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IV : 얼어붙은 동부전선
(Target Moscow)
This document was updated at 2013. 3. 26
* 지상은 어떠한가?
개전 1주일째인 6월 29일 중부집단군의 기갑부대가 독일공군기들의 절대적인 지원을 받으며 전략적인 요충지 민스크에 집결해있던 소련군을 포위하기 위하여 북쪽과 남쪽으로 신속하게 돌아들어가 협공하여 소련군의 퇴로를 막아 버리자, 소련군 수십만명이 민스크 포위망에 갖혀 버렸다.
민스크 상공을 완벽하게 장악한 독일항공기들이 활개치고 다니며 소련방어군을 공격했으며 전선의 후방에는 이미 독일 전차부대가 퇴로를 막아 버린 상태였고, 폭격이 끝난후 독일보병대가 들이닥치면서 포위된 소련군을 압박하기 시작하면서 일방적인 포위섬멸전이 벌어졌다. 결국 포위망에 갖힌지 며칠만에 공황상태에 빠진후 완전하게 전의를 상실한 소련군들이 저항을 포기하고 항복했으며 민스크지역에서 포로가 된 소련군은 약 30만명에 달할 정도였다.
[ 서쪽으로 끌려가는 소련군 포로들, 그들 대부분은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
개전 11일째가 되면서 소련군의 전면적인 붕괴가 명약관화해지고 소련군의 전력으로는 독일군의 진격을 도저히 막아낼 수 없다는 것이 자명해지자. 그동안 망연자실한 상태로 계속 말을 아끼면서 관저에서 두문불출하던 스탈린이 드디어 전면에 나섰다. 그는 이날 소련국민들의 애국심에 호소하기 위하여 라디오로 조국의 위기에 대한 연설을 방송했다.
“위대한 소련의 인민 여러분, 조국의 대지가 독일 침략자들에게 유린당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모두 일어서 적군과 맞서 싸워야 할 때입니다. 농민, 노동자, 지식인들 모두가 총을 들고 일어섭시다! 침략해오는 적들이 우리의 대지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단 한 톨의 곡식도 넘겨주면 안됩니다. 후퇴를 하게되면 모든 것을 파괴하고 불태워 버려야 합니다!”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소련이 선택한 것은 100년전 유럽전역을 석권한 무적의 나폴레옹군대가 드디어 러시아를 침공해왔을 때 러시아군대가 사용했던 것과 같은 방법이었다. 스탈린은 '초토화 작전'으로 독일 침략군에게 대항하기로 한 것이다. 사실 이것은 절대절명의 위기에 몰린 소련군이 소련의 광대한 국토를 이용하여 독일군에게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방어책이었고, 훗날의 결과를 놓고 볼 때 매우 효과적인 전술이었다는 것으로 평가받게 된다.
사실 소련의 광대한 영토는 침략군인 독일군의 입장에서는 골치거리가 아닐수 없었다. 특히 최전선에서 신나게 질주하는 전차부대를 비롯한 독일군 전체의 보급을 담당한 보급장교들에게는 하루 하루 독일군이 수십km씩 맹열하게 진격해나갈때 마다 계속 길어지는 보급선을 유지하기 위하여 가슴을 졸이지 않을수 없었던 것이다. 사실 독일본토로부터 동부전선으로 진격해들어가는 300만대군을 먹여살릴 식량과 전투에 필요한 물자를 실어나른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어서 독일군은 애초부터 가급적 현지에서 노획한 식량과 물자를 최대한 이용하려고 했다. 그런데 소련군이 도망을 치면서 사용할 만한 모든 것을 불태워 버린다면 이야기가 달라지는 것이다.
