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ornier  Do 335 ◇


This document was updated at 2009. 7. 17

이번에 업데이트되는 GWP의 리뷰는 최근 불타는 하늘의 객원필진으로 활발한 활동을 해주시는 Naver 불타는하늘 카페의 루닉 (김준규)님께서 제공해 주셨습니다. 역시 이번의 리뷰도 보기드문 마이너 아이템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그동안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독일공군의 비밀무기중 하나인 Do 335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렇게 좋은 자료를 불타는 하늘에 제공해주신 루닉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이 기종은 내가 지금껏 보아 온 항공기들 중에 가장 매력적입니다. 확실히 Do335는 놀라운 이야기를 지녔지요. 이 항공기는 전천후 전투기로 개발되었고 야간 전투기와 훈련기로도 쓰일 수 있었어요. 난 아주 큰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그 시절에 이 항공기는 아마 세계에서 가장 빠른 피스톤 엔진 항공기었을 겁니다. 독일인들이 공표한, 21000피트 상공에서 472mph(759km/h)라는 성능 표기를 누구도 믿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비록 아주 짧은 시간밖에 보지 못했지만, 이건 정말 빠른 항공기였어요."

- 에릭 M.브라운, 영국공군 시험비행사 -

 

*도르니에의 집념

 

[클라디우스 도르니어 박사, (1884.5.14~1969.12.5) ]

쩨펠린 비행선의 설계에 참여하고. 1914년 도르니에 항공사를 창립했던 유능한 항공기 설계자 클라우디우스 도르니에는 한 개의 엔진나셀에 서로 뒷쪽을 맞대고 장비된, 탠덤 엔진 디자인을 오랫동안 연구하였다.

 

[Dornier Do J 'Wal' (Do 15/16)]

1924년 11월 6일 처녀비행한 Do J '고래'를 시작으로, 그는 이 텐덤 엔진들을 날개 위에 얹은 비행정들을 여러 가지 만들었다. 7년간 설계하고, 2년간 제작하여 1929년 7월 12일 처녀비행한 12발 비행정 Do X는 그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가장 무겁고, 또한 가장 강력한 비행정이었다.

 

[뉴욕 상공을 비행하는 12발 거대 비행정 DO-X.]

비록 몇 가지 자잘한 사고와 상업적인 관심 부족으로 인해 세 대밖에 만들어지지 못했지만, 66~100명의 승객을 싣고 대서양을 횡단할 수 있는 이 ‘나는 유람선’은 그 후 십여 년간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강력한 항공기로 남았다. 그리고 1930년대 말에 이르러 그는 두 엔진 사이에 조종석을 장비한 항공기를 생각하게 되었다.

 

[도르니에의 새로운 군용기 특허안]

1937년 8월 3일, 그는 이 형태의 군용기에 대한 특허를 내기에 이른다. 최소한 세 가지의 교환 가능한 부분 - 끌어당기는 프로펠러와 엔진이 장비된 기수 부분, 조종석과 연료탱크가 장비되며 앞뒤의 방화벽으로 보호받는 가운데 부분, 그리고 미는 프로펠러와 두 번째 엔진, 미익이 장비된 꼬리 부분 - 을 가졌고, 가운데 부분은 특히 수 mm 두께의 장갑판으로 보호받는 항공기를 구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고속폭격기 설계안, Dornier P.59-04]

이 특허가 접수될 즈음, 이미 도르니에 사의 개발진들은 특허의 내용과 거의 같은 P.59-04라는 고속 폭격기 설계안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저익 단엽의 1인승 항공기로, 하나의 동체에 앞뒤로 한 쌍의 다이믈러-벤쯔 엔진을 장비하였다. 뒷쪽 엔진의 라디에이터 흡입구는 조종석 뒤의 기체 하면에 장비되었고, 후방 프로펠러는 연장된 축으로 엔진에 연결되어 있었다. 또한 특이한 십자형 미익을 지녔고, 아래쪽 수직꼬리날개에는 꼬리 바퀴가 달려 있었다.

