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항공전 3 부 - Desert Wings (북아프리카의 결전) (Fireworks over Taranto) |
This document was updated at 2003. 12. 19 * 커닝햄의 연못 2차대전이 발발하기전까지 전통적인 해군의 나라 영국은 세계최강의 함대를 운용하고 있었으며, 이 영국해군의 실력을 바탕으로 18세기부터 전세계에 수많은 식민지를 운영하면서 대영제국의 위세를 과시하고 있었다. 특히 대서양과 지중해는 영국해군의 안방과도 같은 곳이었다. 당시 영국해군 지중해함대 사령관 앤드류 커닝햄 제독은 지중해를 마치 영국영토의 일부처럼 생각하고 있었으며,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건설된 대규모의 해군기지를 거점으로 영국본토에서 이집트의 식민지에 이르는 지중해의 해상수송로를 확고하게 유지했다. 이런 최고의 전성기에 영국해군은 지중해를 가리켜 '커닝햄의 연못'이라고 부르고 있었을 정도였다.
그러나 2차대전이 발발하고 전유럽이 독일군의 군화아래 짓밟히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본토의 상황이 워낙 다급해지고 있었던데다가 지중해의 패권을 노리던 이탈리아가 이틈을 놓치지 않고 선전포고를 해오면서 자유롭게 지중해를 누비던 영국해군은 새로운 적수로 부상한 이탈리아 해군의 도전을 받게된 것이다. 영국에서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까지는 폭이 좁은 지중해를 종단해야 했으며 본토에서 출발한 영국의 상선들이나 호송선단들은 지브랄타 해협을 통과하면서부터 지중해의 중심부에 자리잡고있는 적대적인 이탈리아 반도의 앞바다를 지나가야만 이집트로 향할 수 있었다. 영국 선박들의 주요 경유지이던 몰타섬은 최일선의 전장이 되어 연일 이탈리아공군의 공습에 시달리고 있었으므로 몰타섬에 정박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으며, 이런 상황에서 이탈리아 함대까지 영국의 상선들과 호송선단을 공격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출격한다면 보급선의 운영에 상당한 지장을 초래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격적인 성품의 커닝햄 제독은 오히려 이 위기를 이용해 영국해군의 위용을 과시하고 싶어했다. 그는 이탈리아가 참전하기 전인 5월까지 영국해군이 지중해에서 누렸던 무제한의 자유를 되찾고 영국해군이 지중해의 패자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이탈리아 함대와 전면적인 결전을 벌일 생각이었던 것이다. * 푼타스틸로의 전초전 양측의 긴장감이 높아지던 1940년 7월 9일, 서로 자국의 호송선단을 호위하던 양측의 함대가 이탈리아 앞바다에서 우연히 마주쳐 우발적인 포격전이 벌어진적이 있었는데 이 소규모 전투가 양측 해군간에 벌어진 첫 교전이었으며 이탈리아측에서는 '푼타스틸로 전투'라고 명명하고 영국측은 '칼바리아 조우전'이라고 명명하게 되었다. 영국해군은 몰타섬을 향한 호송선단을 호위하기 위해서 항모 1척과 전함 3척, 순양함5척 및 16척의 구축함으로 이루어진 함대가 따라붙은 상태였으며 이탈리아 함대는 본토에서 리비아까지 호송선단을 호위하는 임무를 마친후 돌아가고 있었는데, 이 함대 세력은 전함 2척과 중순양함 6척 그리고 24척의 구축함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두 함대가 이탈리아 앞바다에서 우연히 서로 근접하게 되면서 외곽에 배치된 전함과 순양함들끼리 포격전이 벌어졌으나 서로 상대방에 대한 정보가 전혀없이 갑자기 발생한 우발적인 전투였기 때문에 양측 모두 대규모 접전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원거리에서 포격만 주고 받았다. 얼마간의 포격전후에 영국 항공모함의 함재기들이 날아오르기 시작하자 주눅이든 이탈리아 함대가 타란토쪽으로 방향을 돌려 도주하기 시작했으며, 본격적인 해전에 들어갈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영국해군도 이탈리아 공군기들의 출현을 우려해 더 이상의 교전을 중단하고 거의 동시에 방향을 반대로 돌려 모항인 알렉산드리아로 돌아갔다. 이 전투후에 이탈리아와 영국은 서로 상대방에게 큰 피해를 주었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영국측의 피해는 거의없었던 반면 이탈리아는 전함 1척과 순양한 1척이 포격에 명중되어 크고 작은 피해를 입어 몇 달간 수리가 필요했기 때문에 굳이 우열을 가리자면 영국측의 판정승이었다. 하지만 이 전투의 진정한 의의는 이탈리아 해군이 심리적으로 큰 충격을 받아 영국해군에 대해서 열등감과 피해의식에 사로잡히게 만들었다는 것인데, 실제 이탈리아 해군 수뇌부는 이 전투에서 영국함대의 출현에 깜짝놀라 가슴을 쓸어내렸다.
