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운명의 섬 미드웨이 (Island of Doom)

◇ Act 7. 대해전의 종막

(The finale of great sea battle)

             This document was updated at 2001. 11.13

* 히류의 최후

히류가 북쪽으로 항진하면서 요크타운을 공격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후 히류를 잡기위해서 접근하고 있던 미해군의 SBD 급강하 폭격기대는 엔터프라이즈 소속의 윌머 갤러허 대위가 지휘하고 있었다. 이들은 남서쪽으로부터 저물어가는 태양을 등지고 일본함대로 접근하고 있었으므로 레이더가 없었던 일본 함대의 대공초계병들은 폭격기들이 가까이 접근할 때까지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먼거리에서 발견했었다해도 마땅한 대응책도 없었겠지만...)

[ 히류를 잡아라! 엔터프라이즈의 SBD 폭격기들이 히류를 찾아서 급행하고 있다. ]

갤러허 휘하의 SBD의 일군이 히류의 상공으로 접근할 무렵 야마모토의 명령으로 상공을 초계하던 제로전투기 3기가 이들을 맞이했다. 제로전투기 조종사들은 필사적으로 덤벼들었고 결국 2기의 SBD를 격추시켰다. 그러나 이 무렵 항모 호넷에서 발진한 SBD들까지 가세하여 무려 35기나 되는 SBD의 대군을 막기에는 이들의 분전이 너무나 애처로울 정도였다.

"좋아 저놈이 바로 일본군의 마지막 항모로군, 요크타운의 원수를 갑아주자! 전원 저 항모를 향해 돌격하라! 저놈을 격침시키자!"

히류를 식별한 갤러허 대위는 즉시 공격명령을 내렸고 히류 주위에 작열하는 대공포화속으로 공격 명령을 받은 13기의 SBD 폭격기들이 먼저 한 대씩 히류를 향해서 떨어져 내려갔다. 급박한 위기의 순간에 히류의 가꾸 도메오 함장은 폭탄을 피하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항모를 우선회시켰다. 이 타이밍이 적절해서 최초의 폭탄 3발은 히류의 주위에 떨어져 물보라만 일으켰지만 항모 히류가 아무리 빨리 선회를 한다고해도 이미 가속도가 붙은 상태로 연달아 공격해오는 SBD들의 급강하 폭탄세례를 피할 수는 없었다. 이내 4발의 폭탄이 연달아 정확하게 히류의 전방 갑판으로 떨어졌고 검은 버섯구름과 함께 대폭발이 이어졌다. 함상에 남아있던 일본해군의 마지막 함재기들이 산산조각나면서 사방으로 튕겨나갔고 수많은 승조원들이 그 자리에서 파편에 맞아 전사했다. 곧 하늘을 뒤덮을 듯한 불길과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더구나 히류가 고속으로 선회 중이었으므로 전방 갑판에서 발생한 화재가 계속 뒤로 번지고 있었으며, 숨이 막힐 정도로 엄청난 열기가 함선을 뒤덮었고 함교의 유리는 폭발의 충격으로 모두 산산조각이 났다. 용장 야마구찌 제독도 폭발의 충격으로 함교에 쓰러져 있었다.

[ 폭탄에 얻어맞은후 화염에 휩쌓이는 히류, 함선 전체가 연기를 피워올리고 있다. ]

상공에서 공격순서만을 기다리면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다른 SBD 폭격기의 조종사들은 이공격으로 히류의 운명이 다했다고 판단했다. 더구나 히류에서 피어오르는 거대한 검은 연기 구름으로 인해서 바로 위에서는 히류를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였다. 결국 이들은 히류에 대한 공격을 중지하고 히류를 호위하던 전함 하루나와 중순양함 지쿠마, 도네를 차례로 공격했다. 하지만 하루나와 도네, 지쿠마는 격렬한 대공포화로 저항하면서 희피기동을 실시하여 큰 피해없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최우선 공격목표인 항모를 잡아낸 SBD 폭격기 조종사들은 그들이 의도했던 작전이 성공했음을 보고하면서 들뜬 마음으로 귀환길에 올랐다. 공격을 마친 SBD 폭격기들이 모두 물러가자 태양이 저물어 어두워지는 하늘을 배경으로 거대한 불가마가 되어버린 히류의 처절한 모습만이 남아있었다.