 

*뒤에서 밀다

전쟁이 발발하고, 1940년에 이르렀을 때에도 RML에서는 이 혁신적인 디자인에 대해 어떤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따라서 설계안은 쓸모가 없어졌다. 그러나 도르니에는 이 디자인이 항공기에 우수한 성능을 부여한다는 것을 입증하고 싶어했다. 그리하여 글라이더 제작사 솀프-히쓰(Schempp-Hirth)에 이 디자인의 실험기를 제작해 달라는 요청을 하게 되었다. 실험기는 뒤에서 미는 프로펠러의 유용성과, 항공기 후방의 프로펠러를 돌리는 데 있어 긴 샤프트가 진동 없이 작동하는지를 증명해야 했다.

 

[Göpingen Gö 9]

휘터(Hütter)에서 제작된 실험기 괴핑겐 Gö 9는 1940년이 끝나기 직전 처음으로 비행하였다. 기본적으로 Do17 폭격기를 1:2.5 비율로 축소한 설계를 가진 이 비행기는 동체 중앙에 80마력짜리 엔진을 장비하고 있었다. 날개길이 7.2m, 전장 6.8m, 비행중량 720kg의 이 실험기는 220km/h의 최대속력을 냈다.

긴 샤프트로 구동되는 후방 프로펠러가 만족스럽게 작동한다는 결과가 나왔지만, RML의 태도는 여전히 냉랭했다. 그러나 도르니에는 이 설계가 성공적이라고 생각했고, 이전의 P.59를 발전시켜 새로운 설계안 P.231을 구상하였다. P.231은 세 가지 세부안으로 구성되어, 두 개의 DB605E 엔진을 장비하는 P.231/1, 두 개의 DB603 G 엔진을 사용하는 P.231/2, 그리고 P.231/3은 이후 개발이 더욱 진행되어 P.232/2가 되었는데, DB603 엔진과 Jumo 004C 터보제트 엔진의 혼합동력 항공기가 구상되었다. 그러나 1943년 가을 이 프로젝트는 취소되었으며, RLM은 다른 방안을 원했다. 그리하여 P.231 에서 몇 가지를 변화시킨 설계안이 Do335라는 제식명칭을 받게 되었다.

 

*뒤를 맞댄 두 엔진

1943년 1월 세 대의 실험기 계약이 맺어졌다. 이윽고 요격기, 고속 폭격기, 고속 정찰기 등 다양한 가능성을 가진 이 계획의 최초의 실험기인 Do335 V1이 제작되었다. 실제로 제작된 Do335는 프로젝트 P231/2의 형태와 거의 비슷한 모습을 지녔으나, 전방 엔진에 환형 라디에이터를 장비하고 후방 엔진의 라디에이터를 위해 주 강착장치 수납부 뒤쪽에 큰 흡입구가 장착되었다. 1943년 10월 26일 V1(CP+UA)이 처음 날아올랐는데, 이 실험기에 탑승한 조종사 한스 디터를은 1939년에 23살의 나이로 하인켈 He100 V8 실험기를 몰고 463.919mph(746.606km/h)의 세계 속도 기록을 세웠던 사나이였고, 당시 도르니에 사의 수석 실험조종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 비행하는 Do335 V1 ]

네 번째 비행에서, V1은 해면고도에서 373mph(600km/h)의 속도를 냈고, 이후의 비행들에서 특이한 엔진 배치 덕분에 비대칭 문제를 겪지 않고도 한 개의 엔진만으로 안정적으로 비행할 수 있다는 점이 증명되었다. 특이한 점은 후방 엔진만 사용했을 때 그 반대의 경우보다 더 빠르게 비행할 수 있었으며, 이 때도 순항고도에서 560km/h의 속도를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후방 엔진의 냉각 문제가 개발진의 골머리를 썩였다.

