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atWarPlanes*

◇ Fairey Fulmar ◇

This document was updated at 2005. 8. 14

2차대전중 영국 해군 항공대 (Fleet Air Arm)가 운용했던 항공기들중에 우리에게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영국이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지중해와 북아프리카에서 나름대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내던 전투기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페어리사의 풀머 전투기이다.

사실 이 전투기는 2차 대전초기 지중해 지역과 북아프리카에서 독일공군과 이탈리아 공군에 맞서 영국 해군 기동부대와 수송선단을 수호하는 함대 방공전투기로서 운용되었으며 독소전의 발발이후에는 소련을 향하는 영국 수송선단을 따라다니며 독일의 항공기들로부터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등 많은 전장에서 감초같은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불타는 하늘의 Great War Planes... 이번에는 영국 해군항공대의 묵묵한 일꾼 풀머 전투기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 영국 해군의 함대 방공 전투기

1930년대까지 세계 최강의 해군력을 자랑하던 전통적인 해군의 나라 영국은 유럽 국가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항공모함을 본격적으로 운용하고 있었다. 물론 당시 독일해군이 항모를 운용하지 못하고 있었으므로 영국해군의 항모는 항모가 함대의 주축으로 자리를 잡아가던 미국이나 일본해군과는 달리 함대의 주축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다른 전투함이나 수송선단등을 호위하는 보조적인 임무에 투입되고 있었다.

그러나 1930년대초 눈부시게 발달하는 항공기술로 인해 가상적국인 독일공군이 보유한 폭격기들의 성능이 크게 향상되고 있었으며 가까운 미래에 더욱 항속거리가 향상되고 속도가 빠른 쾌속 폭격기가 등장할 것으로 예측되었기 때문에 영국이 자랑하는 전통적인 해군력이 독일공군에 의해 큰 위협에 직면할 수 있다는 의견이 대두 된 것이다. 더구나 영국해군의 주요 활동 무대인 대서양 지역과 지중해 지역은 태평양과는 달리 항로가 육지로부터 가깝기 때문에 추축국 폭격기들의 사정거리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 큰 문제점이었다. 이에 영국해군은 이런 독일폭격기들에게 맞서 함대를 지켜낼 수 있는 함대 방공전투기를 개발하고자 했다.

[ 영국해군 최초의 본격적 함상 전투기 풀머 ]

영국해군은 새롭게 개발될 전투기에게 필요한 성능으로는 가능한 적의 폭격기들을 함대로부터 멀리 떨어진 거리로 마중나가 요격해야 한다는 것을 우선적으로 제시했다. 이에 따라 새로운 전투기는 장거리 비행이 가능해야 했는데, 이무렵에는 장거리 무선통신의 경우 모르스 부호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종사가 장거리 비행에 필요한 항법과 무선연락까지 감당할 수가 없었으므로 조종사외에 항법과 무전연락을 담당할 승무원 1명이 더 필요한 것으로 판단되었다. 그리고 이무렵의 영국항모는 규모가 작아서 여러종류의 항공기를 싣고 다닐 수가 없었으므로 새로운 전투기에게 장거리 정찰비행과 급강하 폭격임무까지 수행할수 있는 능력도 같이 요구되었다.

새로운 함재 전투기의 개발에 가장 먼저 착수한 회사는 호커사였으며 자사의 경폭격기였던 하트를 개량하여 1929년 오스프리 전투기를 내놓았다. 그러나 이 기체는 1930년대 중반을 기준으로는 이미 성능이 많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되어 영국 해군으로부터 채택되지 않았다. 뒤를 이어 블랙번사가 1934년 스퀴어 (skua) 전투기를 개발하여 영국 해군으로부터 발주받는데 성공했으며 1937년부터 일선에 배치되기 시작했지만, 1938년에 이르자 시속 324km에 불과한 최고 속도가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이 속도로는 독일공군의 주력 폭격기로 자리잡는 He 111, Do 17, Ju 88등을 요격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스퀴어는 단엽기였음에도 복엽기였던 글로스터사의 글라디에이터 전투기의 시속 410km의 최고속도에 비해서도 한참 느렸던 것이다. 이에 해군은 스퀴어 전투기를 대체하기 위하여 함상용으로 개량된 씨글라디에이터를 임시로 채용했지만 이 전투기는 경쾌한 기동성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1인승 복엽기였고 항속거리가 짧아 해군이 요구했던 기존의 필요조건에 한참을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 풀머의 기체 하면을 잘 볼 수 있는 사진 ]

