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ouglas  TBD  Devastator ◇

This document was updated at 2001. 8. 25

1941년 12월 7일 일요일, 미 태평양 함대는 진주만에 앉아서 일본 해군기들의 공격을 받아 순식간에 모든 전함이 침몰 또는 대파되는 치욕적인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이때 미해군의 전함에 가장 큰 피해를 입힌 것은 바로 일본해군의 97 함상공격기가 투하한 어뢰였다. 이후 태평양 저편에서 영국의 Z 기동부대의 전함 프린스 오브 웨일스와 순양전함 리펄스마저 일본 해군의 G4M 육상공격기들의 어뢰공격을 받아 침몰해버리는 또하나의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지게 되니.... 이제 해전의 주역은 전함이 아니라 항공모함이라는 것이 분명해지는 사건이었으며 급강하 폭격기와 함께 어뢰를 장비한 뇌격기가 해전의 주역으로 맹위를 떨치는 순간이었다. 1942년 6월 태평양 전쟁의 판도를 결정할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해군기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돌격으로 일본해군의 항공모함 4척을 격침시켜 전세를 순식간에 역전시켜 놓았다. 물론 일본 항모 격침의 수훈은 급강하 폭격기 SBD 돈트리스에게 있었으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일본함대를 쉴새없이 괴롭히면서 급강하 폭격기들에게 혈로를 열어준 미드웨이 해전의 숨은 주역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TBD 데바스테이터 뇌격기이다. 불타는 하늘의 Great War Planes... 이번에는 미드웨이의 숨은 영웅 TBD 뇌격기에 대해서 알아보자.

* 약탈자의 탄생

1935년 미해군은 미래의 전장에 적합한 새로운 항공기들을 필요로 했다. 그때까지 미해군의 항공모함에는 복엽기들이 판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해군 정책을 계기로 그라만사는 단엽전투기 F4F 와일드캣을 주력 함재전투기로 수주할수 있었고, 주력 급강하 폭격기는 더글러스사의 SBD 돈트리스가 차지했다. 그러나 단엽기로서는 이들보다 먼저 항모에서 활동하던 기체가 있었다. 그것이 해군 항공기의 명가 더글러스사가 제작한 미해군 최초의 주력 단엽기인 TBD 데바스테이터 뇌격기이다.

[ 주익이 완전히 접히는 함재기로서의 특징을 잘보여주는 사진, 등장당시만해도 완전히 유압으로 작동하는 혁신적인 것이었다. ]

원형기인 XTBD-1은 1935년 4월 15일에 첫비행을 실시했는데 만족할만한 성능으로 미해군의 주목을 받아 주력 뇌격기로 채택되었고, 결국 1937년 6월 새로 진수된 미해군의 항모 레인저호에 최초로 탑재되게 된다. 처음 등장할때만해도 이 기체는 매우 혁신적인 것이었다.  기체의 디자인은 기존의 복엽기에 비해서는 전혀 다른 것이었으며 해군 최초의 전급속제 기체였던 데다가 완전히 유압으로 접히는 주익으로 인해서 항모에서의 운용성을 높혔고 이것은 이후 모든 미해군기의 특징이 되었다. 엔진도 850마력의 플랫 휘트니 1830-64 엔진을 장비했는데 이로서 시속 332km 라는 만족할 만한 속도를 가지게 되었다. 무장은 전방으로 발사되는 12.7mm 기관총 1정과 후방 방어총좌에 장비되는 30구경 기관총 1정이 있었으며 600kg의 어뢰를 장비할 수 있었다. 기체의 승무원은 원래 3명까지 탑승이 가능했지만 야전에서는 조종사와 후방 기총수의 2명이 탑승하는 경우가 많았다. 더글러스사는 이 기체에게 '약탈자 (Devastator)'라는 별명을 부여한후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갔다.

[ TBD의 여러 가지 개량형을 보여주는 일러스트, 비록 129기 밖에는 생산되지 않았으나 수상기로도 개조되어 실전에 투입된 기록을 가지고 있다. ]

결국 미해군의 주력 항모였던 사라토가, 렉싱턴, 엔터프라이즈, 호넷, 요크타운, 와스프, 레인져의 뇌격기대대들은 모두 TBD 데바스테이터를 장비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화려하게 데뷔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전쟁이 벌어진 후에는 전장에서의 생존성이 문제가되어 결국 이때 공급된 129기의 기체가 생산기수의 전부로 기록된다.

* 태평양 전쟁은 시작되고...

