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ct 3. 전쟁전의 전쟁 (War before war) ◇

 This document was updated at 2000. 12. 17

1차대전이 끝난뒤의 이러한 군용 항공기의 발달로 인해서 각국은 독자적인 특징을 가지는 항공전력을 갖추고 있었으나 어느쪽도 이 항공전력을 실전에서 사용해 보지는 못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식민지의 분쟁지역에 항공기를 파견하여 무력시위를 하는등 소규모 항공작전을 시행하기는 했지만 이는 실전이라고 볼 수 없었던 작은 사건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국의 항공기들이 실제 전투에 투입되는 경우 과연 어느쪽이 승리할 것인가하는 것이 군사 전문가들 사이에 벌어진 많은 논쟁의 대상이었다.

이러던차에 근대 항공전력의 위력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사건이 있었으니 이것이 바로 스페인 내전과 중일전쟁이다. 중일전쟁은 아시아편 (Pacific theater)에서 알아보기로 하고 여기서는 스페인 내전에 대한 이야기를 알아보기로 한다.

스페인 내전은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배경으로 잘 알려진 전쟁으로 1936년에 프랑코 장군이 이끄는 스페인 국민당이 집권당인 공화당 정부에 대해서 군사적인 도전을 행함으로써 시작된 내전이다. 스페인이 둘로 갈라져 싸우는 동족 상잔의 내전에는 여러 가지 이해관계가 얽힌 주변국가들이 원조를 핑계로 개입하여 자국의 무기를 실전에서 테스트하고자 했다. 결국 스페인은 유럽 각국의 최신 무기 시연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특히 독일과 이탈리아는 이 하늘이 주신 기회를 놓치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프랑코의 파시스트당을 지원하는 것을 명목으로 그들의 신무기들을 실전에서 사용하고자 했다. 반면 소련은 공화당을 지원하는 것을 핑계삼아 그들의 신무기들을 원조했다. 그러므로 결국 스페인 내전은 독일, 소련, 이탈리아가 이 불행한 나라를 실험장으로 그들의 신무기의 성능을 겨루는 판국이 되 버렸다. 

1938년 스페인 파견군 콘돌군단 소속으로 활동하던 하인켈 He 51C-1 전투기이다. 수직 미익의 X마크는 국민당군의 것이다. 이 전투기는 I-16과 같은 소련제 단엽기들과의 전투에서 고전한후 Bf 109로 교체되었다.

공화당의 공격으로 어려운 상황에 빠져있던 프랑코 장군은 독일과 이탈리아가 알아서 지원해 준다는데야 이를 거부할리 없었고 열렬하게 환영하였으며 우선 돌익에서 제공된 융커스 Ju 52/3이나 이탈리아가 제공한 사보니아 마르체티 81과 같은 수송기를 활용하여 남부 스페인 반란군에 군수물자를 공급하여 세력을 강화했다. 이탈리아는 피아트 CR 32 복엽 전투기, 사보니아 마르체티 SM 79/81 폭격기를 투입했다. 독일도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칠세라 급히 독일군내에서 자원자의 명목으로 조종사와 정비병들로 구성된 6000여명의 공군 파견부대를 편성하여 스페인에 급파했다. 싸우고자 하는 의지에 불타는 많은 조종사들이 이 파견부대에 지원했으며 서로 먼저 서류를 접수하려고 난리였다. 이 파견 부대의 이름이 유명한 '콘돌 군단 (condor legion)'이다. 이 콘돌 군단은 최초 파견시에 하인켈 He 51 복엽전투기와 융커스 52/3 수송기겸 폭격기로 구성되어 있었고 이후 독일이 생산하는 신형 전투기와 폭격기들이 모두 투입되어 실전 테스트를 하게 된다.

1938년 스페인 공화군 소속으로 전투에 투입된 폴리카르로프 I-16 전투기이다. 이 기체는 세계최초의 실용 저익 단엽 전투기로서 이 땅딸한 형태와는 달리 스페인 내전의 초기에 상당한 위세를 떨쳤다. 하지만 후에 Bf 109가 전선에 투입되면서는 일방적으로 격추당하고 말았다.

