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전선의 항공전

Part 4 : 얼어붙은 동부전선

◇ Act 2. 태동하는 붉은 별 ◇

(Birth of Red Star)

This document was updated at 2006. 9. 5

인류역사상 가장 커다란 참화였던 2차 세계대전의 실질적인 주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련군, 특히 붉은 군대의 공군이 막강한 전력을 자랑했던 독일군과의 처절한 전쟁에서 어떤 역할을 해냈는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다. 독소전에서의 소련군이라고 하면 독일군 진지를 향해 총검을 들고 무모할 정도의 인해전술로 돌격해 들어가는 소련육군의 이미지로 인해, 소련공군을 단지 소련육군에 딸린 지원부대로 격하하여 평가하는 역사가들도 있으며 소련공군이 한 일이라고는 단지 공중포대로서의 역할만을 했을 뿐이라는 평가를 내리는 역사가도 있다. 그러나 이런 평가와는 달리 독소전에서의 소련공군은 막강한 독일공군과 맞서싸워 나름대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으며 지상전의 전세에도 분명하게 영향을 미쳤다. 소련하늘의 붉은 별들은 그 존재의 가치를 충분히 입증했으며 독일군을 몰아내고 조국을 수호하는데 있어서 동토의 하늘에서 산화한 소련 조종사들의 피와 땀의 가치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었다.

냉전이 종식된지 20년이 다 되어가는 이 시점에서 소련공군의 탄생 배경과 서유럽에서 시작된 2차 세계대전이 동토로 확대되기 전까지 러시아에서 소련으로 이어지는 혼란속에서도 나름대로의 명맥을 유지했던 소련 항공전력의 발전 상황을 살펴보는 것은 독소전의 항공전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소비에트 연방의 등장

1차 세계대전이 끝난후 러시아를 뒤흔든 볼세비키 혁명을 통한 공산주의 국가 소련 (소비에트 연방)의 탄생은 전세계의 질서에 큰 변동을 가져왔다. 영국, 프랑스, 미국과 같은 세계의 열강들은 기존에는 상상도 할수없었던 전혀 다른 체제의 새로운 국가 (공산국가)가 탄생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게 되었고, 결국 많은 서구 열강들이 러시아 내전에 자국의 군대를 의용군 형식으로 파견하여 이러한 움직임을 저지하려는 시도까지 했던 것이다. 그러나 동토에 불어닦친 붉은 혁명의 열풍은 서구 열강의 방해와 견제에도 불구하고 소련 공산당에게 최종적인 승리를 안겨주었다. 결국 내전은 종식되었으며 소련민중들이 만든 사회주의의 나라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은 무려 15개의 연방국을 그 일원으로 포함하면서 붉은 깃발을 휘날리며 세계사에 당당한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소련은 비록 무력으로 건설된 연방국가였지만 15개의 연방국들이 소유한 모든 영토를 합치면 전세계의 약 1/7이나 되는 광활한 국토를 가지는 거대한 국가였으니, 광활한 국토와 많은 인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소련의 잠재적인 능력은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기존의 질서가 깨지는 것을 두려워했던 서구열강들은 전혀 새로운 체제를 가진 거대 국가 소비에트 연방의 탄생을 매우 불안한 눈길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들은 이 새로운 변화를 매우 위협적인 것으로 평가했으며 혹시나 소련의 공산혁명이 자국에도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지 은근히 두려워했다. 결국 소련은 주변국들로부터 심각할 정도로 따돌림을 당하게 되었으며 특히 신기술과 군사부문에서의 교류에서는 고립에 가까운 냉대를 받게된 것이다.

