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4 : 얼어붙은 동부전선
(Red Star Salute)
This document was updated at 2006. 12. 5
스페인 하늘로
인류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하늘의 싸움, 즉 2차 세계대전중 유럽의 하늘에서 벌어졌던 장대한 항공전은 사실 스페인 내전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스페인 내전에 대해서는 몇 년전에 연재된 유럽항공전 1부 - 3회 '전쟁전의 전쟁 (war before war)'편에서 독일공군의 발전상과 함께 언급된 적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소련공군의 측면에서 조금더 자세히 알아보기로 한다.
비록 소련의 붉은공군이 1920년대의 어려움을 딛고 일어선후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으며 1935년에 이르러 이제 양적인 면으로는 세계적인 수준까지 성장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제대로된 실전을 경험해 본적이 없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1차 세계대전에서 치열한 하늘의 대결을 펼쳤던 영불 연합군과 독일군은 전쟁을 통해 축적된 항공 기술력과 공군력의 운용능력, 그리고 공중전술등의 여러 가지 측면에서 얻은 소중한 실전 경험을 토대로 그들의 항공전력을 더욱 발전시키고 있었지만 대규모 항공전력을 실전에서 운용해본적이 없었던 소련공군에게는 이 모든 것이 새로운 도전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소련공군이 실제로 전장에 투입되었을 때 과연 어떤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지는 아무도 확신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소련공군에게 첫 번째 시험평가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게 되는데, 그 무대는 바로 스페인의 하늘이었다. 스페인 내전은 스페인 국민들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시련을 주었지만 이해관계를 가진 주변의 열강들에게 있어서는 1차대전이후 진일보한 자국의 군사력, 특히 공군력을 테스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했다. 이무렵 다시 군사대국화를 진행하고 있었던 히틀러의 독일과 로마제국의 재건을 꿈꾸고 있었던 무솔리니의 이탈리아가 프랑코의 국민당군을 지원하기 시작했으며, 소련은 파시스트의 확장을 막는다는 구실을 내세워 공화국측에 군사적인 지원을 결정했던 것이다. 특히 소련은 새롭게 성장한 붉은군대의 공군력을 실전에서 테스트하는데 전력을 기울일 예정이었다
[ 스페인 내전의 상황도, 주요 격전지를 잘 보여준다. ]
스페인 내전은 1차대전이후 그야말로 엄청난 속도로 발전을 거듭하던 근대 항공전력이 가진 엄청난 잠재력이 최초로 실전에서 생생하게 드러난 첫 번째 전쟁이었다. 1936년 스페인에서는 프랑코 장군이 이끄는 국민당군이 집권당인 공화당 정부에 대해서 반기를 들고 군사적인 도전을 시작했으며 곧 스페인전역은 내전의 폭풍속에 휩쌓이게 되었다. 이 스페인 내전 상황을 주시하던 주변국가들은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따른 득실을 계산하며 언제라도 내전에 개입할 기회를 찾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결국 독일과 이탈리아는 국민당군을 지원하는 명목으로 군사력의 파견을 결정했으며, 공화당파를 지원하던 소련은 독일과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정권을 견제하기 위한 의용군의 명목으로 붉은군대를 파견했던 것이다. 결국 스페인은 같은 민족이 서로 총부리를 겨누게되는 상황에 더해서 자국의 하늘과 땅이 주변 열강들의 최신 고성능 무기들의 실험장으로 전락해 버리는 너무나도 비극적인 결과를 맞이한 것이다.
1936년 8월, 야망을 불태우던 히틀러의 독일이 먼저 스페인내전에 군사적인 개입을 시작했다. 독일은 의용지원병의 명목으로 비밀리에 공군의 정예 요원들을 선발해놓은 상태였다. 최초의 선발대는 6기의 He 51B 전투기와 20기의 Ju 52 수송기와 함께 총 85명의 비행/지상 요원으로 구성된 작은 규모의 부대였다. 이 소규모의 공군 선발대는 스페인에 도착한이후 계속되는 증강으로 점점 그 규모가 커지게 되는데 훗날 이른 바 '콘돌군단'이라는 유명한 별명을 얻게된다. 콘돌군단은 휴고 슈페를 장군이 첫 지휘봉을 맡았으며 훗날에는 볼프람 폰 리히토펜 장군이 지휘권을 넘겨받게 된다. 이무렵 히틀러를 경쟁자로 여기고 있었던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도 즉시 이탈리아군을 파견한다는 선언을 하게 된다.
