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태양을 꿈꾸던 제국

◇ Act 7. 파란눈의 호랑이들 ◇

(Blue eyed Tigers)

             This document was updated at 2001. 6. 20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기습의 성공과 함께 태평양과 동남아시아의 상공에는 온통 붉은 원을 그려넣은 일본 전투기와 폭격기들이 휩쓸고 있었다. 진주만에 이어 필리핀에서까지 일본군의 공격에 시달리면서 패배를 목전에 두고 있던 미국인들에게는 태평양 전선의 희망이 없어보였으며 연전 연승의 일본군을 과연 저지 할 수 있을 것인가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그러나 바다건너 저편 중국의 하늘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용전분투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전설적인 용병 전투비행단 '플라잉 타이거즈'였다. 그들은 1941년 12월부터 1942년 7월까지의 7개월동안 중국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용전분투하며 용명을 떨쳤던 것이다.

중국하늘의 용병비행단, 플라잉 타이거즈의 전설의 근원에는 클레어 센놀트라는 인물이 있었다. 전쟁이 일어나기전인 1930년대 미 육군 항공대를 지배하고 있던 생각은 '폭격기 무적론'이었다. 이것은 전투기의 호위가 필요없는 중폭격기가 있으면 전쟁을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이때만해도 미군의 마틴 B-10과 같은 몇몇 신예 폭격기들은 당시의 전투기보다 속도가 오히려 빨랐다. 더구나 대형 폭격기에 수많은 기총을 장착하는 것으로 적의 전투기들을 격퇴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사상속에서 태어난 기체가 후에 유럽하늘의 왕자가된 B-17 하늘의 요새 이다. 여하간 이런 식의 관념이 지배하는 속에서 고성능 전투기를 개발하는 것은 마치 쓸데없는 짓처럼 여겨졌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폭격기 옹호론자들 속에서도 전투기는 꼭 필요하다는 것을 주장하는 몇안되는 인물들이 있었다. 그중 한사람이 훗날 플라잉 타이거즈의 지휘관이 된 용장 클레어 센놀트 대령이었다. 그는 결국 전투기는 꼭 필요한 것이며 곧 폭격기를 능가하는 속도를 가진 전투기가 개발되어 폭격기를 무참하게 요격할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 하지만 그는 이른 바 사교성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외골수로 낙인이 찍혔으며 자기 목소리만 높이는 고집쟁이로 동료들에게 따돌림을 당했다. 이런 상황에 회의를 느낀 센놀트는 1937년 그는 건강상의 이유로 퇴임했다. 물론 대부분의 동료 장교들은 그가 그만두는 것에대해서 내심 기분좋아 했다.

[ 타이거즈의 감독님, 용병비행대 사령관 클레어 센놀트, 그는 자기 소신을 굽히지 않는 강직한 성품을 지니고 있었다. 현대 공중전에 눈을뜬 몇안되는 미군 항공대 지휘관중의 한명이다. ]

한편 태평양 건너 저편의 중국에서는 중국군이 막강한 일본군을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중국은 아직 근대적 군대를 구성하고 있지 못했다. 특히 그것은 공군에 있어서 더욱 심각했다. 제대로 교육도 못받은 중국의 조종사들이 세계각국에서 원조받은 각종 구식 비행기들을 타고 하늘로 날아올라 고성능 일본 전투기들의 먹이가 되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나 중국내부의 심각한 부패로 인해서 전투에 투입될 비행기도 턱없이 모자랐고, 조종사들의 자질이 부족했다. 이착륙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중국 조종사들은 이른바 '날아오르기 전에 스스로 죽고마는 집단'이었다. 이러한 난관에 봉착한 중국 정부는 미국에 사절을 파견하여 그들에게 근대적 공중전을 교육할 인물을 찾게 되었다. 그러던중 미육군 항공대에서 퇴임한 센놀트의 전투기에 대한 정렬을 높이 평가한 중국 사절들은 집요하게 그를 설득하여 중국공군의 군사고문으로 와줄 것을 요청했다. 물론 미육군 항공대의 고집스러운 분위기에 질려있던 센놀트는 망설이다가 결국 이 요청을 수락했다.