레닌에 이어 정권을 잡은 스탈린은 이런 주변국가들의 견제를 피하고 소련의 노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주적인 경제력과 군사력을 키우는 것이 가장 큰 선결과제라 생각했고, 특히 수적인 면에서의 성장에 주안점을 두려고 했다. 소련은 너무나 거대한 영토와 유대가 불분명한 연방을 효과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많은 수의 병력 - 특히 육군을 유지해야 했다. 하지만 이렇게 육군 위주의 군대를 육성할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한계점에도 불구하고 1차대전에서 3류군대의 후진성을 드러내고 결국 패전이라는 멍에를 쓰게된 소련군은 장차의 전쟁에서는 강한 공군력을 가진 나라가 주도권을 잡게 될 것이라는 세계적인 흐름을 따라잡기 위해 나름대로의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 1910년에 열린 러시아 항공인들의 축제행사에 등장한 기구 ]

소련공군은 1909년 처음 창설된 러시아 육군항공대에 그 뿌리를 두고 있었다. 이무렵 전유럽에는 창공의 시대가 도래해 있었다. 미국에서 시작된 항공의 열풍은 대서양을 건너 전 유럽을 뒤흔들어 놓았으며, 1차대전의 개전과 함께 독일과 프랑스, 영국과 같은 세계 열강들은 전혀 새로운 개념의 군대인 공군을 탄생시켰던 것이다. 바야흐로 항공전력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그 대도약의 발판을 다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공업 후진국이었던 재정 러시아는 자체적인 군용 항공기를 생산할만한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최초의 러시아 육군항공대는 항공분야의 선진국이었던 프랑스로부터 수입한 30여대의 항공기로 장비하고 그 첫 번째 탄생일을 맞이하는 수 밖에는 없었다. 이후 전쟁이 장기화 되면서 러시아 육군항공대는 양적으로 볼 때 많은 성장을 했지만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공군력을 가졌던 독일의 항공전력과 맞서본 결과 보유하고 있었던 항공기의 90% 이상을 파괴당하는 참담한 패배를 당하게 되었다. 이무렵의 러시아 항공전력은 외국에서 수입한 항공기들에 의존하고 있었으므로 수적인 면에서만 성장해 있었을뿐, 몇 개월마다 더욱 강력하게 업그레이드되는 고성능의 항공기로 무장하고 현대적인 전술을 구사하는 독일의 항공전력에는 도저히 맞설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로서는 자체적인 항공기 생산기술의 부재라는 것이 너무나 뼈저린 것이었다.

[ 프랑스제 모랑솔니에 L형 전투기를 정비중인 러시아 육군 항공대원들, 1915년 가을의 사진 ]

혼란속에 태어난 붉은 날개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러시아에서는 볼세비키 쿠데타의 성공과 함께 11월 10일 소련공군의 뿌리를 이루게되는 붉은 군대의 항공대가 새롭게 창설되었다. 그러나 극도로 혼란스러웠던 국내사정으로 인해 제대로 된 전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었으며, 1918년 동부전선에 대한 독일군의 대대적인 공세작전이 시작되면서 압도적인 독일의 공군력이 덥쳐오자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한채 대부분의 전력을 손실하고 말았다. 거듭되는 내전의 혼란속에서 더 이상 독일군에 맞서 싸울 의지를 잃게된 러시아는 1918년 3월 3일 독일과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맺게 되는데 이것은 사실상의 항복이었다. 결국 동부전선은 독일의 승리로 끝나게 되었으며 러시아군은 수준미달의 3류 군대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채로 1차대전에서 이탈하게 되었다.

하지만 기나긴 전쟁에서 돌아온 고달픈 병사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편안한 안식이 아니라 내전의 폭풍이었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되어 동토를 피로 물들였던 러시아의 비극적인 적백내전은 1921년 3월 붉은 군대의 최종적인 승리로 종식되었으며 재정 러시아 시대의 종말과 함께 새로운 공산주의 연방국인 소비에트 연방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무렵 전세계는 그 어느때보다도 경쟁적인 창공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었다. 1차대전을 통해 새시대의 군대로 떠오른 공군의 위상은 날이 갈수록 높아졌으며, 선진국들은 보다 우수한 항공기를 개발하여 미래의 주도권을 쥐고자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이러다보니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항공기들이 등장하여 각분야의 세계 기록을 경신하고 있었으며, 오늘의 최신 기술이 단 몇 개월만에 구식이 되어 버리는 눈부신 발전의 시대가 찾아 온 것이다. 물론 이런 새로운 시대의 흐름은 소련에도 찾아왔기 때문에, 소련내에 창공에 대한 열정을 가진 선구자들은 많이 있었다. 비록 공업 후진국인 소련의 처지로 인해 비록 영국, 미국, 이탈리아, 독일등의 선진국들에 비해서는 항공기술의 발전속도가 보잘 것 없을지는 몰라도 창공에 대한 그들의 동경과 열정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 군 관계자들과 함께 자신이 설계한 항공기에 탑승하고 있는 시콜스키, 초창기 러시아의 항공기술을 선도했던 선구자 중 한명으로 훗날 미국으로 망명하여 세계적인 헬리콥터 회사를 설립하게 된다. ]

