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전선의 항공전

Part 4 : 얼어붙은 동부전선

(Strange & unstable peace)

This document was updated at 2006. 8. 1

foxmouse: 북아프리카 항공전을 마친후 오랜시간을 망설인 끝에 드디어 독소전의 항공전을 주제로 새롭게 항공전사를 진행해보려고 합니다. 사실 너무나 광대한 내용을 가진 인류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전쟁인 독소전... 거기에다가 그동안 그 중요성에 비해서 너무나 알려진 것이 적었던 독소전의 항공전을 다룬 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너무나 무모해보이기까지 합니다. 홈지기의 능력을 넘어서는 것이 확실해보이는 작업이 아닐까 하네요. 걱정이 되는 것은 내용이 너무 수박 겉핧기 처럼 진행되지는 않을까.. 하는 점과 감당하지 못하고 중도에 연재를 포기하게 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는 것입니다. 그래도 1999년 처음으로 불타는 하늘이 문을 열었을때부터 언젠가는 꼭 다루어 보고 싶다고 생각해오던 동부전선의 하늘을 날아보려고 하니 웬지 기분이 좋고 가슴이 설레이는 것만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연재가 실망스럽게 전개되더라도 이해해주시기 바라며, 혹시 내용이 사실과 다르게 기술되는 부분이 있다면 언제든지 날카롭게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시작하면서

1941년부터 4년간 독일과 소련사이에 벌어졌던 두 나라의 생존을 건 전쟁 '독소전'은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전쟁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독일측에서는 자국의 동쪽에서 벌어진 전쟁이므로 '동부전선'이라고 부르지만, 소련에서는 이 전쟁을 가리켜 '대애국전쟁 (Great patriotic war)'이라고 부르는데 주요 전장이던 소련의 광대한 영토로 인해 전쟁중에 최장 2400km에 달하는 어마어마하게 긴 전선이 형성되었을 정도였다. 이 혹독한 전쟁기간동안 두나라의 군대는 인간성을 상실하게되며 인간으로서의 이성을 잃고 광기에 사로잡혀 서로간에 무참한 대 살육과 학살을 서슴지 않았다. 이 4년간의 전쟁동안 양측의 사망자가 수천만에 달한다고 하니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생명들이 비극적으로 사라져갔던 것이다.

사실 독소전이야말로 2차 세계대전 전체를 통털어도 80% 이상의 비중을 차지한다고 주장하는 역사가들이 있을 정도이며 독소전의 엄청난 전장에 비하면 2차대전의 다른 전장들은 조연급에 지나지 않는다고 평해도 좋을 정도로 그야말로 상상을 넘어서는 규모의 전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차대전이 끝난후부터 1990년 소련이 붕괴되고 연방이 해체 될 때까지의 45년의 세월동안 소련과 미국의 냉전 기류로 인해 미국의 영향을 받았던 대부분의 서방 사료들이 독소전의 비중을 축소하면서 소련군의 활약(?)을 평가절하하는 경우가 많았다. 더구나 소련의 지원을 받은 북한의 도발로 인해 민족의 역사에 돌이킬 수 없는 처절한 피해를 입게된 우리나라에서는 더더욱 독소전 자체를 언급하는 것이 금기시되어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소련의 붕괴로 인한 냉전의 종식 이후 독소전에 대한 많은 자료들이 공개되었으며 서방에서도 독소전에 대한 연구가 새롭게 시작되게 되었다.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 독소전을 비중있게 다룬 서적들이 출간되고 있으니 이는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독소전의 전반적인 양상은 역사상 또다시 벌어지기 힘든 두나라의 강력한 지상군이 벌였던 처절한 대결이 주된 것이었다. 따라서 서부 유럽이나 태평양과는 달리 독소전에서의 항공전력은 독자적으로 운용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지상군의 작전을 원호하고 지원하는 데에 전적으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번의 연재에서는 근본적으로 지상전이었던 독소전의 진행상황을 중심으로 동토의 하늘을 배경을 벌어진 치열한 항공전에 대해 간단하게나마 알아보는 기회를 가지고자 한다.

