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프리카-지중해 항공전

Part 3 : Desert Wings (북아프리카의 결전)

◇ Act 2. 출정! 이탈리아 공군 ◇

(Regia Aeronautica at War)

This document was updated at 2003. 10. 15

* 이탈리아 반도에 불어온 창공의 시대

무솔리니의 야심찬 계획과는 달리 사실 지중해와 북아프리카의 지배권을 목표로 갑작스럽게 본격적인 2차대전에 뛰어들게된 이탈리아는 육해공 3군이 모두 사실상 영국과 같은 유럽의 열강에 맞서 현대전을 수행할 만한 준비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았다. 앞으로 펼쳐지게 될 지중해와 북아프리카 하늘의 격전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들어가기전에 1차대전이후 이탈리아공군의 상황을 살펴보는 것은 전체 항공전의 이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탈리아는 1차대전 당시 늦게나마 연합군측에 합류하여 독일과 싸웠기 때문에 독일이 항복한 후에도 승전국의 지위를 누리며 아무런 제약이 없이 군용 항공기를 개발할 수 있었다. 이탈리아공군은 대부분의 유럽열강들이 그랬듯이 1차대전이 끝난 후 몇 년동안은 독립된 전력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육군소속으로 있었다가 1928년에 이르러서공식적으로 '레지아 아에로노띠까 (Regia Aeronautica; 영어로는 Royal Airforce)'라는 이름을 가지고 독자적인 공군으로 독립할 수 있었다. 신생 이탈리아공군이 그 첫 걸음을 1700여기나되는 항공기와 함께 화려하게 시작한 것이다. 사실 이무렵만해도 최전성기를 달리고 있었던 이탈리아의 항공 기술력은 영국, 프랑스등의 최첨단 항공 기술 국가들에 비해서 크게 뒤쳐지지 않았다.

[ 1925년 신형 사보이아 수상기를 몰고 장거리 비행에 성공한 이탈리아 조종사가 손을 들어 환호하고 있다. 이무렵 이탈리아의 항공기술은 그 황금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

1차대전이 끝난후 얼마되지 않은 시점에서 유럽인들은 1차대전의 참상에 진저리를 쳤으며 이제 다시는 유럽에 이런 참혹한 전쟁이 없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1920년대부터 30년대 초까지는 세계각국의 공군기들은 적기들과의 공중전이 아닌 신기록수립을 위한 싸움을 하고 있었다. 어느나라의 새로운 비행기가 세상에서 가장 빠르다더라, 얼마전에 등장한 어느나라의 비행기가 제일 높이 날 수 있다더라 하는 등의 각종 기록들이 수립될 때마나 이 내용은 즉시 활자화되어 신문의 1면을 장식했고, 이것이 그나라의 국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지면서 각 나라의 경쟁심을 더욱 자극했다. 이중에서도 특히 속도경쟁은 모든나라들이 자존심을 걸고 있었기 때문에 빠른 속도의 기체를 가지는 것이 그나라의 항공기술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이탈리아는 분명히 이 항공의 황금기에 변방이 아닌 세계의 중심에 위치해 있었던 것이다.

[ 이탈리아 항공의 최전성기를 보여주는 사진, 1933년 하늘의 영웅 이탈로 발보가 이끄는 24기의 수상기가 대서양을 횡단하여 세계 박람회가 열리던 시카고에 도착했다. 이 놀라운 비행으로 그와 그의 부하들은 미국민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고 이탈리아 항공기술에 대한 찬사는 끝없이 이어졌다. ]

이무렵 이탈리아는 세상을 뜨겁게 달구었던 슈나이더컵 경속대회에 고속 수상기를 제작-파견하여 미국, 영국등과 어깨를 견주었고, 이들 수상기들은 좋은 기록을 수립하며 여러차례 우승을 차지할만큼 많은 발전을 이룩하고 있었다. 여러 항공사들이 다양한 항공기들을 개발하고 생산해내고 있었고, 이탈리아만의 독특한 항공기들이 계속 선보였다. 그리하여 1928년 공군이 독립할 무렵에는 무려 1700여기의 항공기를 가진 세계적인 공군전력을 자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 이탈로 발보의 업적을 찬양하기 위해 만들어진 포스터 - 이에 열광한 이탈리아 국민들은 전세계가 이탈리아 공군의 날개밑에 있다는 무솔리니의 선전문구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

이 무렵에는 이탈리아의 항공사들이 정열적으로 디자인하고 생산한 전투기, 수송기, 폭격기 그리고 수상기들까지 대외적으로 모두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거의 매달 새로운 항공기가 등장했다. 이런 기체들을 조종하면서 창공을 누비던 공군조종사들에게는 '하늘의 귀족'이라는 별명이 따라 다닐 정도였으며, 당연히 조종사들의 인기는 매우 높아졌고 젊은이들은 조종사가 되기위해 이탈리아공군에 들어오고자 아우성쳤다.