특히 장개석 총통의 부인이었던 송미령이 직접 열어준 성대한 환영축하회에서 센놀트는 크게 고무되어있었다. 중국의 퍼스트 레이디로서 외교일선의 전면에서 활동하던 송미령은 장개석의 비밀명령으로 중국공군의 재건을 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47세의 노장 센놀트는 중국을 위해서 싸우기로 결심했다. 사실 1932년부터 중국에 대해서 호의적이있던 미국은 일본의 침략행위를 강력하게 비난하고 있었으며, 결국 수명의 미군 항공대 교관들이 파견되어 중국 공군의 재건을 위해 활동했으나 일본의 강력한 외교적인 항의로 인해서 철수시킨 상태였다. 이것은 이무렵 미국은 중일전쟁을 둘러싼 첨예한 의견대립으로 점차로 일본과 사이가 나빠지고 있었기 때문에 공식적인 군대의 파견을 문제삼는 일본을 더 자극하지 않기로 정책을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때까지만해도 센놀트는 공식적으로는 미국의 지원을 받기가 곤란한 상태였던 것이다.

더구나 썩어빠진 중국군 자체의 기강과 관료주의는 근대적인 공군의 탄생자체를 어둡게 했다. 중국 공군을 어떻게 해서든지 싸우는 전투집단으로 키우고자하는 센놀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중국군의 체질은 전혀 개선될 기미가 없었다. 일본군의 공세는 더욱 가열되었고 중국공군은 사실상 일본기들의 먹이감이 되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2년여의 기간이 지나면서 회의를 느낀 센놀트가 직책을 사임하고 미국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그때마다 그를 만류하는 송미령의 설득으로 그는 마음을 돌리곤 했다. 센놀트는 자신의 일기장에 그의 답답한 마음을 다음과 같이 적었다.

"지금 나에게 100대의 제대로된 전투기와 100명의 잘 훈련된 조종사만 있다면 일본군의 공격을 충분히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현실이 정말로 답답하다."

1940년이 되자 일본은 점차로 중국 대륙으로 침략을 확대했다. 1940년 여름에는 100여대의 폭격기들이 수많은 전투기들과 함께 무방비의 중경에 나타나 무차별 폭격을 연일 계속했다. 이에 위기를 느낀 장개석은 센놀트의 의견을 수렴하여 미국 조종사들을 직접 고용하여 일본군에 대적한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하지만 아직 전쟁에 참전하고 있지 않았던 미국으로서는 일본의 세력 확대를 제지할 방법을 찾으면서도 일본을 자극할 우려 때문에 속으로는 중국을 도와주고 싶어도 공개적으로는 그런 행동을 하지 못했다.

[ 미국정부의 지원하에 원조에 가까운 헐값으로 중국이 구매한 P-40 워호크, 기수의 샤크 마우스가 매우 잘 어울린다. ]

한편, 센놀트는 중국공군을 제대로 훈련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그는 중국공군의 양성은 포기하고, 음성적인 미군 의용 비행대를 구상했다. 그는 일본을 견제할 방법을 구상하고 있던 루즈벨트 대통령과 면담하여 대통령의 허가를 받아 중국 공군을 위해 일할 미군 조종사들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점차로 일본의 군사력 확대를 우려했던 미국의 이해관계가 중국의 요청과 맞아 떨어져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우선 전투기가 필요했다. 이는 미국이 영국에 수출 예정으로 선적해 놓았던 100대의 P-40B 워호크를 영국이 수령하기를 거부하여 갈곳이 없어짐에 따라 중국으로 헐값에 팔기로 하여 해결이 되었다. (사실 영국은 원래부터 이 비행기들의 인수를 거부하기로 미국과 물밑 약속을 해놓았었다.) 필요한 전투기의 공급이 해결되자 이번에는 전투기를 조종할 조종사들을 구해야 했다.

[ 드디어 곤명에 도착한 P-40 워호크와 이를 맞이하는 플라잉타이거즈의 대원들 ]

센놀트는 직접 미육군 항공대와 해군 항공대를 순회방문 하면서 조종사와 정비원들을 유혹했다. 센놀트가 보여주는 안내서에 따르면 중국의 곤명에 가면 화창한 해변, 골프 코스, 테니스 코트, 수영장등이 갖추어진 멋진 곳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진짜 전투비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급료도 많아서 월 600달러정도 (당시 소형차 1대를 살 수 있는 액수)가 약속되었다. 적기 1대를 격추할 때마다 500달러의 보너스도 제안되었다. 물론 미군도 루즈벨트 대통령의 지시로 센놀트를 지원했다. 중국에서 복무가 끝나면 다시 원대 복귀가 가능하다는 미군의 물밑 약속도 있었다.