[ 마을의 곡식창고에 불을 지른후 후퇴하는 소련군, 초토화 작전이 시작되었다. ]
드디어 스탈린의 명령이 떨어지자, 괴멸의 위기에 몰렸던 소련군은 대혼란상황에서도 어느정도 조직적으로 후퇴하기 시작했으며 스탈린의 명령대로 독일군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은 철저하게 파괴해 버렸으며 식량으로 쓰일 만한 것들은 모조리 불태워 버리기 시작했다. 광활한 국토를 무기로 하는 이른바 초토화작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탄력이 붙은 독일군의 진격속도는 전혀 느려지지 않았다. 민스크를 점령한후 모스크바를 향한 주요 요충지인 스몰렌스크를 공격 목표로 정한 중부집단군은 쾌속진격을 거듭하여 민스크에서 대승을 거둔지 불과 1주일만에 스몰렌스크까지 접근했다. 그리고 여기에서 또다시 기갑부대를 앞세운 협공작전이 시도되었으며 신속하게 북쪽과 남쪽으로 돌아들어간 전차부대들이 7월 22일에 스몰렌스크 동부에서 만나 약 31만의 소련군을 포위망에 넣어 버리는데 성공한후 후속 보병대가 도착하여 포위망에 갖힌 소련군을 섬멸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 스몰렌스크를 향해 질주해들어가는 구데리안 지휘하의 전차부대 ]
하지만 전차들이 너무 빨리 전진해 들어가 버린 상태여서 후속 보병대는 5일이 지나서야 간신히 도착하여 포위망을 후위에서 압박할 수 있었다. 기계화부대의 전진 속도를 보병들이 따라가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던 것이다. 이후 포위섬멸전은 9일간의 기간동안 진행되었으며 결국 또다시 엄청난 숫자의 소련군 포로들이 항복한후 포로가 되어 서쪽으로 끌려갔다.
스몰렌스크는 모스크바에서 서쪽으로 불과 360km밖에 떨어져있지 않은 드네프르강의 상류쪽에 위치하여 항구를 가진 도시이자 서유럽과 모스크바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였다. 여기에서 모스크바, 민스크, 브리얀스크등지를 연결하는 철도와 간선도로들이 연결되고 있으며 1812년 나폴레옹전쟁 당시에도 나폴레옹이 가장 중요시 여겼던 목표지점이었던 것이다.
[ 스몰렌스크를 점령한후 뿌듯한 표정으로 부하들을 격려하고 있는 하인츠 구데리안 장군 ]
스몰렌스크가 함락된후 전력을 재정비한 중부집단군의 선도부대는 이제 모스크바까지 겨우 320km 정도만 남겨둔 상태였다. 스몰렌스크로부터 모스크바까지 이르는 길목에는 이제 대규모 소련군 부대가 없는 것으로 보였으며 이대로만 진행된다면 독일군의 예정표대로 여름의 끝 무렵이면 모스크바를 함락시킬수 있을것으로 보이는 낙관적인 상태였다.
* 독일공군의 행복한 시절
이렇게 독일육군이 동쪽으로 쾌속 진격을 거듭하고 있을 때, 하늘에서는 독일공군도 한수 아래의 소련공군을 상대로 손쉬운 격추전과를 기록하며 연일 승전보를 올리며 최고의 시절을 누리고 있었다.
특히 개전이후 몇 개월 동안에는 독일 전투기 조종사들의 격추 페이스가 최고조에 달하게 되는데 그들이 하늘로 날아오르면 어디에나 구식 소련항공기들이 널려있었으며 특히 손쉬운 먹이감으로 독일조종사들이 가장 좋아하던 '뫼벨바겐 (중형 폭격기)'들을 어디서든지 사냥할 수 있었다. 더구나 전투기간의 공중전에서도 대부분의 경우 소련 조종사들의 기량이 독일조종사들에 비해 한수 아래였으므로 전투경험이 많은 독일 조종사들은 공중전에서 쉽게 승리할 수 있었다. 이렇게 개전초의 몇 개월간 눈부신 승전을 거듭하던 기간을 소위 ‘독일공군의 행복한 시간’이라 부르게 된다.