대부분의 해군 막료들은 만일 영국해군과의 전면전이 벌어지게되면 사실상 승산이 전혀 없다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이 전투에서 더 큰 피해가 없는 것을 다행이라고 여기게 되었으며 이후부터는 영국 함대가 이탈리아 근해에 매복한후 이탈리아 함대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그들의 함대를 근거지인 타란토항에 정박시켜 놓기만 했다. 화가난 무솔리니가 영국해군과 맞서싸워 지중해의 제해권을 탈취하라며 수없이 독려했지만 해군지휘부는 이핑계 저핑계를 대면서 외해로의 출격을 기피하고 있었으며 어떻게든지 함대를 온전하게 보존하려고 했다. 물론 이탈리아 육군이나 공군처럼 이탈리아해군의 상황도 아직은 대양으로 나가 영국해군과 맞서 싸울 만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장교들은 경험이 부족했고 전투함에 탑승한 승조원들의 훈련도 부족한 상태였으며 함내의 기계적인 결함도 자주 발생해서 심지어는 전함 주포의 터렛이 바닷물에 노출되어 심하게 녹이 슬어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 경우까지 속출했다. 따라서 이탈리아 해군은 명분상으로는 이런 기술적인 문제가 완전히 교정될 때까지는 대양으로나가 작전할 수 없다고 무솔리니에게 변명을 늘어놓고 있었다. * 안나오면 쳐들어간다 하지만 속사정이야 어떻든간에 이탈리아 해군이 타란토항에 틀어밖혀 움직이지 않더라도 그들의 존재는 영국해군에게는 상당히 껄끄러운 것이었다. 전함이나 순양전함과 같은 이탈리아해군의 주력함선들은 실제로 어떤 전투행동을 하지 않고 있다지만 그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영국해군의 행동에는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었다. 특히 이탈리아 함대는 최소한 6척의 전함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대구경 주포로 무장하고 있는 이탈리아 전함들의 존재는 외형적으로는 상당한 전력으로 보였으며 영국해군에게는 상당히 신경이 쓰이는 것이었다. 이 전함들이 타란토항에 정박하고 있는 한, 영국해군은 항상 이들의 근황을 알기위해 수시로 정찰활동을 해야했고 이들이 외해로 출격할 경우를 대비해서 항시 근처에 상당한 전력을 전개해 두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지중해함대의 전체전력이 이 임무에 투입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로 인해 영국해군의 활동이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은 분명했다.
허수아비같은 이탈리아해군쯤은 쉽게 쓸어 버릴 수 있다며 자신감이 넘치던 커닝햄 제독은 푼타스틸로의 조우전에서 이탈리아 함대를 추격해서 섬멸하지 못했던 것을 두고두고 아쉬워 했으며 눈엣가시같은 이탈리아 함대를 어떻게든지 지중해로 나오게 해서 전면적인 해전을 벌여 모두 침몰시키려고 했으나 그의 기대와달리 무솔리니는 기세등등하게 선전포고하면서 큰소리를 뻥뻥 쳐댄지 몇 달이 지나도록 그의 해군을 지중해로 내보낼 생각이 없는 것으로 보였다. 한편, 1940년 10월 이탈리아가 그리스를 침공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처칠은 커닝햄 제독에게 영국이 동맹국인 그리스를 보호하기 위해서 우리가 뭔가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한다고 이야기 했다. 결국 커닝햄은 이탈리아 함대를 공격하기로 결정하고 참모회의를 소집했는데, 이때 커닝햄휘하의 항공모함 전대를 이끌고 있던 리스터 소장은 참모회의에서 이탈리아 함대가 계속 타란토에 쳐밖혀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먼저 그들의 소굴로 쳐들어가 선제공격을 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어떤 묘안이 있느냐는 커닝햄의 질문에 그의 휘하에 있는 해군 항공대를 이용한 공습작전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대답을 했다. 