이상한 밀월관계

1차대전이 끝난후 몇 년이 지난 1920년대, 독일과 소련은 나름대로의 이유로 인해 이상한 밀월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었다. 물론 이것은 두나라 모두 서로간의 필요성에 의한 것이었다. 제정러시아가 붕괴되면서 러시아를 격동의 시기로 몰아넣었던 혁명과 내전의 소용돌이에서 이제 막 벗어난 새로운 공산주의 체제의 연방국가 소련은 연방을 유지하고 주변국들의 위협에서 벗어나기위해 보다 강력한 군사력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농업국이었던 소련의 체질이 한순간에 바뀔 수는 없었다. 1차대전의 결과로 볼 때 소련은 공업생산력으로나 군사적으로나 서유럽 국가들에 비해 한수 아래의 후진국이라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났기 때문에 서유럽의 기술력을 하루라도 빨리 전수받는데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그러나 공산주의 체제가된 소련에 대해서 1차대전의 승전국인 영국, 프랑스, 미국등의 연합국들은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었기 때문에 소련이 필요로하는 신기술의 전수는 커녕 한물간 구식 항공기나 무기들을 판매하는데에도 매우 인색하게 굴고 있었다.

따라서 소련은 새로운 파트너를 물색하게되는데 그것이 바로 독일이었다. 독일은 1차대전의 패전국으로서 도를 지나칠정도로 가혹한 불평등 조약인 베르사이유 조약에 의해 신무기의 연구, 개발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었다. 소련의 입장에서는 비록 1차대전의 패전국이지만 서유럽 최고 수준의 군사강국으로서 연합국과 대등한 전투력을 과시했었던 독일이 보유한 첨단 군사기술과 전술개념을 전수받을 수 만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한편, 독일은 바르샤바조약이후 모든 것을 속박하는 연합국, 특히 영불의 집중적인 감시망을 피해서 은밀하게 군사력을 양성할 비밀기지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작은 나라들이 오밀조밀하게 밀집해있는 서부 유럽에서는 영불의 감시망을 피할 방법이 없었다. 결국 독일의 입장에서도 동부 유럽의 광활한 영토를 소유하고 있는 소련의 협럭만 얻을 수 있다면 모든 것을 타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에 독일은 소련과의 협력을 통해 은밀하게 미래의 독일공군을 이루게될 될 인적, 물적자원을 양성하는데 있어서 소련이 비밀리에 제공한 지역을 이용하여 세력을 키워나간다는 계획을 세웠으며, 소련이 이러한 제안을 혼쾌히 수락하고 모스크바로부터 300km 남쪽에 위치한 리페쯔크 지역을 독일의 훈련기지로 비밀리에 제공함에따라 계획을 순조롭게 진행해 나갈 수 있었다.

[ 비밀리에 리페쯔크에 파견된 독일 조종사들이 전술 훈련에 들어가기전에 격려를 받고 있다. ]

물론 소련은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서 독일로부터 서부유럽의 첨단 군사기술 - 특히 항공기술을 넘겨받기로 되어 있었으며, 실제로 독일의 항공 훈련소가 들어선 리페쯔크 지역에 많은 군사 요원들을 파견하여 독일의 신기술과 전술을 놓치지 않고 철저하게 관찰, 분석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이 항공 훈련소에서는 소련인 훈련생들을 일정 인원 포함시켜 독일 조종사들과 같은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한다는 협약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소련의 엘리트 조종사들은 이곳에서 첨단 항공전술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었던 것이다.

처음 군사요원들이 파견된1925년부터 히틀러가 독일의 새로운 통치자가 되는 1933년까지 이 리페쯔크 지역에서는 장래의 독일공군을 이끌게될 핵심 인력이 양성되었던 것이다. 훗날 이들은 독일공군의 핵심멤버가 되어 전유럽을 공포에 몰아넣게 되고 특히 독소전의 개전이후에는 일방적으로 소련공군을 두들겨 결국 붕괴직전까지 몰아넣게 되니, 결국 동토의 붉은 곰 소련은 그 뱃속에서 악마의 씨았을 숨겨주고 키워주는 셈이었다.