[ 스페인에 파견된 독일의 주력 전투기 He 51, 국민당군의 마킹을 하고 있다. ]
1936년 9월, 독일과 이탈리아군이 스페인내전에 개입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소련정부도 즉각적인 대응에 나서게 되는데, 당시 소련은 유럽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을 증대하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만일 소련군이 스페인 공화당군을 지원하여 내전에서 승리한다면 남부유럽의 요충지인 스페인을 소련의 영향하에 둘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게다가 이 기회를 통해서 지난 10년간 눈부신 성장을 거듭한 붉은군대의 항공전력을 실전에서 테스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게된 셈이었으니 소련으로서는 손해볼 것이 없는 장사였다. 물론 독일과 이탈리아가 국민당군을 지원하는데 기겁한 공화당군은 소련의 지원 제안을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첫 번째 실전경험
소련군도 독일군과 마찬가지로 의용군의 형식을 빌려 파견부대를 편성했으며 매우 빠른 속도로 실행에 옮기게 된다. 독일과 이탈리아가 파견부대를 보내기 시작한지 불과 2개월만인 1936년 10월경에 이르러 141명의 조종사들과 이를 지원하는 약 2000여명의 지원병력이 공화당군을 지원하기 위하여 선발대로 파견되는 것을 시작으로 전쟁이 끝날 때까지 총 772명의 조종사들과 약 1000여대의 I-15, I-16전투기들과 200여대의 폭격기들이 야코프 블라디미로비치 스무시께비치 장군의 지휘하에 스페인에 파견되어 실전경험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무렵 공화당군은 영국, 프랑스 등에서 원조받은 얼마안되는 수의 항공기를 제외하고는 거의 항공전력이라고 부를 만한 전력이 없었기 때문에 소련이 원조한 기체들이 공화군의 항공전력중 90% 이상을 차지할 정도였다.
[ 공화당군의 마킹을 도색한 I-15의 일러스트 ]
사실 독일과 이탈리아, 소련 모두 스페인과는 국경을 맞대고 있는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세나라 모두 대규모의 수송작전을 통해 병력과 장비를 공급해야 했다. 독일과 이탈리아는 남쪽의 북아프리카쪽 연안으로 돌아들어가 수송기들을 이용해 지브랄타 해협을 건너는 일단의 대규모 항공수송작전을 전개했다. 사실 수송기들만으로 모든 병참선을 유지한다는 것은 전례없는 전술개념이었지만 독일공군은 이 새로운 작전을 매우 잘 수행해냈으며, 결국 이 항공수송작전을 통해 독일공군은 수송기를 이용해 빠른 속도로 병참선을 유지하는 보급능력을 실전에서 터득하고 더욱 발전시킬 수 있게 된다.
소련의 경우는 약간 달랐는데 지중해의 제해권을 장악하고 있었던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을 견제하기 위해 은근히 공화당정부를 옹호했었기 때문에 소련의 수송선이 스페인으로 향하는 것을 못본 척했으므로 수송선을 이용한 물자의 조달이 가능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양측의 병력은 계속 증강되었으며 이제 곧 대규모의 충돌이 벌어질 것이라는 것에 전세계의 언론이 촉각을 기울이고 있었다.
외국군대의 파견초기인 1936년 10월경에는 양측 모두 상대방의 전력에 대한 탐색전을 펼쳤기 때문에, 소규모의 편대 전투가 주로 이루어졌다. 초반에는 콘돌군단보다는 오히려 이탈리아공군의 파견대가 활발한 활동을 했기 때문에 소련전투기들의 주된 상대는 이탈리아 공군기들이었다.
