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avochkin Gorbunov Gudkov   LaGG-3 ◇

This document was updated at 2006. 8. 8 

* 시작하면서

1941년 6월, 독일의 기습적인 침공을 받게되는 소련은 초반의 악전고투와 국가존망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최종적으로는 승전의 영광을 누리게 된다. 사실 1940년초만해도 항공기 분야의 선진국인 서부유럽이나 미국의 관점에서 볼 때 소련은 항공기 제작에는 경험이 적고, 근본적으로 낮은 수준의 기술력과 부족한 고급인력, 합금기술의 후진성 등등으로 인해서 한수 아래의 항공기와 무기 밖에는 생산할 수 없는 나라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혹독한 전쟁기간을 거치면서 소련국민이 보여준 군사적인 저력과 기술력은 전세계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지상에서는 무적을 자랑하던 독일 전차군단을 깜짝 놀라게 만든 걸작 전차 T-34가 전선을 종횡무진으로 누비며 맹활약했으며 하늘에서도 독일공군과 대등한 수준의 접전을 펼칠 수 있었던 우수한 전투기들이 속속 등장했던 것이다. 독일공군에게 Bf 109와 Fw 190이라는 세계적인 전투기들이 있었다면 소련공군의 조종사들에게는 야크 설계국의 전투기들과 라포츠킨 설계국이 만들어낸 우수한 전투기들이 운명을 함께하고 있었다.

독소전 항공전사의 개막과 함께 계속 연재되는 소련공군의 항공기 시리즈... 이번회와 다음회에서는 야크 설계국의 명 전투기들와 함께 대전기간동안 소련전투기의 양대산맥을 이루게되는 라포츠킨 설계국의 전투기들에 대해서 알아보는 기회를 가져보자.

 

* 나무로 전투기를 만들어라

1930년대 후반, 서로 세계 최고의 전투기들을 제작하고자 했던 군사강국들의 경쟁이 매우 치열했다. 특히 독일공군은 Bf 109를 개발한후 스페인내전을 통해 그 우수한 성능을 과시하고 있었으며 영국도 이에 대항하여 허리케인과 스핏화이어의 개발에 여념이 없었다. 1938년,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은 소련공군의 주력 전투기인 I-15 시리즈와 I-16의 성능이 서부유럽의 신예기들에 비해서 미흡하다는 보고를 받자 이들을 대체할 수 있는 신형 전투기들을 가능한 빨리 개발하라는 지시를 각 설계국에 내렸다.

이 무렵 전투기의 제작기술에 있어서 가장 첨단을 달리는 기술은 뼈대부분은 강철제 튜브로 제작한후 가벼우면서도 강도가 좋은 알루미늄 합금인 듀랄루민을 외피의 소재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이 듀랄루민과 같은 경합금들이 항공기의 외판으로 사용되면서 항공기의 중량을 크게 줄이면서도 부하를 견딜 수 있는 강도는 오히려 늘어나 전투기들과 폭격기와 같은 군용기의 성능이 크게 향상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공업기술의 발전속도가 늦고 경제적인 기반이 약했던 소련에서는 이런 듀랄루민과 같은 합금은 매우 귀한 물건이었다. 그러다보니 턱없이 부족한 합금의 공급에 의존해서 항공기를 생산하게되면 매우 적은 수의 기체밖에는 만들 수가 없었던 것이다.

[ LaGG를 탄생시킨 3인방 -  좌로부터 라포츠킨, 고부노프, 구드코프 ]

소련의 항공기 설계국들에서는 경합금이외에 뭔가 다른 대채 재료를 확보해야 했다.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이 문제를 해결해준 것은 바로 광활한 러시아에 셀수없이 널려있는 자원인 나무 (목재)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무를 이용해서 알루미늄합금으로 제작된 기체들과 비슷한 성능을 만들어낸 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볼 때 너무나 어려운 것이었다. 이 막연한 아이디어가 실현되는데 있어서 가장 추진력있게 연구를 지휘한 사람은 소련의 항공 병참 부장이었던 블라디미르 고부노프였으며 곧 능력있는 항공기 설계사였던 세미언 라포츠킨이 이 계획의 기술적인 가능성에 동의하며 합류했고 그 뒤를 이어 미하일 구드코프도 연구에 합류하게 되어, 결국 이 세사람을 주축으로 하는 새로운 항공기 설계국이 설립되는데, 이때가 재무장에 성공한 히틀러의 독일이 유럽정복의 야욕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던 1938년 9월이었다.