[ 1942년, 1월 제 3 비행중대인 '지옥의 천사들 (Hell's angels)' 의 모습 ]

이러한 매력적인 제안은 한창 혈기가 넘치던 젊은 조종사들에게 강하게 어필했다. 잔인한 일본군에게 시달리는 불쌍한 중국민들을 구원하러 간다는 명분도 있었으며 특히 전투기를 조종하고 싶었지만 폭격기나 수송기를 조종해야했던 육군이나 해군항공대의 일부 조종사들과 진짜로 공중전을 경험하고 싶었던 전투기 조종사들이 속속 지원했고 심지어는 군경험이 전혀없는 민간기 조종사들도 지원자 명단에 사인했다.

결국 공중전에 대한 동경과 많은 수입, 그리고 동양의 신비로움등에 끌린 110여명의 조종사들과 150여명의 지상요원들이 자원하여 1941년 7월까지 속속 중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일본에게 탐지되지 않도록 교사, 여행객, 음악가, 은행원등의 직업이 써진 가짜 여권을 만들어 중국으로 들어왔다. 대부분의 군출신 조종사들은 공식적으로는 제대한 상태였으므로 그들의 신분은 군인이 아닌 민간인이었고 따라서 일본정부에게 미국정부가 직접 개입하고 있는 것이아니라는 명분을 제공했다.

[ 플라잉 타이거즈의 비행중대의 마킹, 제 1 중대로서 아담과 이브, 제 2 중대인 판다베어스, 3 중대인 헬스엔젤스의 도안이 담겨있다. 물론 각 기체에는 이 도안을 약간씩 변형한 개인 도안이 그려졌다. ]

하지만 그들이 도착한 곤명이라는 곳은 선전대로 멋진 곳이 아니었다. 사람을 무기력하게 하는 더위와 습기가 가득했으며, 밤마다 덤벼드는 사나운 모기떼와 턱없이 부족한 휴양 시설과 고된 중노동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곧 이런 상황에 실망한 많은 이탈자들이 생겨났고, 도착하자마자 사표를 던지고 귀국해 버린 조종사도 속출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조종사들과 지상대원들은 일본군과 싸우기 위해서 남았다. 그들은 원래부터 휴양하러 온다는 기분보다는 진짜로 전투를 경험하고 싶어했고 이국의 생활을 경험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었다.

[ 제 2 비행중대인 '팬더 베어스' 대원들의 기념 촬영 ]

필요한 인력이 보충되어 실전부대로서의 모양새를 갖추어나가기 시작하자, 센놀트는 조종사들을 강력한 전투집단으로 훈련시키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주어진 전투기 P-40B 워호크는 미육군항공대의 주력전투기이자, 유럽과 북아프리카에서 영국군에 의해서 실전에 사용되었던 기체로서 공중전에서 독일 전투기들에게 일방적으로 격추되었다는 평판이 나돌던 기체였다. 하지만 센놀트는 이 전투기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이 전투기는 두꺼운 장갑으로 조종사를 보호하고 있었고, 직선비행에서도 일본전투기들에 비해서 그렇게 느리지는 않았으며 강하할 때는 일본기들보다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었다. 화력도 일본기들을 상대하기에는 충분했다. 하지만 근접 공중전에 필수적인 기동성과 상승속도에 있어서는 일본군 전투기들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다. 이에 센놀트는 P-40의 장점과 단점을 분석하여 이에 어울리는 공격 전술을 구상했다. 그는 이렇게 지시했다.

"반드시 2기가 1조로 행동해야 한다. 그리고 가능한 높이 날아올라 적기의 상공에서 급강하하며 적기가 바로 앞에 있을 때 사격을 집중하라. 그리고는 즉시 강하하여 도주해야 한다. 그후에 적기들이 반격해오지 않으면 다시 한번 같은 공격을 시도하라. 절대 일본의 전투기들과 1대 1로 정면대결을 할 생각은 하지 말라. P-40으로 일본 전투기들을 상대로 묘기 비행이나 선회전을 시도하는 것은 자살 행위이다."

이때 이런 훈련 비행 모습을 구경하던 동남아주둔 영국공군의 파견 장교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영국 장교들은 겁장이들만이 전투에서 도망을 생각한다고 믿었으며 영국공군에서는 전투에서 도망치는 것은 군법 회의감이라고 비아냥 거렸다. 이에 센놀트는 아래와 같이 응수했다.