특히 공군내에서도 최고 엘리트들로 인정받던 전투기 조종사들의 자부심은 그야말로 대단했다. 전시가 아닌 평시였으므로 공중전은 없었으나 시범비행에서 전투기들이 펼치는 화려한 공중기동술은 국민들을 열광시켰으며 각종 기록을 수립한 조종사들은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는 국민적인 영웅들이 되었다. 결국 대부분의 공군 조종사들은 전투기부대에 들어오기를 갈망했지만, 이탈리아 조종사들중에서도 최고중의 최고의 실력을 가진 조종사들만이 전투기부대에 들어올 수가 있었다.

당시 전투기 조종사들이 가장 사랑하고 있었던 세계수준의 전투기 CR.32는 그 특유의 날카로운 기동성으로 조종사들이 시도하는 거친 공중기동을 무리없이 해낼 수 있도록 해주었으며 전투기 조종사들은 많은 훈련을 통해 세계수준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특히 이탈리아 조종사들은 세계최초의 곡예비행팀을 만들어 각국을 방문하며 곡예비행을 펼쳐 이탈리아 항공기술의 우수성을 과시했을 정도였으며 이 무렵에는 곡예비행 부문에서는 세상에 경쟁자가 없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였다. 독립적인 하늘의 군대로 태어난후 약 10년간 이탈리아공군은 최고의 영화를 누리고 있었다.

* 근대화에 뒤쳐지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항공기 제작사들은 군용기를 제작할 때는 수냉식 엔진이 가진 잠재력을 간과하고 신뢰성이 높고 전투손상에 더 강한 공냉식 엔진을 선호하고 있었다. 특히 이탈리아의 항공산업을 지배하고 있다시피했던 거대 항공기 제작사 피아뜨가 계속 공냉신 엔진의 개발에 주력함에 따라서 이런 경향은 더욱 강해졌다. (이탈리아의 거의 모든 항공기들에 독점적으로 엔진공급을 하고 있었던 피아뜨의 이런 결정은 훗날 전체 이탈리아 항공산업의 발목을 잡게 된다.)

그러나 이무렵 독일과 영국은 수냉식 엔진이 가진 더욱 강력한 파워와 공기역학적인 측면에 주목하고 있었다. 물론 수냉식 엔진은 냉각시스템이 조금이라도 손상되면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약점이 있었지만 공냉식 엔진이 정면에서 볼 때는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것과는 달리 수냉식 엔진은 정면의 스피너에 장갑판을 달아 보호할 수 있었기 때문에 공냉식에 비해서 전투손상에 그렇게 취약하지만은 않고 출력이 강력한점이 큰 장점이 된다는 판단을 내렸던 것이다.

[ 엘리트 중의 엘리트로 손꼽히던 전투기 조종사야말로 영광의 절정기에 있었다. 사진은 스페인 내전에 파견된 CR.32 전투기 ]

게다가 이무렵 이탈리아의 순수한 항공기 제작기술은 세계수준이었으나 항공기에 장착할 무전기등의 전자장비의 개발에는 소흘해서 대부분의 이탈리아 전투기에는 제대로된 무선통신 장비가 없었으며 따라서 이탈리아의 조종사들은 시야가 좋은 주간에 그것도 날씨가 좋아야 수신호를 해가며 편대비행훈련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대 공중전에서 무전기가 없다면 제대로된 편대전술은 불가능하며 따라서 조종사들은 적기들과 만나면 편대를 깨야 했으며 자신의 실력만을 의지하고 근접 격투전에 휘말릴 수밖에 없었다. 이런 요인들이 1930년대 초반까지 누적되면서 이탈리아 공군은 점점 세계수준에서 점차 멀어져 가고 있었다.