이러는 동안 페어리사가 새로운 함상 전투기를 개발하고 있었으니 기존에 영국공군의 경폭격기로 활약하던 배틀 폭격기를 대체하기 위하여 개발중이던 경폭격기 P.4/34를 해군의 요구조건에 맞도록 개량하는 방법으로 신형기를 제작한 것이다. 이 신형기는 1080마력의 공냉식 머린 VIII 엔진 1기를 장비하고 있었는데 이 엔진은 당시 공군의 주력전투기로 발주받은 호커 허리케인 전투기에게도 사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경폭격기를 개량하여 전투기로 재설계하다보니 기체의 크기와 중량이 같은 엔진을 사용하는 허리케인에 비해 거의 2배가까이 증가한 상태여서 시험 비행에서 고도 7000피트에서 시속 429km 정도의 최고속도밖에는 낼 수가 없었으며 기체의 운동성도 많이 떨어져서 독일공군이나 이탈리아의 단좌 전투기와 공중전을 펼치는 것은 도저히 무리였다.

비슷한 시기에 지구 저편의 태평양에서는 새로운 해군의 나라 일본이 항공모함의 전투력을 엄청나게 향상시키는 경이적인 함상 전투기인 A6M 제로센을 개발하고 있었다. 당시 일본 해군은 중국침공을 통해 항모에서 발진한 일본 해군의 공격기들이 중국본토로 진출하여 폭격작전을 수행할 때 대항해오는 중국 전투기들을 확실하게 제압할 수 있는 고성능의 단좌 함재 전투기를 개발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었던 것이다.

[ 통상 비행시는 후방석의 승무원이 탑승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

그러나 당시 영국해군측은 항공모함을 공격적으로 운용하는 것이 아니라 적의 전투기들의 행동반경에서보다 먼 곳에서 운용하며 주로 함대의 호위 임무를 수행한다는 개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함대에 위협이 되는 존재인 독일이나 이탈리아의 폭격기를 요격할 수 있는 정도의 성능이면 충분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무엇보다도 이 전투기말고는 당장 해군이 사용할 만한 마땅한 전투기가 없었기 때문에 이나마도 감지덕지한 수준이었던 것이다. 결국 해군은 1938년 5월 최종적으로 페어리사의 신형기체를 신형 함재 전투기로서 채택한후 100기를 발주하게 되었으며 페어리사는 이 새로운 기체에 바닷새의 일종인 풀머 (fulmar)라는 이름을 붙여 양산 체제로 들어갔다. 이후 독일의 재무장으로 인해 유럽의 전운이 고조되자 영국해군은 발주기체수를 총 250기로 크게 늘렸다.

* 지중해에서의 맹활약

1940년 1월 양산 1번기가 날아오른후 영국해군의 시험과정을 모두 통과하여 1940년 5월부터는 전투부대에 배치되기 시작했다. 이후 갑작스러운 독일의 전격전으로 서유럽의 모든 국가들이 독일의 수중에 들어가고 마지막 보루였던 프랑스 마저 무너지면서 풀머는 급작스럽게 전투지역으로 투입되게 되는데, 이무렵 지중해지역에서 이탈리아군의 위협이 증대되자 1940년 7월 항모 일러스트리어스에 탑재되어 지중해 지역으로 출동하게 된 것이다. 최초로 풀머를 운용하는 해군 항공대는 일러스트리어스 소속의 제 806 대대였으며 이 비행대대는 총 15기의 풀머 전투기와 3기의 씨글라디에이터 전투기로 무장한후 몰타섬으로 향하는 호송함대의 호위 임무를 맡게 되었다. 이 제 806 대대의 행적이 풀머 전투기의 활약상을 가장 잘 보여주게 된다.