"그래서 당신들은 P-40을 가지고도 독일군에게 패배한 것이다. 나에게는 만용을 부리다 죽은 조종사보다는 어떻게든 살아서 돌아오는 조종사가 더 소중하고, 전장에서 페어플레이는 필요가 없다는 것이 나의 믿음이다."

공중전 훈련에서의 엄격함과는 달리 이 의용 비행부대는 다른 면에서는 거의 제멋대로의 부대였다. 용병비행대라는 특성에 걸맞게 그들은 군인으로서의 기강은 거의 없었고 복장도 가지각색이었다. 한밤중까지 술을 마시면서 떠들어대는 가 하면 몰래 현지 여성들을 부대로 데리고 들어와서 놀기도 했다. 그러나 센놀트는 훈련에는 엄격했지만 부하들의 사생활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 그는 대원들과 밤새도록 포커도 같이치곤 하는 융통성이 있는 지휘관이었던 것이다.

1942년 중국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며 일본군을 괴롭힌 AVG 플라잉 타이거스 소속의 P-40B형이다. 2차대전의 전투기중 기수의 상어 아가리가 가장 잘 어울리는 기체는 P-40이 꼽힌다. 조종석 앞쪽의 붉은 천사는 중대마크이며, 날개달린 호랑이가 플라잉 타이거즈의 부대 마크이다.

전투준비는 착착 진행되어 1941년 11월이 되자 플라잉 타이거즈는 이미 적극적인 작전을 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100여대가 들어올 예정이었던 P-40은 일본이 중국남부의 제해권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부품과 기체의 수송이 어려워서 인도분량 전량이 제때 들어오지는 않았으며 도착한 기체들도 사소한 고장과 부품 부족으로 인해서 43대만이 실전 투입이 가능한 상태였다. 게다가 조종사들은 84명만이 남아 있었다. 그렇지만 남아있는 조종사나 지상대원들은 싸우고자 하는 의욕에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들은 P-40에 아프리카 전선 영국 공군의 한 비행중대를 본따서 기수에 상어 아가리를 그려 넣기 시작했다. 마치 금방이라도 물어 뜯을 것 같고 눈을 부릅 뜬 도색은 P-40에게 매우 잘 어울렸다.

[ 미국의 한 만화가가 그들의 소문을 듣고 승리의 V자를 뛰어넘는 호랑이의 그림을 그려서 그들에게 선물했고, 즉시 부대 마크로 채택되었다. 덕분에 '플라잉 타이거즈'라는 별명까지 생기게 되었다. ]

플라잉 타이거즈는 중국공군 예하의 용병비행대였으므로 P-40 동체와 주익에는 중국군의 청천백일장이 그려넣어졌다. 조종사들은 추락에 대비하여 중국정부가 서명한 신분증을 휴대하고 다니거나 아예 점퍼의 뒤쪽에 크게 확대하여 붙여놓기도 했다. 이 신분증에는 한자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있었다.

"이 서양인은 중국을 돕기위해 온 사람이니, 군민일체로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보호하라."

플라잉타이거즈는 3개의 비행중대로 구성되었다. 각각의 중대에는 '지옥의 천사들', '팬더곰', '아담과 이브'라는 명칭이 부여되었다. 기수에 상어아가리와 중대마크는 공통적으로 그려넣어졌지만 이외의 도색이나 정비에는 개인의 개성과 아이디어가 허용되었다. 한 정비원의 제안으로 P-40의 기체를 왁스로 번쩍거리도록 닦았더니 속도가 시속 16km나 빨라지기도 했고, 즉석으로 폭탄을 장착할 수 있도록 개조하기도 했다. 이런 지상정비원들의 활약을 본 조종사들은 다음과 같이 농담하곤 했다.

"이제 우리 P-40은 잠망경만 달아 놓으면 잠수함이 되 버리겠군."