사실 항공기의 외판에 사용될 목재의 가공기술은 독일이 보여준 기술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었다. 독일 기술자들이 목재를 이용해 항공기 프로펠러를 제작할 때 목재의 강도를 높이기위해 페놀로 처리하여 강도를 증가시키는 공정을 본적이 있었던 소련 기술자들이 같은 방법을 시도해 보기로 한 것이다. 이 시도는 매우 성공적인 결과를 얻었으며 소련 기술자들은 이 공정에 자작나무의 타르를 사용하는 공법을 첨가시켜 더욱 발전시킬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 화학처리된 목재들로 합판을 만들어보니 강도가 기대이상으로 훨씬 강해졌으면서도 불이 잘 붙지 않는 특성까지 보여 항공기의 재료로서 손색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서 장차 소련의 하늘을 지키게될 새로운 목재 전투기들 (야크-1, 미그-3, 라그-3)이 탄생할 수 있는 밑거름이 마련 되었으며 각 설계국은 목재로된 전투기를 개발하는 과정에 돌입하게 된 것이다.

 

가구공장에서 태어난 전투기

1939년 새로운 전투기의 청사진이 완료되고 정부로부터 원형기를 제작해도 좋다는 허가가 떨어졌지만 이때까지 자체 공장을 가지지 못했던 이 세사람은 정부에 도움을 요청하였으며 결국 프랑스 복엽기를 면허생산하려다가 계약파기로 인해 문을 닫았던 GAZ-301 이라는 작은 영세 공장 (얼마전까지 목재 가구를 생산하던...)을 배정받아 여기서 작업을 진행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항공기라고는 한번도 만들어본적이 없었던 이 작은 공장에서 숙련되지 못한 노동인력과 함께 첨단기술의 상징인 전투기를 생산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더구나 93명의 노동자를 지휘하는 3인의 설계사들이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의견충돌이 자주 벌어지곤 했다. 따라서 일의 진행속도가 느려지게 되고 효율이 떨어지자 이들 3명의 설계사는 서로 토론을 벌인 끝에 자기들중 한명을 대표로 뽑아 작업을 총지휘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이들 3인방 중에서가장 돋보이는 능력을 가졌던 38세의 젊은 설계사 세미언 알렉세이비치 라포츠킨이 책임자로 선정되어 신형 전투기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하게 되었다. 유태인이었던 라포츠킨은 유태인을 차별하는 재정러시아 시대의 사회분위기로 인해 그동안 출세의 길이 막혀있었음에도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항공기술에 매진한 결과 마침대 그의 이름을 전세계에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얻게된 것이다.

[ LaGG-1 원형기 (I-22)의 사진 ]

라포츠킨이 계획을 이끌 게 되면서 때마침, 가장 큰 골치거리였던 목재재료를 결합시키는데 사용되는 효율적인 접착제도 드디어 확보가 되어 그들은 단하나의 목표를 향해 똘똘뭉쳐 새로운 전투기의 원형을 만들 게 되었으며, 그들의 노력은 결국 결실을 맺어 I-22로 명명된 원형기가 그모습을 드러냈다.

이 새로운 전투기는 주로 목재로 제작되었지만 나름대로 세련된 외형을 가지고 있었으며 동력으로는 1100마력의 클리모프 M-105P 엔진이 장착되었다. 기체의 무장도 강력한 편이어서 실린더축에 VYa-20V 23mm 기관포 1문과 기수에 2정의 12.7mm UB 기관총이 고정무장으로 채택되었다. 총 7기의 원형기가 제작되었으며 최초로 설계가 시작된지 12개월만인 1940년 3월 30일에 원형기의 처녀비행이 이루어졌다. 소련공군은 이 기체에 3인의 설계사의 이니셜을 따서 '라그-1 (LaGG-1)'이라는 공식적인 명칭을 붙였다.

 

고난의 시절

그러나 첫술부터 배부를 수는 없는법, 원형기가 날아오른후 몇 개월간 진행된 테스트과정에서 드러난 이 기체의 성능은 라포츠킨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다. 목재로 제작되었음에도 표면항력은 낮은 편이었지만, 전반적인 비행성능의 관점에서 볼 때 항속거리와 비행고도등이 만족스럽지 못했고 기동성에서도 그다지 뛰어나지 못했다. 엔진룸의 열기가 조종석으로 그대로 전달되어 조종석이 쉽게 뜨거워지는 현상도 발생했으며 조종석에서의 시야가 좋지 못했고, 조종간이 너무 묵직해서 마치 수송기를 조종하는 것 같다는 조종사들도 있었다. 특히 기체의 비행특성이 까다롭고 불안정하여 자칫하다가는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었다. 게다가 제작공정이 일관되지 못하여 원형기끼리도 성능과 안정성에서도 큰 차이가 났는데, 기체의 완성도가 높고 마무리가 잘된 원형기의 비행특성은 쓸 만한 반면 생산과정에서 마무리가 꼼꼼하지 못한 기체들은 성능이 매우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났던 것이다.