리스터가 자신이 구상한 작전에대해 설명하자 커닝햄은 항공모함의 함재기들만으로 적함대를 공격한다는 생소한 작전에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밑져야 본전이니 즉시 비밀리에 작전을 입안하고 실행에 옮기라고 명령했다. * 작전명은 심판 타란토 공습작전을 제안한 리스터 소장은 사실 타란토항에 대한 공격작전을 이미 2년전부터 구상하고 있었다. 1938년, 당시 대령 계급으로 영국 항모 글로리어스의 함장에 부임했던 리스터는 이탈리아를 가상의 적국으로 설정해놓고 그들의 근거지인 타란토항을 함재기들을 이용해 공습한다는 가상의 작전을 세운후 조종사들을 훈련시켰던 것이다. 리스터는 만일 이탈리아와 전쟁이 벌어지는 경우 함대를 이끌고 타란토항까지 쳐들어가서 공격을 하는 것은 이탈리아 공군기들과 해안포대의 위협에 노출되는 위험을 감수해야하며 적함들이 눈치채고 대응할 충분한 시간이 있기 때문에 아군함대에게도 상당한 위험이 따를 수 밖에는 없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전함들이 전면에 나서기 보다는 항공모함을 이용해서 원거리에서 함재기를 투입해 기습하는 전술을 사용하면 아군의 손실도 적고 방심하고 있는 적에게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나름대로의 지론을 가지고 있었다. [ 타란토 기습의 주역 - 항공모함 HMS 일러스트리어스 ] 비록 그가 이끌던 항모 글로리어스가 1940년 6월초 노르웨이 해역에서 독일전함 샤른호스트와 그나이제나우의 공격을 받고 침몰해 버렸지만 리스터와 글로리어스의 생존 조종사들은 지중해 지역의 새로운 항모 일러스트리어스에 탑승하고 있었으며, 이제 리스터는 실제의 적이 되어버린 이탈리아 해군을 상대로 그가 오래전부터 꿈꾸어오던 대작전을 이끌게 된 것이다. 이 기습작전의 첫단계이자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한 정찰이었다. 타란토만은 고대 로마시대 이래 이탈리아가 자랑하는 천해의 해군기지로서 외항인 마르그란데와 내항인 마르피콜로로 나누어져 항만이 대단히 광대했다. 공습은 기습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야간에 결행될 예정이었기 때문에 어두운 밤하늘에서 목표물을 찾아 우왕좌왕하지 않으려면 이탈리아 해군의 전함들과 순양전함들이 아직도 타란토항에 있는지, 있다면 정확한 숫자와 위치는 어떻게 되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두 번째 문제는 이탈리아군도 타란토항의 외해에 정기적인 정찰비행을 실시하고 있었으므로 영국해군의 공격함대는 이탈리아 정찰기의 활동범위 밖에서 공격기들을 발진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거리는 소드피시 뇌격기의 최대 행동반경보다 약간 멀었기 때문에 3명의 승무원중 후방사수를 탑승시키지 않고 대신 보조연료탱크를 탑재하는 방법을 사용해 항속거리를 늘리는 방법을 써보기로 했다. [ 1500파운드 어뢰를 장착한 소드피시 - 망태기라는 별명에 걸맞지 않게 조종사들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 ] 세 번째 문제는 소드피시 뇌격기들의 속도가 무거운 어뢰를 장착한 경우에 시속 200km를 간신히 넘는 정도로 느리다는 것이었다. 만일 이들이 대낮에 타란토상공으로 진입한다면 대공포화의 십자포화망에 걸려들 것이 뻔하고 이탈리아 전투기들을 만나기라도 한다면 이들은 모두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는 처지가 될 것이므로, 어둠으로 인해서 목표물의 식별이 곤란하더라도 작전은 야간에 결행하기로 했다. 