[ 일러스트리어스에 탑재되어 지중해에서 작전중인 풀머 ]

1940년 9월 이탈리아공군이 몰타를 폭격하기 시작하면서 몰타섬을 공중 봉쇄하려는 이탈리아 공군기들과 몰타섬으로 보급물자를 보내려는 영국해군간에 신경전이 벌어지게 되었으며 영국 함대를 공격하려는 이탈리아 공군의 폭격기들이 출몰하면서 제 806대대의 풀머 전투기들이 드디어 전투에 투입되었다. 이무렵 항모 일러스트리어스에는 레이더가 장비되어 있었기 때문에 풀머 전투기들은 이탈리아 폭격기들이 접근한다는 경보를 받으면 미리 출격하여 유리한 고도와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가 요격작전을 수행했다. 당시 이탈리아 공군의 최정예 폭격기인 SM.79 폭격기는 최고 속도에서 풀머와 비슷했지만 고도의 이점을 이용해 요격해오는 풀머 전투기에게 맥을 못추고 격추되거나 쫒겨나기 일쑤였다. 이후 항모 일러스트리어스가 1940년 11월에 벌어진 타란토 공습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한후 몰타섬으로 다시 돌아올 때 까지 제 806 대대의 풀머 전투기들은 단 1기의 손실도 없이 총 26기의 이탈리아공군기들을 격추하고 30여기를 파손시키는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1941년 1월 10일 시칠리에 나타난 독일공군 제 10 항공군단의 슈투카 급강하 폭격기들의 급습으로 인해 일러스트리어스가 크게 파손된후 간신히 몰타섬에 입항하게되자 제 806대대는 잠시 몰타섬으로 근거지를 옮겨 활동하다가 크레타로 이동하여 역시 풀머 전투기들로 무장하고 있던 제 805대대, 제 803 대대와 함께 항모 포미더블에 합류하게 된다. 이후 포미더블은 케이프 마타판 해전에 참가하게 되고 풀머 전투기들은 새롭게 투입되는 알바코 뇌격기들을 호위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이 해전에서 영국의 함재기들은 이탈리아 전함 비토리오 베네토와 순양함 폴라를 대파하는 전과를 올렸다.

Fairey Fulmar Mk.I

엔진: 롤스로이스 머린 VIII (1080마력)

전폭: 14.13m

전장: 12.24m

전고: 3.25m

기체중량: 3349kg

최대중량: 4627kg

최대속도: 429km/h (고도 2400m)

최대고도: 8290m

항속거리: 1255km

무장: 부라우닝 7.7mm 기관총 8정 (주익), 비커즈 7.7mm 기관총 1정 (후방석 - 옵션)

1941년 5월 26일 항모 포미더블이 독일공군의 슈투카 급강하 폭격기들에 의해 크게 파손되어 전열에서 이탈할 때까지 풀머 전투기들은 총 56기의 적기를 격추시키고 33기를 파손시켰다고 한다. 이 전과는 내습해오던 이탈리아 항공기들의 거의 50%에 해당하는 수치였다고 하니 영국측이 다소 과장해서 발표했다고는 해도 풀머 전투기가 영국 해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 것인지 확실하게 보여준다고 하겠다.

한편 지중해 서쪽에서 활동하던 항모 아크로열에 소속되었던 제 807, 808 대대의 풀머 전투기들도 몰타섬으로 향하는 호송선단을 호위하는 임무에 투입되어 30기에 달하는 적기들을 격추시키는 활약을 하고 있었다. 이무렵 아크로열은 롬멜의 맹공으로 곤경에 처한 이집트의 영국군을 구원하기 위하여 처칠이 급파한 '타이거 호송선단'을 호위하는 임무에 투입되었는데, 이 호송선단이 운반하는 물품에는 총 200대의 전차와 43기의 허리케인 전투기가 포함되어 있었다. 아크로열에는 단지 12기의 풀머 전투기들만이 탑재되어 있었는데 이집트까지 향하는 동안 이탈리아 공군의 SM.79 폭격기들과 독일공군의 Ju 88 폭격기들이 지속적으로 내습해 여러차례의 공습이 벌어졌다. 이 호송선단을 보호하기위하여 풀머 전투기들은 쉴새없이 날아올라 사투를 벌이며 함대를 지켰으며, 이런 고군분투에 힘입어 결국 대부분의 호송선단은 이집트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 페어리 풀머 일러스트