더구나 이탈리아의 기술력은 높았지만, 대량생산을 위한 공업능력은 영국, 프랑스, 독일등의 선진국에 비해서 크게 떨어졌다. 이것은 이탈리아가 좋은 항공기를 개발한다 하더라도 이런 항공기를 이런 항공기를 빠른 시간에 대량생산할 만한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이탈리아는 1차대전후 꾸준히 생산한 항공기들이 축적되어 겉으로 볼 때는 수적으로 충분해 보였지만 사실 1940년의 기준으로 볼 때는 형편없는 구식 기체들이 태반이었던데다가 만일 대규모 전쟁이 벌어져 보유하고 있는 항공기들이 대량으로 손실되는 경우 이를 보충할 능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런 초라한 공업생산능력은 훗날 이탈리아공군이 끝없는 수적인 열세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허우적대는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1935년 10월 이탈리아는 이디오피아를 침략하면서 그들이 제작한 전차와 비행기를 동원해 소총으로 무장한 이디오피아 저항군을 손쉽게 괴멸시켰으며 특히 이탈리아 공군기들은 변변한 항공기는 고사하고 기관총같은 무기조차 없었던 이디오피아 저항군 병력을 향해 폭탄의 비를 퍼부었다. 물론 이러한 공습의 결과는 대 학살 그자체였으며 이디오피아는 순식간에 이탈리아에게 점령되고 식민지화 되었다. 이탈리아 국민들은 무솔리니가 자랑스런 이탈리아군의 승전을 외치면서 식민지를 넓혀가자 크게 환호하며 그들도 로마제국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들떴지만 사실상 이런 전과는 이탈리아 공군을 자만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리고 1936년부터 1939년까지 스페인 내전기간중에도 무솔리니는 그가 자랑하는 이탈리아 공군을 파견해서 프랑코의 국민당을 지원하고 있었다. 이 기간중에 결국 역대 최대규모인 총 660기의 이탈리아 공군기들이 75000여명의 지원병력과 함께 파견되었고 독일이 파견한 콘돌군단과 대등한 위치에서 소련이 지원하는 공화당 항공기들에 맞서면서 이탈리아공군기들은 스페인의 하늘을 누비게 되었다. 물론 스페인 하늘에서도 이탈리아 공군기들의 활약은 대단했다. 그들의 SM.79 고속 폭격기는 쉽게 목표상공에 도달해서 타격을 가하고는 적의 요격기들이 날아오기전에 이탈하는 전법으로 많은 전과를 올렸으며 호위전투기로 따라붙었던 CR.32 전투기들에는 최고 수준의 조종사들이 탑승하여 적의 전투기들을 제압했다. 비록 소련제 I-16과 같은 고성능 전투기에는 고전하기는 했지만 이탈리아 전투기조종사들의 숙련된 공중전 실력이 이것을 만회했다. 대부분의 이탈리아 조종사들은 그들의 CR.32로도 충분히 I-16과도 대등한 전투를 펼칠 수 있었다고 주장했으며 실제로도 그랬다. 결과적으로도 스페인내전기간동안 이탈리아의 전투기 조종사들은 3:1의 높은 격추율을 달성했다. 하지만 스페인내전을 통해서 독일공군이 미래의 하늘을 지배할만한 더욱 강력한 공군으로 다시 태어난 반면, 이탈리아공군은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았다.

[ 이탈리아 공군이 현대화를 진행하는데 가장 큰 저해요인중 하나로 꼽히는 복엽전투기 CR.42 ]

가장 큰 문제는 CR.32의 성능에 만족한 조종사들과 공군 수뇌부가 미래의 하늘에서 주역이 될 단엽전투기들의 빠른 속도라는 강점을 간과하고 공중전에서는 역시 기동성이 좋은 기체가 필수적이라는 결론을 내려 차기 전투기를 빨리 도입해야한다는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독일공군이 스페인내전의 경험을 통해서 복엽전투기를 신속하게 은퇴시키고 차기 전투기인 Bf 109의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던 것과는 정반대의 상황이었다. 사실 이탈리아공군은 1935년 차기 전투기로 단엽전투기를 결정하고 각 항공기 제작사에 경쟁을 통해서 선정하겠다는 공문을 보냈지만 스페인 내전의 결과 이 사안이 그다지 급박하지 않다는 판단으로 인해서 공군자체가 단엽전투기의 도입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었다. 점점 전운이 드리워지고 있었던 이런 급박했던 시기에 새로운 항공기의 개발에 소흘했다는 것은 정말 큰 문제였다.