물론 야간 공습은 조종사들에게는 매우 어려운 것이 될테지만 자정 무렵에 공습을 시행한다면 대부분의 이탈리아 승조원들이 잠이들 무렵이기 때문에 기습을 극대화할 수 있는 효과도 있고 적의 사수들이 공격기들을 발견하기가 어려워 조준사격을 할 수가 없을 터였다. 그래서 조종사들은 무거운 어뢰를 탑재하고 연료까지 듬뿍 탑재한 기체를 좁은 항모에서 이륙시켜 불빛도 없는 야간에 정확하게 타란토까지 찾아가서 목표물을 공격한후 다시 돌아와야 했으므로 연일 야간 이착륙 훈련과 어뢰투하훈련, 항법 훈련이 실시되었다. 영국해군은 이 작전의 이름을 '심판 (judgement)'라고 명명했으며 작전개시일도 영국해군의 영원한 영웅인 넬슨제독을 기리기 위해서 트라팔가 해전 기념일인 10월 21일로 예정해놓고 있었다. 그런데 항모 일러스트리어스에 작은 화재가 발생하고 공격작전에 합세할 예정이던 항모 이글이 며칠전 몰타 근해에서 이탈리아 공군기의 공격을 받아 손상을 입으면서 작전이 불가능해져 수리를 위해 알렉산드리아로 돌아가야 했으므로, 작전일은 20일 뒤로 연기되어 1940년 11월 11일로 최종 결정되었다. (♬~ 불타는 하늘의 생일이네요..!) 항모 이글이 합류를 포기하고 회항하게 되자 여기에 탑재되었던 소드피시 5기가 공격작전에 합세하기위해서 즉시 이글을 떠나 일러스트리어스로 안착했으며 이제 이 작전은 항모 일러스트리어스가 전적으로 책임져야 했다. * 공격전야 작전이 시작되기 며칠전부터 영국공군은 이탈리아 항만지역에 대해서 정찰비행을 실시했다. 사실 이무렵 몰타에서 출발한 영국 정찰기들이 이탈리아 해안을 정찰하는 것은 정기적인 일이었기 때문에 이탈리아 해군은 영국 정찰기의 출현에 대해서도 늘상 있는 일이라며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게다가 이탈리아군은 레이더가 없었으므로 영국 정찰기가 시야에 나타날 때까지는 비상출격을 할 수 없었던데다가 공군 전투기들은 해군의 출격 요청이 있어도 대부분 영국 정찰기가 사라진뒤에 뒤늦게 날아와 빈하늘을 맴돌며 생색만 내는 경우가 많았다. 영국군의 썬더랜드 비행정은 연일 타란토 항에 출현했으며 이탈리아군의 대공포화나 전투기의 도전에도 개의치 않고 타란토의 상공을 고공으로 진입해 많은 사진을 촬영하면서 정확한 정보 수집에 열을 올렸다. [ 공습당일 타란토항에 정박중이던 전함 카보르, 29000톤급의 주력전함이었다. ] 여러차례 정찰을 시행한 결과 타란토항에는 전함 5척, 순양함 14척 및 구축함 27척이 정박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되었으며 타란토항의 여기저기에는 수많은 대공포진지들이 확인되었고 외항과 내항의 주요 지점에는 적기들의 진로를 방해하기 위해서 강철케이블에 매달린 방공기구들이 여기저기에 떠있었으며 어뢰방어그물도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사진들은 영국항모의 연락기에 의해 몰타로부터 급히 수송되어 리스터 제독휘하의 함대 지휘부로 전해졌다. 리스터 제독은 타란토항의 대공포화망과 방어시설들이 매우 견고할 것이기 때문에 작전에 큰 위험이 따를지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애초의 예상과 달리 이탈리아해군이 설치한 어뢰방어그물은 어뢰 공격에 필요한 공간을 제한시키기는 했으나 어느정도 형식적으로만 설치되었을 뿐 뇌격이 불가능할 정도로 촘촘하게 설치되지는 않아 저공으로 적함에 근접해서 어뢰를 투하하면 충분히 공격이 가능하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 45000톤급의 거함 리토리오, 30노트의 순항속도를 자랑하는 이탈리아 해군의 자랑이었다. ] 작전예정일인 1940년 11월 11일 오전에 마지막 확인 정찰비행이 행해졌는데, 정찰결과에 의하면 현재 타란토 항에는 외항인 마르그란데에 전함이 5척에서 6척으로 늘어나 있는 것으로 최종 확인되었으며 이탈리아 함대의 위치는 크게 변한 것이 없었다. 