[ 공격이 끝난후 일본 수상기가 촬영한 사진으로 집중공격을 받은 전방 갑판이 완전히 녹아 없어진 것을 볼 수 있다. 함선 전체로 화재가 번지는 것을 볼 수 있다. ]

공격이 끝난후 도네의 수상기가 정황을 살피기 위해서 이륙한후 상공에서 내려다본 광경은 정말로 처참했다. 나구모 기동부대의 마지막 항모 히류의 전방 갑판은 완전히 날아가버렸으며 불기둥은 점차로 함미로 번지고 있었다.

이제 히류는 항모가 아니라 마치 유령선이 되버린 듯 했다. 히류를 둘러싼 다른 함선의 승조원들이 넋을 놓고 쳐다보는 가운데 마지막까지 후퇴를 모르고 분전하면서 미함대와 맞섰던 용장 야마구찌와 항모 히류도 이제는 그 명을 다한 듯이 계속 불길을 토하고 있었다. 

* 일본의 거대항모들, 태평양에 잠들다. 

한편, 오전의 공격으로 만신창이가 되었던 항모 3척은 침몰만은 면하려는 승조원들의 노력으로 간신히 바다에 떠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노력에도 워낙 큰 피해를 입은 항공모함들은 마치 옆구리에 작살에 찔려 피를 토하는 고래처럼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점점 기울어가고 있었다.

[ 항모 소류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담은 일러스트, 자매함 히류와 함게 진주만 기습에서부터 남방작전까지 종횡무진하면서 일본해군의 영광을 이룩했던 항모였으나, 미드웨이 해전에서는 가장 먼저 침몰한 항모가 되었다. ]

가장 먼저 태평양에 잠든 항모는 소류였다. 소류는 오전의 폭격으로 엔진이 정지하고 불길이 함선 전체를 뒤덮기 시작해서 정오 무렵에는 이미 야나기모토 류사크 함장이 전원 퇴함을 명령한 상태였다. 야나기모토의 명령이 떨어지자 소류의 생존승조원들이 바다로 뛰어들었고 구축함 하마카제와 이소카제가 이들을 구하기위해 접근했다. 이들이 구조될 무렵 그들은 그들이 존경하며 따르던 야나기모토 함장이 탈출하지 않고 함교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을 발견했다. 평소 야나기모토 함장을 아버지처럼 따르던 몇몇 승조원들이 함장을 구하기위해서 함교로 뛰어올라갔다. 그러나 야나기모토는 단호하게 퇴함을 거부했고 자신은 소류와 운명을 같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야나기모토의 명령으로 어쩔수없이 함장을 남기고 모든 생존자들이 탈출했으며, 야나기모토는 점점 불길에 휩쌓이는 함교에서 일본국가인 기미가요를 목청이 터져라 부르면서 소류와 함께 최후를 맞이했다. 점점 기울기 시작하던 소류는 6월 4일 오후 7시 13분, 살아남은 승조원들이 안타깝게 쳐다보는 가운데 이미 전사한 718명의 승조원들과 함께 태평양의 5천미터 바다속으로 가라앉았다. 일부 승조원들은 그 장면을 보면서 어버이를 잃은 자식처럼 엉엉 울었다는 뒷이야기가 있었다. 