사실 지난 10여년간 정열적으로 항공기를 생산했던 이탈리아는 이후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항공기 생산에 투입되는 예산이 대폭 감축되어 1930년대 말에는 항공기 생산에 배정된 예산이 영국이나 독일의 1/10에 불과할정도로 축소되어 있었다. 물론 이는 그동안 제작한 항공기들의 댓수가 충분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지만 사실 빠르게 발전하는 항공기술로 인해서 하루가 다르게 구식이 되어가는 이탈리아공군기들의 상황으로 볼 때는 매우 어려운 상태였다. 게다가 스페인 내전의 참전으로 많은 기체들이 전투 또는 비전투 손상으로 인해 소모되어 전열에서 이탈했으며 많은 전쟁비용을 소모한데다가 예산까지 감축되고 초라한 공업생산력으로 인해 이런 소모분이 빨리 보충되지 못하면서 이탈리아공군은 점점 어려운 상황에 쳐했다.

[ 마끼사의 MC.200 생산라인 - 그러나 이 전투기조차 1943년 이탈리아의 항복때까지 고작 1153기가 생산되었을 정도로 이탈리아의 공업생산능력은 매우 떨어져 있었다. ]

이런 어려운 환경에 처한 이탈리아공군은 뒤늦게 차기 전투기의 개발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기로 결정했는데 이 것은 이탈리아공군이 과연 대도약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앉아서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를 좌지우지 하는 중대한 국운이 달린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이런 중대한 차기 전투기 개발경쟁 와중에도 피아뜨사는 CR.32의 성공에 고무되어 CR.42라는 새로운 복엽기를 개발했으며 이탈리아공군에서도 이 기체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하는 결정적인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게다가 더욱 한심한 것은 이탈리아공군의 우유부단함과 정경유착의 고리를 깨지 못해 차기 전투기 경쟁에서 승리한 마끼사의 MC.200을 주력전투기로 선정하고나서도 경쟁에서 뒤쳐진 피아뜨사의 G.50이나 레지아네의 Re.2000등의 전투기들을 탈락시키지 않고 일정양을 할당하여 양산을 허가한 상황이었다. 물론 가장 좋은 성과를 올렸던 마끼사에게는 가장 많은 생산양을 할당했지만 이런식의 정책결정으로 경쟁을 통한 우수한 전투기의 선정이라는 취지는 그 의미가 없어졌으며 그나마 가장 우수했던 마끼 MC.200의 생산에 공업력을 집중하지 못하고 여러갈래로 분산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가 깨지지 않으면서 이탈리아공군은 점점 퇴보하고 있었다. 단적인 예로서 현대 공중전에서는 그 가치가 거의 없었던 CR.42가 다른 차기 전투기들을 제치고 가장 많은 수가 생산되는 어처구니없는 결과가 나타났다.

이탈리아공군 전투기부대 1940년초

Fiat CR.32 - 177기

Fiat CR.42 - 143기

Fiat G.50 - 118기

Macchi MC.200 - 144기

위 도표에서 볼 수 있듯이 1940년초 유럽이 전화에 휩쌓일 무렵에는 이탈리아공군에 배치되어 있던 전투기들중 가장 많은 기체는 구식 CR.32가 177기로 가장 많았으며 CR.42가 그 뒤를 이어 143기나 되었고, 차기 전투기 경쟁에서 1위를 차지했던 MC.200이 144기 배치되었던 반면에 이 경쟁에서 탈락했어야 할 G.50도 118기나 배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탈리아가 보유한 전체 전투기의 숫자를 모두 합쳐도 600기가 채 안되는 상황에서 가장 우수한 기체인 MC.200의 숫자가 겨우 1/4정도였다는 점을 보면 이탈리아공군이 얼마나 총체적인 난국에 빠져있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몇 개월뒤 이런 상황은 더 나쁜쪽으로 변해서 1940년 6월 무솔리니가 영불과 전쟁을 선언할 무렵에 CR.42는 300기까지 늘어난 반면, MC.200은 겨우 156기에 불과했던 것이다.

[ 차세대 전투기의 승자 MC.200을 수령한 조종사들이 비행전에 모여있다. 그러나 경쟁에서 승리했음에도 MC.200은 도태되었어야할 피아뜨 G.50, 레지아네 Re.2000과 같은 기체들과 자원을 나누어 써야 했다.]