[
스페인에 파견된 이탈리아공군의 Cr.32 전투기, 이 기체는 독일의 He
51, 소련의 I-15와 대등한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
이때 서유럽 국가에 첫 선을 보인 소련제 I-15 쌍엽 전투기는 독일의 He 51이나 이탈리아의 Cr 32등과 같은 비슷한 세대의 전투기들에 맞서 전혀 손색이 없는 우수한 성능을 과시했다. 사실 10년전 소련의 항공기술이 형편없는 지경인 것을 눈으로 확인했던 독일의 입장에서는 I-15 전투기의 선전이 매우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탈리아 공군의 Cr.32의 경우도 복엽기로서는 세계 최고 성능을 가졌다는 점에 이의를 다는 사람이 없었는데 이런 Cr.32에 대등하게 맞서는 I-15의 성능은 소련의 항공기술이 지난 기간동안 얼마나 큰 발전을 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사실 10년전 리페쯔크에서 독일공군의 훈련장면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자국의 공군력을 키우고자 애쓴 경험이 있었던 소련공군 관계자들도 초반의 전과에 큰 만족을 표시했다. 그들의 우려와 달리 붉은군대의 전투기가 독일과 이탈리아의 주력 전투기들에 맞서 예상외로 좋은 성능을 발휘한 것이다. 이런 결과로 인해 더욱 자신감을 얻은 소련공군은 신예전투기인 I-16 단엽 전투기를 본격적으로 투입하기 시작했다. 이 I-16 전투기는 어떻게 보면 I-15와 비슷하게 생긴 볼품없는 전투기이기는 해도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저익 단엽전투기로서 세계최초로 인입식 강착장치를 실용화한 새로운 전투기였다.
[ 스페인내전 초기에 공중전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소련의 I-16 ]
1936년 11월 공화당군의 대규모 공세에서 I-16을 장비하고 출격한 정예 소련조종사들이 이탈리아 공군의 Cr.32 전투기들과의 공중전에서 속도를 이용한 일격이탈전술로 상당한 전과를 올렸다. 고속 전투기인 I-16의 장점을 이용한 급강하 일격이탈전술은 아직 느린 쌍엽전투기가 가진 우수한 선회능력에만 의존하던 이탈리아 전투기들과 속도가 느린 이탈리아 폭격기병단에게는 큰 효과를 발휘했던 것이다. 비슷한 시기의 공중전에서 콘돌군단의 He 51 전투기들도 I-16과의 공중전에서 성능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패퇴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로 인해 콘돌군단은 소련의 전투기들이 결코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 공화당군의 I-15 bis, 근접 선회전에서 상당한 성능을 자랑했다. ]
전세가 공화당쪽으로 급격하게 기울어가는 것처럼 보이면서 소련군은 더욱 자신감에 불타올라 공화당군에 많은 수의 기체를 인도하고 I-15 전투기를 생산하는 공장을 스페인에 세우는가하면 조종사들을 교육하는 시설까지 설립한후 교관을 파견하는 등 그야말로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붉은군대의 수뇌부는 불과 10년전까지만해도 시대에 뒤떨어진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던 항공부대가 어느덧 유럽의 군사강국인 독일, 이탈리아등의 정예 공군에 맞서 당당하게 맞서 싸울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데에 만족스러워 했다. 1937년에는 과달라야라를 둘러싼 대규모 공방전에서 소련공군의 항공지원을 등에업은 공화당군이 국민당군을 지원하던 이탈리아군에 대해 큰 승리를 얻게 되는데, 이 전투에서는 이탈리아 공군기들을 압도하며 큰 전과를 올린 신예 I-16 전투기들과 고속 폭격기인 SB-2가 집중 투입되어 이탈리아 지상군을 거의 괴멸시키는 엄청난 전과를 올렸던 것이다.