[ 개전초기 일본 해군에서 가장 큰 항모였던 가가, 자매함 아까기와 함께 미드웨이에서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다. ]

가장 큰 피해를 입었던 가가는 이미 오카다 지사꾸 함장을 포함한 지휘부가 모두 공습당시에 전사한 상태였기 때문에 생존자중 가장 계급이 높았던 항공장교 아마기 다카히사 소령이 생존자들을 독려하면서 불길을 잡기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가가의 보일러에서 빠져나오는 수증기의 소음이 마치 거대한 괴물이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듯한 굉음처럼 울려퍼지고 있었고, 선체가 균형을 잃고 점점 한쪽으로 기울어가면서 아마기는 가가의 최후가 다가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더구나 오후 2시 30분, 일본 함대 주위를 배회하면서 공격기회를 노리던 미 잠수함 노틸러스호가 일본 함대의 경계가 흐트러진 사이에 함대 가까이 접근했고, 가가를 목표로 어뢰 3발을 발사한 후 일본 구축함들이 추격해오자 그대로 잠수하여 도주하는 일까지 있었다. 이 어뢰 3발 중 2발은 빗나갔으나 나머지 한발이 정확하게 가가의 중심부에 명중했다. 그러나 이 어뢰의 신관이 작동하지 않아 폭발하지 않았고 가가는 몇 시간이나마 더 생존할 수 있었다. (일부 미군의 기록에는 이 어뢰가 가가를 끝장냈다고 기술하고 있음.) 하지만 점차로 불길이 거세지고 함내의 폭발이 계속되면서 가가는 점점 더 기울어 가고 있었다. 오후 4시 30분 점점 더 거세지는 불길로 인해서 이제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판단한 아마기는 눈물을 삼키면서 전원 퇴함을 명령했다. 그러나 거대항모 가가는 살아있는 사람이 모두 탈출한 뒤에도 최후의 몸부림을 치듯이 3시간동안이나 마치 유령선처럼 바다를 떠돌다가는 소류가 침몰한지 12분후인 오후 7시 25분에 결국 800여명의 전사자와 함께 태평양의 심연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 나구모 기동부대의 항모들이 공격을 받았던 상황을 보여주는 상황도이다. 최후의 항모 히류는 북쪽으로 항진하면서 미함재기들의 공격을 피하면서 함재기를 발진시켜 요크타운을 공격했으나 결국 미군 정찰기에 의해 발견되어 미함재기들의 공격을 받아 최후를 맞았고, 일본 함대는 퇴각하게 된다. ]

그러나 2척의 항모가 침몰한후에도 일본 함대의 상징과도 같은 아까기는 불과 싸우면서 바다에 떠있었다. 그러나 공습직후 전원 퇴함의 명령이 떨어졌던 아까기에는 이미 살아있는 승조원은 없었고 아까기도 살아날 가망이 없어보였다. 그러나 역전의 항모 아까기는 가가와 소류가 침몰한 후에도 아직은 죽을 때가 아니라는 듯이 버티고 있었으며 호위함대도 아까기를 어떻게 해야하는지 망설이고 있었다 .(아까기는 매우 상징적인 항모였으므로 자침시키려면 야마모토의 명령이 있어야 했다.) 결국 아까기는 바다가 어둠에 휩쌓인 6월 5일 새벽 2시까지도 선체에서 불을 토하면서 유령선처럼 바다를 떠돌고 있었던 것이다. 

* 미드웨이 침공 작전 중지 

한편, 제1 기동부대의 항모들이 모두 당하고 말았다는 비보를 전해들은 야마모토는 크게 당황했다. 갑자기 모든 작전이 엉망이 되었으며, 냉철하고 신중한 야마모토조차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할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항모 3척이 대파당했다는 보고를 받자마자 야마모토는 평소답지않게 마음이 조급해졌다. 야마모토는 우선 얄류선 공략부대의 항모 2척을 급히 미드웨이로 향하도록 명령하고 자신이 지휘하는 본대를 전속으로 미드웨이 방면으로 이동시키도록 명령했으나 이는 현실적으로 전혀 가능성이 없는 것이었다. 각 부대간의 거리가 워낙 멀어 얄류션 공략부대는 미드웨이까지 가려면 무려 48시간의 시간이 필요했고 야마모토의 본대도 500km가 넘는 거리를 항진해야 했다. 더구나 잠시후 히류마저 공격을 받았다는 보고가 들어오면서 야마모토는 완전히 이성을 잃었다.  

