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전선의 항공전

Part 4 : 얼어붙은 동부전선

◇ Act 4. 겨울하늘의 전쟁 ◇

(Winter Airwar)

This document was updated at 2007. 2. 13

겨울의 나라 핀란드, 존망의 위기에 서다

1939년 히틀러의 독일과 스탈린의 소련이 서로간의 이해관계에 따라 상호 불가침조약을 맺으면서 유럽에는 전운이 더욱 감돌 게 되었다. 사실상 이 불가침조약은 독일은 서유럽을, 소련은 동유럽을 지배하기 위하여 뒤통수를 얻어맞지 않기 위한 보험을 들어놓은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독소간에 불가침조약이 맺어지자마자 1939년 9월, 드디어 독일이 침략의 야욕을 전면에 드러내 폴란드를 전격적으로 침공한후 며칠만에 항복을 받아냈으며 소련도 독일과의 밀약에 의해 폴란드의 동쪽지역에 붉은군대를 파견하여 단숨에 점령해 버렸던 것이다. 사실 이 폴란드 정복전은 독일군이 전격전의 위력을 선보이며 대부분의 전투를 수행했으며, 소련군은 독일군의 파상공세에 넋을 빼았긴 폴란드군이 궁지에 몰린 틈을 이용해 폴란드 동부지역을 거저먹기로 점령한 것에 불과했다.

폴란드를 사이좋게 나누어가진 히틀러와 스탈린은 이후부터 서로 한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한 정복의 경쟁을 벌이게 되었다. 특히 스탈린은 히틀러가 서유럽의 정복전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모습을 보면서 전세계가 혼란에 빠진 틈을 이용해 소련도 가능한 넓은 영토를 차지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즉시 실행에 옮기게 되는데, 이무렵 스탈린은 소련의 붉은군대의 능력을 과신하고 있었고 아마도 그의 붉은군대가 독일국방군에 비해 전혀 손색없는 훌륭한 군대라고 믿고 있는 것 같았다.

[핀란드 공군의 포커 D.XXI 전투기 - 겨울전쟁 몇 개월전에 네덜란드로부터 구입한 기체들이다. 다가오는 겨울에 소련공군의 폭격으로부터 조국을 지켜야하는 핀란드 공군의 주력 전투기였다. ]

스탈린은 동부유럽 정복작전의 첫단계로 발트해연안의 작은 국가들을 강압적으로 점령하게 되는데,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와 같은 작은 나라들은 소련의 강압에 의해 저항 한번 못해보고 백지동맹에 조인한후 소비에트 연방에 강제로 편입되다. 그다음에 스탈린이 관심을 둔 곳은 바로 북구의 요충지인 스칸디나비야 반도의 동쪽에 자리잡은 핀란드였다. 스탈린은 만일 적대국의 해군이 핀란드만을 통해 침공하여 소련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구실로 핀란드정부에게 국권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는 굴욕적인 요구조건을 받아들일 것을 강요했다. 총 인구 400만명에 불과한 북방의 소국 핀란드는 소련의 굴욕적인 요구를 받아들여 영토와 자존심을 포기하고 구차하게 목숨을 연명하느냐 아니면 전국민이 목숨을 걸고 싸워 소련군을 몰아내느냐의 기로에 서게 된 것이다.