[ 최고의 에이스로 명성을 날리며 독일공군의 영광을 상징하던 JG 51 비행단장 베르너 묄더즈 ]
이 대승전의 몇 개월동안 수많은 전투기 조종사들이 자신과 소속 부대의 명예를 걸고 경쟁적으로 적기 격추 쟁탈전을 벌이게 되는데, 그중에서도 단연 최고의 격추성과를 달성하고 있었던 인물은 독일공군의 영광을 선도하고 있었던 최고의 영웅으로 JG 51의 비행단장을 맡고 있었던 베르너 묄더즈였다.
이무렵 베르너 묄더즈의 격추페이스는 놀라울 정도여서 개전이후 1주일여가 지난 6월 30일에는 독일공군의 전설적인 영웅이자 1차대전 최고의 에이스였던 만프레드 폰 리히토펜이 기록한 최고의 격추기록 80기 격추에 마침내 도달했으며, 7월 15일에는 최초로 100기의 개인 격추기록을 달성하며 단연 최고의 에이스로 명성을 드높이게 된다. 베르너 묄더즈의 격추 페이스는 다른 조종사들과 비교해볼때 정말로 놀라울 정도였다. 두 번째로 100기의 격추기록에 도달한 귄터 뤼초프는 묄더즈가 100번째 적기를 격추한지 3개월이나 지난 10월 24일이 되어서야 센추리클럽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고 10월 26일에는 발터 외자우가 3번째로 센추리클럽에 등록하게 된다.
[ 묄더즈에 이어 두 번째로 100기 격추를 돌파한 귄터 뤼초프 ]
개전초기 소련공군은 급속도로 붕괴되어가는 전장의 상황을 냉철하게 판단하여 최전선에서 전력을 쉽게 소모하지 말고 일단 후방으로 조직적으로 후퇴한 후 전열을 가다듬은 후에 조직적인 반격을 하는 쪽으로 전략을 수정해야 했었지만, 스탈린의 절대 사수 명령에 따라 지휘관들은 전략적인 후퇴나 조직적인 반격같은 것은 생각도 할 수 없었으므로, 살아남은 항공기들을 계속 전선으로 무의미하게 날려보내 독일군을 공격하게 한 것이다.
이무렵 소련군 전체에 조국을 구하기위해서 절대 비겁한 행위를 하지 말고 오로지 용감하게 싸우는 것만이 진정한 애국심과 당에 대한 충성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으므로 이런 무모한 돌격행위가 말단의 육군병사들로부터 공군 조종사들에게까지도 암묵적으로 세뇌되거나 당에서 파견된 정치 치도원들에 의해 강요되고 있었다. 이렇다보니 소련공군기들은 일견 무모할정도로 보이는 출격행에 나서는 경우가 많았고, 결국 독일공군의 입장에서 볼 때는 하늘에는 언제나 ‘손쉬운 먹이감’들이 널려있었던 것이다.
[ 세 번째로 100기 격추를 돌파한 발터 외자우 ]
게다가 양측 조종사들의 수준차이와 항공기의 성능차이도 컸지만, 전술적인 능력에서도 많은 차이가 있었다. 영국본토항공전에서 영국의 레이더에 의해 쓴맛을 봤던 독일군은 이후 레이더를 개발, 보급하여 독소전의 개전당시에는 이미 실전부대에 배치하여 사용하고 있었는데, 일선 지상부대를 따라 이동하며 적기를 탐지할 수 있는 이동식 레이더까지도 사용하고 있었다. 따라서 독일공군은 최일선 지상부대를 따라 이동배치된 레이더에 의해 소련기들의 접근을 미리 통보 받은 후 유리한 위치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공격하는 전법을 구사할 수 있었다.
[ 소련기를 격추한후 직접 킬마크를 도색중인 독일 조종사, 소련기를 뜻하는 붉은 별을 그려넣고 있다. ]
반면, 소련공군은 레이더는 커녕 제대로 작동하는 무선통신 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해 전투에 필요한 정보를 거의 얻지 못했다. 특히 항공기에 장착된 무선장비의 상태가 매우 조악한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주파수를 잘 잡지 못하거나 사소한 고장이 속출하여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출격한 항공기들끼리 거의 통신이 제대로 안되는 경우가 빈번했기 때문에 우수한 무선장비를 장착한 Bf 109 E/F 전투기에 탑승하고 완벽한 편대전술을 구사하며 공격해오는 독일 전투기 조종사들과의 전투에서는 매우 불리한 경우가 많았다.