그러나 현실적인 면에서 소련의 사회와 경제는 1차대전의 패전과 내전의 참상으로 인해 크게 위축된 상태였다. 특히 볼세비키 혁명으로 인한 국제적인 고립상황은 소련의 항공산업에는 커다란 악재로 다가왔다. 서구 열강은 자국이 보유한 최첨단 기술 - 특히 항공기 제작에 있어서는 항공기 엔진과 같은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부품들과 그 제작기술이 소련으로 유입되지 못하도록 강력한 금수조치를 취했고 이로 인해 해외로부터의 기술이전과 부품공급에 대부분을 의존하고 있었던 소련의 항공 산업은 극도로 약화되어 거의 붕괴 직전으로 까지 몰리게 되었다.

항공산업이 큰 위기에 몰리게 되자 소련정부는 1921년부터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여 자주적인 항공산업을 육성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그 성과는 매우 미미한 것이었다. 자체적인 항공기 제작기술을 육성하려는 시도가 번번이 좌절되자, 소련정부는 해외로부터 항공기를 구입하여 항공전력의 명맥을 유지하고자 고육책을 펴게되었으며 결국 네덜란드의 포커사로부터 포커 D IX 전투기 125기를 구입하는 것을 시작으로 영국, 프랑스로부터도 구식 항공기들을 수십대 구입하여 항공전력의 유지에 사용했다. 소련 관료들은 서방각국을 방문하여 구걸에 가까운 부탁을 하고 돌아다녔으나 그들이 얻은 것이라고는 얼마 안되는 구식 중고 항공기들을 비싼 값에 구입하는 굴욕에 가까운 성과 뿐이었다. 물론 이런 나라들은 소련에 대해서 이런 중고 기체들의 수출에도 매우 소극적이었기 때문에, 소련이 간절하게 원하던 항공기술 자체의 이전은 꿈도 꿀 수 없었으니, 이 시기야 말로 소련의 항공 산업에 있어서는 도저히 미래가 보이지 않는 암흑기와 다름이 없는 시절이었을 것이다.

독일로부터 온 친구들

그러나 구원의 손길은 전혀 엉뚱한 쪽에서 찾아왔으니 그것은 바로 1차대전에서 굴욕적인 패전을 선사했던 독일이었다. 지난 회에서도 언급했었지만 1차대전의 패전국 독일은 독일의 재무장과 군사력 양성을 너무나 가혹하게 제한하는 베르사이유 조약으로 인해 큰 곤경에 처해 있었다. 이에 다시 세계의 강국이 되고자 의기투합한 군부와 정치권의 몇몇 선구자들은 이 베르사이유 조약의 감시망을 벗어나 새로운 군사력을 육성하기 위해 과거의 적이었던 소련에 손을 내밀었던 것이다.

[ 1920년대말부터 소련이 자체적으로 생산한 훈련기 U-2 ]

서로 난감한 처지에 있었던 두 나라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며서 1924년 소련의 리페쯔크 지역이 독일의 비밀 공군을 위한 양성지로 제공되었으며 독일의 항공기 제작사들은 영불 연합국의 감시망을 피해 소련으로 진출한후 새로운 항공기의 개발을 추진하려고 했다. 소련은 이들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기 위해 헐값으로 공장용지를 제공하고 저임금의 소련 노동자들을 지원하기로 했다. 소련측은 독일에게 거의 공짜에 가까운 조건으로 항공기를 비롯한 각종 무기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부지와 헐값의 비숙련 노동력을 제공한다는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다. 물론 부활을 꿈꾸고 있었던 독일군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하늘이 준 기회나 다름없었겠지만, 소련의 입장에서 볼 때에도 세계최고의 수준을 가진 독일의 선진 항공 산업기술을 가까이에서 체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더구나 독일공군의 훈련장이 된 리페쯔크에서는 장차 소련공군을 이끌 게 될 핵심 인력들이 독일공군의 전술훈련장면을 단 하나라도 놓치지 않도록 눈을 크게뜨고 지켜보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사실 이 협력기간 동안 독일의 선진 항공기술력이 소련에 미친 영향은 매우 큰 것이었으며, 소련의 항공 기술력과 공군력은 독일덕분에 분명히 몇 단계씩 업그레이드 되고 있었던 것이다.