이런 수적인 면에 더해서 이무렵에 이르러서는 질적인 문제도 상당히 심각한 수준까지 떨어졌다. 한때는 세계제일이라고 자부하던 이탈리아공군의 전투기들의 명성도 그들이 오만과 우유부단함속에 빠져들어 있는 동안에 순식간에 과거의 것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차기 전투기 도입 프로젝트를 통해서 이탈리아공군이 보유하게된 전투기중에서 그나마 쓸만했던 MC.200과 G.50은 사실 독일과 영국의 신예기에 비한다면 성능면에서도 매우 초라한 수준이었다. 이들 기체는 고속 비행시에 캐노피가 제대로 열리지 않는 기술적인 문제로 폐쇄식 조종석을 도입하지 못했는데 이로인해 고공비행시 조종사들은 산소부족과 강추위에 그대로 노출되게 되었으며 이런 경우 계기판에는 성에가 잔뜩 끼어 제대로 볼 수 없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사실 대부분의 이탈리아 조종사들도 그동안 폐쇄식 조종석을 가진 기체에 탑승해본 적이 없어서 캐노피를 닫은 조종석을 매우 답답하게 생각했으며 심지어는 탈출하지 못할 수 있다는 공포감까지 느끼고 탑승을 거부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 피아뜨 G.50은 차세대 전투기 경쟁에서 패배했지만 피아뜨사의 로비로 양산을 시작할 수 있었다. ]

게다가 차기 전투기들에 장비된 엔진의 출력도 겨우 800마력급으로 영-독의 전투기들이 장비한 1000마력급의 엔진에 비해서 많이 떨어지다보니 신예기의 최고 속도에서도 크게 차이가 나고 있었으며 엔진이 감당할 수 있는 기체중량의 제한이 생겨 조종사들을 보호할 장갑판도 설치할 수 없었고 고정무장도 겨우 12.7mm 기관총 2정이라는 1차대전때보다 약간 나은 수준밖에는 장비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기수에만 장비된 기관총은 1차대전 당시에는 혁명적인 것이었으나 탑재정수도 적은대다가 프로펠러와의 싱크로나이제이션을 위해서 분당 최대 300발밖에는 발사할 수가 없었으므로 영국의 허리케인의 주익에 장비된 기관총들이 프로펠러에 상관없이 최대발사율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점에 비교해 볼 때도 단점이 많았다.

[ 역시 차세대 전투기 경쟁에서 패했음에도 살아남았던 레지아네사의 Re.2000 ]

더구나 다른 전자기술도 크게 뒤떨어져 차기전투기들이 생산될 때 까지도 제대로된 무전기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도 매우 큰 문제점이었다. 이 전투기들에조차 매우 불량한 성능의 수신기만이 부착되어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조종사들간에 원활한 의사소통이 거의 불가능해 현대 공중전에서 필수적인 편대 전술은 제대로 시도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조종사들은 전술적으로도 1차대전당시와 별다를 것이 없는 1:1 공중전 훈련에 주력했으며, 결국 공중전이 벌어지게되면 오로지 자신의 실력에 의지해 살아남아야 했다. 물론 적의 수준이 낮았던 스페인 내전에서는 이런 1:1 공중전 실력만으로도 충분히 통할 수 있었지만 미래의 하늘에서도 이런 구식 전술로 공중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불분명했다. 독일공군이 스페인 내전을 통해 이미 확립하고 전투기 조종사들에게 표준전술로 교육했던 윙맨들간의 유기적인 협조를 이용한 편대전술인 로터 (rotte)나 슈밤 (schwarm)같은 기본적인 편대전술에 대해서 이탈리아 조종사들은 아예 꿈도 꾸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이런 요인들이 누적되면서 한때 '하늘의 귀족'이라고 불리며 영광의 시절을 구가하던 이탈리아공군의 전투기 조종사들이 이제는 '하늘의 표적' 신세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 영광의 시절에서 도태되는 폭격기 병단

[ 전략폭격의 중요성을 주창했던 이탈리아의 선구적인 전략가 줄리오 듀헤, 하지만 그의 조국은 그가 생각하고 있었던 그런 공군력을 가질 수 없었다. ]

한편, 스페인내전에서 도시와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무자비한 폭격을 통해 공포를 조성하며 한때나마 명성을 높였던 폭격기 병단의 상황은 전투기부대에 비해서 더 어려웠다. 사실 1920-30년대에는 어느나라할 것없이 진정한 공군력이라는 것은 수많은 폭격기들을 날려보내 상대국의 군사시설과 도시를 초토화 시키는 것으로 믿고 있었을 정도로 폭격기야 말로 공군전력의 핵심으로 여겨졌다. 물론 이탈리아공군도 이런 흐름에 따라서 공군전력 전체의 2/3이상을 폭격기병단에 배정하고 있을 정도로 폭격기병단의 양성을 중요시했다. 이무렵에는 이탈리아 폭격기 조종사들의 자부심도 실로 대단해서 전투기 조종사들을 '곡예비행이나 할줄아는 광대'라며 비아냥거렸고, 자신들이야말로 적국을 때려부수고 승리를 쟁취해낼 이탈리아공군의 주역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으며 두 집단간에는 팽팽한 라이벌 의식이 흐르고 있었다.