게다가 공격전날에 타란토항에 불어온 강한 바람으로 인해서 많은 수의 방공기구들이 가스가 새거나 케이블이 끊어지면서 날아가 버렸거나 지상으로 끌어내려 진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사진을 본 리스터 제독은 이것은 분명히 좋은 징조라고 생각했다. * 타란토 하늘의 불꽃놀이 공격 예정일인 11월 11일 오후 6시, 4척의 순양함과 4척의 구축함의 호위를 받으면서 항모 일러스트리어스는 함재기를 발함시키기로 예정된 타란토에서 275km떨어진 그리스의 세팔로니아 섬 근해에 도착했다. 공격측에게는 다행하게도 바다는 고요했으며 바람도 거의 없었고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에도 구름한점 없었다. 잠시 하늘을 쳐다보던 리스터 제독은 웬지 이번 작전이 성공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항모의 갑판에서 출격 예정인 조종사들에게 마지막 훈시를 했다. "오늘은 역사적인 날이 될 것이다. 제군들은 최선을 다해 임무를 수행하라. 단, 어뢰나 폭탄을 투하하면 결과를 확인하려고 뒤를 돌아보거나 선회하지 말고 즉시 기수를 돌려 귀환하도록!" 사실 이탈리아측에게도 이 기습 공격의 징후를 미리 알아차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는 있었다. 판텔리아와 리노싸의 이탈리아 해안 관측병들이 시칠리 해협을 통과해서 타란토쪽으로 북상하는 정체불명의 영국함대를 발견하고 이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보고를 했던 것이다. 그러나 해군정보부에서는 이런 중요한 정보를 입수하고도 이를 일상적인 영국해군의 기동훈련쯤으로 생각하고는 이들이 타란토를 향해 항진하는 것이 아니라 몰타로 향하는 함대라고 여겨 무시해 버렸던 것이다. [ 항진중인 일러스트리어스, 갑판에 주익을 접고 대기중인 4기의 소드피시가 보인다. ] 리스터 제독은 준비가 되는 즉시 뇌격기들을 발진시키라는 명령을 내렸으며 지중해의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는 가운데 일러스트리어스 함상은 승조원들이 공격준비로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준비가 끝나자 일러스트리어스에 탑재된 총 21기의 소드피시중 1파 공격대인 12기의 소드피시 뇌격기들이 한 대씩 갑판을 떠나 상공으로 날아올랐다. 이 공격편대중 6기는 타란토의 외항인 마르그란데에 정박중인 이탈리아의 전함을 해치우기위해 1500파운드짜리 어뢰를 장착하고 있었으며 나머지 6기의 소드피시들은 내항인 마르피콜로의 부두에 계류중인 순양함이나 구축함, 항구의 주요시설을 공격할 예정이었다. 이중 2기는 작전지역 상공에서 동료기들이 목표물을 확인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서 조명탄과 폭탄을 혼합해서 장착했고 나머지 4기는 일반폭탄을 장착한 상태였다. 마지막 12번째 소드피시가 일러스트리어스의 갑판을 박차고 날아오른 시간은 오후 9시였으며 이로부터 25분뒤에는 소드피시 9기로 이루어진 2파 공격대가 후속 공격을 위해서 타란토로 출격할 예정이었다.
1파 공격대는 시속 160km정도의 느린 순항속도로 편대를 구성하고 점점 어두워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하늘을 헤치면서 타란토로 향했다. 개방식 조종석과 고정식 강착장치를 가진 소드피시의 편대는 마치 1차대전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듯 보였다. 그런데 이중 1기가 순항도중 어둠속에서 아군기들을 잃어 버리고 당황한 나머지 전속력으로 타란토항으로 날아갔다. 그런데 이 소드피시는 혼자서 쳐졌다고 생각하고 너무 서두른 덕분에 동료기들보다 15분이나 먼저 타란토항에 도달하게 되었고, 초조하게 아군기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면서 항의 외곽을 선회했다. 그러나 이때 타란토외곽의 대공포 사수들이 이 소드피시의 비행음을 듣고는 하늘로 대공포를 쏘아올리기 시작했다. 