 

 

[ Do335의 조종석. 뒷부분이 전부 막혀 있다. ]

두 번째 실험기 Do335 V2 (CP+UB)는 1943년의 마지막 날에 테스트에 참가할 수 있었다. V1에 비해 변한 것은 전방 엔진 카울링의 형태와 조종석 캐노피의 열리는 방식 등이었다. 곧이어 1월 20일에는 약간 달라진 배기구와 익근부 페어링을 지닌 V3 (CP+UC)이 실험비행하였다.

 

[캐노피에 설치된 백미러]

V2와 V3 모두 조종석 캐노피에 특이한 물방울 형태의 돌출부를 지니고 있었는데, 내부에 설치된 백미러로 조종사는 후방을 살필 수 있었다. 네 번째 실험기 V4 (CP+UD)는 1944년 7월 9일에서야 처음 비행했는데, 이 기종은 하인켈에서 설계한, 높은 종횡비를 가진 날개를 지니고 있었다. 새로운 날개는 18.4m의 길이로, 고고도 성능을 염두에 둔 파생형의 기초가 되었다.

 그리고 5번째 실험기 V5 (CP+UE)에 이르러 원래 계획했던 무장이 장착되었다.

 

[ Rheinmetal-Borsig 30mm MK103 cannon ]

장포신의 30mm MK103 기관포가 DB603 엔진의 역V자 실린더 사이를 지나 프로펠러축에  장비되었고, 엔진 위에 20mm MG151/20 기관포 2문이 더 얹혔다. MK103은 기존의 MK108에 비해 발사속도는 느렸지만, 거의 2배에 가까운 포구초속과 그에 따른 긴 사정거리를 가졌으며, 대구경 고속탄의 파괴력은 무시무시했다. 먼저 이 기관포를 장비했던 Hs129 지상공격기 등은 철갑탄을 장전하여 소련의 전차를 저격하는 데 사용하기도 하였다.

 

[ Do335의 사출좌석 ]

특이한 생김새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문제는 다름아닌 조종사의 안전한 탈출이었다. 그를 위해 조종석에 마련된 세 개의 버튼으로 위급 상황시 조종사는 후방 프로펠러, 상부 수직미익을 날려버리고, 마지막으로 앉은 좌석째로 비행기에서 떨어져 나올 수 있었다. (Do335는 두 번째로 사출좌석을 장비한 프로펠러 항공기였고, 이 사출좌석은 압축 공기로 작동되었다.)

1944년 5월경까지 기체에 장비될 여러 부분에 대한 시험이 진행 중이었고, 이 시점에서 Do335는 '화살' (Pfeil)이란 별명을 얻게 되었다. 여러 문제점이 수정된 기체인 Do335 V9(CP+UI)는 최초의 양산형인 전투폭격기 A-1형의 첫 시험기체가 되었다. 성능시험 중에 V9는 순항고도에서  472mph(760km/h)라는 고속 성능을 발휘했다. 같은 엔진을 두 기 장비한 Me410 등 다른 쌍발기체들과 비교해 볼 때, Do335는 텐덤 엔진으로 인해 줄어드는 공기저항과 후방 엔진의 특이한 라디에이터 (P-51 등이 가진 것과 같은 형태로, 냉각수의 열을 이용하여 보조 추력을 얻는다) 등의 설계가 고성능의 비결이 된 것이었다.

당시 루프트바페 최고의 전투기였던 Fw190과의 모의 공중전에서, 시험조종사 Beauvais가 스로틀을 열자 Do335는 쭉 뻗어나가더니 Fw190이 감히 쫓아오지 못할 정도로 앞서나갔다. 고속 성능과 무시무시한 가속력뿐만 아니라, 조종성이 우수했으며 크기에 비해 대단한 기동성을 갖고 있었다. 작업이 진전되자 V9의 설계를 바탕으로 10대의 초도양산형 A-0 (W.Nr.240101~240110) 이 생산에 들어갔다.