하지만 이무렵 야코블레프가 이끄는 설계국의 새로운 전투기 (야크 전투기)와 아르템 미코얀의 새로운 전투기 (미그 전투기)가 각기 처녀비행을 실시하는 등, 다른 설계국이 활발하게 신형 전투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라포츠킨의 팀에게 새로운 전투기를 처음부터 다시 설계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이대로 라면 라포츠킨팀은 결국 경쟁에서 도태될 위기에 몰린 것이다. 따라서 이 전투기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테스트에서 밝혀진 결점들을 최대한 신속하게 개선하는 방법이 최선이었던 것이다.

[ LaGG-3의 조종석 계기판 ]

개선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기체의 결점이 하나 하나 고쳐지기 시작했는데, 우선 전체적인 중량을 줄이는 쪽에 주안점이 주어졌다. 이 과정에서 기축의 23mm 기관포가 보다 경량의 20mm 기관포로 교체되었으며 2정의 12.7mm 기관총도 7.62mm ShKAS 기관총으로 대체되었다. 이외에 조종성과 안정성을 향상시키기 하여 러더를 재설계 하는등의 개선 작업들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는데, 소련공군 사령부는 신예 전투기를 개발중인 각 설계국에 신형 전투기들의 최대 항속거리가 1000km를 넘어야 한다는 공문을 하달했다. 이렇게 항속거리를 늘리려면 외부 연료탱크를 장착하는 것이 필수적이었으므로 라포츠킨은 LaGG-1의 주익을 재설계하여 2개의 낙하식 외부연료탱크가 장비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그리고 이무렵 1240마력의 강력한 출력을 자랑하는 신형 M-105PF 엔진이 개발되면서 이 신예기는 보다 강한 동력을 가질 수 있었다.

 

Lavochkin Gorbunov Gudkov   LaGG-3

 

엔진: 클리모프 M-105PF 액냉식 엔진 (1240마력)

전폭: 9.80m

전장: 8.87m

전고: 2.70m

기체중량: 2620kg

최대중량: 3300kg

최대속도: 560km/h (고도 11975 피트)

최대고도: 29530피트

항속거리: 650km

무장: 20mm ShVAK 기축기관포 1문 + 7.62mm SKAS 기관총 2정

라포츠킨은 이 기체를 보다 새로운 것으로 표현하기 위하여 I-301이라고 새롭게 명명했는데, 이것은 그들이 기체의 제작에 이용한 공장이 GAZ-301이라는 호출기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940년 6월 원형기의 첫 비행이 이루어졌으며 이후 소련공군이 실시한 테스트를 비교적 무난히 통과하여 1940년 10월부터는 양산을 허가받아 본격적인 기체의 생산에 들어갈 수 있었으며, 소련공군에서는 이 전투기를 '라그-3 (LaGG-3)'으로 명명해 실전부대에 배치하도록 했다.

 

조종사들의 관이 되어 버린 그랜드 피아노

1941년 여름부터 이 새로운 전투기가 실전배치되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구식이 되어 버린 I-15와 I-16에 질린 소련공군 조종사들은 이 전투기의 세련된 외형에 반해 '그랜드 피아노'라는 별명을 붙였고 서로 이 기체를 조종해보겠다며 아우성쳤다.

그러나 실제 이 기체를 타고 하늘을 날아보는 조종사들은 저마다 보기보다 둔중하고 뭔가 부족한 기체의 비행특성으로 인해 불만을 터트렸다. 특히 기체의 둔한 기동성으로 인해 차라리 도로 I-16을 조종하겠다는 조종사들까지 나올 정도였다. 라그-3는 비슷한 시기에 같은 엔진을 달고 배치되기 시작한 야크-1, 야크-7과 같은 전투기들에 비해서 비행성능이 떨어졌던 것이다. 이대로라면 또다시 경쟁에서 도태될지 모르는 상황에 처했지만 새로운 변수가 라그-3의 생산이 계속되게 만들었다.

