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IV : 얼어붙은 동부전선
(Downfall of VVS)
This document was updated at 2007. 9. 7
동토로 방향을 돌린 전쟁의 폭풍
1940년 9월 영국의 하늘에서 펼쳐지던 독일공군와 영국공군의 대결전이 그 절정을 넘어서고 잇었다. 9월 15일의 대규모 전투에서 독일공군이 상당한 손실을 입고 물러선이후 독일공군의 공세는 점점 위축되고 있었으며 영국본토항공전은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독일공군은 영국공군을 괴멸시킬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코앞에 두고는 런던폭격이라는 커다란 전략적 실수를 범했으며 결국 영국공군이 되살아날 기회를 주고 말았던 것이다.
[
야망에 불타오르는 히틀러, 그는 과연 소련을 정복 할 수 있을 것인가?
]
이제 독일공군이 영국공군을 괴멸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으며 도버해협에 집결했던 독일군 수뇌부는 영국침공작전의 실패가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되자 히틀러는 영국점령이라는 별 것(?)아닌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독일공군 원수 괴링을 질책했다. 그러나 더 이상 영국공군을 격멸해 버리라는 식의 독려는 없었다.
히틀러는 영국에 대해 싫증이 났다. 그리고 그가 꿈꾸던 다른 원대한 목표를 위해 영국침공작전을 중지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언젠가부터 동부유럽의 광활하고 비옥한 토지를 위대한 독일민족이 지배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히틀러는 영국에서 시간을 허비하는 상황에 짜증이 나고 있었던 것이다.
마음이 조급해진 히틀러는 그로키상태에 몰린 영국 따위를 점령하는 것에 더 이상 독일군의 힘을 낭비할 필요가 없으며 그의 원대한 꿈을 펼치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은밀하게 휘하의 장성들을 소집하여 서유럽의 지배권은 이미 독일의 손아귀에 들어왔으니 최대한 빠른 시일내에 동쪽의 소련을 공격하여 신속하게 점령할 수 있도록 공격작전을 입안하라고 명령했던 것이다. 갑작스럽게 소련공격의 명령을 받은 장성들이 난색을 표하자, 히틀러는 목청을 높이며 독일제국의 궁극적인 목표는 서유럽 같은 작은 영토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광대한 동부유럽과 중앙 아시아에 까지 걸친 비옥한 소련의 영토를 차지하는 것이며 그리고 그 시기는 바로 지금이라는 것을 역설했다. 그리고 히틀러가 이렇게 마음을 굳힌 이상 아무도 그의 마음을 돌릴 수는 없었다.
[ 히틀러는 독일군 전체를 북부, 중부, 남부 집단군으로 편성하여 전격전을 펼치면 맨 우측의 라인까지 쉽게 점령하고 승리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군대는 붉은선을 넘지 못하고 좌절하게 된다. ]
상황이 급격하게 반전되면서 막강한 독일군을 상태로 유럽의 서쪽에서 외롭게 고군분투하던 영국은 드디어 국가존망의 위기에서 벗어나게 되었지만, 전쟁의 폭풍은 잦아든 것이아니라 단지 유럽의 반대방향으로 방향을 돌린 것 뿐이었다. 1941년이 찾아오자 서부유럽과 지중해-북아프리카 지역에 배치되었던 독일공군의 주력부대들이 하나 하나 소련과의 국경지역으로 이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얼마남지 않은 미래에 유럽의 동쪽에서 인류역사상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정도로 가장 참혹하고 치열한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는 것은 아무도 예견하지 못하고 있었다.
대숙청의 피바람
막강한 독일군의 칼날이 동쪽으로 겨누어지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던 소련측의 상황은 참으로 한심한 것이었다. 물론 소련은 숫자로만 따져볼 때는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군대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런 숫자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은 지난 겨울 핀란드에서 벌어진 전쟁에서 증명되었다. 겨울전쟁 기간동안 스탈린의 붉은 군대가 불과 1/20도 안되는 핀란드군에게 연일 괴멸적인 피해를 입고 망신을 당하면서 소련군의 형편없는 실력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다. 특히 히틀러는 겨울전쟁에서 드러난 소련군의 실상을 보고 받으면서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 소련의 권력을 장악한 독재자 스탈린, 그의 웃는 얼굴뒤에는 엄청난 냉혹함이 숨겨져 있었다. ]
소련군이 이런 형편없는 군대로 전락하게 된데에는 수많은 복합적인 요인들이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1930년대 후반 스탈린에 의해 자행된 대숙청 (예조프시나)이 가장 결정적인 타격을 가했다. 그는 자신과 함께했던 혁명동지들을 차례로 숙청하고 정권을 장악한 스탈린은 이제 소련군의 충성심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는 과거 황제에게 충성하던 재정 러시아시대의 장교들이 대부분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었다.
특히 군사적인 전문성을 내세우며 자신의 의견과 다른 견해를 제시하는 군 장성들을 보면서 스탈린은 자기의 말을 잘 듣지 않는 이 아니꼬운 전문가(?)놈들이 언제 반역을 도모할지 모르므로 모조리 없애 버리고 군대를 완전히 장악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결국 스탈린은 이런 위험(?) 요소를 가진 붉은군대를 완전히 자신과 인민의 군대로 개조해 버리겠다는 결심을 굳혔으며 곧 대대적인 숙청작업에 들어갔다.