이에 대응하여 소련도 공화당군에게 많은 수의 항공기와 조종사, 지상 정비병들을 원조 형식으로 파견하였다. 이 지원부대의 규모는 완제품또는 미완성의 형태로 공급된 1500대에 달하는 항공기가 주된 세력이었으며 이중 350대 정도가 언제든지 전투에 투입될 수 있는 전투대기 상태였다. 이 항공기들은 폴리카르로프 I-15 복엽 전투기와 I-16 단엽 전투기로 구성되어 있었고 투포레프 SB-2 폭격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외에 공화당군은 영국과 프랑스등으로부터 제공받은 복엽전투기들도 보유하고 있었다.

1939년 스페인 파견군 콘돌군단 소속으로 활동하던 헨쉘사의 Hs 123A 급강하 폭격기이다. 스투카의 선배겪인 기체로서 스페인 내전에서 우수한 기동성과 공격능력이 인정받아 스투카가 주력이 된후에도 근접 지원기로서 계속 사용되게 되었다.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됨에 따라서 양측의 항공기들이 하늘에서 대결했다. 초전에는 양측이 거의 대등한 전력을 보였다. 양측의 단엽 폭격기들은 속도에서 복엽 전투기들보다 빨랐으므로 폭격 임무 수행에 거의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소련이 지원한 단엽 전투기 I-16이 본격적으로 전투에 투입되면서 국민당의 폭격기부대가 심대한 타격을 입어 균형이 공화당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전투기간의 대결에서도 이탈리아의 CR 32나 독일의 He 51과 같은 복엽기들이 I-16기에게 고전을 면치 못했다. 따라서 1938년까지 프랑코의 국민당군은 항공전력에서 밀리기 시작하면서 지상에서도 어려운 싸움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결과로 소련군은 I-16의 활약에 고무되어 자국의 항공기술이 서유럽에 비교해서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믿게 되었다.

[ 스페인에 나타난 하늘의 마왕, 콘돌군단의 Bf 109B가 출동하기전에 마무리 정비를 받고 있다. ]

그러나 사태를 파악한 독일이 즉시 최신예 전투기 Bf 109를 투입하면서 상황이 역전되기 시작했다. 이 새로운 세대의 전투기는 공중전에서 I-16을 완전히 압도하고 있었다. 이 시점부터 공중전력의 격차는 국민당군쪽으로 급격하게 기울었으며 수직꼬리날개에 X자 마크를 한 콘돌군단의 Bf 109 전투기들은 적의 조종사들로부터 공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게다가 기존의 폭격기들보다 훨씬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신예 폭격기 He 111, Do 17이 본격적으로 전장에 투입되기 시작했다. 이 폭격기들은 속도에서 모든 공화당의 전투기보다 빨랐다. 따라서 적기의 요격을 간단하게 뿌리치고 무저항으로 적진 상공으로 돌진하여 폭격을 퍼부을 수 있었다. 이런 상황이 되면서 공격목표가 적의 지상군이 아닌 도시로까지 확대되었다. 이전 전쟁에서는 상상조차 할수 없었던 도시에대한 폭격이 최초로 감행되었고 그 결과는 그야말로 공포 그자체였다. 무자비하게 공격해오는 콘돌군단의 기세는 아무도 막을 수 없었으며, 전쟁에 전혀 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지상의 죄없는 민간인들이 폭탄에 맞아 생매장되거나 불에타서 죽어갔다.

이 시점에서 독일은 새로운 신무기 Ju 87 스투카를 투입했다. 지상의 목표에 대해서 귀를 찢는 급강하의 굉음과 함께 정확하게 폭탄을 떨어뜨려 적군을 제압하는 스투카의 위력에는 콘돌군단조차 놀라고 있었다. 전황이 일방적으로 전개되자 콘돌군단은 새로운 항공기들을 사용하는 전술에 대해서 많은 실전 경험을 통해 방향을 잡을 수 있게되었다.

콘돌군단에서 활약중이던 위대한 독일공군의 전투기부대 지휘관인 베르너 묄더즈는 초전에 그들이 고전했던 이유에 대해서 분석했다. 그가 내린 결론은 I-16기들이 속도는 빠르지만 He 51보다 월등한 성능은 아니며 충분히 대응할 수 있었음에도 편대 전술상의 결함으로인해서 패배했다는 것이었다. 독일공군은 1차대전에서 얻었던 소중한 경험을 잊고 있었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었다.