진주만 기습이 있던 1941년 12월 7일, 이미 이들 창공의 호랑이 부대는 중국하늘을 자기 안방처럼 날아다니는 일본군에게 한방을 먹일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진주만 기습으로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여 미국도 일본과 전쟁에 빠져들었지만 플라잉타이거즈는 여전히 미군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중국공군 소속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들에게는 일본에 대한 공격을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 버마공로를 순찰하고 있는 플라잉타이거즈의 P-40, 이 구불구불한 산악도로는 중국군에게는 생명줄과도 같은 길이었다. 반면, 일본군에게는 눈엣 가시와도 같은 존재여서 자주 공습 목표로 선정되었다. ]

1941년 12월 20일 베트남의 하노이 비행장에서는 일본 육군 항공대의 미쯔비시 97식 폭격기 (Ki-21) 10대가 출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들의 목표는 중국군의 주요 보급로인 버마 공로였다. 이 도로는 총 길이 약 700km에 이르는 구불구불한 산악도로였으며 중일전쟁중에 서방에서 들어오는 원조물자가 들어오는 길목으로서, 버마에서부터 이어져 중국으로 많은 군수물자와 필수물자들을 운송하는 주요 도로였다. 일본 폭격기들은 이 도로에 대해서 1년 전부터 틈만 나면 폭격을 해왔던 것이다. 이무렵에는 중국 전투기들의 저항이 거의 없었으므로 전투기의 호위는 아예 없었다. 일본 폭격기 조종사들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일상적인 폭격 비행의 따분함까지 느끼면서 지루함을 달래기위해서 애쓰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목표지점에 거의 다다랐을 때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일이 벌어졌다. 그들의 상공에 보지 못했던 4대의 전투기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들은 잠시 폭격기 상공을 선회하더니 갑자기 날개에서 기관총을 발사하면서 일제히 달려들었다.

[ 헬스엔젤스의 중대마킹을 잘볼 수 있는 사진이다. 이처럼 약간씩 변형된 형태의 마킹을 그려넣었다. ]

이 전투기들의 기수에는 무서운 눈을하고 잡아먹을 듯이 입을 벌린 상어의 모습이 도색되어 있었다. 갑작스런 전투기의 출현에 놀란 일본 폭격기들은 일제히 폭탄을 버리고 산개한후 기수를 기지쪽으로 돌려 도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퇴로쪽에 역시 상어 이빨을 그려넣은 10기의 전투기들이 더 나타났다. 이 전투기들도 기관총을 난사하면서 일본 폭격기 편대를 정신없이 휘집고 다녔다. 곧 일본 폭격기들은 차례로 불덩어리가 되어 검은 연기를 뿜으면서 떨어져 갔으며 단지 1대의 폭격기만이 겨우 살아남아 하노이의 기지로 도주 할 수 있었다. 첫 출격을 성공리에 마친 플라잉 타이거즈들은 편대를 이루어 귀환했다. 이날 곤명 기지 상공으로 돌아온 타이거즈는 단 한 대의 손실도 없이 기지 상공에서 선회를 하면서 승리를 자축했다. 이것이 미군 의용 비행대 AVG 플라잉 타이거즈의 첫 번째 출격이었다. 이날 출격했던 한 조종사중 한명인 프릿츠 울프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우리는 상공에서 V자 대형으로 접근해오는 일본 폭격기들을 보았다. 우리는 그들의 뒤쪽에 위치를 잡았으며 나는 맨 후미의 폭격기를 목표로 강하했다. 우리 P-40기들이 일제히 강하하기 시작했으므로 굉장한 소음과 압력이 느껴졌다. 적기가 조준경에 꽉차는 것이 보이자마자 나는 모든 기관총을 발사했으며 이 일본폭격기는 날개와 엔진이 폭발과 함께 떨어져나갔다. 굉장한 불꽃과 함께 그 폭격기는 나선을 그리면서 떨어져갔다. 뒤를 돌아보니 대부분의 일본 폭격기들이 연기와 함께 떨어져가고 있었다."

이 소식은 진주만 기습이후 거듭되는 패배의 소식으로 기사거리에 굶주려있던 미국 언론을 타고 순식간에 미국으로 퍼졌으며 그들의 활약상은 과대포장되어 마치 초인인양 소개가 되었다. 순식간에 이 의용 전투비행대는 미국민의 관심을 가장 많이 받는 부대가 되 버린 것이다. 그들은 진주만 기습이후 계속되는 패배의 소식으로 실의에 빠져있던 미국민의 가슴을 후련하게 해주었던 것이다.

[ 악전고투의 순간, 손상입은 P-40은 즉시 수리되었으며 불가능한 경우 사용 가능한 부품을 떼어내어 다른 P-40에게 사용되었다. ]

일본군의 공격이 중국 남부를 거쳐서 인도차이나와 말레이반도로 확대되면서 플라잉 타이거스는 크게 2개로 나위었다. 한 부대는 버마의 영국군과 함께 작전하는 부대였고, 하나는 곤명에 주둔하여 중국 서부를 방어하는 부대였다.