[ 이탈리아 폭격기 병단의 장교들 - 한때나마 이들에게도 잘나가던 때가 있었다. ]

특히 폭격기병단의 강력한 후원자였던 전략가 줄리오 듀헤와 같은 인물이 전략폭격의 중요성을 주창하면서 이제 현대전에서는 공군전력이 가장 중요하고, 적국의 군사력을 말살하기 위해서는 군수 공장과 같은 후방의 목표를 격파해야하며 이것을 수행할수 있는 것은 바로 폭격기병단이라는 주장을 하면서 폭격기병단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되어졌다. 듀헤는 빠른 속도의 폭격기들을 대량으로 투입해서 적국에 침투시켜 핵심 산업시설과 도시를 폭격하면 적의 군사력은 저절로 와해되기 마련이라는 전략폭격이론의 주창자였다. 사실 듀헤는 매우 직설적인 인물로 한때는 이탈리아군부의 잘못된 전략을 강력하게 비판해 장성들의 미움을 사서 감옥에 수감된 적도 있었지만 이후 그는 미래 전장에서 항공력의 역할과 가능성에 대해 몰입한후 전략폭격과 제공권의 개념을 확립했으며 결국 '제공권'이라는 명저까지 발간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했다. 그는 1930년 62세를 일기로 사망할 때까지 계속 전략폭격을 주창했으며 결국 많은 지지자들이 생겨 그가 사망한 후에도 그의 이론을 추앙했다. 폭격기의 역할을 강조한 듀헤의 이론에 고무된 공군장성들은 폭격기를 많이 생산하는 것이 공군력 강화를 위해 가장 중요하다고 인식했으며 1920년대부터 수많은 항공사들이 다양한 종류의 폭격기들을 생산했고 이탈리아 폭격기병단은 1930년대 초반에는 그 절정기에 이르러 있었다.

[ 이디오피아 침략전에서 맹활약했던 S.81 폭격기 편대 ]

그리고 1935년 마침내 야망을 불태우던 무솔리니가 오래전부터 준비해오던 이디오피아에 대한 침략을 개시했을 때 이탈리아 폭격기부대가 본격적으로 투입되어 그 실력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이디오피아라는 먹음직스런 아프리카의 식민지를 확보하기 위해 파견된 이탈리아공군은 이 전쟁을 통해서 그들의 폭격기 병단이 참으로 무시무시한 전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게되었다. 실제 이탈리아의 S.81과 같은 폭격기들은 이디오피아 저항군의 진지를 안방처럼 날아들면서 마음대로 폭탄을 투하하고 초토화시키면서 적을 공포에 몰아넣었다. 그러나 그들의 적은 비행기는커녕 제대로된 대포조차도 가지고 있지 않았던 원시적인 군대였던 것이다. 이런 상황이니 이탈리아 폭격기들은 적의 전투기는 고사하고 대공포화같은 기본적인 저항조차 한번도 만나지 않았으며 그저 적진을 날아들어가 무자비하게 폭탄만 떨어뜨리고 돌아오면 되는, 이른바 식은 죽 먹기식의 임무만 수행했다. 그러나 이런 화려한 성공 (?)에 고무된 이탈리아 군부는 폭격기병단의 활약상을 연일 떠들어 댔으며 같이 맞장구를 친 언론덕분에 폭격기 조종사들이 국가적인 영웅이 되었다.

[ 3발엔진의 특징으로 하는 전형적인 이탈리아 폭격기 S.79 ]

결국 무솔리니는 손쉽게 이디오피아를 식민지로 만들 수 있었고 이 성과에 크게 고무된 무솔리니는 그의 군대의 능력에 대해서 더욱 환상을 가지게되었다. 이 침략전에 대해서 국제연맹이 항의하자 기세가 오른 무솔리니는 간단히 이를 무시해 버린후 국제연맹에서 탈퇴하고 히틀러의 나찌 독일과 국국주의에 불타오르며 중국을 침략하고 있던 일본과 함께 삼국동맹을 결성하였다.