[ 폭장 작업중인 Bf 109F 야보 - 소련기들이 일소되자 이렇게 직접 폭탄을 달고 지상군을 지원하기도 했다. ]
* 공중전술의 변화
특히 서부유럽전을 치루면서 쌓인 실전 경험을 토대로 공중전술을 완성한 상태였던 독일공군은 실전경험이라고는 스페인 내전정도가 전부였던 소련공군을 확실하게 압도하며 일방적으로 몰아붙였다. 특히 여러 가지 악조건속에 고전을 면치 못했던 영국본토항공전 당시와는 다르게, 새로운 전장이 된 동부전선의 하늘이 상당히 손쉬운(?) 전장이라는 것이 점점 확실해지면서 독일공군은 최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독일공군의 능력이 극한의 시험대에 올랐던 영국본토 항공전에서의 공중전 양상과 동부전선의 가장 큰 차이는 전투가 벌어지는 고도였다. 영국의 하늘에서는 대개 고고도에서 대대적인 공중전이 벌어졌던 반면에 동부전선에서는 양측모두 지상군의 근접엄호를 위해 중고도이하의 저공으로 출격하여 대부분의 공중전도 저공에서 벌어졌다.
[ 지상에서 격파된 I-16, 배경에는 독일공군의 HS 126 정찰기가 보인다. ]
이러다보니 영국본토항공전과 동부전선의 공중전술에는 몇가지 차이가 있었다. 영국의 하늘에서는 중고도 이상의 고공으로 침투하는 독일 폭격기들을 호위하는 Bf 109E 전투기 조종사들은 어떻게든 적기들보다 높이 올라가 좋은 위치를 확보한 후에 조심스럽게 접근하다가 상황이 유리할 때 최고가속으로 기습적으로 내려 꽂히며 공격하는 전술을 주로 사용했다.
그러나 동부전선의 저공에서는 급강하시에 지상충돌의 위험이 이어서 이런 전술을 구사하는 것이 힘들었다. 양측모두 아군의 지상군을 지키고 적의 지상군을 공격하는데 집중하다보니 대부분의 전투는 양측의 항공기들이 지상전이 벌어지는 지역의 상공에 저공으로 몰려들어 정면으로 충돌하는 격렬한 조우전이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 무르만스크 지역을 순찰중인 Bf 110, 북부집단군을 원호하는 임무를 맡았던 기체들이다. ]
영국본토항공전에서는 아무리 베테랑 조종사라고 하더라도 적기를 발견하면 일단은 조심스럽게 상황을 파악한 후에 공격을 할 것인지 결정을 하고 상황이 유리하다고 판단이 된후에 공격을 시작하도록 명령을 받았었다. 이것은 영국 전투기 조종사들의 수준이 높은 편이며 특히 스핏화이어의 경우에는 속도와 기동성이 Bf 109E를 오히려 앞설정도로 뛰어난 전투기였기 때문에 섣불리 공격하다가는 공격이 실패하는 경우도 많고 반격까지 받을 위험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동부전선에서는 초창기에 워낙 손쉬운 격추성과가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달성되다보니 이런 ‘조심성과 냉철함’이 강조되던 광경이 점점 사라져갔다. 독일 전투기 조종사들은 소련 전투기나 폭격기들이 떼를 지어 몰려오는 광경을 보면 전혀 망설이지 않고 서로 적기를 먼저 격추하려고 무작정 돌진하여 근접공중전에 빠져들기 일쑤였다. 이런 나쁜(?) 습관은 신참 조종사들에게 더 쉽게 번져갔으며, 이런 상황을 제지하고 냉철하게 교육시켜야할 베테랑 조종사들 조차도 계속되는 연전연승의 무드속에서 점차로 ‘조심성과 냉철함’을 점점 잊어가게 되었다. 이러다보니 상황인식에 대한 개념은 점점 잊혀지게 되었고 독일전투기 조종사들은 눈앞의 적기를 한 대라도 더 격추시켜 그들의 비행기를 격추마크로 장식하는 데에만 점점 더 몰입하게 되었다.