전투양상이 우세하게 진행되다보니 소련군에서는 이러다가는 예상외로 이 전쟁에서 이길지도 모른다는 희망찬 전망까지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전투개시이후 몇 개월간 지속된 소련공군의 우세는 별로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콘돌군단의 역습
역시 스페인내전을 통해 근대 항공전에 첫 발걸음을 내딛고 있었던 독일공군도 스페인 내전 초기의 항공전 양상을 철저하게 분석하면서 대응책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장차 독일공군의 정신적인 지주가 될 운명을 가진 것처럼 보였던 야심차고 유능한 독일공군의 새로운 지휘관 베르너 묄더즈는 스페인 내전 초반 투입된 He 51 전투기들이 소련의 신예기들과 벌였던 전투양상을 분석한 결과, 그들의 He 51이 비록 성능면에서는 복엽기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는 있지만 편대전술의 혁신을 통해 충분히 극복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집중적인 연구를 하게 된다. 묄더즈는 이 기간동안 장차 미래의 공중전의 판도를 완전히 바꾸어 놓을지도 모르는 새로운 편대 전술대형을 완성시키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유명한 '슈밤 (schwarm)' 대형이었다. (유럽 항공전 2부 - 3회 '전쟁전의 전쟁'편 참조)
[ 콘돌군단의 He 51, 1930년대 초부터 독일공군의 부활을 선도했던 전투기로서 스페인 내전에서는 I-16에게 고전한이후 Bf 109에게 자리를 내주고 전폭기로 전용된다. ]
1937년 초여름, 독일공군은 사실 He 51의 투입만으로도 충분할 것으로 보였던 전세가 예상외의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자, 이제 그들이 준비해놓았던 모든 역량을 본격적으로 투입하여 전세를 단숨에 역전시킨다는 결정을 내리게 되는데 그 선두에는 독일공군의 부활을 선도하며 전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제공 전투기를 목표로 키워지고 있었던 신예 Bf 109 전투기들이 있었다. 게다가 장래 전유럽을 공포로 몰아넣게 되는 독일의 고속 폭격기부대들도 He 111과 Do 17과 같은 새로운 전력으로 무장하고 속속 스페인에 도착했다. 이런 최신 기술의 항공기들을 실전에서 테스트할 기회가 주어지면서 콘돌군단의 사기는 크게 올라갔으며 곧 대대적인 반격작전이 실시될 예정이었다.
[ 스페인에 나타난 하늘의 마왕, Bf 109B ]
이후 북부 공화당군에 대한 대규모의 공세작전에서 최신 항공기로 무장한 독일공군의 새로운 전술이 큰 위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그동안 주력 전투기로 활약하던 He 51기들이 전폭기로서의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게 되는데, 이 기체들은 6발의 10kg 폭탄을 장비하고 500피트의 저공을 고속으로 날아들어 완벽한 기습폭격을 감행했으며 뒤를 이어 지상군의 본격적인 진격이 시작되었다. 기습에 놀란 공화당군은 I-15, I-16 전투기들을 동원해 반격에 나섰다. 공화당군의 전투기들이 He 51기들의 편대를 발견하고 돌진해 들어갈 때 그들의 상공에서 태양속에 숨어 대기하고 있던 Bf 109 전투기들이 벼락처럼 떨어져오기 시작한 것이다. 완전히 겪이 다른 상대와 마주친 공화당 조종사들은 속수무책으로 격추당하기 시작했으며, 이후의 공중전양상은 그야말로 일방적인 공중 학살에 불과했다. Bf 109 전투기들이 상공을 완벽하게 제압하자 미끼 역할을 했던 He 51 전투기들이 다시 폭탄을 재무장하고 지상군의 근접지원에 나섰다. 이 작전에서 콘돌군단이 보여준 완벽한 공-지 협동작전은 훗날 독일공군이 전격전을 통해 선보이는 완벽한 지상 지원전술의 모범이 된다.