1941년 이탈리아 공군기들에 맞서 함대를 수호했던 영국해군 항모 일러스트리어스 소속 제 806 대대 소속의 풀머 Mk.I

1941년 영국해군 항모 빅토리어스 소속 제 809 대대에서 운용되던 풀머 Mk.I

* 지나간 전성기

다급한 전황속에 급히 생산, 투입되어 나름대로의 맹활약을 했음에도 풀머는 1941년 중반을 기준으로 볼 때는 이미 성능이 너무나 떨어지고 있었다. 이에 엔진을 1300마력급의 머린 30으로 업그레이드 하는 개량작업이 실시되어 풀머 Mk.II가 생산되었으나 실망스럽게도 최고속도가 겨우 시속 10km 증가되는데 그쳤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도 별 다른 대안이 없었으므로 풀머 Mk.II의 생산은 계속되었으며 오히려 최종 생산수량에서는 Mk.I 보다도 많이 생산되었다.

게다가 그동안 실전에서 풀머가 장비하고 있던 8정의 브라우닝 7.7mm 기관총이 SM.79와 Ju 88같은 튼튼한 폭격기들을 요격하는데 있어서 펀치력이 약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무장을 4문의 히스파노 20mm 기관포로 업그레이드하는 작업이 실시되었으나 기체의 중량이 과도하게 증가되어 기체의 성능이 뚝 떨어지는 결과가 나타나 포기했으며, 이후 기총을 미제 12.7mm 기관총으로 탑재하고자 했지만 역시 중량증가가 문제되어 결국 무장의 업그레이드는 포기되고 말았다.

[ 지중해에서 맹활약했던 풀머 전투기, 그러나 태평양에서는 서전에 큰 피해를 입게된다. ]

결국 이런 풀머에게 결정타를 먹인 사건이 발발했다. 그것도 주전장이었던 유럽이 아니라 태평양에서 벌어진 것이다. 1942년초 일본해군이 남방작전을 실시하면서 영국의 식민지들을 공격하여 속속 점령하자 영국해군은 콜롬보 지역의 방위를 위하여 풀머 2개 대대를 급히 파견했는데 바로 여기서 임자를 만난 것이다. 일본 해군의 콜롬보 공습작전에서 주력 함재 전투기였던 A6M2 제로센 전투기들이 공격기들의 호위를 위해 대거 출격하여 요격을 위해 날아오른 풀머 전투기들을 일방적으로 요리했던 것이다. 사실 풀머는 독일공군 전투기들의 사정권 밖에서 주로 활동했었기 때문에 그동안 고성능 전투기와의 공중전을 경험해본적이 거의 없었는데, 이날 그들이 만난 제로센은 같은 함재 전투기였지만 웬만한 공군 전투기들을 능가하는 고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콜롬보 상공에서 벌어진 방위전에서 거의 모든 풀머 전투기들이 날렵하게 덤벼드는 제로센앞에 맥을 못추고 전멸하다시피 했다.

이후 영국해군은 시대에 떨어지는 풀머를 퇴역시키기로 결정하게 되었으며, 1942년 8월 12일 최종적으로 모든 풀머 전투기들이 최일선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이후 페어리사는 후속으로 파이어플라이 전투기를 새롭게 생산하여 해군에게 제공하게 되는데 파이어플라이는 풀머에 비해 시속 40km 정도 빠른 속도를 가지고 있었으나 여전히 미해군이나 일본해군의 함재 전투기에 비해 성능이 많이 떨어졌다. 파이어플라이의 성능에 만족하지 못한 영국해군은 미제 F4F 와일드캣을 도입하여 마틀랫이라는 이름으로 명명한후 사용하기도 했다. 결국 1943년 중반에 이르러서야 공군의 정예전투기 스핏화이어를 개조한 씨파이어를 새롭게 주력 함재 전투기로 채택하게 된다. 이후 최일선에서 물러선 풀머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훈련기나 지원기로서 꾸준히 운용되었다고 한다.

* 마치면서

풀머는 비록 최고의 전투기는 아니었지만 풀머는 영국해군이 가장 필요로하던 시점에 등장하여 자신의 임무를 묵묵히 수행한 능력있는 전투기였다. 풀머는 최전선에서 활약했던 짧은 기간동안 112기의 추축국 항공기를 떨어뜨렸으며 80기 이상을 대파시켰다고 하는데 이 수치는 2차대전 전기간동안 영국 해군 항공대가 기록한 총 격추수의 30%에 해당되는 것이다. 2차대전중 총 250기의 풀머 Mk.I과 350기의 풀머 Mk.II가 생산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