[ 소련공군 비행장의 불량한 활주로 상태로 인해 착륙장치가 고장을 일으켜 파손된 JG 27의 Bf 109F,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고는 있었으나 이런 손실이 쌓이기 시작하면서 독일공군의 누적 손실도 무시못할 정도가 되어갔다. ]
훗날 소련공군이 초반의 위기를 넘긴 후에 질적, 양적으로 성장하여 독일공군과 충분히 맞서 싸울만한 수준에 이르렀을 무렵에는 이렇게 무작정 돌진하여 적기들과 싸우는 ‘나쁜 습관’이 몸에 배인 독일전투기조종사들이 오만의 댓가를 치루는 경우가 많았다.
* 히틀러의 결정적인 실수
8월 중순경 중부집단군의 기갑부대는 유능한 지휘관 구데리안 장군의 혁혁한 전공으로 전략적 요충지인 스몰렌스크를 완전히 점령한후 모스크바를 점령하기 위한 준비를 완료한채 히틀러의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에서 모스크바 까지는 불과 320km 정도밖에 안되는 거리였으며 서유럽에서 모스크바에 이르는 주요 거점의 소련군은 이미 소탕된 상태였기 때문에 구데리안은 길게잡아도 2주정도면 모스크바에 도착할 수 있으며 한달 이내에 소련의 수도를 완전하게 점령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독일군 지휘관들도 러시아의 심장부인 모스크바를 점령하기만 하면 광대한 소비에트 연방은 마치 뇌기능이 정지한 식물인간처럼 서서히 말라죽고 알아서 붕괴될 것이라고 생각했으므로 하루빨리 모스크바를 공격하게 해달라고 히틀러에게 요청했다.
[ 격파된 T-34, 소련의 기술력을 얕보고 있었던 독일군에게 큰 충격을 준 소련의 신예전차, 훗날 이 전차에게 고전을 면치못한 구데리안은 이 T-34야 말로 전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전차라고 평가했다. 초기에는 전술적인 경험의 부족으로 각개격파당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전격전에 도취된 독일군에게는 분명한 위험신호였다. ]
하지만 이무렵 남부지방의 요충지인 키에프 (우크라이나의 수도)를 목표로 진군하고 있었던 남부집단군은 애초의 예상과 달리 진격에 애를 먹고 있었다. 그들은 아직 키에프에서 80km 떨어진 지점에서 전진이 멈춘 상태였다. 키에프지역에서는 70만이상이 되는 소련군이 생각보다 거세게 저항하며 남부집단군과 대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소련과의 전쟁을 구상하고 있던 단계부터 히틀러는 소련남부 우크라이나의 비옥한 곡창지대와 코카서스 지역의 유전지대를 가장 중요한 점령목표로 생각하고 있었다. 히틀러는 남부집단군이 아직 키에프를 점령하지 못하는 것에 큰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이제 소련군은 완전히 붕괴된 상태이므로 마음먹기만 하면 언제든지 점령할수있는 모스크바 따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으며 위대한 게르만 민족의 번영을 위해서는 반드시 키에프를 먼저 점령하여 후방을 공고히한후 그 다음에 모스크바를 점령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 스몰렌스크를 점령한 중부집단군의 전차부대는 모스크바로 진격해들어가지 못하고 히틀러의 고집스런 명령으로 키에프를 향해 남하하게 된다. 동부전선의 전세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돌려 버린 결정적인 실수였다. ]
그리고 중부집단군으로 하여금 즉시 공격방향을 남쪽으로 90도 돌려 키에프를 향해 남하하라는 명령을 하달했다. 이 어처구니없는 명령이 떨어지자 경악을 금치못한 구데리안을 비롯한 독일중부집단군의 장군들이 크게 반발하여 히틀러에게 명령을 재고해 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히틀러는 이미 마음을 굳힌 상태였고 이 고집센 독재자의 마음을 돌릴 방법은 없었다. 결국 이 명령 하나가 독소전 전체의 향방을 가르게 되었다. 군지휘부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고집을 부렸던 히틀러는 목전에 다가온 승리를 제발로 걷어차 버리는 결정을 한 것이다.