[ 리페쯔크에서 전투기 조종사 양성에 사용된 포커 D.XI 전투기 ]

한편, 민간 차원의 항공기술의 교류도 활발해져서 1923년에는 융커스사의 기술진들이 소련의 적극적인 인적, 물적 지원을 받아 모스크바 근교에 항공기 공장을 설립하게 되었다. 사실 말이 민간차원의 교류였지 융커스사는 영불의 감시망이 미치지 않는 소련땅에서 실제로 장래 독일공군의 항공기로 사용될 군용기를 개발하고 생산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물론 소련측에서는 융커스사에 토지와 노동력을 헐값으로 제공하는 대신에 융커스사가 보유한 선진 항공기술을 이전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훗날 우수한 소련제 군용기를 개발하게되는 투폴레프 같은 기술자들은 융커스사의 항공기 공장에 파견되어 기술 습득에 온힘을 기울였으며, 특히 그는 독일이 보유한 최첨단 기술의 하나인 전금속제 항공기 제작기술을 직접 눈으로 보고 큰 충격을 받았으며 이 기술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소련의 항공기 설계사들이 짧은 기간이나마 독일의 선진 기술을 접하게된 것이 훗날 소련공군의 주축을 이루게되는 우수한 항공기들을 개발하는 데에 밑거름이 되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이때까지는 누구도 이 두나라가 머지 않은 미래에 상대방을 지구상에서 말살시키려고 하는 철천지 원수가 되리라는 것을 알지는 못했지만, 여러모로 볼 때 근본적으로 친해질 수 없는 두 나라의 이런 이상한 밀월관계가 오래 유지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누가 보아도 분명했다.

양측의 밀월관계는 1930년대 들어서면서 점점 서로에 대한 필요성이 줄어들 게 되면서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독일은 오로지 자국의 신기술 이전만을 집요하게 노리는 소련을 경계하게 되었으며 소련도 독일이 기술의 이전에는 인색하게 굴면서 독일제 항공기의 판매량을 늘려 이득을 보려고 하는데 불쾌감을 나타냈다. 이후 소련은 독일 일변도의 신기술 습득과정에서 벗어나 미국, 영국등의 다른 선진국과도 교류를 증진시키려 했다. 이로서 이 두나라의 밀월관계는 몇년만에 깨지고 말았지만 이 기간동안 독일과 소련은 서로간에 나름대로 만족할 만한 이득을 얻었다는 것 만은 틀림 없었다.

독재자 VS 독재자

신흥 독일의 새로운 지도자가 된 히틀러는 1930년대 초부터 그의 저서인 '나의 투쟁 (Mein Kampf)'를 통해 지구상에서 가장 고결한 독일민족이 마땅히 누려야할 생존권 - Lebensraum -을 주장했고, 이런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서 반드시 정복해야 할 땅이 소련이 차지하고 있는 동쪽의 대초원지대라는 것을 은근히 암시하고 있었다.

[ 소련의 광대하고 비옥한 토지를 호시탐탐 넘보던 독일의 독재자 히틀러 ]

그는 고결한 독일민족만이 살아야할 가치가 있는 이 비옥한 토지가 인종적으로 열등한 슬라브족에게 넘어갔다는 사실에 공공연하게 분노를 터트리곤 했다. 게다가 히틀러는 소련의 정치체제 (공산주의)와 그와는 전혀다른 스타일의 독재자 스탈린을 지독하게 혐오하고 있었다. 그는 군 수뇌부의 모임이 있을 때마다 '지금은 그냥 두고보겠지만 훗날 우리 독일이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게되면 동쪽의 비옥한 토지를 소련으로부터 빼았아 반드시 독일민족의 것으로 만들겠다.'라는 호언장담을 수시로 늘어놓았다.