미군 제 8공군의 폭격이 계속되어 도르니에 시설들에 큰 피해가 발생하였지만, 프리드리히스하펜에서의 작업은 계속되었다. 그리하여 9월 30일에 최초의 초도양산형 Do335 A-01(VG+PG)이 출고되었다.

 

Dornier Do335 A-1 'Pfeil'

 

분류 : 쌍발 단좌 전투폭격기

엔진 : 다이믈러-벤쯔 DB603E-1 역V자형 수냉식 12기통 엔진 2기 (1800마력)

전장 : 13.85m

전폭 : 13.80m

전고 : 5.00m

익면적 : 38.50㎡

건조중량 : 7320Kg, (비행중량 8700kg)

최대 속도 : 고도 6,400m에서 763Km/h

항속 거리 : 1380Km

실용상승한도 : 11500m

 

무장 :

  -  MK103 30mm 기관포 1문, 탄약 70발 (전방 엔진 프로펠러축)

  - MG151/20 20mm 기관포 2문, 1문당 탄약 200발 (전방 엔진 카울링상부)

 

* 날으는 대장군전(箭)

 

괴상한 형상만큼이나 이 '전투기'는 매우 큰 크기를 자랑했다. 키가 아주 크지 않다면, 이 비행기 밑에서 머리를 숙이지 않고 걸어다닐 수도 있었다.

 

[길쭉한 생김새와 달리 Do335는 매우 거대한 전투기였다.]

전금속제 모노코크 구조의 기체 맨 앞에는 DB603 A-2엔진과 그에 물린 3.5m짜리 역피치 프로펠러가 달려 있었다. (역피치 프로펠러는 착륙 활주거리를 25% 정도 줄여 주었다.) 조종석 뒤에는 1230리터 들이 연료탱크가 자리잡고 있었고, 후방 엔진은 기체 맨 끝으로 이어진 축을 통해 후방의 미는 프로펠러를 돌렸다. 동체 중앙 하부의 내부 무장창에는 500kg의 폭탄이나, 투하 가능한 500리터 들이 보조 연료탱크를 달 수 있었다.

 

[ Do335의 심장, Daimler-Benz DB603 엔진 ]

한 개의 박스 형태의 스파 구조물과 전금속제 응력외피로 이루어진 주익의 앞전에도 각기 310리터 들이의 자동봉입장치가 완비된 연료탱크가 장비되었다. 다른 쪽에는 플랩과 유압식으로 작동되는 에일러론이 장비되었다. 십자 형태의 미익은 거의 전금속제였지만, 수직 미익의 앞전은 나무로 만들어졌다. 하방 수직미익의 끝에는 범퍼가 장치되었고, 이 미익 전체는 동체착륙시 떼어 버릴 수 있었다.

 

* 다재다능한 항공기

초기 생산 계획은 44년 2월부터 잡혀 있었지만, 개발 과정의 지연으로 인해 실질적인 양산은 오베르파펜하펜에서 10대의 초도양산형 A-0이 생산된 후에야 이루어질 수 있었다. 최초의 양산형 Do335 A-1 전투기는 더 강력한 1800마력의 DB603 E-1 엔진 한 쌍을 장비했고, 기본적인 무전기, 피아식별장치, 라디오 착륙유도장비를 갖추었으며, 동체 하부의 무장창에 2개의 ETC 501 A-1 폭탄랙을 장비하여 각기 250kg 폭탄이나 300리터들이 투하식 연료탱크를 장비할 수 있었다.

 

[ 공장에서 생산 중인 Do335들 ]

A-2형은 고속 폭격기로 계획되어, 두 개의 DB603 G엔진을 장비하고 1000kg의 폭장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계속 전황이 악화되어, A-2형의 생산은 진행되지 못하였다. 고고도에서의 엔진 보조장치 GM 1과 MW50 파워 부스터를 모두 갖춘 A-3형은 주간 중전투기로 운용될 계획이었으나, 역시 전쟁이 끝날 때까지 한 대도 완성되지 못했다.