이탈리아의 폭격기병단의 수뇌부는 폭격기의 속도가 빠르면 적의 전투기들을 따돌릴 수 있기 때문에 전투기의 호위 따위는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으며 결국 이후의 폭격기들은 빠른 속도를 최우선의 지표로 생산되었다. 이런 결과로 사보이아마르께티 S.79, S.84나 깐트 Z.506, Z.1007 및 피아뜨 BR.20과 같은 다양한 폭격기들이 생산되었지만 이들은 모두 고속 폭격기를 목표로 생산되어 중량을 증가시키는 기체의 장갑판이 설치되지 않았고 방어무장도 최소화시켰으며 이에따라 항속거리도 전략폭격을 수행하기에는 부족할 정도로 짧았다. 게다가 탑승인원도 제한되어 장거리폭격에 필수적인 임무를 맡아야 했던 항법사가 아예 없었고, 통신 장비의 측면에서는 더욱 한심해서 편대간에도 음성통신이 불가능한 모르쯔 전송방식의 무전기를 채택하고 있었다.

[ 깐트 Z.1007 폭격기 - 3발엔진을 장비하고 있었으며 역시 방호력과 방어무장이 빈약했다. ]

앞에서도 언급된 800마력급의 엔진은 폭격기에서도 출력이 만족스럽지 못해서 이탈리아 폭격기의 주류를 쌍발이 아닌 삼발이라는 특이한 것으로 만들었다. 피아뜨사의 쌍발 기체를 제외한 나머지 기체들은 기수에도 엔진을 추가로 장비한 삼발폭격기들이었다. 특히 수적으로 폭격기 병단의 2/3정도를 차지하고 있었던 주력폭격기 S.79의 경우가 대표적이었는데 이 기체는 780마력의 엔진 3기를 장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수의 엔진으로 인해서 정면공격에 취약하다는 단점과 함께 조종사의 시야가 방해받고 엔진의 소음으로 승무원들간에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게다가 폭격수는 엔진이 차지하는 공간을 피해서 폭격에 가장 이상적인 기수쪽의 중앙이 아닌 약간 가장자리로 밀려 어정쩡한 위치에 탑승해야 했다. 한편 피아뜨사는 이런 단점을 개선하고자 쌍발 폭격기 BR.20을 야심차게 내놓았다. 이 기체는 새로운 1000마력급의 엔진 2개를 탑재하고 있었지만 엔진의 신뢰성 결여로 상습적인 고장에 시달리고 있었다.

[ 정비중인 쌍발 폭격기 BR.20 - 잦은 고장으로 승무원들을 짜증나게 만들었다고 한다. ]

물론, 이런 폭격기 이외에도 장거리 폭격 임무를 위해 피아지오 P.108 과 S.82와 같은 폭격기를 개발하고자 했었지만 이들의 개발은지지부진해서 결국 전력화 되지 못하고 수송기등으로 전용되었다.

단적으로 말해서 이탈리아공군의 폭격기병단은 그들의 정신적 지주 줄리오 듀헤가 생각했던 수준에는 전혀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이런 빈약한 폭격기들은 만일 고성능의 적전투기들과 만나게되면 속수무책으로 격추될 운명이었다. 사실 이런 점에서는 폭격기병단을 중시여기던 영국공군에서도 고속폭격기의 개발에 전념한적이 있었으며 블렌힘 폭격기라는 비슷한 사상의 고속폭격기를 선보이며 1930년대 중반이후의 핵심전력으로 양성했었다. 그러나 영국공군은 허리케인과 같은 신예 전투기가 손쉽게 블렌힘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절감하고 곧 미래를 책임질 4발 중폭격기를 이미 설계-생산하고 있었던 반면 이탈리아는 이런 면에서는 전혀 개선이 없어, 피아뜨사가 형식적으로 4발 중폭격기의 설계를 진행하다가 중단, 재개를 반복하면서 결국 첫 생산분이 1942에서야 이루어졌을 정도로 뒤쳐지게 되었다.