물론 스탈린은 광대한 소련에 비하면 한줌도 안되는 작은 나라 핀란드쯤이야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정복해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핀란드는 스탈린의 생각과는 달리 전국민이 전사의 기질을 가진 강한 나라였으며 핀란드의 지도자인 만네르하임 원수는 강철의 의지를 가진 인물이었다. 물론 핀란드 정부는 소련에 비해 너무나 열세인 자국의 군사력으로는 엄청난 피해가 불가피할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어떻게든지 전쟁을 피하기를 원했으며, 모스크바에 계속 협상단을 파견하여 어떻게든지 소련의 침공을 막아보려고 했지만, 소련외상 몰로토프가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어처구니없는 요구조건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하자, 이제는 핀란드가 어떤 조건을 내세우더라도 소련군은 핀란드를 침략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들은 이제 전쟁을 피하기는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사실 핀란드는 누가보더라도 소련군과 싸울 만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핀란드군은 1차대전이래 별로 나아진 것이 없는 구식 무기밖에는 가진 것이 없었다. 대부분의 병사들은 전차같은 현대식 무기는 구경도 해보지 못했으며 수십년동안 사용해온 기관총, 박격포 및 구식 대포가 그들이 가진 전부였다. 단지 분당 900발이 발사되는 수오미 경기관총 (사실 그것도 얼마 보급되지 못했던...) 만이 핀란드군이 보유한 유일한 현대식 무기였다. 더구나 현대전에 필수적인 공군력의 측면에서 볼때 핀란드의 공군은 불과 100여기 미만의 항공기밖에는 없었으며 더구나 이 항공기들을 하늘로 날려보낼 연료도 불과 한달분량밖에는 확보되지 못한 절망적인 상태였다.

이런 병력과 무기의 열세를 극복할 방법은 우수한 인적자원 뿐이었다. 핀란드군은 총 30만명의 동원가능한 병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실제 전투에 투입될 정예병력은 이들중 10만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들 모두는 존망의 위기에 몰린 조국을 위해 목숨을 버릴 각오로 싸우는데 주저하려 하지 않았다. 이들은 6000개의 호수를 가진나라라는 특징이 말해주는 조국의 험난한 지형과 혹한의 기후를 이용해서 어떻게 해서든 소련군을 막아내고자 했다. 만네르하임 원수는 협상단을 계속 모스크바에 파견하여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어떻게 해서든 시간을 끌어보려고 했으며, 결국 이 지연작전이 먹혀들어 핀란드는 한달이 넘는 시간을 벌 수 있었다. 물론 협상단이 시간을 끌어주는 동안 핀란드군은 적을 맞아 싸울 준비에 여념이 없었던 것이다.

결국 핀란드의 시간끌기작전에 말린 것을 알아차린 스탈린은 격노했으며, 침공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붉은군대에게 즉시 핀란드를 공격하여 점령할 것을 명령했다. 결국 1939년 11월 30일, 호시탐탐 침략의 기회를 노리던 스탈린의 붉은군대는 전격적으로 핀란드 국경을 넘어 진격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역사에 길이남을 105일간의 겨울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핀란드 공군의 실상

스칸디다비야 반도의 작은나라 핀란드에도 비록 그 세력은 보잘 것 없었지만 나름대로의 공군력은 있었다. 핀란드 공군은 1차대전이 한창이던 1918년 3월 6일 정식으로 발족되었는데 독특한 것은 그 창설초기부터 육군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별개의 군대로서 키워졌다는 점이었다. 이러다보니 창설일만 놓고 본다면 핀란드 공군은 독일이나 영국, 프랑스등과 같은 열강들과 비슷한 시기에 발족하게 되었으며, 세계적으로도 매우 오래된 역사를 가진 공군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핀란드 공군은 창설이후 20여년간 전혀 실전을 경험해보지 못했으며 전쟁에 준비할 필요성이 낮다보니 공군이라 불리울 만한 전력을 키워나가지 못했다. 결국 1939년 11월 소련의 침공 위협이 증대된 절체절명의 위기가 닥친 시점에서 핀란드군 전체가 전쟁을 치룰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고, 이중에서도 핀란드 공군의 실상은 그야말로 초라하기 그지 없는 것이었다.

1939년 겨울전쟁에서 활약한 포커 D.XXI 형의 일러스터, 본기에는 핀란드 공군의 국적마크인 파란색의 갈고리 십자 (blue swastika)가 그려져 있다. 이 마크는 핀란드 공군의 창설에 기여한 스웨덴의 백작 에릭 폰 로젠이 1918년에 기증한 항공기에 그려져 있던 마킹으로 그가 행운을 기원하며 그려넣은 개인 마크였다. 훗날 핀란드 공군 조종사들이 국적마크로 사용하게 되었는데, 이 마킹으로 인해 핀란드가 독일과 돈독한 관계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이 마킹은 독일공군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핀란드 고유의 것이다.