[ 소련군의 아버지로 불리던 미하일 투하체프스키 원수, 우측의 사진처럼 한때 스탈린은 그를 신임하고 곁에 두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스탈린에 의해 자행된 군부 대숙청의 첫 번째 희생자로 전락하고 만다. ]
스탈린은 스페인내전이 한창이던 1937년 소련군 원수였던 미하일 투하체프스키 원수에게 반역죄를 덮어씌워 전격적으로 처형해 버렸으며, 이는 전 소련군을 공포와 피바람으로 몰고가는 대숙청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약 1년의 기간동간 3만 5천명이 넘는 지휘관급 장교들이 반역 혐의로 재판도 없이 대대적으로 처형되었다. 이 대숙청 기간동안 소련군 전체가 완전히 꽁꽁 얼어붙어 버렸으며 육해공군 전체의 지휘계통이 완전히 마비되어 버렸다.
수많은 장교들이 하루아침에 처형되자 매일 어제의 소대장이 오늘은 연대장이 되어 버리고 말단 사병이 하루아침에 장교계급장을 달게되는 어이없는 상황이 연일 계속되고 있었다. 장교들은 서로간에 불신하고 있었고 누가 자신을 반역혐의로 고발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해야 했다. 얼떨결에 몇 계단씩 진급한 장교들이 자신의 위치에 필요한 군사적인 지식이나 능력이 없다는 것은 자명했고, 이는 곧바로 소련군 전체의 군사적인 무능함으로 직결되었다. 그나마 그들조차 살아남으려면 스탈린과 공산당에 대한 철저한 충성을 맹세하고 매일 그것을 증명해야 했다. 이제 소련군은 위대한 스탈린 동지의 허락이 없이는 총한발도 쏘면 안되는 철저한 복종을 강요당했던 것이다.
스탈린은 일선의 각부대에 부대를 지휘하는 지휘관을 감시할 공산당위원이 파견되어 철저한 감시를 하도록 했다. 이렇게 되면서 모든 군사작전에 지휘관들이 군사적인 지식이 전무한 공산당위원의 눈치를 살피고 그의 허락을 받아야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엉뚱한 이중 지휘체계는 한동안 전 소련군을 혼란에 빠지게 만들었다. (훗날 스탈린 스스로가 정치간부가 군부를 간섭하는 행위로 인한 폐해를 인정하고 이 제도를 없애게 된다.)
날개잘린 붉은공군
이런 대숙청은 전소련군을 대 혼란으로 몰고갔지만 특히 공군의 경우에 그 정도가 심각했다. 공군은 고도의 전문성을 가진 첨단의 군대였으므로 숙청에 의한 장교들의 손실은 급속한 전투력의 저하로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공군 전체 장교단의 40%정도에 해당하는 5000명에 가까운 지휘관급 장교들과 조종사들이 대숙청의 칼날앞에 허무하게 사라졌다. 특히 이중에는 스페인내전 기간동안 독일공군과 일진일퇴의 전투를 벌이며 소중한 전투경험을 쌓았던 베테랑 조종사들과 지휘관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현대 공중전에서의 실전 경험을 쌓은 베테랑 조종사들이야말로 소련공군의 미래를 이끌어갈 너무나 소중한 재원들이었으나 그들을 무작정 처형해버림으로서 공군의 전투력은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손실을 입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스탈린은 자신의 손으로 붉은공군의 날개를 잘라 버린 셈이었다.
[
스페인내전 초기 소련공군 파견부대를 진두지휘하며 소련의 영웅칭호를 받았던
야코프 스무쉬케비치 중장, 그마저 대숙청의 피바람을 피해가지 못하고
처형되었을 정도였다. 소련공군 내부의 혼란이 얼마나 심각한 정도였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볼 수 있다. ]
사태가 이렇게 되자 소련공군 전체가 꽁꽁 얼어붙었다. 군전체에 불신의 골이 깊어졌으며 감히 어느 누구도 앞장서서 공군의 발전과 개혁을 이끌어 보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앞으로 나서서 자발적으로 행동하는 행위는 금기시 되었다. 그러니까 소위 유능한 장교가 된 다는 것은 그만큼 숙청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 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장교들은 그저 숨을 죽이고 가만히 엎드려있다가 시키는 일만 수동적으로 하는 것이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게 된 것이다. 스페인내전에 참가했던 베테랑조종사였던 폴코프닉 예프케니 스테파노프는 그당시의 악몽과 같았던 상황을 다음과 같이 회고 한다.
"1939년에서 40년까지 악몽같은 1년동안에 과거 스페인에서 같이 싸웠던 수많은 동료 조종사들이 비밀경찰에 의해 반역자라는 억지 누명을 쓰고 체포되었다. 그들은 제대로된 조사나 재판도 없이 감옥에 보내졌으며 며칠후에 총살당했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나는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에서도 그들을 옹호하고자 나설 수도 없었기 때문에 혼자서 피눈물을 흘렸다. 만일 그랬다가는 나도 반역자로 몰려 총살당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나의 소중한 친구들은 독일공군과 싸우다 전사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위대한 지도자 스탈린 동지에 의해 어이없는 죽음을 당했던 것이다."