[ 스페인 내전에서 이탈리아공군의 활약상을 잘 보여주는 사진 - CR.32 전투기들의 호위를 받는 S.81 폭격기가 도시에 폭탄을 퍼붓고 있다. 그러나 이탈리아 공군은 이수준에 그대로 머무르고 말았다. ]

결국 연이어 벌어진 스페인내전에서 폭격기병단은 외형적으로는 적의 도시에대한 무자비한 폭격으로 엄청난 공포를 조성하는 대단한 성과를 올렸으나 내면적으로는 불길한 징조를 계속 만나고 있었다. 이탈리아의 폭격기들은 설계당시의 기준으로는 빠른 속도를 가지고 있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초에 생각했던 전투기 호위가 필요없는 폭격기라는 개념은 장애물에 직면했다. 목표상공에 대기하고 있다가 급강하 공격해오는 적의 전투기들을 만나게되는 경우 큰 손실을 입게되는 결과가 나타났던 것이다. 결국 이탈리아 폭격기들은 단독임무를 포기했으며 대부분의 경우 CR.32와 같은 전투기들이 대거 따라주어야 안전한 임무 수행이 가능했다. 게다가 전투기들이 속도가 점점 빨라지면서 이탈리아 폭격기들의 유일한 특징이던 빠른 속도라는 장점도 점점 그 의미가 없어지고 있었다. 전쟁 후반 I-16과 같은 고속 전투기를 몰고 나타난 소련 조종사들이 가장 좋아했던 먹이가 바로 I-16의 속도에 비해서는 느리고 방어력이 빈약한 이탈리아 폭격기들이었던 것이다.

[ 스페인 내전에 파견되어 엄청난 공포를 몰고왔던 사보이아마르께티 S.79 폭격기 - 이후에도 폭격기 병단 전체전력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주력폭격기의 지위를 차지한다. ]

하지만 최신전투기 Bf 109를 투입한 독일공군의 활약으로 공화당의 전투기들이 하늘에서 내몰리고, 이탈리아 전투기들의 밀착호위를 받으며 스페인 도시에 대한 폭격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할수 있었던 이탈리아 폭격기병단은 이런 불길한 징조를 큰 성공속에 작은 손실정도로 치부하고 묻어 버렸다. I-16에게도 손쉽게 격추될 정도의 폭격기들에게 큰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더욱 고성능 기체들이 판을 치게될 서유럽과 아프리카의 전쟁터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은 불을 보든 뻔한 상황이었음에도...

결국, 1940년 북아프리카 전선의 개전이 임박한 상황에서 이탈리아 폭격기병단은 속으로 골병이들고 낡아빠진 폭격기들을 가지고 잘 훈련된 조종사들과 성능이 좋은 전투기를 가진 영국공군과의 일전에 들어가야 하는 운명에 쳐해 있었다.

* 준비없이 사지로 내몰리다

분명 이탈리아공군은 1920년대와 30년대초의 항공의 황금시기에는 최상의 시기를 구가하고 있었던 것에 틀림없다. 그들이 달성한 외형적인 성과는 이탈리아 항공기들의 우수성을 세계에 과시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들은 더 나아가지 못하고 여기에서 만족하는 우를 저질렀다.

[ 1939년 스페인 내전의 승전을 기념해서 개최된 에어쇼에 전시된 이탈리아 공군기들 - 신예기 MC.200, 피아뜨 G.50등의 모습도 보인다. 하지만 이미 이런 신예기들도 시대의 흐름에서 한참 뒤떨어져 있었다. ]

사실 1935년부터 시작된 이디오피아 침략전쟁에서부터 스페인내전까지 약 42개월간이나 지속된 전장터에서 이탈리아공군은 연일 계속된 전투임무를 수행했으며, 여러번 새롭게 도약할 찬스가 있었다. 만일 그때마다 냉철한 분석과 상황판단이 이루어졌고 이에따른 개선이 이루어졌다면 이탈리아공군은 분명히 더욱 강력한 공군으로 다시 태어날 기회를 가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잘못된 부분은 무시하고 돌아보려 하지 않았으며 잘된 것은 모두 자기탓으로 생각하는 오만과 자기만족에 사로잡혀 있었고 그러는 사이 아까운 시간은 돌이킬 수 없을정도로 흘러가 버렸다. 결국 스페인 내전을 통해 세계최강의 공군으로 도약하고 있었던 독일공군과 비교해 볼 때 이탈리아공군은 그야말로 엄청난 전쟁비용과 인력을 쏟아붇고도 아무것도 건지지 못하고 자만심만 키우는 커다란 실수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과 같은 상황이었다. 무솔리니의 야망과 함께 이미 출사표를 던져 버린 허수아비같은 이탈리아공군의 앞길에는 한치앞도 볼 수 없는 먹구름만이 짙게 깔려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