스페인 내전의 경험을 통해서 베르너 묄더즈가 창안한 새로운 편대대형인 슈밤 (Schwarm), 이 그림처럼 오른손의 엄지를 제외한 네손가락을 활짝 폈을 때와 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 이 편대는 2개의 소편대로 나뉘는데 A-B가 한조를 이루고 C-D가 한조를 이룬다. 각 전투기들이 약간의 고도차이를 두게되며 C-D조는 A-B조 보다 약간 더 높은 고도를 잡게 된다. 이처럼 넓게 포진하는 대형으로 적기의 발견 확률을 높였으며 편대 대형유지에 불필요한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되었다. 전투가 벌어지면 2개의 소편대로 나뉘어 각각 편대장과 윙맨의 역할을 맡는다. 이 2기로 이루어진 소편대를 로터 (Rotte)라고 부른다. 로터에서는 대장기가 적기의 공격을 맡고 윙맨은 그 후방에서 엄호를 하게 된다.

전투시에 편대 대형을 너무 융통성이 없이 적용하여 실전 경험이 없는 조종사들이 서로 편대 대형의 유지에 급급한 나머지 소련 전투기들에게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결국 베르너 묄더즈는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기존의 3기 밀집편대 방식을 폐지하고 그 유명한 '슈밤'이라는 편대대형을 창안했다. 이 대형은 '핑거 포'라고도 알려진 대형으로 엄지 손가락을 제외한 나머지 네 손가락을 활짝 폈을 때 중지손가락에 해당하는 전투기에 가장 우수한 조종사를 편대장으로 두게하는 대형이었다. 이들 4기 편대는 대형을 넓게 유지하여 약간의 고도차를 두어 편대의 유지에 신경쓰지 않고 서로 사방을 감시하며 비행하도록 융통성을 부여했으며 전투가 벌어지면 2개의 소편대로 나뉘어져 2, 3번째 손가락에 해당하는 전투기들이 서로 윙맨과 편대장이 되고 4, 5번째 손가락에 해당하는 전투기들이 편대장과 윙맨을 맡아 한 대가 적기를 공격하면 한 대는 그 후방에서 엄호한다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대형이었다. 이 2기 소편대는 '로터 (Rotte)'라 불리게 되었다. 이 편대 전술은 실전에서 매우 유용함이 증명되었는데 이는 정치적인 제한에 얽매인 경직된 명령을 받던 소련 전투기들의 편대 전술이 매우 융통성이 없었으므로 더욱 위력을 발휘했고 독일 공군의 표준 편대 운용방식으로 정착되었다. 이러한 전투경험을 토대로 독일 공군은 곧이어 벌어지는 서유럽의 전격전에서 제대로 근대 전투기 전술을 정립하지 못한 영불 공군을 상대로 일방적인 승리를 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1939년 4월 콘돌군단 소속으로 전선에 투입된 Bf 109D, 흰색으로 도색한 기체는 다른 Bf 109에서는 볼 수 없는 특징이다. 성능에서 스페인 내전에 참가한 모든 전투기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많은 조종사들이 스페인 내전을 통해서 실전경험을 쌓아서 훗날 전격전을 수행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점차로 스페인 내전의 전세가 국민당쪽으로 기울어가고 2차대전의 전운이 감돌기 시작하면서 독일, 이탈리아, 소련은 자국군대를 철수시키기 시작했다. 결국 전쟁은 프랑코 장군의 국민당이 승리했는데, 이 전쟁의 결과 독일은 자신감과 새로운 항공 전술을 얻었 더욱 발전시킬 수 있었던 반면 소련과 이탈리아는 이러한 소중한 실전 교훈을 전술에 반영하지 못하였다.

이탈리아는 단엽기 시대가 도래하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큰 실수를 하여 기동성이 중시되는 복엽전투기를 계속 잔류 시켰으며 느린 폭격기에 대해서도 별 문제로 삼지 않았다. 이탈리아 공군은 독일 콘돌 군단의 전투기들이 적기들을 완전하게 제압한 덕분에 작전이 수월했던 것이었음에도 마치 이러한 성과가 자신들의 힘으로 이룬 것이라는 착각을 해 버렸다. 한편, 소련은 여전히 항공 전술의 융통성이 필요함을 인지하지 못했고, 초기에 많은 활약을 했던 I-16기를 대체할 새로운 전투기의 개발을 추진하지 않고 있었다. 이로서 소련공군은 독소전이 발발한후 한동안 독일군에게 일방적인 패배를 당하게 되는 빌미가 되었던 것이다.

1939년 초반에 스페인 공화군 으로 참가한 소련의 SB-2 폭격기이다. 소련은 이처럼 많은 폭격기를 제공했었는데 느린 속도와 빈약한 방어력으로 대부분 독일 전투기들의 먹이 신세가 되었다.