실제 이무렵 핀란드 공군은 공군이 보유한 모든 항공기를 긁어 모아도 총 140여기밖에는 되지 않았으며 그나마 비행가능한 기체들은 100여기 미만에 불과한 상태였다. 더구나 이중에서 소련공군에게 맞서 조국을 지켜야할 가장 중요한 전투기는 불과 50여기 밖에는 되지 않았다. 그나마 전투기 전력조차 네덜란드로부터 수입한 단엽전투기인 31기의 포커 D.XXI 전투기를 제외한다면 그나마 쓸 만한 영국제 복엽전투기 글로스터 글라디에이터가 몇기 있었을뿐이며 나머지는 유럽의 이나라 저나라에서 몇 대씩을 사들였던 구시대의 유물에 지나지 않는 형편없는 기체들뿐이었다. 여기에 핀란드가 보유한 대공포의 숫자는 겨우 200여문을 넘어서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이런 한줌밖에 안되는 대공포들을 가지고는 도저히 소련의 폭격기들을 견제할 수가 없었다.

[핀란드 공군의 포커 D.XXI - 과연 이 전투기로 강력한 소련공군에 맞설 수 있을 것인가? ]

이런 현실에 당황한 핀란드는 황급히 우방국들에게 군수물자의 원조를 요청했으며 소련공군에 대항할 만한 전투기를 한 대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필사적인 외교전에 돌입하게 되지만 그 성과는 단기간에 이루어지지 못할 것으로 보였다. 이중에서 가장 빨리 도입될 것으로 기대되었던 미국제 미국제 F2A 버팔로 전투기의 구매계획 조차도 예상치 못한 차질이 생기면서 점점 지연되어 이 전투기들이 대서양을 건너 핀란드에 도착하기 까지는 아무리 빨라도 몇 개월은 소요될 것 같았다.

사실이 이렇다보니 핀란드 공군이 무려 1500여기 이상의 현대식 항공기로 무장하고 침공해오는 소련의 붉은공군과 맞서 싸운다는 것은 그야말로 '달걀로 바위치기'에 지나지 않을 것으로 여겨졌으며 누가보더라도 핀란드공군의 전멸은 이제 시간 문제인 것으로 보였다.

밀려오는 붉은공군

반면 핀란드공군에 비해 압도적인 전력을 준비해놓은 소련공군은 자신감에 넘치고 있었다. 붉은공군은 총 2000여기에 육박하는 엄청난 대군을 동원해 핀란드를 초토화시킬 예정이었으며 이중 800여기가 핀란드 접경으로 이동하여 출격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중에서도 소련공군의 핀란드 공략작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도록 편성된 것은 일류신 IL-4 (DB-3) 장거리 폭격기와 투폴레프 SB-3 고속 폭격기들을 주 전력으로 하는 300여기 이상의 폭격기 병단이었다. 다가올 핀란드 침공작전에서 의심할여지 없는 대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던 소련공군의 지휘부는 그야말로 자신감이 넘치고 있었다.

[ 동료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는 소련 폭격기 승무원들, 자신감에 넘치는 것 처럼 보인다. ]