하지만 언론의 스포트라이트와는 달리 실상 이들은 항상 열악한 환경과 수적인 열세속에서 압도적인 수의 적기들과 싸워야 했다. 더구나 필수적인 부품부족과 제대로된 보급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야전에서의 전투기 정비와 운용이 힘들었다. 공중전중에 피탄되어 새는 연료탱크에는 추잉껌을 붙여서 다시 출격시키고, 총탄 구멍이 난 기체에는 접착테이프를 붙여서 임시로 막아 버리는 등의 임시변통으로 간신히 전투태세를 유지해 나갈 수 있었고, 필수부품이 없는 경우에는 추락한 P-40을 찾아내어 부품들을 회수하여 다시 사용하는 열악한 형편이었다.

[ 추락한 P-40을 찾아내어 회수가 가능한 주요 부품을 다시 사용하기 위해서 동체부분을 트럭에 운반하는 장면, 조종석뒤에 피탄 흔적이 보인다. ]

일본군 역시 연일 계속되는 플라잉 타이거즈에 의한 피해에 크게 놀랐으며 즉시 호위 전투기를 투입하기로 하였고 일본 육군항공대의 Ki-27, Ki-43과 같은 전투기들이 폭격기들에게 따라붙어 호위비행을 했다. 그러나 플라잉타이거즈의 용사들은 두려움없이 계속 출격을 거듭해서 일본폭격기들을 잡아냈다. 이들의 일격이탈전술은 일본군에게 매우 답답하고 짜증스런 것이었다. 폭격기를 공격하고는 강하하여 내빼는 플라잉타이거즈의 P-40들은 전투기끼리의 교전을 회피하는 것처럼 보였다. 여하간 폭격기들의 피해가 계속되면서 일본 폭격기 조종사들의 심리상태가 매우 불안한 상태가 되서, 이전만큼 일방적이고 효과적인 폭격은 이제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 논 바닥에 추락한 P-40을 둘러보는 정비사들, 이런 기체에서도 부품이 회수되었다. ]

12월 23일 이번에는 제로 전투기를 동반한 일본 폭격기들이 랭군 상공에 진입했다. 이번에는 버마의 영국군의 버팔로 전투기들이 응전에 나섰으며 다른 방향에서 플라잉 타이거즈가 요격을 위해 돌입했다. 하지만 영국의 구식 버팔로 전투기들은 제로 전투기들의 공격을 받아 순식간에 큰 손실을 입었다. 그들은 제로에게 정면으로 맞섰으나 빠른 선회가 가능했던 제로 전투기는 이들을 일방적으로 공격했던 것이다. 하지만 어느새 일본 폭격기 부대의 상공에 접근한 플라잉 타이거즈의 P-40 전투기들이 급강하하며 돌입해오기 시작했다. 이들은 두 갈래로 나위어 한쪽은 제로 전투기들을 향해 달려들었고, 나머지는 폭격기들을 공격했다. 일격 이탈 전술을 구사하는 플라잉 타이거즈의 전법에 제로 전투기 4대와 폭격기 6대가 격추되었다. 반면 플라잉 타이거즈는 4대를 잃었다. 하지만 조종사는 모두 무사했으며 고물로 취급되던 P-40으로도 신예기 제로를 얼마든지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최근에는 이무렵 일본군이 이지역에서 사용한 전투기가 대부분 일본 육군항공대의 Ki-27과 신예 Ki-43 하야부사였고 일본해군은 이지역의 전투에는 거의 참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플라잉 타이거즈 조종사들이 제로라고 기록했던 대부분의 전투기가 Ki-43 하야부사였을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음) 하지만 워낙 많은 수의 폭격기들이 참가했으므로 랭군은 폭격을 면할 수 없었다. 도시는 불바다가 되었고 많은 버마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 정비사와 조종사가 함께 탄약을 장착하고 있다. 플라잉 타이거즈는 조종사와 지상요원들이 한마음으로 뭉쳐있었던 것이다. ]