선봉에 섰던 모든 항모들의 손실로 제공권을 상실한 야마모토는 마지막 실낱같은 희망에 모든 것을 걸려고 했다. 그것은 곧 날이 어두워 진다는 것을 이용해서 곤도 제독과 구리따 제독이 지휘하는 상륙함대의 전투함들로 하여금 제1 기동부대의 전함과 순양함들과 합류하여 전속력을 미함대를 추격해서 주포와 어뢰를 이용한 야간전투를 감행하는 것이었다.

[ 야마모토의 명령으로 미함대를 추격하여 야간전투를 벌이기 위해 다급하게 움직이는 일본 함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상황도이다. 그러나 이런 의도를 간파한 미함대는 130마일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동쪽으로 내빼고 있었고 결국 야마모토는 잠시후 패배를 인정하는 전군 후퇴의 명령을 내려야 했다. ]

즉시 미함대를 추격하라는 야마모토의 명령이 떨어지자 일본 함대의 순양함 모가미와 미쿠마를 선두로하는 일본 함대는 해가뜨기전에 미함대를 잡기위해서 전속력으로 동쪽으로 항진하기 시작했지만, 그들의 기대와 달리 미항모들은 이미 일본 함대가 추격해 올 것을 계산하고 있었다는 듯이 일본 함대와 거리를 유지하면서 동쪽으로 내빼는 중이었다. 아직 항모 2척이 건재한 미함대는 일본 함대가 거리를 좁혀오는 것을 허용할 의사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만일 일본 함대가 계속 미함대를 추격해서 동쪽으로 항진하다가 미해군을 따라잡지 못하면 해가 떠오른 후 미군의 함재기들로부터 다시 역습을 받아 오히려 더 큰 피해를 입을 우려가 있었다.

순양함에서 발진한 일본 정찰기가 미항모들이 일본함대와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보고하자 결국 야마모토는 그가 구상했던 대작전이 실패로 끝난 것을 인정해야 했다. 휘하의 참모들은 모두들 이제는 현실을 직시하고 후퇴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상신하고 있었다. 결국 야마모토는 6월 5일 새벽 2시 55분, 미드웨이 공략작전 전체를 취소할 것을 명령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가 일본의 운명을 걸고 감행했던 대도박은 미드웨이라는 작은 섬을 넘지 못하고 태평양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게다가 야마모토는 작전실패를 상징하는 치욕적인 명령을 하달해야 했다. 그것은 화염에 휩쌓여 떠돌고 있는 아까기를 방치하고 떠나올 경우 미군의 손에 넘어갈 수도 있으니 우군의 손으로 격침하라는 것이었다. 이로서 아까기는 태평양 전쟁 최초로 우군의 손에 의해 자침된 항모가 되었다. 이 명령이 떨어지자 일본 함대의 상징과도 같았던 거대항모 아까기를 향해서 4척의 호위 구축함이 접근했다. 그리고 어뢰 4발이 아까기를 향해서 조준되었고 동시에 발사되었다. 잠시후 어뢰가 모두 명중하면서 아까기는 거대한 불기둥과 함께 급격하게 기울기 시작했다. 1942년 6월 5일 새벽 4시 55분, 나구모는 그의 눈앞에서 자신과 모든 것을 함께한 일본해군의 상징 아까기가 일본해군의 어뢰에 의해 처분되어 깊고 깊은 태평양의 바다속으로 사라지는 쓰라린 광경을 보고 있어야 했다. 