스페인내전에 파견된 소련공군의 초대 사령관으로써 그 공로를 인정받아1937년과 1939년 금성무공훈장을 2회나 수상하고 소비에트 연방의 영웅칭호까지 받았으며 1939년에는 항공군 사령관이라는 중책까지 맡고 있었던 야코프 스무쉬케비치 중장의 숙청작업은 그당시의 혼란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일 것이다. 그는 매우 유능한 공군지휘관이었으나 너무 뛰어난 군사적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공군의 발전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던 스무쉬케비치는 결국 독재자 스탈린의 미움을 샀고, 1939년말에 간첩혐의로 체포되어 비밀경찰 (NKVD)의 특별감옥에 투옥되어 2년간 옥살이를 했으며 독일의 침공으로 모스크바가 위태로운 지경이 된 1941년말에 갑자기 처형된 것이다. 이무렵 그는 조국을 위해 다시 싸우겠다며 공군으로 복귀시켜줄 것을 주장했지만 스탈린의 비밀경찰은 그가 지난 기간의 누명에 원한을 품고 그들을 배신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1935년을 기준으로 볼 때 소련공군은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중형폭격기 병단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I-15와 I-16이라는 세계최고 수준의 전투기까지 대량으로 보유하고 우수한 조종사들을 양성하여 서유럽 제국의 공군에 비해 손색이 없는 우수한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자평했었지만, 이후 몇 년간 전력보강은 커녕 오히려 그들의 위대한 (?) 지도자에 의해 소중한 인적자원을 잃고 전혀 발전하지 못한채 급속한 퇴보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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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깐!! VVS? 소련공군? 방공군 ? 지금까지 독소전의 연재에서는 그냥 소련공군이라고 통칭하여 전반적인 상황을 설명하고 있지만, 사실 2차대전중의 소련의 항공전력은 크게 3가지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이종태님의 Red Star/VVS 홈페이지에서 설명된 표를 그대로 인용하겠습니다. 추후 독소전의 연재에 있어서 소련공군 부대명칭은 이 표의 내용에 준해서 진행될 것입니다. (보다 세부적인 내용은 이종태님의 홈페이지에 나와있으니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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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에 대한 숙청에 더해서 소련 항공산업에서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던 민간 항공기술자들에 대한 숙청도 소련군의 항공전력 약화를 초래했다. 예조프시나의 기간동안에는 지식인들에대한 탄압도 상당했는데, 항공기술이라는 첨단산업을 이끌어가던 수백명의 항공기술자들이 반동혐의나 간첩혐의로 투옥되었고 이들은 처형되거나 강제노역 수용소로 끌려갔다. 이들에게도 온갖 억지 죄명이 덮어씌워졌는데, 한 기술자는 자신이 설계한 비행기를 탑승한 공산당간부가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하자 반역행위를 했다는 죄명으로 체포된후 재판도 없이 총살당했을 정도였다. 특히 소련 항공산업의 기틀이었던 각 설계국의 소장들 중에서도 많은 수가 이유없이 체포되어 징역형을 받았는데 이중에는 유명한 항공기술자인 투폴레프와 같은 인물도 포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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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의 유능한 항공기 기술자였던 안드레이 니콜라예비치 투폴레프 -
그도 대숙청의 과정에서 처형당할 뻔했으나, 다행히 처형만은 면하고
감옥에서 항공기 설계를 계속할 수 있었다. ]
스탈린 스스로가 빼든 칼에 의해 소련의 항공산업과 공군력은 같이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혹독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훗날 야크 전투기나 IL-2 슈트로모빅과 같은 우수한 항공기들이 등장해 구국의 선봉에 설 수 있었던 것은 그야말로 기적과도 같은 것이었으며 이것은 오로지 항공에 대한 기술자들의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하튼 이렇게 내부로부터 날개가 잘려 버린 소련공군이 1939년 겨울에에 핀란드의 혹독한 겨울하늘에서 약소국 핀란드의 보잘 것 없는 공군에게 쩔쩔매면서 혼쭐이 난 것은, 어떻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풍전등화
소련측이 2차대전중의 세부기록을 담은 문서들을 전후에 거의 공개하지 않았으며, 1990년 소련이 붕괴한 이후에서야 많은 자료들이 서방에 공개되었지만 자료들마다 기술하는 바가 조금씩 차이가 있어서 1941년 6월 전쟁이 임박했을 무렵의 공군전력을 정확하게 파악한다는 것은 어렵지만, 이 모든 자료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은 1941년 6월에 스탈린의 붉은공군이 가진 항공전력은 숫자상으로는 독일공군에 충분히 맞설 수 있을 것으로는 보였을지는 몰라도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매우 절망적인 상태였다는 점이다.
[ 소련공군 전투기부대의 핵심전력이었던 I-16 전투기 ]
전체적으로 볼 때 소련공군이 보유하고있는 대부분의 항공기가 너무 시대에 뒤떨어진 구식이라는 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
가장 중요한 전투기를 먼저 살펴보면 전체 전투기중 75%가 이미 오래전에 구식이 되 버린 I-16, I-15 시리즈였다. 붉은공군의 가장 중요한 전투기였던 폴리카르포프 I-16 단엽전투기의 경우 1935년에 등장할 당시에는 세계최고 수준이었을지는 몰라도 이미 스페인내전에서 독일공군의 Bf 109 초기형에게 모든 면에서 열세를 보였었다.
더구나 4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1941년을 기준으로 볼 때, 독일공군이 장비한 Bf 109F는 스페인에서 소련공군이 만났던 Bf 109B/D형과는 차원이 다른 엄청난 전투기였던 것이다. 동부전선의 항공전은 대부분 고도 1만피트 정도에서 벌어졌는데 이 고도에서 Bf 109F는 I-16보다 시속 100km 정도 빨랐다. 물론 I-16의 경우 15초 이내에 수평선회를 완벽하게 해낼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기동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공냉식 성형엔진의 우수한 방호력으로 인해 전투손상을 견디는 능력이 뛰어났다고는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 승부하기에는 속도의 차이가 너무 컸다.