[ 대지공격용 로켓을 장비하고 설원에서 이륙준비중인 LaGG-3 ]

그것은 바로 독소전의 개전이었다. 1941년 6월 22일, 독일의 본격적인 소련침공작전이 시작되면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독일의 공군력이 미처 준비되지 못했던 소련공군을 덮쳐왔던 것이다. 소련공군은 매우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다. 우선 소련공군에는 신예 전투기들의 숫자가 너무 적었고 이를 조종할 만한 조종사들의 수도 모자랐다. 상황이 너무나 급박하게 악화되면서 찬밥 더운밥 가릴 상황이 아니었던 소련공군은 야크, 미그, 라포츠킨 설계국에 어떻게든 신형기를 많이 생산해서 공급하라고 독려할 수 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결국 라그-3는 독소전의 개전으로 인해 생산중단의 위기에서 벗어났던 것이다. 독소전의 개전 당시에는 야크-1이 좀더 많이 배치되어 있었지만 라그-3의 생산성이 더 높았으므로 1941년 말까지는 라그-3가 더 많이 생산되고 배치되는 기록을 남기게 된다.

하지만 다른 신예기들에 비해 많이 생산되었던 라그-3의 공급 조차도 전장의 수요에 비해서는 턱없이 모자란 편이었기 때문에 라그-3는 더 많은 생산을 계속 독려받게 된 것이다. 1941년 9월까지 최전방으로 인도된 신형 전투기중 1/3정도가 라그-3였다고 하는데 독일의 침공이 시작될 무렵에는 불과 2개 연대만이 라그-3를 장비할 수 있었으며 겨울이 찾아올 때 까지도 4개 연대분이 추가로 배치되는데 그쳤다.

[ 비행장에서 주기중인 LaGG-3, 본기는 에이스 조종사 갈라첸코의 기체이다. ]

라그-3의 주요 임무는 IL-2 지상공격기를 근접호위하거나 지상군의 지원을 위한 대지상 작전에 투입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6발의 8.2cm 로켓을 장비하거나 폭탄을 장비하고 전선의 하늘로 출격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급히 전선에 출격하는  LaGG-3는 독일공군의 신예 Bf 109F에게는 그야말로 식탁위에 앉은 파리 신세를 면치 못했을뿐더러 일선에서 물러나기 시작한 Bf 109E형에게 조차도 완전히 압도당했던 것이다.

LaGG-3는 야크 전투기에 비해 기체의 강도는 우수한 편이었고 내화성도 강해서 전투 손상에 잘 견디는 편이었지만 엔진출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무거운 중량으로 인한 느린 속도와 둔중한 비행특성으로 인해 공중전에서 쉬운 먹이감이 되어 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던 것이다. 시속 560km의 최고 속도는 Bf 109F형에 비해 시속 60km 이상 느린 것이었으며 운동성도 떨어지다보니 기동성이라도 뛰어난 편이었던 야크-1이나 고공성능이라도 좋았던 미그-3에 비해서 독일전투기들과 맞서 싸울 만한 장기가 전혀 없었던 그저 그런 전투기였던 것이다. 이러다보니 라그-3를 공급받은 부대의 조종사들은 기체의 중량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 꼭 필요한 부품이 아니면 뭐든지 다 떼어 버리고 출격하기 일쑤였다.

[ 조종사들의 관이라는 불명예스런 별명을 얻게된 LaGG-3 ]

게다가 기체의 불안정성도 완전히 개선되지 않아 독일공군기들과의 근접 공중전에서 급격한 선회를 시도하는 경우 갑작스럽게 악성 스핀에 빠지는 경우도 자주 발생했다. 물론 아주 뛰어난 조종사들은 이런 스핀을 공중기동술에 이용할 수 있었지만 대부분의 소련 조종사들의 조종술로는 이런 악성 스핀을 극복할 수 없었기 때문에 경험이 적은 조종사들의 경우 이 전투기에 탑승하는 것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여기에 더해서 독소전의 개전이후 너무나 급하게 대량생산에 돌입하면서 품질관리가 미흡해졌고, 결국 조악한 상태의 품질 낮은 불량기체들이 뒤섞여서 출고된후 곧장 최전선으로 인도되었기 떄문에 전선에 배치된 기체들간에 속도차이가 최대 시속 40km나 나기도 했으며 비행특성도 들쑥날쑥했다고 한다. 이쯤되면 이 기체의 평판이 더 이상 나빠질 수도 없지 않았을까?

결국 야전부대의 조종사들은 이 별로 미덥지 못한 전투기가 초기에 얻었던 '그랜드 피아노'라는 우아한 별명대신에 LaGG의 약어를 비꼬아 부르던 'Lakirovanny Garantirovanny Grob (겉만 번지르한 조종사들의 관)'이라는 최악의 별명을 붙였던 것이다. 이 라그-3 전투기 부대를 지휘하는 한 지휘관은 부하들이 출격행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로 벌어지자 '우리 조종사들은 관을 타고 비행하고 있다.'라며 신세한탄을 했을 정도였다고 하는데, 실제로 독일의 맹공으로 악전고투를 거듭하던 레닌그라드 지역에서는 1941년 9월 2일 총 45기의 라그-3를 공급받은 한 전투기 연대 (제 44 IAP)는 독일공군과의 전투에서 한달만에 전력의 2/3이 넘는 39기 피격이라는 엄청난 전투손실을 입고 불과 16기만이 살아남았을 정도였다.