한편, 일본의 마지막 항모 히류의 최후도 임박했다. 히류 역시 손을 쓸 수 없는 불길에 휩쌓여 조타력을 상실하고 유령선처럼 북쪽으로 떠돌았다. 6월 5일 새벽 2시 30분, 야마구찌 제독은 그의 명이 다해가고 있음을 느꼈다.

[ 히류의 최후가 임박하자 함내에 남기로 결정한 야마구찌 다몽 제독과 마지막 이별 인사를 나누는 부하들의 모습을 담은 일본의 전쟁화이다. 일본측의 자료답게 참으로 장렬하게 묘사하고 있다. ]

함내에서 발생한 화재는 꺼질줄 몰랐고, 화열로 뜨거워진 함내에서는 크고 작은 연쇄폭발이 시작되었다. 이제는 모든 희망이 사라진 듯이 보였으며 점점 히류를 포기해야 할 시점이 임박했다. 점차 연기가 심해지는 함교에서 야마구찌 제독과 가꾸 함장과 함께 부하들을 불러모아놓고 말문을 열었다.

"나는 히류와 소류의 사령관으로서 이 두 항모의 상실에 모든 책임을 지고 가꾸 함장과 함께 히류에 남을 것이다. 내 말이 끝나는 즉시 전원 퇴함하고 이후 최선을 다해서 조국과 천황폐하를 위해서 봉사하도록 하라. 전원 퇴함이 완료되면 즉시 어뢰로서 히류를 격침하라."

야마구찌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모든 참모들과 부하들이 눈물을 글썽이면서 같이 퇴함 할 것을 간청했지만 야마구찌의 의지는 단호했다. 몇몇 부하들이 같이 남도록 해달라고 했지만 이 역시 거절했고 모두 퇴함할 것을 단호하게 명령했다. 그리고 그의 전투모를 유물로 부하에게 전달한 후에 일장기와 일왕의 사진을 내려 부하들에게 동행시켰다. 그리고 점점 불길에 휩쌓이기 시작하는 함교에서 가꾸 함장과 술잔을 기울였다.

"자... 달빛이 좋구만, 우리 저 달빛이나 즐깁시다!"

6월 5일 오전 5시 10분, 2척의 구축함에서 발사된 어뢰가 히류에 명중했고 거대한 물보라와 함께 히류도 점점 한쪽으로 기울어가다가 어느순간 갑자기 새벽의 바다로 빨려 들어가듯이 사라졌다. 

* 역전의 요크타운 운명을 맞이하다. 

한편, 일본군의 공격을 받아 큰 타격을 입은 미해군의 요크타운도 필사적으로 살기위해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 뇌격기들의 어뢰에 명중된후 20도이상 옆으로 기울어버린 요크타운은 이미 살아날 가망이 없어 보였다. 엘리엇 벅마스터 함장은 함을 포기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모든 승무원들은 바다로 뛰어들어 호위 구축함에 구출되었다.

[ 도모나가 공격대의 어뢰에 맞은후 많이 기울어있는 요크타운, 함을 포기하라는 명령이 떨어진 상태였다. ]

그러나 요크타운은 운명을 거부하고 있었다. 이 역전의 항모는 마치 죽음을 거부하는 불사조처럼 다음날 날이 밝아오도록 옆으로 기운 채로 그대로 물위에 떠있었던 것이다. 결국 미해군은 이 항모를 하와이까지 예인한 후 수리하기로 결정했다. 결정이 내려지자 요크타운은 호위 구축함 함만에의해 견인되어 서서히 하와이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 요크타운을 추격하던 일본 잠수함 I-168호, 함장의 기지로 성공적으로 요크타운을 격침한후 무사히 도주했다. ]

그러나 6월 6일 오후 1시, 요크타운이 필사적으로 하와이를 향해 견인되고 있을 무렵에 바다속에서는 요크타운을 노리는 죽음의 사자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은 미드웨이 작전을 지원하기 위해서 파견되었던 일본 잠수함 I-168 이었다. 함장이었던 타나베 야하치 소령은 미드웨이 작전이 취소된 것을 알고있었지만 잠망경에 나타난 요크타운을 발견하고는 서서히 미행하기 시작했다. 주위에는 호위 구축함들이 7척이나 있었지만 매우 느린 속도로 이동하는 요크타운과 함만은 그야말로 먹음직스런 고기덩어리와 같았다.