[
I-16과 함께 수적인 주력 전투기였던 I-153, 이런 구식 전투기가 현대 항공전에서
살아남기는 매우 어려웠다. ]
여기에 I-16과 함께 숫적인 주력 전투기였던 I-15 시리즈 (I-15, I-15bis, I-153) 전투기의 경우에는 이미 구세대의 유물로 취급되는 복엽 전투기였다. 이중에서 마지막 개량형인 I-153의 경우 복엽기로서는 극한의 성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며 I-16보다 조금 느린 정도의 고속 성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어느모로보다 독일공군의 전투기와 맞서 싸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사실 소련공군도 스페인내전에서의 경험과 서부유럽의 항공전 양상을 지켜보면서 보다 새로운 항공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지하고는 있었고, 항공기들의 세대교체를 추진하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런 계획은 이런 저런 이유로 지체되어 독소전이 시작되기 몇 개월 전에야 항공기들의 현대화 계획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었으나 대숙청이라는 소련내부의 혼란상황으로 인해 그 진행속도가 매우 더딘 상태여서, 독일의 공격이 임박했을 무렵에서야 초기형 모델들이 생산되고 있었고, 그중 일부가 인도되는 중이었다.
이무렵 소련공군의 미래를 책임지게될 3종의 새로운 전투기들이 선을 보였는데, 이중에서 가장 먼저 일선부대에 배치된 것은 새롭게 부상하는 미그 설계국의 신형 단엽 전투기인 MiG-3였다.
[ 상당히 세련된 디자인의 미그-3, 고고도 요격기로 태어난 기체여서 저공에서의 작전에는 문제가 많았다. ]
이 미그-3 전투기는 고고도로 침투해올지 모르는 독일폭격기를 요격하기 위해 설계된 기체였으므로 고도 25000피트 이상의 고공에서는 상당히 우수한 성능을 보여주었으나 공기 밀도가 높은 저공으로 내려오게되면 비행성능이 뚝 떨어지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막상 독소전이 시작되자 대부분의 항공전은 고도 1만피트 이내의 저고도에서 벌어졌기 때문에 미그-3의 경우 저고도로 내려와 전투에 뛰어들어야 했는데 저공으로 내려오면 미그-3의 전체적인 비행성능이 급속하게 저하되었으며, 특히 비행안정성에 큰 문제가 있어서 갑자기 스핀에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 경우 많은 신참 조종사들이 스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추락하는 경우가 속출했으므로 대부분의 조종사들은 미그-3를 조종한다는 것 자체를 상당히 두려워했다. 미그-3는 신예 전투기중 생산속도가 가장 빨라서 독소전 개전무렵인 1941년 6월까지 무려 1300기에 달하는 많은 수가 생산되어 이중 400여기 이상이 독일과의 국경지역에 배치된 실전부대에 인도 된 상태였다.
[ 또 하나의 신형전투기 라그-3, 훗날 조종사들의 관이라는 별명을 얻게되는 기체이다. ]
두 번째의 신예기는 LaGG-3 전투기였다. 라포츠킨의 주도하게 설계된 이 라그-3 전투기는 세련된 외형과 달리 그 성능에서는 미그-3에 못지않게 매우 불만족스러운 기체였다. 미그-3야 고공성능이라도 좋았지만 이 라그-3는 아무런 특징이 없었고 심지어는 I-16과의 성능 비교에서도 상승속도나 선회성능에서 오히려 떨어지는 어처구니없는 결과까지 나타났다. 특히 기동성이 형편없어서 수평선회를 하는데 30초정도가 소요될 정도였는데 이사이 I-16은 거의 2바퀴의 선회를 해낼 수 있었다.
더구나 기록상의 최고 속도는 시속 560km 정도였지만 제작공정에서 신뢰성이 떨어지다보니 실제 생상된 기체들은 시속 500km를 간신히 넘을 정도였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기대이하의 성능을 보였다. 독소전이 시작되기 전까지 322기가 생산된 라그-3는 전투손상에 매우 취약한 기체임이 드러나는데, 몇발 안되는 명중탄만 맞아도 쉽게 불덩어리가 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이로인해 독소전 초기에 엄청난 손실을 기록하게되고 소련 조종사들로부터는 '하늘을 나는 관'이라는 별명을 얻게된다.
[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은 신형 전투기 야크-1a, 훗날 소련공군 조종사들의 사랑을 받게된다. ]
그러나 또 하나의 신예 전투기는 좀 달랐다. 알렉산더 야코블레프가 이크는 야크 설계국의 신예기인 Yak-1은 I-16, 미그-3, 라그-3와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우수한 성능을 보여준 것이다. 야크-1은 미그-3나 라그-3를 완전히 압도하는 우수한 운동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19초정도만에 완벽한 수평선회를 해낼 수 있었다. 그러나 가장 큰 장점은 중-저고도에서의 우수한 비행 안정성으로 조종하기가 매우 쉬운 기체였다는 점이었다.