하지만 1935년을 기준으로는 화려한 성능의 TBD도 유럽과 아시아에 전운이 달아오르기 시작한 1940년을 기준으로 볼 때는 초라하기 짝이 없는 구식 기체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전쟁에 끼어들 의사가 없었던 미국의 정책으로 미군은 해군과 육군항공대 모두에서 신예기가 개발되었어야 할 시점에서도 신예기의 개발에는 소흘했고 결국 TBD는 태평양 전쟁이 발발할 때까지 일선에서 주력 뇌격기로서 활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1941년 12월 7일, 급작스럽게 기습을 당한 미태평양 함대가 모든 전함을 잃고 커다란 곤경에 처했을 무렵에 항공모함에서 운용하던 주력 기체는 F4F 와일드캣 전투기와 SBD 돈트리스 급강하 폭격기 그리고 TBD 데바스테이터 뇌격기의 3개 기종이었다. 그러나 진주만 기습에서 크게 당한 미군이 뒤늦게 일본해군기들과 미해군기들을 비교 분석했을 때 이들 3개 기종 모두가 일본해군의 전투기, 급강하 폭격기, 뇌격기에 비해서 성능이 떨어진다는 충격적인 보고서가 나왔다.

[ 출격대기를 위해서 엘리베이터에 실려 갑판으로 이동중인 TBD, 미드웨이 해전중에 촬영된 사진이다. ]

일본의 항공기술이 유럽의 구식기들을 복제해서 생산하는 수준이라고 얕보던 미군에게는 매우 놀라운 것이었다. 특히 이 3가지 기종 중에서도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이 TBD였다. 시속 500km가 훨씬 넘는 제로전투기가 방어하는 일본함대를 공격할 때 최고 시속 332km에 불과한 이 TBD가 과연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가 매우 불확실했던 것이다. 특히 일본해군의 97식 함상공격기에 비해서도 모든면에서 성능이 떨어지고 있었다.

Douglas TBD-1 Devastator torpedo bomber

분 류

2인승 함상 뇌격기

동 력

플랫 휘트니 R-1830-64 공냉식 성형엔진 (850마력)

최고속도

시속 332km

상승속도

분당 288m

항속거리

1152km

무 장

기수 - 12.7mm 기관총 1정

후방석 - 7.62mm 기관총 1 정

동체하부 - 544kg Mk XIII 어뢰 1발 또는 453kg 폭탄 1발

결론적으로 미해군이 새로운 신형 뇌격기를 빨리 생산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해졌다. 그러나 문제는 얼마나 빨리 신형기체가 배치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미리부터 전쟁에 대비하고 있지 못했던 미국이 뒤늦게 신예기들을 개발하기 위해서 허둥댔지만 새로운 신형기를 개발하여 실전에 배치하려면 아무리 서두른다해도 몇 개월은 걸릴 것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TBD는 후계기인 TBF 어벤저 뇌격기가 실전배치 될 때까지 가장 어려운 개전초의 몇 개월간을 최전선에서 막강한 일본해군과 대적해야 한다는 것이 분명해진 것이다.

* 실전 데뷔

태평양 전쟁의 개전이래 최초의 5개월간은 TBD 데바스테이터는 그럭저럭 주어진 임무를 수행해냈다. 최초의 실전이었던 1942년 2월의 마샬군도와 길버트제도에 대한 항공작전에서 TBD는 SBD 돈트리스와 함께 일본군 진지를 맹폭하여 만족할만한 전과를 올렸다. 이때 TBD는 폭탄을 장비하고 수평폭격임무를 수행했다. 그러나 이 섬들은 일본제국의 외곽지역에 위치한 작은 진지였으며 일본 전투기들과의 만남은 거의 없어서 TBD의 취약점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1942년 5월 웨이크도 공략에 참가했던 TBD 데바스테이터, 특이하게도 어뢰가 아닌 폭탄을 장비하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1942년 5월, 드디어 양측의 항공모함들이 남태평양의 산호해에서 맞닥뜨리게 된다. 이것이 바로 산호해 해전 (Battle of Coral Sea)이다. 이 해전에서도 TBD는 SBD와 협동하여 일본 항모 쇼호를 침몰시키는데 큰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산호해 해전은 곧이어 벌어질 미드웨이 대해전의 서곡에 불과했다. TBD는 커다란 시련을 눈앞에 둔 상태였던 것이다.

* 말썽많은 어뢰

미해군에게 있어서 TBD의 성능도 문제였지만 이때까지 보급된 어뢰의 성능은 더 골치거리였다. 산호해 해전에 참전한 TBD의 조종사들은 목숨을 건 비행 끝에 발사한 마크 XIII 공중 어뢰 중 과반수가 목표에 명중했음에도 폭발하지 않은 것 같다면서 격분했던 것이다. 이것은 이보다 신형이었던 마크 XIV 수중 어뢰를 사용하는 미해군의 잠수함대에서도 제기되고 있었던 문제였다.