또한 장거리 정찰기로써의 사용도 건의되어, V1과 V3이 스카파플로우의 영국 함대 사진정찰과 런던 정찰에 각각 투입되어 몇 번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하부 무장창에 Rb 50/18 카메라 2기를 장비한 A-4의 설계는 이미 완비되어 있었다.

7번째 실험기 V7은 융커스 공장에 보내져 Jumo 213 엔진에 관한 테스트를 받았으며, A-5/-7/-8/-9 등의 형식이 이 엔진을 장착할 예정이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정확히 어떤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 Do335 A-6의 Cut-away 그림 ]

1944년 가을 들어, 이 다재다능한 항공기를 야간 전투기로 써 보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야간전투기 Do335 A-6의 설계는 기본적으로 A-1과 같았으나, 조종석 뒤쪽에 레이더조작수를 위해 튀어나온 좌석과 하인켈 특제 사출좌석이 마련되었다. 이에 주 연료탱크의 용량이 절반 이상 (A-1형 1230리터, A-6형 600리터) 줄어들었고, 주익 아래에 두 개의 300리터 들이 보조연료탱크를 장착하여 이를 보완하였다. 또한 두 개의 작은 MW50 분사장비가 주익에 장착되어 짧은 시간 동안 2000마력의 강한 힘을 내게 하였다.

 

[ SN-2 레이더의 안테나 ]

또한 기본 라디오 장비와 함께 FuG220 '리히텐슈타인 SN-2' (이후 경량화된 FuG218 넵튠 V로 교체되었다.) 공중 요격 레이더와 FuG350 '낙소스Z' 역탐지 레이더, 지멘스 FuG 101 라디오 고도계가 장비되어, 이 장비들을 위해 주익에 구이용 꼬치처럼 생긴 4개의 안테나가 장비되었다. 무장은 단좌형과 동일한 기수의 3문의 기관포가 유지되었고, 무장창에는 500리터 보조연료탱크나 500kg의 폭탄을 장비할 수 있었다. 이 장비들이 증가시킨 공기저항은 최대 속도를 70km/h 가량 떨어뜨렸지만, 그래도 Do335 A-6은 독일이 가진 가장 빠른 야간전투기 중 하나였다.

 

Dornier Do335 A-6 'Pfeil'

 

분류 : 쌍발 복좌 야간전투기

엔진 : 다이믈러-벤쯔 DB603A 역V자형 수냉식 12기통 엔진 2기 (1750마력)

전장 : 13.85m

전폭 : 13.80m

전고 : 5.00m

익면적 : 38.50㎡

건조중량 : 7830Kg, (비행중량 10100kg)

최대 속도 : 고도 6,400m에서 688Km/h

항속 거리 : 1330km

실용상승한도 : 10190m

 

무장 :

  - MK103 30mm 기관포 1문, 탄약 70발 (전방 엔진 프로펠러축)

  - MG151/20 20mm 기관포 2문, 1문당 탄약 200발 (전방 엔진 카울링 상부)

 

 A-6의 실험기체로 만들어진 V10(CP+UK)는 1945년 1월 24일 처음 비행하였다. A-6을  위해 V16, V15, V21, V22 네 대의 실험기가 더 만들어졌으며, 결빙 방지장치, EZ-42 자이로 조준기, 메서슈미트 P 8 고속 역피치 프로펠러 등 루프트바페의 기종들을 위한 최신 장비들이 지속적으로 Do335 실험기들에게도 제공되었다.