[ 요크타운과 구축함 함만이 I-168의 어뢰공격을 받는 장면을 담은 디오라마이다. 마치 실사처럼 느껴진다. ]

I-168의 타나베 함장은 7척이나 되는 호위 구축함들의 위협이 있지만 요크타운을 공격하기로 결심했으며, 계속 이들을 미행하면서 공격기회를 노리다가 요크타운의 측면에서 공격위치를 잡는데 성공했다. 타나베의 명령으로 4발의 어뢰가 발사되었으며 이들은 흰 궤적을 끌면서 요크타운을 향해 직선으로 뻗어갔다. 2발은 빗나갔으나 나머지 한발이 먼저 구축함 함만의 옆구리를 통타하여 두동강을 내버렸고, 요크타운도 결정타를 맞고 말았다.

일본군의 잠수함니 나타나리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가 어뢰 공격에 놀란 미군 구축함들이 분노에 불타올라 일제히 잠수함을 찾기 시작했고 여기저기에 폭뢰가 투하되었다. 그러나 I-168호는 거의 침몰위기까지 몰렸다가 사지에서 무사히 빠져나오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I-168의 어뢰 공격을 받은 요크타운은 점점 더 옆으로 기울어가면서도 침몰하지 않고 몇 시간동안을 더 버티면서 또 다시 불사조처럼 살아나는 듯 하였으나 결국 다음날인 6월 7일 새벽 5시, 산호해와 미드웨이에서 불사조의 용명을 떨친 역전의 항모 요크타운도 이제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태평양의 바다속에 잠들었다.

* 대해전의 종막 

[ 끝까지 추격하여 일본 순양함들을 공격하는 미함재기들의 모습을 담은 전쟁화 ]

야마모토의 명령으로 전 일본함대가 항로를 정반대로 돌리고 후퇴하기 시작했지만, 6월 6일 미드웨이 해전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전투가 전개되었다. 철수명령이 떨어지자 일본 함대는 모두들 방향을 돌려 미 함재기들의 사정권 밖으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야간전투 명령을 받았을 때 제일 선봉에서서 동쪽으로 돌진해 들어가고 있었던 순양함 미쿠마와 모가미는 뒤늦게 방향을 돌렸지만 아직도 미군기들의 행동반경안에 들어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들이 앞다투어 후퇴하는 경로에 미잠수함 템버호가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템버는 잠망경으로 수면을 살피던중 이 두척의 순양함과 호위 구축함들을 발견했다. 이와 동시에 미쿠마와 모가미의 승조원들도 템버의 잠망경을 발견했다. 일본 구축함들이 템버를 몰아내기위해 다가오자 템버는 잠수하여 도주해야 했다.

[ 일본함대를 끝까지 추격해서 괴롭히던 SBD 급강하 폭격기들, 아래 연기를 피워올리는 것은 침몰직전의 순양함 미쿠마이다. ]

그러나 이때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템버가 어뢰를 발사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모가미의 함장이 회피기동을 실시하던 도중 미쿠마의 옆구리를 들이받아 버린 것이다. 이 충돌사고로 두 순양함은 큰 손상을 입었고 기름을 바다에 흘리면서 비틀거리면서 후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함대는 끝까지 퇴각하는 일본해군을 공격하기로 결정했고, 미드웨이섬과 항모에서 미군기들이 날아올라 제일 후미에 쳐진 두 순양함들을 공격해왔다. 격렬한 대공포화를 발사하면서 필사적으로 도주하던 미쿠마에 연달아 폭탄이 명중했고 대공포화에 피격된 미군의 SB2U 급강하폭격기 한대가 엔진 손상으로 더 이상 돌아갈수 없게되자 조종사는 미쿠마에 그대로 돌입했다. 미군기의 자폭공격까지 받은 미쿠마는 검은 연기를 피워올리다가 순식간에 뒤집혀 침몰해버렸다. 모가미는 침몰은 간신히 면했지만 폭탄에 맞아 커다란 손상을 입었고 향후 1년간 전열에서 이탈하게 되었다. 이것이 미드웨이해전의 마지막 항공작전이었다.