핀란드 침공을 앞두고 소련공군은 스페인 내전에서 독일공군을 상대로 한때 호각의 전투를 전개하며 훌륭한 실전경험을 얻었으며, 핀란드 침공 몇 개월전에 몽골국경에서 벌어진 아시아의 군사강국 일본과의 대규모 전투 (노몽한 사건)에서 붉은군대의 조종사들은 일본육군항공대와 해군항공대의 최일선 전투기들과 맞서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여 나름대로의 성과를 얻어낸 적이 있었다. (항공전사 - 태평양 항공전 1부 Act.2 중국하늘의 일장기 편 참조)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소련공군은 비록 초반에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많은 손실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속하게 전력을 증강하여 일본군에 맞섰으며, 결국 일본에 비해 약간 더 많은 항공기를 잃기는 했지만 이 대규모 분쟁 지역에서 소련공군은 지상군의 지원작전과 적 전투기들과의 제공전투에서 보다 진 일보한 전술을 확립하여 결과적으로는 소련군이 일본군을 몰아내고 이 분쟁지역에서 최종적인 승리를 얻어내는데 크게 기여했던 것이다. 이렇게 스페인과 몽골에서의 근대 항공전을 경험하게된 소련공군은 이런 전투를 통해서 소중한 경험과 자신감을 얻었다고 자평했으며 실제로 많은 소련 조종사들이 이런 실전을 통해 병아리 단계를 벗어나 번뜩이는 독수리의 눈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 스페인 내전이래 소련공군의 주력전투기 위치를 공고히한 I-16 전투기들 ]

상황이 이렇다보니 한줌도 안되는 핀란드 공군의 전투기들이 수백대의 소련폭격기들과 전투기들을 저지한다는 것을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며, 소련공군의 지휘부는 이제 소련공군이 할 일이라고는 그저 핀란드의 도시들을 향해 직선으로 날아가 폭탄의 비를 퍼붓기만 하면 될 것으로 생각했다. 이렇게 되면 소련공군의 무자비한 공중폭격에의해 핀란드 국민들은 공포와 충격에 휩쌓일 것이며 결국 핀란드정부는 백기를 들고 항복하리라는 것이 자명했다.

오만의 대가

1939년 11월 30일 오전 7시를 기해 600여문에 달하는 소련군의 중포들이 일제히 불을 토하며 대대적인 포격을 시작하는 것으로 핀란드 침공이 본격적으로 개시되었다. 대대적인 포격이 끝나자 소련육군은 물밀 듯이 핀란드 국경을 넘어 진군하기 시작했으며 에스토니아의 기지에서 이륙한 소련 공군의 폭격기들도 마치 파리떼처럼 핀란드의 주요 도시들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파죽지세로 밀고들어오는 소련군의 기세에 놀란 핀란드 육군 병사들은 변변한 저항도 하지 못하고 지리멸렬하여 후퇴하기 시작하자 소련군 수뇌부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핀란드군은 싸워보지도 않고 꽁지를 빼고 있는 것으로 보였으며 소련육군은 개전 첫날 8km를 진격하는 등 모든 것이 순조롭게 보였던 것이다. 개전 첫날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는 소련 폭격기들이 날아들어 무자비한 폭격을 자행했으며 핀란드 제 2의 도시 비푸리를 비롯한 15군데의 주요 요충지들에도 폭탄이 떨어졌다.

[ 헬싱키 상공에 나타난 붉은 악마들, 11월 30일 오전 9시 15분의 사진이다. 이들의 폭격으로 90명의 시민이 사망하고 수백명이 부상을 당했다. 겨울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인 장면을 담고 있다. ]

그러나 소련군이 핀란드의 눈으로 뒤덮인 전나무 숲속으로 점점 들어오면서 그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 직면했다. 그것은 영하 40도를 밑도는 엄청난 핀란드의 겨울추위와 소규모의 정예 스키부대를 앞세운 핀란드의 게릴라식 전술이었던 것이다. 사실 추위라면 어느정도 이골이 난 북부지방 출신의 소련 병사들조차 핀란드 지역의 엄청난 강추위는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혹독한 것이었다. 더구나 소련군 병사들의 대다수는 온화한 날씨를 특징으로하는 대초원 지역이나 난방이 그럭저럭 양호한 도시 지역에서 농부나 노동자로 일하다가 강제로 징집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그들에게 있어서 불과 몇초만에 눈물까지 얼려 버리는 핀란드의 혹독한 강추위는 그야말로 생전 처음 당해보는 생지옥과도 같은 경험이었던 것이다.