따라서 기종전환이 매우 용이했고 신참 조종사들도 수월하게 조종할 수 있었다. 시속 580km까지 낼 수 있었던 야크-1 전투기는 영국공군의 허리케인 전투기보다 우수한 성능을 가지고 있으며 스핏화이어 초기형이나 Bf 109E 초기형과도 호각의 성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는데, 실전에서도 독일공군의 전투기들과의 공중전에서 적과 아군의 조종사들로부터 가장 좋은 평가를 얻게된다. 그러나 이 야크-1 전투기는 불과 400여기만이 생산된 상태였으며 실전부대에 인도된 기체수는 그보다도 젂었고, 무엇보다도 이 신형 전투기를 조종할 수 있는 기종전환 교육을 받은 조종사들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였다. (사실 이 3종의 신형 전투기의 생산양을 모두 합치면 무려 2000여기 이상되는데, 이 숫자만을 놓고 보면 독일공군의 전투기를 모두 합친 것보다도 많았다.)
[ 4발 중폭격기 TB-3, 훗날 독일전투기들이 가장 좋아하는 먹이감이 된다. ]
한때는 스탈린의 총애를 받으며 세계최고 수준의 전력을 목표로 양성되던 소련공군의 폭격기병단도 상당히 한심한 상태였다. 이들은 핀란드에서의 엄청난 피해로 인해 체면을 있는대로 구겨 버린 데다가, 스탈린이 폭격기병단에 크게 실망하고 지원을 줄여버리면서 구식화된 폭격기들을 도태시키지 못하고 그대로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주력 폭격기는 쌍발의 DB-3와 SB 폭격기였는데 이들의 성능은 독일공군의 Do-17과 비견되는 정도였지만 독일공군의 요격망을 뚫고 적진으로 침투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특히 이 두기체는 방호력이 매우 취약하여 훗날 독일공군 조종사들이 가장 선호하는 사냥감으로 전락하게 된다. 1930년대 초반 소련이 폭격기병단을 육성하는 과정에서 장거리 폭격기로 운용되던 TB-3 중폭격기의 경우도 이미 구식이 된지 오래였다. 이들은 이미 겨울전쟁에서 핀란드의 얼마안되는 전투기들에게 큰 피해를 입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강력한 독일공군과 일전이 벌어진다면 어떤 운명에 처하게될지는 자명했다.
[ 신형 고속 폭격기 Pe-2, 훗날 지상군의 든든한 지원자가 된다. ]
하지만 이무렵 소련공군이 막 선을 보였던 새로운 고속 폭격기인 페트랴코프 Pe-2와 근접지원을 임무로 설계된 일류신 IL-2의 경우는 상당히 뛰어난 항공기들이었다. 이들 기체는 독소전의 개전이후 이들과 마주친 독일 조종사들이 매우 놀랄정도로 상당히 우수한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이 기체들은 훗날 소련군의 대대적인 반격과 함께 독일군을 가장 괴롭히는 존재가 될 운명을 가지고 있었지만, 1941년 6월에는 각기 200여기정도만이 생산된 상태였고 이 기체를 몰게된 조종사들의 교육도 아직 불충분했다.
[ 2차대전사에 길이남을 위대한 지상공격기 IL-2, 훗날에는 독일지상군이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가 되지만...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신예기들의 생산양은 예상을 넘어서는 수치를 보여주는데 1941년 6월을 기준으로 미그-3, 라그-3, 야크-1, Pe-2, IL-2와 같은 신형기들을 모두 합쳐서 무려 2700여기에 이를 정도였다. 그러나 이렇게 많이 생산되었음에도 이 기체들은 아직 신뢰성에 문제가 많았으며 이런 신형기를 효율적으로 일선부대로 배치하고 기종전환 교육과정을 진행할 만한 역량이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이중 1400여기가 서부지역의 독일과의 접경지역으로 배치되었지만 이 신형기를 조종할 만한 능력을 가진 조종사는 불과 200여명에 지나지 않았고 이 기체를 능숙하게 정비할 만한 인력도 부족했으며 부품의 공급도 원할치 않았다.
더구나 대숙청의 과정에서 우수한 베테랑 조종사들을 대규모로 처형시켜 버린 덕분에 소련공군은 조종사 자원 자체가 너무나도 부족한 상황이었다. 경험많은 조종사들을 손쉽게 숙청시킨 것은 소련공군의 질적인 저하를 부채질하는 겪이었고 그 여파는 쉽게 복구될 수 없었다. 이런 베테랑 조종사 1명을 숙청시켜 버리면 단지 1명의 조종사를 잃는 것이 아니라 그가 교육하고 양성해야할 수많은 신참 조종사들을 모두 잃는 셈이었다. 제대로된 조종사를 양성하는데는 아무리 빨라도 약 2년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소련공군에게는 시간도 없었고 신참 조종사들을 훈련시킬 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교관급 조종사 자체가 너무나 부족했다.
[ 미그-3에 탑승한 조종사, 이런 신형 전투기를 조종할 만한 인적 자원이 매우 부족했다. ]
1941년 6월을 기준으로 소련공군은 구형기와 신형기를 모두 합쳐서 총 7000여기에 달하는 각종 항공기들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이제 막 비행학교를 졸업한 햇병아리 조종사들까지 다 긁어모은다 해도 1000여기 이상의 비행기가 조종사가 없어 날아오르지 못할 정도였으며, 이들 조종사들의 70% 정도가 현대 항공전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훈련비행 시간도 이수하지 못한 상태였다. 조종사가 태부족이었던 소련공군은 한마디로 이착륙만 할 줄 알면 비행학교를 졸업시킨후 실전부대에 배속해 버렸던 것이다. 이런 조종사들이 베테랑 독일조종사들과의 대결에서 살아남을 확률은 극도로 낮았다.