[ FW 190과 LaGG-3의 공중전 장면을 담은 일러스트 - 이런 상황에서는 대개의 경우 LaGG-3가 격추되었다. ]

이무렵 소련공군에 공급되기 시작한 신예 전투기 3종 (야크-1, 미그-3, 라그-3)중에서 오직 야크-1만이 높은 신뢰성과 기동성을 과시하며 소련공군 조종사들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게되었으며 미그-3와 라그-3는 불안정한 비행성능과 전투에서의 높은 손실율로 인해 애물단지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독소전의 초기의 너무나 다급한 상황에서는 이런 전투기들의 공급조차도 매우 부족했기 때문에 라그-3와 미그-3는 생산되는 족족 최전방에 투입되었던 것이다. 일선에서 독일공군과 악전고투를 벌이고 있었던 조종사들은 날카로운 기동성을 가진 야크-1을 탈 수 있기를 열망했으며 이 LaGG-3를 처치곤란의 골치덩어리로 치부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 기체의 성능을 극복했던 일부 뛰어난 조종사들의 경우에는 5기 이상을 격추시켜 에이스가 된 경우도 있었지만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1941년 겨울, 동장군의 위력앞에 독일군의 기세가 한풀꺽이면서 소련이 커다란 위기를 넘길무렵에 그동안의 전과를 보고받은 스탈린은 크게 실망하여 라그-3의 생산을 즉시 중단하고 라그-3를 생산하고 있던 공장에서 야크-1을 생산하도록 설비를 변경하라는 치욕적인 지시를 내렸을 정도였다. 만일 여느 때 같았으면 라포츠킨은 스탈린으로부터 미움을 샀기때문에 숙청의 대상에 올랐을지도 몰랐겠지만 전황이 너무나 다급했고 소련공군에게는 보다 새로운 전투기들이 필요했기 때문에 그에게는 더욱 우수한 전투기를 개발하여 실수를 만회하라는 천금같은 기회가 주어지게 되었다.

결국 라포츠킨은 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2차대전에서 가장 우수한 중고도 전투기중 하나로 손꼽히는 '라 (La)-5' 와 '라-7' 전투기를 개발하게 되고 이들의 우수한 성능으로 소련공군이 독일공군으로부터 공중전의 주도권을 빼았아오는데 크게 기여하게 되는데 이 '라' 전투기들의 탄생과 개발과정에 대해서는 다음회에 알아보기로 한다.

 

* LaGG-3 일러스트 *

 

1941년 8월, 레닌그라드 전선을 방위하던 제 44 전투기 연대 (IAP) 소속의 LaGG-3, 이 연대는 Lagg-3를 주력으로 레닌그라드 방공작전에 나섰으나 연대의 2/3이 한달만에 손실되는 혹독한 경험을 했다.

 

동기 위장색이 적용된 LaGG-3, 마치 하계도색에서 동계도색으로 바꾸다만 것 처럼 대충 칠한 듯한 도색이 특징이다. 이 기체의 수직 꼬리날개에 그려진 붉은별도 러더의 도색으로 인해 반토막이 나있다.

 

1941년 가을 코카서스 지역의 방위에 투입된 LaGG-3, 본기에는 이색적으로 2개의 전술 넘버가 마킹되어 있다. (흰색의 50 & 노란색의 4)

 

1943년 1월 발틱함대 소속의 제 3 방공전대 (Guard Wing) 소속의 이고르 카베로프 대위가 조종하던 라그-3, 동계 위장색을 잘 보여주는 일러스트이다.

 

* 마치면서

비록 여러 가지 면에서 실망을 안겨준 전투기이기는 하지만 훗날 라그-3의 오명을 만회하고도 남는 우수한 후계기들인 '라' 전투기들의 탄생에 있어서 라그-3의 존재는 절대적인 것이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속담대로라면 라그-3는 라-5와 라-7의 어머니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많은 조종사들의 한과 함께 하늘의 관으로 불리며 화염과 함께 사라져간 라그-3 전투기는 소련의 항공역사에 큰 자취를 남긴 전투기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라그-3는 전쟁기간동안 총 6258기가 생산되었다고 한다.

[ 모스크바의 항공기 박물관에 전시된 LaGG-3, 외형은 상당히 세련된 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