[ 집단농장을 순회하면서 스탈린의 정책을 홍보하는 항공요원들, 1933년의 사진 ]

두나라의 이런 상호 협력 관계는 몇 년 뒤 서로간의 이견과 견제가 점차로 심해지면서 결국 1930년대 초에 깨지게 되었지만 소련은 미래에 그들을 국가존망의 위기에 몰아넣게되는 독일의 군사력을 다시 키워주는 숙주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한 셈이었고, 독일은 고사위기에 몰린 소련의 항공산업에 생명수와 영양분을 불어넣어 되살려 놓는 농부의 역할을 한 셈이었다. 이무렵부터 소련공군은 명백하게 독일공군을 모델로 하여 현대화 되었으며, 성장의 발판을 굳건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훗날 독일공군은 동부전선의 전황이 중반을 넘어서면서 소련공군으로부터 예상외의 큰 저항에 직면하고 고전을 면치 못하게 되는데, 이렇듯 소련공군이 초전의 대타격으로 인한 괴멸의 위기에서 벗어나 다시 날아오를 수 있도록 만들었던 것은 독일이 예상하지 못한 저력을 가지고 있었던 소련의 항공산업이었고, 이 소련 항공산업의 기틀이 다져지는데 있어서 이 기간동안 독일로부터 건너온 친구들에게 어깨너머로 전수받았던 항공 기술이 근간을 이루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스페인으로...

[ 1934년, 붉은 광장에서 개최된 혁명 기념일의 퍼레이드 행사에서 위용을 과시하고 있는 소련의 폭격기 병단 ]

1930년대 중반에 들어서자 어느덧 소련은 최고 수준은 아니더라도 어느정도 독자적으로 항공기를 개발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가지게 되었으며 스탈린이 정열적으로 추진한 경제발전 계획덕분에 항공산업의 발전 속도도 탄력을 얻어 실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게 되었다.

이무렵 소련은 열정적인 항공 기술자들이 많이 있었는데, 이들도 항공기 설계국을 설립한후 속속 새로운 항공기들을 내놓았다. 이중에서도 폴리카로포프 설계국은 우수한 기동성을 자랑하는 폴리카르포프 I-15 복엽전투기와 고속 단엽 전투기 I-16와 같은 신예기들을 대량 생산하여 소련공군의 전력 강화에 큰 기여를 하게 되었다. 소련공군은 SB-2와 같은 신형 폭격기들도 대량으로 발주하여 주변국을 위협할 수 있을 정도로 위협적인 폭격기 병단도 가지게 되었다. 이처럼 외형상으로 볼 때 양적인 성장이 계속되면서 소련의 붉은 공군은 불과 10년전에 존폐의 기로에서 헤메인 존재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해서 이제는 세계의 열강들의 턱밑까지 추격하는 급속도의 발전을 이룩한 것이다.

이제 소련의 항공전력은 겉으로만 보면 양적으로는 전세계의 열강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에 이르는 것이 얼마 남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아직 질적인 면에서 볼 때는 수 많은 불안 요소들이 숨어 있었으며, 이 불안 요소들은 실전을 경험하면서 곧 현실로 나타나게 된다.

소련공군은 훗날 독소전이라는 혹독한 전쟁이 시작되기 몇 년전에 그 능력을 평가받고 새로운 발전의 전기를 가져올 수 있었던 3 번의 기회를 연속적으로 가지게 되는데, 신흥 소련공군의 실력이 발휘될 세군대의 전장은 전혀 다른 환경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무대는 바로 스페인의 하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