 

*더해지는 혼란 속에서 

 A-6의 실험비행이 있던 날, 베를린에서는 전천후 전투기 개발을 위한 협의가 있었다. 도르니에 사장은 1945년 3월까지 50대의 A-6을 공급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포케볼프 사의 쿠르트 탕크 박사 등에 의해 야간 전투기로써의 Do335의 효율에 대한 의심이 제기되었다. 약간의 논의 후 Do335의 야간전투기형과 혼합동력(후방 엔진을 제트엔진으로 교체하는) 파생형을 개발,시험하는 것만이 허용되었으며, 두 방안 모두 비용이 너무 많이 들 경우에는 폐기하도록 결정되었다.

 

[ 수리 중인 Do335. 슈나우퍼가 망가뜨렸던 기체이다. ]

 야간전투기의 실험에는 불후의 야간 전투기 에이스인 볼프강 슈나우퍼가 참여하였다. A-1형을 몰아 보고, 한 번은 추락하여 위기를 모면하기까지 한 그는 쉬라게 무지크 등의 야간전투기용 장비를 권하기도 하였다. V10은 Ta154 야간전투기 등의 다른 실험기종과 함께 야간전투기 부대 NJG3의 제 1그루페에 넘겨져 실전 테스트를 받았다.

 

 한편 두 개의 조종 장비를 갖춘 훈련기형의 개발도 시작되고 있었으며, 후방에 불룩 튀어나온 교관석을 갖춘 A-10, A-11, A-12 등의 훈련기형이 기획되었다. DB603 A-2 엔진을 장비한 A-10형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세 기가 완성되고, 두 대가 제작 중이었다. A-11형은 실전형에 쓰이는 DB603 E-1 엔진을 얹은 형식이었고, A-12형은 Jumo 213 엔진을 얹은 훈련기였다고 추정되나, 자료의 손실로 인해 이 부분은 확실치 않다.

 

*궁극의 구축전투기(Zerstörer) 

다른 한 편 1944년 여름부터 여덟 가지의 진보된 B형 기종들이 기획되고 있었다. 첫 번째 B-1은 단좌 주간 전투기로, A-1형과 거의 비슷하였으나 방풍창의 방탄유리와 몇몇 다른 장치를 지니고 있었다.

 

[ A형(왼쪽)과 B형(오른쪽)의 차이. 방탄유리가 설치되었다. ]

그러나 B-1은 B-2에 묻혀 잊혀지게 되었다. V13과 V14가 Do335 B-2 구축전투기의 사양으로 만들어졌는데, 이 두 항공기는 매우 중무장한 형태로써 주익에 불쑥 튀어나온 2문의 MK103 30mm 기관포를 지니고 있었다.

 

Dornier Do335 B-2 'Pfeil'

 

분류 : 쌍발 단좌 중전투기

엔진 : 다이믈러-벤쯔 DB603E-1 역V자형 수냉식 12기통 엔진 2기 (1800마력)

전장 : 13.85m

전폭 : 13.80m

전고 : 5.00m

익면적 : 38.50㎡

건조중량 : 7360Kg (비행중량 10000kg)

최대 속도 : 770km/h (고도 미상)

실용상승한도 : 10190m

 

무장 :

  - MK103 30mm 기관포 1문, 탄약 70발 (전방 엔진 프로펠러축)

  - MK103 30mm 기관포 2문, 1문당 탄약 70발 (양측 주익)

  - MG151/20 20mm 기관포 2문, 1문당 탄약 200발 (전방 엔진 카울링 상부)

 

Do335 B-3 구축전투기는 B-2와 기본적으로 같았으나, 더 강력한 DB603 LA엔진을 장비할 예정이었다. V18과 V19가 B-3의 사양으로 제작될 예정이었으나, 한 대도 완성되지 못했다. 이 구축전투기들은 매우 중무장한 주간 전투기들로써, 주로 주간에 공습해 오는 연합군의 폭격기를 박살내는 목적이었다.