2일후인 12월 25일, 크리스마스를 기념이라도 하듯이 다시한번 일본군의 대규모 공습이 재계되었다. 이날 플라잉 타이거즈들은 가동가능한 전투기 26대를 총 동원하여 요격에 나섰다. 이번에도 일본 폭격기와 전투기 사이를 맹렬한 속도로 강하하며 돌격하는 플라잉 타이거즈의 전법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이날은 단지 2기의 P-40을 잃으면서 13대의 폭격기와 10대의 전투기를 격추한 것이다. 이날 한 타이거즈의 조종사가 기관총이 고장나 버리자 제로의 꼬리날개를 그대로 들이받아 버렸는데 P-40은 주익에 약간의 손상만 입은 반면에 제로 전투기는 꼬리날개가 잘려나가 그대로 추락해 버린 일이 있었다. P-40의 기체 견고성이 증명된 사건이었다. 이로서 일본군은 플라잉 타이거즈의 존재를 뼈저리게 느꼈다. 일본군에게는 정말로 눈엣 가시같은 존재였으며 일본군은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 다음과 같이 협박했다.

"미국인 조종사가 탄 중국 전투기가 불법적인 전투행위를 벌이고 있다. 이것은 중국인으로 위장한 비겁한 행위이며 그들은 만일 격추되어 포로가 되면 게릴라로 인정되어 처형될 것이다."

하지만 파란눈의 호랑이들은 절대 기죽지 않았다. 여기는 중국땅이라고 하지만 어차피 일본군은 진주만에서 미군에게 선전포고도 없이 자비하게 공격했던 원수가 아닌가?

그들은 또다시 1942년 2월 25일 총 166대로 구성된 일본 폭격기와 전투기들을 맞아 불과 9대의 P-40으로 랭군 상공에서 전투를 벌였다. 이들은 전방창에 가득찬 일본군의 대부대를 맞아서도 두려움없이 일본 폭격기대 사이를 뚫고 돌격했으며 총 24대의 적기를 격추시키는 대 전과를 올렸다. 이날 플라잉 타이거즈의 손실은 3대에 불과했다. 다음날 다시한번 대규모 공습이 있었으며 살아남은 6대의 P-40들이 다시 출격하여 18기의 폭격기를 격추시켰다. 이날은 놀랍게도 플라잉 타이거즈의 손실은 없었고 그들은 모두 무사히 귀환하여 자신들의 기체에 콧노래를 부르면서 격추마크인 일장기를 그려넣었다.

[ 일본기 출현의 급보를 받은 조종사들이 자신의 기체를 향해 뛰어가고 있다. ]

하지만 그들의 이런 용전분투에도 불구하고 1942년 3월 7일 랭군이 압도적인 군세의 일본 육군의 공격을 받아 함락되면서 버마지역에서의 활동은 끝나게 되었다. 플라잉 타이거즈의 조종사들은 마지막까지 출격하여 일본 지상군에 대해서 기총소사를 실시하면서 끝까지 저항했다. 랭군 함락 소식을 들은 센놀트는 즉시 이지역에서 살아남은 P-40 전투기들을 모두 곤명으로 불러들여 전력을 보존했다.

한편 열악한 보급상황과 연일 계속되는 전투로 비행 불능이되는 P-40이 속출하자 타이거즈의 대원들은 일본군과 교전한후 귀환하면 자신의 기체의 번호를 다르게 고쳐쓰기도 하고 기수의 스피너를 다른 색으로 칠하는 등의 방법으로 일본군에게 정확한 숫자를 노출 시키지 않으려고 애썼다. 심지어는 국적마크도 미국적마크와 중국국적 마크를 혼용하여 일본군을 헷갈리게 했다. 이 술책은 멋지게 성공하여 일본군 조종사들은 전투때마다 다른 부대의 P-40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플라잉 타이거즈의 규모가 예상외로 크다고 믿어 버렸다. 단지 29대의 가동 가능한 P-40이 있었던 1942년 6월에 일본의 라디오 방송은 다음과 같이 방송했다.

"우리 대 일본군은 중국에서 비적행위를 하는 200대의 플라잉 타이거즈를 반드시 제거하고야 말겠다는 맹세를 했다. 그들은 중국에서 처참한 죽음을 맞게될 것이다."