[ 어뢰 투하 훈련중인 TBD, 이 어뢰가 바로 조종사들을 그토록 분노하게한 문제의 MK XIII 어뢰이다. ]

한마디로 개전당시의 미해군 어뢰는 일본해군의 그것에 비해서 순항속도, 폭발력, 신뢰도가 모두 떨어지고 있었다. 이것은 단 한발의 어뢰를 적함에 명중시키기 위해서 목숨을 걸어야 했던 뇌격기 조종사들에게 이것은 정말로 분통이 터지는 일이었다. 특히 이 문제는 보고를 받은 미해군의 당국자들이 어뢰의 신뢰성에 대해서 문제가 없다는 투로 일을 처리하면서 해결이 늦어지고 있었다. 결국 이 문제는 뇌격기 조종사들과 잠수함부대에서 계속 제기되었고, 결국 어뢰의 신관에 문제가 있음이 발견되어 긴급히 개량에 들어가 몇 개월뒤 신형어뢰를 제작하여 해결되었지만 이는 너무 뒤늦은 것이었다. 신형 어뢰가 보급되기도 전에 이미 미해군의 운명이 걸린 미드웨이의 대해전이 시작되 버린 것이다.

* 미드웨이의 영웅적인 희생

태평양 전쟁의 전환점으로 기록된 미드웨이 해전, 이 대전투에서 미군은 승리했지만 많은 함재기들이 일본 함대의 방공망에 걸려 큰 희생을 치루어야 했는데 이 희생자들의 대부분은 TBD 데바스테이터였다. 미해군이 우려했던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만 것이다.

1942년 6월 4일 오전 7시, 미해군은 일본 항모를 급습하기 위해서 미드웨이 해역으로 출동한 항모 3척의 모든 함재기들을 날려보냈는데 여기에는 총 41기의 TBD 데바스테이터 뇌격기들이 참가하고 있었다. 항모 호넷 소속의 제8 뇌격기대 15기, 엔터프라이즈의 제6 뇌격기대 14기, 요크타운의 제3 뇌격기대 12기의 TBD들은 일본함대를 가장 먼저 발견하고 제8 뇌격기대를 선두로 전투기의 엄호도 없이 제로 전투기 40여대가 방어중인 일본함대의 상공으로 돌입했던 것이다.

[ 일본함대를 공격하기 위해서 출격대기중인 제8 뇌격기대의 14번기 죠지 게이 소위의 뇌격기의 모습을 담은 전쟁화, 파스텔톤의 그림이 전쟁의 긴박함과는 대조적인 분위기를 보여준다. ]

최초로 돌진해들어오던 제8 뇌격기대의 14기의 TBD는 병아리를 노리고 달려드는 독수리와 같은 제로전투기들의 맹공을 받아 순식간에 모든 기체가 바다에 쳐밖히고 말았다. 더구나 저공으로 느리게 날아오는 TBD들은 일본함대의 외곽을 둘러싼 구축함, 순양함에서 발사되는 대공포화에도 쉽게 피탄되어 격추되기도 했다. 이런 운명은 연이어 돌입해 들어온 제6, 제3 뇌격기대도 피할 수 없었다. 결국 총 41기중 37기의 TBD가 73명의 용감한 승무원들과 함께 태평양의 바다를 묘지로 삼게되는 비극이 벌어졌다. 더구나 이들이 투하한 어뢰는 단 한발도 명중되지 않았다. (물론 어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명중했으나 폭발하지 않았었을 가능성도 있다.)

[ 일본 함대에 대한 공격중에 전사한 제6 뇌격기대의 지휘관 랜스 마씨 소령의 사진, 동체에 그려진 일본함정 격침 마크가 눈에 띈다.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항모 3척에서 발진한 41기의 TBD 뇌격기중 단 4기만이 살아돌아올 수 있었다. ]

하지만 이 TBD들과 이를 조종했던 용감한 조종사들은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일본함대를 계속 물고늘어져 일본 항모가 함재기를 발함시킬 시점을 지연시키면서 함대 상공을 방어하던 제로 전투기들을 저공으로 끌어내렸고 곧이어 상공으로 진입한 SBD 급강하 폭격기들이 일본 항모에 통렬한 일격을 먹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미국의 승리는 일견 무모하다싶을 정도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주어진 임무를 끝까지 수행했던 뇌격기 조종사들과 그들의 애기였던 TBD 데바스테이터 뇌격기들이 만들어낸 영웅적인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1942년 5월 미드웨이 해전을 앞둔 항모 엔터프라이즈의 제6 뇌격기대 소속의 TBD, 동체의 국적마크는 개전초기 몇 개월간 사용된 것으로 미드웨이 해전에서부터 가운데의 붉은 원이 사라지게 된다.

* 태평양의 전설이 되어...

미해군은 미드웨이 해전이 끝난후 큰 희생을 치룬 뇌격기대의 잔존 TBD를 모두 일선에서 물러나게 하고 그뒤를 이어 신예 TBF 어벤져 (복수자)를 배치한다. 이후 미해군의 TBF는 맡형 TBD 데바스테이터들이 힘겹게 지킨 전선을 이어받아 공세적으로 전환한 미해군의 모든 작전에서 형의 원수를 갚는 동생처럼 맹활약하였다. 비록 구식이고 성능이 떨어지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지만 TBD는 태평양 전쟁이 역사속에 기억되는한 용감한 조종사들과 함께 태평양의 전설로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