소련공군에게는 또하나의 약점이 있었는데 각 항공기들에 장비된 무선통신 장치들이 매우 낙후되어 거의 기능을 하지 못하거나 기능을 하더라도 효과적인 의사전달이 불가능할 정도로 불량한 성능을 가졌다는 점이었다. 이러다보니 대부분의 조종사들은 수신호에 의존해서 편대비행을 수행해야 할 정도였는데, 이러다보니 독소전 개전이후 고성능의 무선통신장치를 장비한 독일공군의 항공기들과의 대규모 결전에서 소련항공기들의 생존확률을 크게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 TB-3에서 뛰어내리는 공수부대 병사들의 훈련 모습, 1940년이후 이런 훈련조차 거의 없어지고 만다. ]
게다가 항공기의 운용능력이나 보급, 지원 능력과 같은 면에서 볼 때도 붉은공군의 상황은 너무나 한심했다. 소련공군은 서쪽 국경지역에 400여개 이상의 비행장을 건설하고자 했는데 이렇게 많은 비행장들을 너무나 급하게 건설하다보니 날림공사가 될 수 밖에는 없었고, 완성된 비행장에대한 보급 물자지원이 너무나 열악했다. 독소전이 시작될 무렵까지 250여군데의 비행장이 만들어졌으나 너무 급하게 대충 대충 만들어진 비행장에는 조악한 활주로 하나만 덩그러니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항공기를 엄폐할 만한 격납고는 전혀 없어서 항공기들을 활주로 옆에 일렬로 세워 놓아야 했고, 조종사들과 정비원들은 간이 야전천막에서 생활해야했다.
심지어는 연료저장소도 없어서 연료가 바닥난 비행기들이 날아오르지 못하고 하염없이 대기해야하는 경우가 빈번했으며, 얼마안되는 급유차량이 이 비행장, 저비행장으로 비행장으로 기름을 싣고와 항공기들에게 직접 급유를 해야하는 형편이었다. 비행장들에 야간에 비행기를 유도할 만한 시설은 거의 없었으며 신형기를 보급받는다고 해도 이를 운용하고 정비할 만한 부품의 보급이 원활치 못했으며 신참 조종사들을 훈련시킬 만한 시설도 전혀 없었다.
사실 이런 물자와 기반시설의 부족함도 문제였지만, 그보다는 대숙청시기에 가라앉은 군내부의 분위기로인해 군의 사기가 바닥을 치고 있다는 점이 더 문제였다. 만일 어떤 장교가 나서서 열심히 부하들을 훈련시켰다가는 '누가 네멋대로 훈련하라고했어? 너 독일간첩 아냐?' 하고 비밀경찰에 체포되어 숙청될지도 모르는 살벌한 분위기였던 것이다. 이러다보니 훈련비행한번 하고 싶어도 상관에게 허락받아야 하고, 그 상관도 상부에 보고해서 허락받아야 하고.. 그 상부도 당 위원에게 물어봐야하는... 그야말로 아무도 책임지기 싫어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실제로 벌어졌던 것이다. 그저 위에서 시킬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었던 것이다.
만일 실제로 독일공군이 공습해 온다고 해도 야전 지휘관들은 즉각 아군 요격기의 비상출격을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상부에 '지금 독일놈들이 우리 비행장을 폭격하는 중인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합니까?' 하고 물어봐야 했던 것이다. 이런 긴급한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스탈린의 허락없이 아군기들을 날려보냈다가는 숙청당할지도 몰랐다. 일견 너무나도 말도 안되는 농담 같지만 일선 장교들에게 자율성이라고는 하나도 주어지지 않았던 그 당시에는 이것이 엄연한 현실이었다.
독일공군의 독수리 발톱을 세우다
소련공군이 내부로부터 붕괴되고 있는 한심한 지경에 처해있었던데 반해 그들을 노리는 독일공군의 상황은 정반대였다. 소련침공을 목전에 두고 있었던 독일공군은 지난 2년간의 전격전에서 선보인 우수한 항공기들을 더욱 발전시키고 있었으며 조종사들의 실력도 계속 향상되는 중이었다. 비록 영국본토항공전에서 첫 번째 실패를 경험했으며 많은 조종사들을 잃었지만, 그들을 대체하고도 남을 만한 수의 새로운 조종사들이 계속 양성되어 전선에 배치되고었으며, 스페인 내전이래로 수많은 현대 항공전을 경험한 조종사 자원은 아직도 풍부했다. 치열한 영국본토 항공전을 경험한후 독일 전투기 조종사들의 전술적인 능력은 훨씬 높아졌고 이를 지원하는 지상정비원들의 능력도 한층 업그레이드 되었다.
히틀러가 신임하던 유능한 전투기부대 지휘관 베르너 묄더즈가 이끄는 독일공군 전투기 조종사들의 기량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신참 조종사들은 수많은 전투를 경험한 선배 조종사들로부터 공중전술을 배웠으며, 전장에서 살아남는 방법과 공중전에서 승리하는 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독일공군의 훈련강도는 대단한 수준이어서 신참 조종사들도 단 기간안에 자신의 전투기를 능숙하게 조종할 수 있었다. 독소전이 임박했을 무렵, 독일공군내의 사기는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은 상태였다.