[ 필사적으로 저항하며 남부집단군의 발목을 잡았던 키에프의 소련군들 ]
결국 중부집단군은 8월 23일 구데리안의 기갑부대를 선두로하여 키에프를 향해 남진하기 시작했다. 구데리안은 지도를 들여다본후 스몰렌스크로부터 키에프까지의 거리가 스몰렌스크로부터 모스크바까지 가는 거리보다 오히려 더 먼 길이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게다가 이 루트는 도로의 사정도 좋지 않아서 오히려 시간은 더 지체되어 너무나 많은 시간이 낭비되고 있었던 것이다.
여하간 중부집단군의 선도부대는 20일이 넘게 남하하여 결국 키에프 동쪽에 도착하였고 9월 16일에는 키에프의 남쪽으로 돌아들어온 남부집단군과 만나게 되어 키에프 포위망을 완성했다. 그동안 남부집단군과 대치하며 훌륭한 방어전을 벌이며 비교적 잘싸우고 있었던 키에프의 소련군은 갑자기 나타난 중부집단군의 전차부대가 후방에서 덥쳐오자 갑자기 와해되기 시작했으며 순식간에 전군이 공황상태에 빠져들었다.
[ 북쪽으로부터 진군해들어온 구데리안의 전차부대는 키에프의 소련군을 공황상태로 몰아넣었다. ]
이후의 며칠 간 진행된 처절한 키에프 포위전에서 소련군은 완전히 괴멸되었으며 독일군은 또다시 전례없는 대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최종적으로 9월 26일에 끝났을 때 독일군은 67만에 달하는 포로를 잡았으며 3700문의 야포와 900여대의 소련군전차를 포획한 것이다. 소련군의 사상자가 무려 100만에 달할 정도였다고 하니 아무리 인적자원이 풍부한 소련이라고 해도 키에프에서의 참패는 정말로 뼈저린 것이었다.
* 공격목표는 모스크바
키에프 포위전이 끝나갈무렵 북쪽으로 진격하고 있었던 북부집단군이 레닌그라드 (현 상트페테르부르크) 포위망을 완성했다는 낭보를 보내왔다. 연일 계속되는 승전보에 흥분한 히틀러는 키에프에서의 대승전에 완전히 도취되어 장성들을 모아놓고는 키에프를 공격하라는 자신의 결단이 옳았으며 이제 소련군은 모든 병력을 잃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위대한 독일군대는 곧 소련을 완전히 붕괴시켜 버릴 것이라고 떠들어댔다. 그리고는 선심을 쓰듯이 아직 키에프공방전이 완전히 마무리 되지 않았지만 전군에 모스크바를 공격해도 좋다는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그러나 히틀러가 이렇게 떠들어대며 우쭐대는 사이에, 어느덧 독일군에게 주어졌던 소중한 시간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히틀러의 고집 덕분에 화창하고 쾌적한 날씨를 자랑하는 소련의 여름을 키에프를 공격하는데 허비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들의 독재자가 키에프에서의 대승전에 열광하는 동안 어느덧 계절은 가을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리고 곧 이 짦은 가을이 지나가게 되면 독일군이 전혀 경험한적이 없는 엄청난 강적이 서서히 독일군을 향해 다가오게 된다는 것을 히틀러는 전혀 예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얼마남지 않아 독일군을 생지옥으로 몰아넣게 될 숨겨진 위협은 바로 소련의 가장 위대한 장군이라고 불리우는 '동장군 (General Winter)'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