[ 미함재기들의 공격을 받아 처참한 몰골이 된 순양함 미쿠마 잠시후 침몰하여 미드웨이에서 침몰된 일본함대의 마지막 함선이 되었다. ]

 

* 모든 것이 끝난후... 

6월 3일부터 6월 6일까지 태평양의 제해권을 걸고 미드웨이라는 작은 섬을 사이에두고 희대의 대결을 벌인 양측의 정예 기동부대간의 승부는 미해군의 승리로 끝났다. 개전이래 무적의 존재로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일본해군의 최정예 항모 4척이 태평양 전체의 판도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전투에서 수많은 조종사들과 승조원들과 함께 허무하게도 모두 바다속으로 사라져버렸으며 이것으로 일본해군이 태평양 전쟁을 주도하던 시기는 끝나게 되었다. 미드웨이해전은 태평양 전쟁의 전환점으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전투였던 것이다.

모든 상황이 종료된 후 허탈하게 일본으로 후퇴하던 일본함대이 승조원들은 모두 기가죽어있었고, 아무도 말이 없었다. 연합함대 본대의 기함인 전함 야마또의 함교에서는 크게 상심한 야마모토가 홀로 고독하게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위한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하고 그와 일본해군의 모든 것을 걸었던 미드웨이의 대도박이 허공으로 날아가버린 지금 야마모토에게는 이제 일본의 앞날이 어떻게 될 것인지는 분명했던 것이다.  

[ 전투가 승리로 굳어질무렵 호위임무를 마치고 항모 호넷으로 귀함하는 F4F 전투기의 모습을 담은 전쟁화이다. 승리를 상징하는 밝은 분위기의 파스텔톤의 화풍이 인상적이다. ]

미드웨이 해전은 일본해군에게는 기억하기 싫은 악몽이었지만 미해군에게는 영원히 기억될 영광스런 승리였다. 전투가 끝난후 하와이로 돌아오는 함대에서 모든 승무원들은 승리를 자축하면서 진주만의 복수를 했다는 것에 크게 기뻐했다. 미군의 승리는 불리한 군세에도 불구하고 과감한 전략과 전술을 구사하던 미해군 지휘부와 명령을 충실히 따르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수많은 조종사들의 희생과 미함대의 모든 수병들의  피와 땀이 이루어낸 결실이었다. 

2차대전의 수많은 격전중에서도 서부전선의 영국본토 항공전 그리고 동부전선의 스탈린그라드 공방전과 함께 태평양의 미드웨이 해전은 강력한 추측국의 공세를 성공적으로 막아내고 전세를 되돌린 대표적인 전투로 평가 받고 있다. 태평양의 지배자를 꿈꾸면서 하늘 높은줄 모르고 끝없이 떠오를 것만 같았던 일본의 운명이 결정된 곳, 그곳이 바로 운명의 섬 미드웨이였던 것이다. 

foxmouse: 야심차게 시작한 미드웨이 해전의 연재는 이번에도 많은 아쉬움을 남긴채 마무리가 되가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조금더 알기쉽고 전황파악을 자세하고 재미있게 설명해보려고 했으나 이것이 제대로 되었는지는 솔직히 의문입니다. 이제 미드웨이 해전의 여러 가지 뒷 이야기를 살펴보는 미드웨이 해전 후기를 마지막으로 태평양 항공전 2부를 접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회까지 성원을 보내주시는 여러 방문객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