의 P-40편 참조)

[ 영국군이 급히 도입한 토마호크 전투기, 곧 북아프리카 하늘의 주역으로 떠오른다. ]

특히 사막전투에서는 양측의 전투기들이 주로 지상 지원 임무를 수행하던중 비슷한 중-저고도에서 조우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경우 Bf 109E는 허리케인과 토마호크에 비해서 뛰어난 순간 상승력을 이용해 우세한 고도를 확보하고 주도권을 가진채로 전투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무렵에는 JG 27을 주축으로한 독일 전투기부대의 조종사들이 영국 조종사들에 비해서 비교적 전투 경험이 많은 베테랑 조종사들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막전투의 초기 몇달동안에 영국 전투기부대는 수적인 우세에도 불구하고 공중전만 벌어졌다하면 일방적으로 격추되고 있었다.

[ 피격된후 착륙을 시도하다 뒤집혀 버린 토마호크, 항공전 초기에 서부사막공군의 피해는 엄청났다. ]

이런 일방적인 공중전의 양상은 독일공군이 더욱 뛰어난 성능을 가진 당대 최고의 전투기 Bf 109F를 투입하기 시작하면서 더욱 분명해졌다. 이후 서부 사막공군의 피해는 더욱 극심해져서 심지어 전투에 투입된지 6개월이 지나는 동안 전체 조종사 엔트리의 120%를 상실해 전멸에 가까운 지경에 처한 전투기대대도 있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서부 사막공군의 전투기 조종사들은 전투기 성능의 명백한 열세로 인한 막대한 피해에도 불구하고 전선으로 출격하는 것을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심지어 전선상공에서 격추된 조종사들은 무사히 탈출에 성공하면 다시 복귀하여 즉시 새로운 전투기를 타고 날아오르기도 했다.

[ 북아프리카 하늘의 왕자로 군림하며 서부 사막공군에게 큰 피해를 주었던 독일공군의 신예 Bf 109F-4 trop, 기수의 노즈아트는 JG 27 제 2연대의 것으로 이른바 '베를린의 곰'이라 불리던 부대 마크이다. ]

영국공군의 입장에서 볼 때 그나마 다행스러웠던 점은 북아프리카에서 활동했던 독일 공군기들의 숫자가 영국 공군에 비해서 훨씬 적었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1942년 6월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면서 독일의 주요 전장이 동부전선으로 급변함에 따라 북아프리카의 독일공군에 대한 지원이 더욱 줄어들면서 그나마도 지원 물자의 부족에 시달리던 독일의 북아프리카 항공군이 세력을 늘리기는 커녕 그나마의 전력수준도 변변히 유지하기가 어렵게 됨에 따라 서부 사막공군의 전투기들은 전투에서는 연일 패배를 거듭하면서도 수적인 우세를 이용하여 전선 상공에서 우군의 지상지원 임무에서는 맹활약했다. 이점이 지상군의 사기에 큰 영향을 주게 되었는데 전쟁이 길어질수록 영국군에게 점점 더 많은 항공지원이 실시되면서 독일군과 영국군이 전투를 벌이는 지역의 상공에는 독일공군기들보다 영국공군기들이 항상 더 많이 나타났다.

[ 도색작업중인 남아프리카 공화국 공군 제 2 전투비행대대 소속의 키티호크 전투기 ]

물론 독일공군 조종사들도 수적인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연일 전선의 상공으로 날아올라 수많은 영국전투기들을 격추시켰지만 지상의 독일 병사들은 항상 더 많이 나타나는 영국공군기들로 인해서 작전에 많은 차질을 빗기도 했다. 이로 인해 심지어 롬멜 마저도 공군장교들을 만나면 독일공군의 항공지원이 너무 미흡해서 전투수행에 지장이 많다는 불만을 공공연하게 토로했을 정도였다. 사실 이것은 단지 영국 항공기들의 숫자가 많았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들이 가진 기체가 비록 독일공군에 비해 성능이 떨어지는 것이 분명함에도 끝까지 싸우려고 했던 많은 조종사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부 사막공군의 존재는 전투가 중반을 넘기면서 점점 뚜렷해지기 시작했고, 어느덧 서부 사막공군은 독일 아프리카 군단에게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로 자리잡아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상어 전투비행대대

북아프리카 항공전에서 제일 유명한 부대라면 누구나 독일공군의 JG 27을 떠올리겠지만 영국쪽에도 이에 못지 않는 명성을 남긴 부대가 있었다. 이 부대가 바로 서부 사막공군 소속의 여러 전투비행대대중에서 가장 유명한 전투비행대대로 기억되고 있는 제 112 대대로서 부대의 전투기들에 그려진 특유의 '상어 아가리 (shark mouth)'로 인해서 '상어 전투비행대대 (shark squadron)'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 제 112 대대는 1차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독일의 쩨펠린 비행선과 고다 폭격기등의 위협이 고조되면서 런던 상공의 방어 임무를 부여받고 창설되었던 전투비행대대였다. 이 부대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독일의 폭격기들과 쩨펠린 비행선에 맞서 요격임무를 수행했으며 전쟁이 끝난후 1919년 6월 13일에 해산된 상태였다.