잠시후 오후 11시가 되자 동료기들이 타란토항에 다다랐지만 이미 타란토의 상공에는 노랗고 빨간색의 대공포화가 불꽃놀이를 하는 것 처럼 솟아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조종사들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즉시 공격을 시작하기로 했으며 미리 도착한 소드피시도 편대로 합류했다. 공격의 첫단계로 조명탄을 장비한 2기의 소드피시가 먼저 편대를 이탈한후 대공포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방공기구 사이를 날아 타란토 항을 가로질러 돌진해 들어갔다. 이들은 서쪽에서 진입해오는 동료기들이 목표를 뚜렸하게 식별할 수 있도록 항만의 동쪽에 조명탄을 투하했으며 조명탄이 투하되자마자 항만의 유류저장소를 급강하 폭격하고는 이탈했는데, 이 폭탄들이 정확하게 명중해서 유류저장탱크에서 큰 화재가 발생했다. 잠시후 밝은 빛을 발하면서 서서히 떨어져가는 조명탄과 유류저장고의 화재로 인한 불빛이 항내를 비추면서 나머지 공격기의 조종사들은 타란토항의 모든 전투함들의 윤곽을 뚜렸하게 볼 수 있었다. [ 타란토 기습작전의 전개도 - 시간차를 두고 공격해온 1파 공격대와 2파 공격대의 진입방향 및 공격목표를잘 보여준다. 붉은색으로 표시된 함선들이 이날 격침되거나 대파된 전함과 순양함들이다. ] 유류저장고의 엄청난 폭발과 함께 본격적인 공습이 시작되자 이탈리아군도 대공포화를 더욱 격렬하게 난사하며 대응해왔다. 타란토의 밤하늘은 빨간색과 노란색의 섬광을 휘날리는 대공포탄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사방으로 발사되었다. 조명탄에 윤곽이 들어난 전함들이 뚜렷하게 보이면서 목표가 확실해지자 이번에는 어뢰를 장착한 소드피시들이 저공으로 돌진해 들어왔다. 이들은 먼저 외항인 마르그란데에 정박중인 전함들을 노리고 있었으며 외항에 도달하자마자 3기씩의 2개편대로 나누어져 전함들을 공격했다. 조종사들은 사방에서 날아오는 대공포화속을 헤치면서 수면 10미터의 초저공으로 강하한후 주공격목표인 전함들에게 최대한 근접해서 어뢰를 투하했다. 어뢰를 투하한 뇌격기들은 즉시 급선회하면서 대공포화를 피하려고 했으며 전속력으로 방파제를 넘어 외해쪽으로 이탈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방파제를 지나는 순간 조종사들은 천지를 뒤흔드는 커다란 폭발음이 연속으로 들리는 가운데 등뒤쪽에서 노란 불꽃이 크게 번쩍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바로 그들이 투하한 어뢰가 전함에 정확히 명중한 것이었다. [ 불타는 타란토항과 소드피시, 홈지기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항공아티스트 로버트 테일러의 작품 ] 한편 내항인 마르피콜로에 정박하고 있던 이탈리아 순양함과 구축함의 승조원들은 이 소동에 크게 놀라 허겁지겁 뛰쳐나와 모든 대공포화를 사방으로 쏴대고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승조원들은 영국공격기들이 어디에서 날아오고 있는지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그저 아무렇게나 하늘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며 난사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오히려 이 대공포화의 파편들이 항내 여기저기 떨어지면서 아군의 함선들이나 상선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었다. 심지어 어떤 사수들은 그들이 설치한 방공 기구를 명중시켜서 기구가 불길에 휩쌓이면서 해상으로 곤두박질치는 장면까지 연출했다. 그야말로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이 혼란상황속에서도 항내로 진입한 모든 소드피시들은 예정된 목표에 어뢰나 폭탄을 연속으로 명중시키는데 성공했으며 이중 1기는 연기가 심해 식별이 곤란하게 되자 해변에 있는 수상기기지를 폭격해 명중시켜 격납고에 큰 화재를 발생시키기도 했다.