 

[ B-2, B-3의 주익에 추가된 기관포를 볼 수 있다. ]

대구경 고속탄을 토해내는 3문의 MK103과 속사가 가능한 2문의 MG151/20은 B-2와 B-3이 단숨에 단발기 몇 대 분의 화력을 토해낼 수 있게 해 주었다. 따라서 몇 발만 제대로 명중하더라도 연합군의 4발 중폭격기를 박살낼 수 있었다.

또한 프로펠러축에 MK103 대신 55mm MK112 중기관포를 장비하는 계획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이 무기를 장착한 Do335는 한 대도 없었지만, 272kg의 무게에 분당 300발을 발사하는 이 대포는 항공기에게 가공할 위력을 보였을 것이다.

 

[ Do335 B-4의 거대해진 주익 ]

Do335 B-4 정찰기는 A-4형과 거의 흡사한 장비를 갖추었지만, 하인켈에서 만든 높은 종횡비를 가진 18.4m짜리 (익면적 43㎡) 주익을 달고 2단 슈퍼챠져가 달린 2000마력짜리 DB603 LA엔진을 장착하고 있었다. 이에 맞추어 B-5 훈련기도 이 날개를 갖추었다.

 

B-6은 A-6과 거의 비슷한 야간전투기였지만, 구조적으로 강화되고 새로운 노즈휠을 갖춘 형식이었다. 하인켈의 신형 주익과 DB603 LA엔진을 가진 야간전투기형으로 B-7이 계획되어 있었으며, 마지막 B형인 B-8 또한 그 날개를 가진 고고도 야간전투기형이었다. 또한 Do335의 후방 엔진을 제트엔진으로 대체하거나, 쌍동체 항공기를 구상하는 등의 개발 계획이 많이 마련되어 있었으나, 실제로 이루어진 것은 거의 없다.

 

*짧게나마 독일을 누비다 

1944년 9월 4일, 실험 비행대 Ekdo335가 창설되었다. Ekdo335의 두 개의 임무는 각기 영국의 모스키토 전폭기를 잡아내는 야간전투 방식을 개발하는 것과 전폭기, 정찰기형의 전술을 발전시키는 것이었다. 10월 26일에는 독일의 방공포부대에 Do335의 특이한 형상에 대한 식별 요령이 전달되었다.

연합군이 Do335를 목격한 기록은 찾아보기 드물다. 1945년 4월 중순에는 엘베강 상공에서 영국공군 제 3스쿼드론의 템페스트 전투기들이 정체불명의 텐덤엔진 항공기를 추격했으나, 너무 가속력이 좋아 따라잡을 수 없어 놓쳤다는 기록이 있으며, 미국 제 15공군의 325비행전대의 머스탱들에게 목격되었다는 기록에서도 Do335는 빠른 가속력으로 적기를 따돌리고 도주했다.

 

 

*패배자의 기술

1945년 4월 미군이 오베르파펜하펜의 도르니에 공장을 접수했을 때, 몇 대의 완성된 Do335와 조립되고 있던 더 많은 Do335가 발견되었다. 여러 대는 연합군의 공중 공격에 피해를 입었지만, 두 대의 비행 가능한 Do335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 중 한 대인 선행양산형 W.Nr.240102는 미국의 노획장비 식별번호 FE-1012가 붙여져 여러 테스트를 받게 되었다.

[ 공장을 접수한 미군 관계자들 ]

미 해군은 Do335에 상당한 인상을 받았으나, 후방 엔진 오일쿨러의 잦은 고장에 결국 실망했다고 한다. 1947년, 미 해군은 이 FE-1012를 스미스소니언 재단에 기증했다.

 

[ 전리품으로 선적되는 Do335 ]

미군에 접수된 Do335 중 두 대는 영국 조종사들에게 넘겨졌다. 2인승 훈련기인 A-10 (W.Nr.240112) 한 대는 1945년 9월 8일 판보로 에어쇼에 전시되었고, 한 번의 완전분해 정비를 마친 후 10월 1일 시험비행하였다. 영국 시험조종사들은 이 항공기를 매우 호평하였으며, 유명한 실험조종사 에릭 브라운은 이 항공기가 완벽한 야간 전투기라는 평을 내놓았다. 슬프게도 이 Do335는 그 다음해 1월 18일, 시험비행 중 후방엔진의 화재로 수평꼬리날개가 타 버리는 바람에 수직으로 추락하여 조종사의 목숨까지 그 자리에서 앗아가고 말았다.