[ 정비중인 Bf 109B, 특징적인 2날 프로펠러를 잘 보여준다. ]
볼프람 폰 리히토펜 장군은 전폭기로 운용되어 상당한 성과를 올린 He 51의 활약에 고무된 나머지 지상군의 지원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Hs 123 급강하 폭격기를 본격적으로 투입하라는 명령을 내렸으며 완성된지 얼마되지 않은 새로운 급강하 폭격기인 융커스사의 Ju 87A 슈투카도 급히 동원하여 전술적인 시험대에 올리게 된다. 물론 이들의 상공에서는 Bf 109 전투기들이 모든 적기들을 얼씬도 못하게 몰아내 버리는 완벽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He 111이나 Do 17의 경우에는 I-15나 I-16에 비해 수평속도가 빠른 편이어서 공화당군으로서는 독일 폭격기부대의 요격에 더욱 많은 고충을 겪게 되었다.
[ 스페인 내전에서 맹활약한 고속 폭격기 He 111 ]
[ Hs 123 급강하 폭격기, 슈투카가 본격적으로 투입되기 이전에 근접지원기로 맹활약했다. ]
[ 스페인내전을 통해 시험평가를 받게되는 Ju 87 슈투카 ]
콘돌군단의 공세가 강화된 이후부터 공화당군의 항공기 손실율이 매우 빠른 속도로 높아졌으며, 1938년에는 스페인 하늘 전체가 콘돌군단의 독무대가 되었다. 이전까지 국민당군 전투기들보다 빠른 속도로 침투해 상당한 위력을 올렸던 SB-2와 같은 소련의 고속 폭격기들도 새로운 강적 Bf 109를 만나게 되자 그야말로 너무나 쉽게 격추되어 버리는 신세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이전까지 소련공군기들에게 고전을 면치 못하던 이탈리아공군은 독일에 의해 제공권이 완벽하게 얻어낸 틈을 이용해 다시 활발한 출격을 시작했으며 민간지역에 대해서도 무자비한 폭격을 감행하며 활개치고 다녔다. 무솔리니의 눈치를 보고있던 이탈리아공군은 독일공군 덕분에 그들이 자유로워진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으며 그들의 독재자에게 그저 자신들이 올린 위대한(?) 전과를 기록한 보고서를 만드는데 급급했다.
[ Cr.32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이탈리아 조종사들, 스페인 내전을 통해 이탈리아 공군은 좋은 도약의 기회를 맞이할 수도 있었으나 스스로 이 기회를 차 버리고 마는 결과를 초래한다. ]
점점 전세가 불리해지고 유럽 전체의 정세도 어지러워지면서 소련은 슬그머니 공화당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고 내전에서 발을 빼려했다. 사실 그동안 사태를 관망하던 프랑스를 비롯한 주변국은 독일이 성장하는 것도 싫었지만 스페인이 공산화되는 것에 대해서도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고 전쟁이 더 큰 규모로 변하는 것을 두려워 했기 때문에 전세가 국민당군에 절대적으로 유리해지는 것을 보면서 결국 소련에게 스페인 내전에 더 이상 간섭하지 말고 물러서라는 촉구를 했던 것이다.
1937년부터 군부에 대한 스탈린의 견제가 심해지고, 고위 장성들에 대한 숙청작업이 시작되면서 소련공군은 더 이상 스페인내전에 전력을 집중할 수 없었다. 결국 안과 밖에서 어려운 상황에 몰린 소련군은 스페인 내전을 통해 나름대로의 성과를 얻었다는 것으로 결론을 내린후 1938년 8월부터 철수작업에 들어갔다. 철수작업은 빠르게 진행되었으며 모든 것을 소련의 지원에 의존하고 있던 공화당군은 절망적인 상황에 몰리게 되었고, 결국 1939년 스페인 내전은 프랑코 장군이 이끄는 국민당군의 최종적인 승리로 끝나게 되었다.