이 웃기는 방송을 들은 한 대원은 웃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뭐야 저놈들...한참 잘못알고 있구만 우리 전투기들이 고작 3개 비행중대에도 못미치는 숫자라는 것을 알면 일본군은 기절초풍 하겠군"

[ 귀환후에 자신의 기체에 격추마크를 그려넣고 있는 대원의 모습, 조종석앞의 애완 원숭이가 이국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

하지만 이들의 분전에도 불구하고 점차로 일본육군이 필리핀의 미군과 말레이반도의 영국군을 몰아내고 거칠 것 없이 진격속도를 빠르게 하면서 전세가 악화되었고, 플라잉타이거즈의 지상기지가 일본기들의 공습을 받는 일도 자주 벌어졌다. 지상요원들도 호걸기질이 넘치고 있어서 어떤 정비원은 낮게 날아오는 일본 전투기에게 스패너를 집어던지며 욕설을 퍼붓기도 하였다 (물론 맞지는 않았지만...). 지상요원들은 기총탄이 난무하는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P-40을 정비하고 수리해서 다시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도록 했다. 그들은 부족한 부품을 구하기 해서 불시착한 P-40을 찾아 다녔고, 일본기의 공습하에서도 정비중인 P-40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조종사들은 이런 지상정비원들의 노고에 감동을 받아 항상 서로 의지했다.

[ P-40의 조종사와 조종석의 클로즈업 사진, 십자형태의 조준경이 약간 우측으로 치우쳐있는 것을 볼수있다. ]

전투가 가열되면서 조종사들은 역시 언제라도 날아오를 수 있는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지상 생활은 자유롭고 기강도 해이했으나 일본기의 내습을 알리는 경보가 울리면 언제그랬냐는 듯이 그들은 근처의 낙하산을 손에들고 자신의 P-40으로 전력 질주하는 조종사들의 모습은 일상적인 것이었다. 하늘에 날아오르면 항상 수적열세의 상황속에서 전투를 치뤄야했지만 언제다 성공적인 전투를 벌이고 돌아왔다. 센놀트가 주장한 급강하에 의한 일격이탈 전술이 플라잉 타이거즈의 대 원칙이었으며 이로인해서 손실은 최소화 하면서 격추성과를 계속 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탄환이 다 떨어지면 기지로 귀환해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술을 마시거나 골아 떨어지는 호걸들이었다.

[플라잉 타이거즈의 에이스 듀크 헤드만, 일본군의 대규모 공습에 맞서 요격에 나선 그는 귀환한후에 그는 몇대나 잡았냐는 질문에 '몇대 잡기는 했는데 적기가 너무 많아서 세어보지는 못했어!'라고 별로 대수롭지 않게 말하곤 했다. ]

약 7개월여에 걸친 활동기간동안 플라잉 타이거즈는 중국-버마-인도를 있는 전략적인 핵심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단지 50기 이하의 P-40과 15명 이하의 인명손실로 거의 286기에 이르는 일본기를 격추했다고 보고했다. 훗날 공인 격추는 153대로 격하되었으나 이것은 대부분의 적기가 밀림이나 바다로 떨어져 확인하기가 쉽지 않았고, 1대 격추시마다 주어지는 상금으로 인해서 조종사들이 과대 보고를 했을 가능성으로 인한 것이었다.

1942년 6월 미드웨이 해전의 대승리를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태평양전쟁이 확대되면서 미군은 이제 정규군의 지휘계통을 따르지 않는 부대에 대해서 필요성을 느끼지 않게 되었으며, 센놀트를 설득하여 정규군으로 편입을 시행했다. 결국 1942년 7월 4일 이 미국 의용비행대는 정식으로 해산되었으며 정규 육군항공대의 일부로 재편성 되었다. 물론 이 부대의 지휘관은 미육군항공대 준장이 된 센놀트였다. 하지만 많은 조종사들은 이런 방침에 불만을 품고 다른 전장을 찾아 나서기도 했다. 이후에 유럽에서 P-51의 에이스가 되어 계속 활약을한 짐 하워드나 훗날 검은 양 비행중대로 명성을 떨친 F4U 콜세어의 에이스 그레고리 페피 보잉턴과 같은 유명 에이스들은 이 플라잉 타이거즈에서 그 화려한 경력을 시작했던 것이다.

플라잉 타이거즈의 의용 조종사들은 2차대전 항공전에서 가장 독특한 전투비행대로서 그들의 존재는 항공전사의 전설이 되어 있으며 아직까지도 이 의용 비행대의 행보는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상황에서 출발한 그들의 감투정신으로 이룩한 성과는 비록 전쟁 전체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하더라도 인간 승리의 놀라움으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