[ 1941년 6월, 독일공군의 주력전투기였던 Bf 109F-2, 세계 최강의 전투력을 가진 기체였다. ]
소련침공전의 선봉에 서게될 독일공군의 주력 전투기는 신예 Bf 109F 전투기였다. 이 전투기는 전격전과 영국본토항공전에서 맹활약했던 Bf 109E의 후속 모델로서, 1300마력을 자랑하는 새로운 다이믈러 벤쯔엔진을 동력으로 하고 공기역학적인 측면에서 개량이 이루어졌다. Bf 109F형은 고도 22000피트에서 최고속도가 시속 630km에 이르게 되어 E형에 비해 시속 50km 이상 빨라졌으며 작전 가능 고도는 37000피트까지 높아졌고 순항속도로 비행하는 경우 712km의 항속거리를 가지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공중기동능력이 탁월해져 영국공군의 주력전투기 스핏화이어의 최신 모델인 Mk V형과의 근접공중전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 능력을 자랑했으니 Bf 109F는 당대 최강의 전투기로서 전혀 손색이 없었다. 물론 일부 부대에는 아직 기종교체가 늦어져 Bf 109E형을 장비된 경우도 있었다. 비록 Bf 109E가 독일공군내에서는 점점 구식전투기가 되어가고 있었지만 이 109E형만해도 1941년을 기준으로 볼 때는 소련공군의 어떤 전투기보다도 훨씬 우수한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 소련침공전에 투입될 전투기들 - Bf 109F형과 E형이 섞여있다. ]
물론 Bf 109E/F에게도 단점은 있었는데, 그것은 이미 영국본토항공전에서도 드러났듯이 짧은 항속거리였다. 사실 109가 애초부터 장거리 비행을 위한 설계가 전혀 고려되지 않은 순수한 요격/제공 전투기였기 때문에 그 태생적인 한계에 해당되는 요인이었지만 광대한 소련의 영토에서 작전을 할 때는 분명히 약점이 될 수 도 있었다.
독일공군은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장거리비행이 가능한 쌍발의 Bf 110 젤스퇴러 전투기들을 장거리 공격용으로 활용할 예정이었다. 강력한 무장에도 불구하고 둔중한 공중기동성으로 인해 영국본토항공전에서 영국의 스핏화이어와 허리케인 전투기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Bf 110이었지만, 소련공군의 구식 항공기들과의 승부에서는 상황이 좀 달랐다. 최고속도 560km의 속도와 우수한 방호력을 가진 Bf 110은 소련의 구식 전투기들과의 만나더라도 충분히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은 것이다.
[ 소련침공작전에서 새로운 기회를 부여받은 Bf 110 전투기 ]
[ He 111 폭격기, 역시 대활약이 기대되는 독일 폭격기부대의 주력기였다. ]
소련침공작전에서 새로운 기회를 부여받은 것은 Bf 110만이 아니었다. 영국본토항공전에서의 커다란 실패를 경험했던 독일 폭격기부대들도 구식 소련 전투기들의 방어망정도는 쉽게 뚫을 만한 충분한 능력이 있었던 것이다. 주력 폭격기 트리오인 He 111, Do 17, Ju 88과 같은 중형 폭격기들도 1941년의 소련공군 항공기들의 능력에 견주어볼 때 충분히 활약할 만한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더구나 세계최강의 전력을 자랑하는 독일공군의 전투기부대가 소련공군의 전투기들을 단시간안에 하늘에서 몰아낼 것이 분명했으므로 이들에게는 장미빛 미래가 보장되는 듯 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영국본토 항공전에서 명성에 먹칠을 하며 가장 큰 수모를 당했던 Ju 87 슈투카 급강하 폭격기야말로 가장 큰 활약이 예고된 항공기였다. 서유럽의 전격전 초기에 하늘의 공포라는 전설을 창조하며 프랑스 침공작전까지 엄청난 활약을 하며 용명을 날렸던 슈투카가 영국상공에서는 전투의 초반부터 고성능의 영국전투기들에게 속수무책을 격추당해 영국상공으로의 실전비행이 금지될정도의 굴욕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소련 항공작전에서는 공폭작전의 중핵으로 엄청난 활약을 할 것이 기대되는 존재였다.
[ 영국본토항공전에서 큰 수모를 당했던 슈투카, 독소전에서는 어떤 면모를 보여줄 것인가? ]
그러나 위와같은 낙관적인 전망의 이면에 독일공군도 두가지의 불안요소를 가지고 있었다.
그 첫번째는 독일폭격기 병단의 주력 폭격기들이 전선 주위에서 주로 활동하는 전술공군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키워지다보니 소련의 후방에 위치한 공업지대를 폭격할 수 있는 항속거리를 가진 장거리 전략폭격기가 없다는 점이었다. 사실 이점은 이전의 영국본토항공전에서도 노출된 문제점이었지만 새로운 전장이 될 소련의 영토는 영국본토항공전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었기 때문에 독일공군에게는 소련의 후방에 위치한 군수공장들을 공격할 방법이 없었다. 그러니까 독일군으로서는 소련군의 항공기와 전차들의 생산을 막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야말로 전장에서 하나 하나 싸워서 격파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독일측은 소련의 잠재력을 매우 과소평가하고 있었지만 노동자의 나라 소련은 무시하지 못할만한 잠재적인 산업생산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만일 독일군이 최대한 신속하게 소련군을 괴멸시키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지 못한채 전쟁이 장기화 된다면 소련의 군수공장들이 전시체재로 돌입하여 수많은 무기를 생산해 낼 수도 있었던 것이다.