얻은 것과 잃은 것
비록 스페인 내전에서 소련은 패배의 멍에를 쓰고 물러나야 했지만 소련공군의 입장에서 스페인 내전의 경험은 매우 소중한 것이었다. 첫 번째로 사실상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던 3류 군대가 불과 10여년인 1935년까지 눈부신 발전을 이룩한 것을 증명했다. 이무렵 소련은 1935년을 기준으로 볼때는 숫자상으로 전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폭격기 병단을 가지고 있었으며 세계 최고수준으로 손색이 없는 전투기인 I-15, I-16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소련의 붉은군대는 항공전의 측면에서는 실전경험이 거의 없고 항공전력을 운용하는 전술면에서도 서부 유럽국가들에 비해 수준이 낮다는 결점이 있었기 때문에 최초의 실전과 다름없는 스페인 내전에서 많은 손실이 있었다고는 해도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독일공군과의 전투를 경험해본 조종사들은 모두들 독일공군이 새롭게 구사하는 위협적인 편대전술 (슈밤 대형)의 위력을 실감했다. 게다가 독일공군이 지상군 지원을 실시하는 작전에서 지상군과 무선관제에 의한 유기적인 협동전술을 구사하는 것에도 큰 인상을 받았다. 게다가 새롭게 선보인 하늘의 마왕 Bf 109 전투기와 공중전을 경험한 조종사들은 이 독일 전투기의 우수한 성능에 모두들 혀를 내둘렀던 것이다.
사실 이무렵의 소련공군 수뇌부는 적진을 공격하여 타격하는 폭격기 병단을 소련공군의 주된 전력으로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전투기들은 폭격기를 호위하는 보조적인 역할에 국한시키는 경향이 많았기 때문에 전투기 부대만을 위한 전술의 개발이나 전력의 증강에는 아무래도 소흘한 면이 있었고 스페인 내전의 초반에 매우 잘 싸웠던 전투기 조종사들의 의견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 스페인에서 만난 Bf 109와 I-16, 훗날의 독소전에서도 다시 만나게 된다. ]
만일 이런 모든 것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대응책을 준비했었더라면 아마도 훗날의 독소전 초기에 소련군이 그토록 처참한 패배를 당하지는 않았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경직된 소련군 수뇌부는 이런 보고서에는 눈길을 주지 않았으며 대부분 그들이 스페인 내전 초기에 거둔 성과를 보고하는 데에만 집착했다. 군부를 철저하게 통제하기로 결심한 스탈린 체제하의 소련에서는 창조적인 건의사항을 위에 올렸다가는 문책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장교들은 소련군이 스페인에서 이룩한 업적만을 부각시켜 보고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사실 스페인 내전이 한창이던 1937년 5월, 소련군의 정신적인 지도자인 미하일 투하체프스키 원수가 스탈린에 의해 시행된 군부에 대한 대숙청작업의 일환으로 체포되어 얼마뒤 처형되는 엄청난 사건을 시작으로 군부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작업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소련공군내부에서는 어느 누구도 앞장서서 공군의 개혁을 이끌어 보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유능한 장교가 된 다는 것은 그만큼 숙청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 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장교들은 그저 숨을 죽이고 가만히 엎드려 있는 길 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소련공군이 스페인에서의 경험을 발전의 초석으로 삼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머뭇거리는 동안 머지 않은 미래에 가장 강력한 적수가 될 독일공군은 이를 발판으로 전에 없던 수준의 대도약을 이룩하고 있었다. 독일공군은 스페인내전에서 거둔 대성공에도 불구하고 결코 만족하지 않았다. 실전에서 우수한 성능을 발휘한 제공 전투기 Bf 109는 더욱 강력한 성능을 가지도록 개량이 거듭되고 있어으며, 적의 지상군을 벌벌 떨 게 만들었던 공포의 사신 Ju 87 슈투카 급강하 폭격기도 대량 생산되고 있었다. 게다가 지상의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리게 될 고속 폭격기부대도 하루가 다르게 계속 증강되고 있었던 것이다.
[ 스페인내전의 말기에 잠시 선보였던 Bf 109E-3, 강화된 공중전 성능으로 훗날 전 유럽을 호령하게 된다. 소련이 머뭇거리는 사이 독일은 더욱 강력한 공군력을 키워 나가고 있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