* 독일공군의 신화 *

독일은 스페인 내전을 통해서 많은 전술을 새로 개발하여 도입했다. 특히 스페인 내전기간동안 콘돌 군단은 96기의 항공기를 손실했으나 277기의 공화군기를 격추시켜 근대적인 공중전술을 확립하고 미래 전장에서의 독일공군의 가능성을 증명했던 것이다. 그러나 전략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독일은 여전히 전략폭격의 중요성을 깨닫지는 못하고 있었다. 애초부터 독일공군은 기본적으로 지상군을 지원하는 전술공군으로서 그 존재의 의미를 두고 있었다. 이것은 강력한 전투기 Bf 109의 보호하에 작전하는 쾌속 폭격기와 급강하 폭격기들이 적의 지상군에게 심대한 타격을 입히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 스페인 내전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서 콘돌 군단이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

스페인 내전의 후반기에는 사실상 그들에게 대항할 적의 공중세력이 없었으므로 콘돌군단의 폭격기들은 마음놓고 적진 상공에서 작전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더 이상의 특별한 전술이 필요 없었다. 단지 적진으로 날아서 폭탄창을 열어젖히기만 하면 되었던 것이다.

당시 미래전장의 전술에 대해서 연구중이었던 독일군의 지휘관들에게는 공군이 적의 지상군에게 심각한 타격을 입히자마자 전차부대가 돌진해 들어가면 승리는 당연한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이에 독일공군은 지상군의 작전에 공군의 지원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중시여겨 전술공군으로 그 방향을 정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전술로도 쉽게 승리를 얻을 수 있었던 독일공군의 관계자들은 더 먼거리에 위치해있는 적의 중요 산업 기반을 공격하는 장거리 전략폭격을 수행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고 이로 인해서 이러한 장거리 폭격기를 개발하는 것은 거의 염두에 두지 않게 되었다. 따라서 2차대전이 시작될 무렵 독일 공군은 분명 강력한 전투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공군 사령관 괴링이 생각하는 것처럼 공군만으로 적국을 제압하여 전쟁에 이길수 있는 군대가 아니라 육군을 지원하는 보조 부대로서의 성격이 더 강했다.

[ 콘돌군단에 파견된 신예 폭격기 하인켈 He 111이 적의 진지에 폭격을 가하고 있다. 대부분의 공화당파 전투기들보다 빠른 속도를 가지고 있어서 저지 불가능한 기체였다. ]

하지만 스페인 내전을 통해서 독일 공군을 유럽 각국에게 그야말로 공포의 존재로 부각시키는 사건이 있었으니, 그것은 괴르니카라는 북부 스페인의 작은 도시에 대한 무차별 공습이었다.

1937년 4월 25일 콘돌군단의 폭격기들이 Bf 109전투기의 엄호하에 대거 이 작은 도시 상공에 모습을 나타냈다. 이들의 목표는 바로 이 작은 도시였다.

[ 급강하하여 적기를 공격하는 Bf 109C, 스페인 내전을 통해서 이 전투기의 급강하 공격능력과 상승력이 더욱 빛을 발하게 되었다. 훗날 태양을 등지고 강하하며 공격하는 것이 상징처럼 되어 버린 Bf 109의 전술은 스페인에서 얻은 경험이 바탕이었다. ]

공화군의 본거지로 추정되는 이 도시에 대해서 폭격기들이 무차별로 고성능 폭탄과 소이탄을 퍼부어 댔다. 이 공습의 결과는 너무나 참혹한 것이었다. 1만여명의 인구를 가진 작은 도시는 불길에 휩쌓여 폐허로 변해 버렸으며 1600여명이 그 자리에서 사망했고 수천명이 부상을 입어 괴르니카는 말그대로 죽음의 도시가 되었다. 이 충격적인 소식에 놀란 각국의 언론은 괴르니카의 비극적인 상황을 더욱 과장되게 표현하면서 활자화 했다.

이 사건을 통해서 독일공군은 그야말로 공포의 존재가 되기에 충분했으며 대규모 공중폭격의 위력에 대해서 너도나도 공포에 떨었다. 이소식을 접한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의 비인도적인 공습에 대해서 맹렬하게 비난을 했으나 속으로는 독일공군의 실력에대해서 적지 않게 놀라고 있었다. 독일공군은 어느덧 유럽하늘의 신화적인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