1파 공격대가 이탈하기 시작한지 몇 분후에 이번에는 2파 공격대가 타란토의 북쪽에서 진입해 들어왔다. 2파 공격은 애초에 9기의 소드피시가 출격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이중 한 대가 발진도중 사고를 일으켜 긴급수리를 시행후 30분 늦게 출발했기 때문에 8기가 먼저 타란토 상공에 도달했다. 이들은 타란토항에서 100km 떨어진 지점에 접근했을 때부터 이미 타란토에서 발생한 불 빛을 볼 수 있었을 정도였다. 2파 공격대가 항내로 돌입한 시간은 자정무렵이었며 어뢰를 장착한 5기의 소드피시들은 이번에도 외항의 전함을 노리고 저공으로 날아들었다. 조명탄과 폭탄을 장착한 나머지 기체들은 내항 부두쪽의 순양함과 구축함들을 노렸다. 이번에는 타란토항의 모든 대공포화뿐아니라 전함, 순양함 그리고 구축함들에서도 어마 어마한 대공포화가 발사되어 하늘로 솟아올라왔다. 그러나 이번에도 사격은 아무렇게나 쏘아올려지는 것으로 보였으며 오히려 항내의 시설이나 상선에 명중되는 경우도 있었고, 하늘에서 폭발한 대공포 파편이 여기저기 떨어지면서 아군에게 더 큰 피해를 주기도 했다. 심지어 한 소드피시의 조종사는 전함에서 발사된 대공포탄들이 내항으로 날아가 순양함에 명중되는 광경을 보았다고 보고했을 정도였다. 발함사고로 인해 30분 늦게 출발해서 제일 나중에 상공에 도착한 마지막 공격기는 타란토항이 여기저기서 큰 폭발과 함께 눈부실 정도의 화염에 휩쌓인 가운데 우군기들이 일제히 이탈하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하지만 이 소드피시의 조종사는 엄청난 대공포화에도 불구하고 단독으로 내항에 돌입해서 순양함에 마지막 폭탄을 투하한후 성공적으로 이탈했으며 혼자서 어둠을 헤치고 전속력으로 날아 먼저 돌아가고 있었던 아군편대의 후미에 합류하는데 성공했다.
불가능할 것 같았던 기습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소드피시의 승무원들은 작전이 성공했다는 기쁨에 들떠 있었지만 그들에게는 칠흑같은 어둠을 헤치고 다시 항모에 착륙해야하는 어려운 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수많은 야간 이착함 훈력덕분에 함대 상공으로 돌아온 모든 소드피시 뇌격기들은 유도등을 따라 항모 일러스트리어스의 갑판으로 내려왔으며 한 대씩 성공적으로 착륙했다. 이들이 모두 착륙한 시간은 새벽 3시였으며 6시간에 걸친 긴 작전을 마친 조종사들은 피로에 지친 몸을 조종석에서 끌어내린후 환호하는 승조원들과 기쁨을 함께 했다. 공격시간내내 초조하게 서성거리다가 함교에서 소드피시들이 착함하는 광경을 지켜보던 리스터 제독은 귀환하는 기체들의 수를 하나 하나 세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2기의 공격기들이 타란토에서 돌아오지 못한 것을 알게되었다. 제 1파에서 1기, 그리고 2파에서 1기의 뇌격기가 타란토 상공에서 대공포화에 격추되었으며 1파 공격대의 리더였던 윌리엄슨 대위를 포함한 4명의 승무원들이 귀환하지 못한 것이다. (2명은 전사, 2명은 포로가 됨) 하지만 총 21기의 투입기중에서 2기의 손실은 10%도 안되는 것으로서 애초 리스터가 예상하고 있었던 것보다 훨씬 적은 손실이었다. 리스터는 들떠있는 조종사들의 보고를 듣고는 크게 기뻐하며 그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 폭풍이 지나간후 다음날 해가 떠오르자 몰타섬에서 출발한 영국정찰기가 다시 타란토상공에 나타났고, 넋이빠진 이탈리아군이 제대로 대공포도 쏘아올리지 못하는 동안 타란토 항의 상공을 놀리듯이 유유히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어댔다. 이 정찰기의 조종사는 아직도 항내에는 곳곳에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으며 최소 3척의 전함이 격침된 것으로 보인다고 보고했다. [ 공습 다음날의 정찰사진, 외항인 마르그란데의 전함들에서 불길과 연기가 아직도 피어오르고 있다. ] 이날의 정찰사진이 현상되어 나오자 전과를 분석한 정보팀은 커닝햄 제독에게 놀랄 만한 내용이 담긴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 보고서에는 전함 3척의 격침되거나 대파되어 바닥에 주저앉아 버린 것이 확실하며 2척의 지원함이 침몰했고 순양함 2척도 대파되어 한쪽으로 크게 기울어 있다는 내용과 함께 부두의 유류저장소와 수상기 기지도 크게 파손되어 사용이 불가능하게 되 버린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것은 사실상 항공모함을 동원해 적항을 기습한다는 생전 처음보는 작전의 효율성에 대해서 어느정도 의구심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밑져야 본전식으로 작전을 승인했던 커닝햄에게 분명히 놀라운 전과였다. 