그러나 2차대전의 전운이 달아오르면서 영구공군의 전력을 강화해야한다는 공군성의 의견으로 영국공군은 1차대전후 해산된 많은 비행대대를 부활시켜 새로 편성한후 본토와 식민지에 배치했는데 제 112 대대의 부활도 이런 와중에 급작스럽게 추진되었으며 이집트 주둔군의 항공지원을 위해 북아프리카로 향하라는 명령을 받게 되었다. 1939년 5월 16일 사우스햄턴을 출발해 이집트로 향하던 항모 HMS 아거스의 함상에서 결성된 제 112 대대는 이집트에 도착한후 글로스터 글라디에이터 전투기들을 지급 받았다. 이무렵 서유럽에서는 독일이 점점 침략의 야욕을 드러내고 있었지만 이때까지만해도 이집트는 전쟁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었으므로 이 부대는 통상적인 치안유지 비행정도만을 실시하고 있었다.

[ 서부 사막공군 최강의 전투비행대대였던 제 112 대대 소속의 키티호크 전투기 ]

그러나 1년후 야심가 무솔리니의 독려를 받은 이탈리아가 이집트 주둔 영국군을 향해 공격을 개시하면서 북아프리카의 사막에도 전쟁의 불길이 치솟아 올랐으며 제 112 대대는 급작스럽게 전선에 투입되어 싸워야 했다. 이무렵에는 그들이 장비한 글라디에이터 전투기들만으로도 이탈리아 공군기들에 맞서 전선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후 이 전투비행대대는 그리스와 알바니아에 독일의 침공을 저지하기 위해 투입되었지만 독일군의 공세속에 영국군은 후퇴만을 계속할 수 밖에 없었고 제 112 대대의 글라디에이터들은 영국 지상군을 지원하기 위해서 꾸준히 출격했다. 결국 크레타섬에서 영국군이 본격적으로 철수하게되자 제 112 대대는 다시 이집트로 복귀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 제 112 대대 특유의 상어 아가리 도색의 예 ]

1941년 7월 이집트에 도착한후 영국이 미국으로부터 도입한 미국제 토마호크 전투기로 기종을 개편한 제 112 대대는 Bf 109E로 무장한 JG 27과 혈투를 벌였다. 그러나 이 대대의 조종사들 역시 전투기 성능의 현격한 격차로 많은 희생을 치루면서 어려운 싸움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런 어려운 와중에서도 추축군기를 20기 이상 격추한 네빌 듀크나 클리브 칼드웰과 같은 뛰어난 에이스 조종사들이 배출되었다. 언젠가부터 토마호크 전투기의 커다란 공기흡입구의 형태를 이용해 상어 아가리 도색을 실시해본 조종사들은 이후 이 기체에 도색이 매우 어울린다는 의견에 따라 대대가 보유한 모든 토마호크 전투기들에 상어 아가리 도색을 도입했다. 이후 상어 아가리를 그려넣은 제 112 대대의 전투기들은 북아프리카 상공을 누비면서 라이벌인 JG 27 1연대와 운명적인 대결을 벌였다.

1941년 12월에는 보다 성능이 강화된 본격적인 전투폭격기형의 키티호크 전투기들이 보강되면서 이 전투비행대대는 본격적으로 전투-폭격임무에 투입되었으며 독일 아프리카 군단 지상군 병사들을 끈질기게 괴롭혔다.

[ 발진대기중인 키티호크 전투기들, 강인해보이는 상어 아가리가 제 112 대대의 트레이드 마크이다. ]

한편, 1942년 6월 롬멜의 공격으로 토브룩이 함락되면서 영국은 이집트까지 내놓게 될지도 모르는 절대절명의 큰 위기를 맞았지만 이후 독일군의 보급상황이 절망적인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한숨을 돌리게 되었고 몽고메리의 등장과 함께 영국의 대 반격작전이 시작되자 제 112 대대는 본격적인 지상지원작전에서 더욱 맹활약했다.

엘 알라메인에서 벌어진 대 격전에서 영국 제 8군이 승리를 거둔이후 보급 물자 부족으로 허덕이던 독일 아프리카 군단은 급속하게 붕괴되었으며 연합군의 진격이 계속되면서 제 112 대대의 조종사들은 튀니지로 진격했으며 이후 이탈리아 침공작전에서도 선봉에 섰으며 1943년 7월에는 시칠리섬에 근거지를 두고 이탈리아에서 독일군과 격전을 벌이던 연합군 병사들의 근접지원을 계속 수행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1944년에 이르러서는 제 112 대대가 새로운 신예기로 기종 변경에 들어갔을 때 지급받은 기체가 영국제가 아니라 미제 P-51 머스탱 전투기였다는 사실인데, 결국 제 112 대대는 영국 전투비행대대임에도 전쟁 기간내내 주로 미제 전투기를 운용하는 독특한 부대로 기록되었다는 것이다.

그리스, 알바니아와 북아프리카부터 이탈리아까지 지중해 전지역을 누비면서 악전고투를 펼쳤던 '상어 비행대대' 제 112 대대는 전쟁이 끝난뒤 1년이 지난 1946년 12월 30일 공식적으로 해체되었으며 이제는 항공전사속에서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