1930년대 초만해도 독일은 패전의 굴레에서 벗어나 새롭게 군사강국이 되기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었기 때문에 독일군의 군사력 재건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었던 독일군부내의 장성들은 새롭게 지도자가 된 독재자 히틀러가 얼마나 소련정복에 집착하고 있었으며, 훗날 그가 정말로 이 호언장담을 실행에 옮기게 되리라는 것을 짐작하지는 못했다.

한편, 소련에서는 히틀러에 못지 않은 지독한 독재자 요제프 스탈린이 그 위세를 떨쳤다. 그는 정치에 입문한이후 거세게 불어닥친 혁명의 소용돌이속에서 나름대로의 살아남는 법을 확실하게 터득했다. 스탈린은 수많은 정적들을 온갖 방법을 동원해 제거해가면서 소련의 모든 정치적 영향력을 장악하고 있었다. 1920년대 소련공산당의 지배권을 둘러싼 정치싸움에서 스탈린은 그와 의견을 달리하는 모든 정적들을 비정하고 무자비한 방법으로 함정에 빠트려 죽여없앴다.

원래 그의 본명은 비사리오노비치 주가슈빌리였지만 열성적인 공산주의자가 된후 그는 민중에게 강한 이미지를 각인시키기 위해 '강철같은 사나이'라는 의미의 '스탈린'이라는 가명을 사용했다. 그의 정치적인 야만성과 비열함은 한때 그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혁명동지였던 레닌조차도 질리게 만들었다. 레닌은 스탈린의 비열하고 무자비한 권모술수에 경악을 금치 못했으며 그를 '냉혹하고 야만스런 그루지아의 폭력배'라며 비난했던 것이다.

[ 비정한 소련의 독재자 요제프 스탈린 ]

하지만 1924년 소련 공산주의의 위대한 지도자 레닌이 사망하자 스탈린은 주도권 싸움에서 모든 정적들을 제치고 앞서나갔다. 스탈린은 그와 경쟁하던 정적들을 하나하나 잔혹하게 제거하면서 대권을 장악했으며 이후에는 지배력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기 위해서 무자비한 숙청작업에 착수했다. 이 숙청의 해일속에서 스탈린은 정적뿐 아니라 그가 정적이라고 추정했던 사람들 (이중에는 그와 절친했던 혁명동지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까지도 온갖 방법으로 억지스런 죄를 덮어씌웠고 그 즉시 숙청했던 것이다. 이후 30년에 이르는 스탈린의 집권기간동안에 그에 의해 숙청당한 사람은 어림잡아 수백만에 이를 정도라고 하니 보통사람들은 그가 얼마나 포악한 독재자였는지 짐작할 수 조차 없었다.

하지만 권모술수에 능한 스탈린은 소련의 대중들 사이에서는 비교적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소련 민중들은 투박하고 서민스러운 외모와 서투른 말씨로 서민적인 냄새를 풍기는 이 새로운 지도자가 그동안 그들을 착취하던 귀족들과 지식인들을 권력의 자리에서 몰아내고 숙청하는 것을 압도적으로지지했고 심지어는 그를 우상으로 숭배하기도 했던 것이다.

[ 스탈린을 소련민중의 지도자로 우상화하는 포스터 ]

이렇듯 근본적으로 친해질 수 없는 두 독재자는 은근히 서로를 비하하고 무시했다. 하지만 몇 년뒤 두 독재자간에 또하나의 놀랄 만한 밀월관계가 형성되는데 그것은 바로 히틀러와 스탈린이 서로의 필요에 의해 1939년 상호 불가침조약에 서명했다는 점이었다. 두 독재자는 서로를 매우 싫어하기는 했지만 서유럽과 동유럽의 지배권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내키지는 않더라도 충돌을 자제해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불가침 조약의 이면에서는 주변국가들에 대한 지배권을 나누어 가지기 위한 밀약이 오고갔으며, 두 독재자는 서로 자신이야말로 세계 최고의 정복자가 되리라는 꿈을 꾸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