 

[ 프랑스에서 부서진 Do335 V10 ]

영국이 얻은 또 다른 Do335는 초도양산 A-0 10기 중의 한 대로써, 프랑스에서 실험을 받았다. 1945년 12월 13일, 세 번째 시험비행을 마치고 착륙할 때 전방 랜딩기어가 고장나 내려오지 않았고, 무사히 비상착륙을 성공하긴 하였으나 슬프게도 다시는 비행하지 못했다. 프랑스 또한 최소한 두 대의 Do335 (두 대의 시험기 - 야간전투기 V10과 구축전투기 V13)를 노획하였다고 알려졌으며, 그 중 V10은 동체 착륙을 감행하던 중 크게 부서지고 말았다.

 

[ 복구 중인 Do335 ]

전쟁이 끝나고 30년이 지난 1975년, 미국의 창고에 있던 유일한 생존기체인 FE-1012는 독일 도르니에 공장으로 넘겨져 완벽히 복원되었다. 항공기를 수리하던 기술진들은 30년 전 후방 프로펠러와 수직 꼬리날개에 장착된 폭발 볼트가 그대로 남아 있고, 그대로 작동하는 것에 놀랐다고 한다. 복원된 Do335는 그 다음해 5월 1일부터 9일까지 하노버 에어쇼에서 전시되었고, 1986년까지 뮌헨의 독일 박물관에 임대되었다.

 

[ 현재 미국 박물관에 전시중인 Do335 ]

이 유일한 생존기체는 현재까지 미국의 국립 항공우주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으며, 그 옆에는 유명한 Ar234 B-2 제트폭격기와 역시 유일하게 남아 있는 He219A의 동체가 전시되어 있다.

 

*마치면서

맨 처음 소개했던, 영국 조종사 에릭 브라운의 언급과 같이 이 항공기는 2차대전 중 독일에서 만들어진 항공기 중 가장 특이한 기체 중 하나였다. 터보제트 엔진이 출현하지 않았다면, 2차대전 이후의 프롭 전투기들은 이 항공기의 선구적인 형상을 따라갔을 것이다. 또한 당시의 쌍발 프로펠러 전투기의 한계를 넘고, 다양한 임무에 대응할 수 있는 점에서 이후 나타난 멀티-롤 전투기의 선구자이기도 했다. 그러나 시대는 더 이상 피스톤 엔진과 프로펠러를 허락하지 않았다. 전쟁이 끝나고 급격한 변화를 초래한 터보제트 엔진과 한창 격해지는 냉전, 바짝 다가온 초음속 시대는 이 걸출한 항공기를 시대를 잘못 타고난 비운의 걸작으로 만들고 말았다.

 

◆ Do 335 일러스트 Collection ◆

 

 

Do335 V1. (CP+UA) 1943년 10월 26일 최초로 비행하였다.

 

 

Do335 V4. (CP+UD) 하인켈에서 설계한 고고도용 주익을 달았다.

 

 

Do335 V10. (CP+UK) 복좌 야간전투기 A-6형의 원형으로 제작되었으나, A-6과는 다른 형태의 후방석을 가지고 있다.

 

 

Do335 V11. (CP+UL) A-10형 복좌 훈련기의 시험기이다.

 

 

Do335 V13. 주익에 무장을 장비한 B-2형 중전투기의 원형기이다.

 

 

Do335 A-1. 미군에 노획된 후의 도장이다.

 

 

Do335 A-10. 1946년 1월 영국에서 추락하여 파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