불과 21기의 구식 복엽기들이 하룻밤 사이에 이탈리아해군이 자랑하는 전함의 절반을 해치워 버리고 그들의 함대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한 것이다. 후에 알려진 바에 따르면 커닝햄 제독은 속으로는 좋아서 어쩔줄 모랐으면서도 처칠수상에게 보내는 공식 작전보고 문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아 엄살을 떨었다고 한다. '이번 공습에서 이탈리아 함대의 절반을 대파하기는 했으나 아직 그들은 강력한 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큰 승전을 거둔 항모 일러스트리어스와 호위함들이 의기양양하게 함대로 돌아오자 커닝햄 제독은 해군항공대의 전공을 격찬하면서 이제 바다에도 창공의 시대가 도래했으며 어제밤이후로 이탈리아해군은 반신불수가 되어 버렸다고 선언했다. 알렉산드리아는 축제분위기에 휩쌓였으며 그날 저녁 축하연이 열리자, 커닝햄 제독은 리스터제독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크게 웃으며 농담을 한마디 던졌다. "혼자서 너무 크게 한탕한거 아닌가? 이제 우리 전함의 함장들은 심심하게 되어버렸네..." 반면 이탈리아해군의 상황은 모든 지휘부와 말단의 수병들까지 그야말로 귀신에라도 홀린 것 같은 지경이었다. 어제까지만해도 대구경 주포의 위용을 과시하면서 위풍당당하게 타란토의 외항을 지키고 있었던 그들의 전함들이 하룻밤사이에 절반이나 격침 또는 대파된 것이다. 오전이 되자 그들의 시야에는 흉한 몰골로 검은 연기를 뿜어 올리는 전함 (리토리오)이 있는가 하면 이미 항내에 주저앉아 주포와 함교만 물밖으로 내놓은 전함 (카보르)도 있었고, 어떤 전함 (둘리오)은 어뢰에 명중된 부위에서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침수가 진행되어 점점 기울어가고 있었다. 게다가 내향의 순양함들도 큰 피해를 입어 아직도 불길과 검은 연기에 휩쌓여 있었으며 항내의 수리시설과 연료저장고도 대파되었던 것이다. 타란토항의 방어태세는 완벽하다면서 큰소리를 쳐대던 해군 지휘부의 장성들도 모두들 넋이 빠진 표정으로 이 참상을 지켜보고 있었다. [ 어뢰에 명중, 침수되어 바닥에 주저앉아 주포와 함교만 간신히 물밖으로 내놓은 전함 카보르 ] 이탈리아해군은 지중해로 나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어처구니 없게도 가장 안전하다고 믿었던 자기 안방에서 치명적인 타격을 받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타란토의 비극은 이탈리아 해군에게는 KO펀치나 다름없는 막대한 손실이었으며 이제 이탈리아 해군은 병신이 되어 버렸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이 소식은 순식간에 전세계로 퍼졌으며 전 이탈리아군의 사기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타란토의 비극은 한달후인 12월초부터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될 영국군의 대 반격작전에서 맥없이 무너지게될 이탈리아군의 운명을 예고하는 것이나 다름 없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 침수되어 점점 기울기 시작하는 전함 둘리오 ]
[ 폭탄에 맞아 불길에 휩쌓인 항내 수리시설 ] * 진주만의 청사진 영국해군 함재기들에 의한 타란토 기습공격작전은 항공모함 함재기들에 의한 세계최초의 결정적인 전투였으며 해군 항공전력의 잠재력을 실전에서 과시한 혁신적인 전투였다. 이후 이 타란토 기습공격의 결과에 대해서는 지구 반대편의 태평양에서 서로 기싸움을 하고 있었던 대양해군의 나라 일본과 미국이 모두 관심을 보였다. 미해군은 우호적이었던 영국해군이 공습작전에 대한 자료를 자세히 제공해주었지만 이 작전의 결과는 그 상대가 이탈리아해군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며 비웃었고, 이탈리아해군의 무능함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라면서 단지 흥미거리이상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다. 반면 타란토 기습공격에 큰 충격을 받고 관심을 기울인은 쪽은 오히려 일본측으로서 겐다 미노루와 같은 해군무관들을 동맹국인 이탈리아의 타란토 현지로 급히 파견해 공습에대한 자세한 상황을 분석하도록 하면서 냉철하게 이 전투를 연구하도록 했다. 그리고 얼마뒤 일본해군은 타란토의 대성공을 통해서 강력한 미해군을 상대로 초전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그들이 타란토 기습작전을 청사진으로해서 마음속에 품게된 두 번째의 타란토는 바로 미태평양함대의 심장부인 하와이의 진주만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