사실 과거 독일공군내에도 4발 중폭격기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이의 개발을 추진하던 발터 베버 장군과 같은 선견지명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1936년 발터 베버가 사고로 사망한데다가 서유럽의 전격전에서 독일공군이 너무나 눈부신 활약상을 펼친 덕분에 독일공군은 4발 중폭격기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고, 결국 장거리 폭격기 개발계획은 중단된채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이다.
[ 발터베버가 추진하던 '우랄폭격기'계획에 의해 4발 중폭격기로 시험비행까지 했던 Do 19 (위)와 Ju 89 (아래) ]
두 번째의 불안요소는 약간 불안해보이는 항공기의 숫자였다. 1941년 6월까지 독일공군은 프랑스와 지중해-북아프리카 전선에 배치된 항공기들중에서 최소한의 필요량을 제외한 모든 항공기들을 모조리 긁어모아 소련국경지역으로 이동시켰다. 이렇게 모인 항공기들을 분석해보면 총 775기의 중형폭격기와 310기의 슈투카 급강하 폭격기가 폭격기 부대의 주요 전력을 이루고 있었으며, 여기에 상공을 장악해야하는 전투기부대들은 총 830기의 Bf 109E/F 전투기들과 90기의 Bf 110 전투기가 동원된 상태였다. 그리고 765기의 각종 지원 항공기들이 그 뒤를 받치고 있었다. 여기에 이미 전선에서 물러났어야할 구식 항공기들까지 모두 헤아린다고 해도 독일공군은 총 4300여기의 항공기밖에는 준비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숫자는 얼핏보면 대단해 보이지만 1년전 영국본토항공전이 시작될무렵의 독일공군의 전력에 비해서도 그다시 향상된 상태는 아니었다. 전쟁이 시작되어 독일군이 광대한 소련의 영토로 계속 진격해들어가는 경우 점점 넓어지게 될 동부 전선에서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하기에는 충분치 못할 수도 있었고, 만일 독일의 소련 침공계획이 계획했던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는다면 독일공군의 숫자상의 약점은 치명적인 결점이 될 수도 있었다. 더구나 이런 항공전력이 최대한 빠른 시일안에 독일침공작전을 완수하고 원래의 위치로 돌아오지 못하고 소련에서 시간을 소비한다면 영국본토와 북아프리카 지역의 영국공군이 점점 전력을 회복하여 반격을 가해오게 될 것이고 이 경우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었다.
이런 요인들로 인해 독일공군의 입장에서는 소련 침공작전이 히틀러의 계획대로 최대한 빠른 시간안에 끝나야 했다. 과연 독일군은 서유럽 전토를 석권할 때 처럼 질풍노도와 같은 전격전으로 동토의 불곰 소련군을 신속하게 격멸하고 히틀러의 야망대로 광대한 동부유럽을 손아귀에 넣을 수 있을 것인가?
[ 소련 침공작전을 목전에 두고 동부유럽에 전개한 독일의 Bf 109F-2 전투기들을 담은 일러스트 ]
무시되는 위협
독일의 침공일자가 임박해오면서 여러 가지 수상한 징후들이 나타나고 흉흉한 정보들이 계속 입수되고 있었다. 최전방에서는 독일 정찰기들의 활동이 증가했는데, 어떤 정찰기는 노골적으로 소련의 최일선 비행장 상공에 나타나 한참을 배회하다가 돌아가기도 했다. 자국의 영토, 그것도 공군기지 상공에 독일기가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소련공군은 적극적인 요격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상부에 독일기의 출현을 보고하고 이제는 어떻게 해야하느냐 문의한후 기다려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는 사이 독일정찰기는 돌아가 버렸고, 그들이 기다리던 스탈린의 허락은 감감 무소식인 경우가 허다했다.
[
정복전쟁의 승리를 자신하는 히틀러에 의해 소련으로 진군하는
독일 병사들, 이들중 대부분은 다시는 조국의 땅을 밟지 못하게 될 것이다.
]
소련군의 최전방 지휘관들은 양군의 접경지역에 새로운 독일군 부대들이 속속 증강되고 있으며 전차와 중포들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는 것을 불안하게 지켜보고 있었고, 영국과 미국의 정부로부터 스탈린에게 독일의 침공관련 위험징후에 대한 경고가 여러번 타전되었다. 이중에서도 가장 사실에 가까운 내용을 담고 있었던 것은 일본에 파견된 소련의 전설적인 첩보원 리이하르트 조르게의 정보였다. 그는 일본의 독일외교관들로부터 빼낸 비밀 정보를 소련에 긴급타전했는데 여기에는 구체적인 독일군의 침공일자와 병력상황등이 들어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된 것인지 스탈린은 이런 모든 위험신호를 무시하고 있었다. 그가 당면한 현실로부터 도피하고 싶었던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히틀러와의 불가침 조약을 철썩같이 믿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스탈린은 독일의 침공징후에 대한 정보가 보고될 때마다 '그럴리가 없다!'고 잘라 버렸다고 한다. 오히려 스탈린은 일선 지휘관들에게 '독일군을 자극할 수 있는 쓸데없는 군사행동'을 절대로 하지 말라는 엉뚱한 명령을 내려놓았던 것이다. 결국 독일이 침공하기 바로 전날까지도 국경지역의 소련군은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리고 하늘이 갈라지고 땅이 무너질 엄청난 재앙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으니 , 시계의 초침은 1941년 6월 22일 새벽 2시를 막 지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