[ 동태처럼 얼어죽은 소련병, 영하 40도를 밑도는 핀란드의 혹한은 침략군에게 너무나 가혹한 형벌을 내렸다. ]

핀란드의 강추위 앞에 무방비로 노출된 소련병사들은 어쩔줄 몰라했으며 추위에 노출된지 하루만에 심한 동상에 걸려 불구가 되거나 심지어는 밤사이에 참호속에서 그대로 얼어죽는 병사들까지 속출했던 것이다. 이런 강추위가 연일 계속되면서 소련군은 숲속에서 얼어붙어 꼼짝못하고 있었다. 이러는 사이에 마치 유령처럼 나타나 기습공격을 가하고 즉시 빠지는 핀란드군의 교란 작전이 먹혀들기 시작했다. 핀란드군은 추위에 완벽하게 적응하고 있었으며 정예화된 소규모 병력의 스키부대가 종횡무진으로 활약하며 소련의 대군을 물고늘어지는 게릴라 전술을 완벽하게 구사했던 것이다.

[ 매복한후 소련군을 기다리고 있는 핀란드 병사들, 누구보다도 혹한의 겨울을 잘 알고 있던 핀란드군은 매우 효과적으로 방어전을 전개했다. ]

1940년 12월 12일부터 소련육군의 최정예 부대를 자부하던 제 139 보병사단 전체가 하얀 눈으로 덮힌 핀란드의 숲속으로 들어간후 핀란드의 교란작전에 발목을 잡힌채로 변변한 반격도 해보지 못한채 10일이 조금 넘는 짧은 기간만에 거의 전멸에 가까운 대피해를 입고 지리멸렬해 퇴각했다. 그러나 소련군이 가장 심대한 타격을 입은 전투는 핀란드의 작은 마을 수오무살미를 둘러싼 공방전에서 발생했다. 1940년 12월 7일 수오무살미 마을로 진입한 소련 제 163 보병사단은 핀란드군의 함정에 걸려들었다. 이후 약 30일간 진행된 치열한 전투에서 11500명의 핀란드군은 3만의 소련군을 완전하게 궁지에 몰아넣고 일방적으로 도륙했으며 소련군은 병력의 90%정도가 전사하는 괴멸적인 대피해를 입고 말았다. 이 수오무살미 전투에서 핀란드군의 희생자는 1000명도 되지 않았으니 그들은 침략군에게 무려 30배가 넘는 엄청난 희생자들을 선사한 것이었다.

[ 핀란드군의 기습으로 파괴된 소련군 행렬과 얼어죽은 소련병사들의 처참한 모습 ]

소련군에게 있어서 더욱 한심한 상황은 대부분의 병사들이 전사한 것이 아니라 참호나 숙영지에서 동사했다는 점이었다. 소련군은 핀란드 침공전이 단기간에 끝날 것이라 자만했기 때문에, 핀란드의 혹독한 겨울추위에 대비한 준비를 거의 하지 않고 있었다. 이런 오만의 결과는 너무나 참혹해서 전투에 투입된 병사들은 전투중 약간의 사소한 부상만 입어도 참호속에서 점점 얼어붙어 죽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전투의 양상이 이런식이 되면서 핀란드군은 그저 소련군의 발목만 붙잡아 놓으면 소련군 병사들이 알아서 얼어죽어 버린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더욱 강화된 기만, 기습, 지연 전술을 동원해 소련군을 숲속에 붙들어 놓으려고 했다.

[ 수오무살미의 대승리로 사기가 오른 핀란드 병사들이 파괴된 소련 전차를 둘러보고 있다. ]

예상밖의 참패가 거듭되는데 당황한 소련군 수뇌부는 후속 지원부대를 속속 핀란드의 숲속으로 들여보냈지만 돌아오는 것은 투입되는 부대마다 엄청난 손실을 입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얼어죽어가고 있다는 어이없는 소식뿐이었다. 핀란드의 하얀 숲은 마치 악마의 입처럼 소련군 병사들이 들어오는 족족 집어 삼키고 있었다. 소련군은 핀란드를 지나치게 얕보고 오만에 빠졌던 대가를 엄청나게 치루고 있는 셈이었던 것이다.

붉은 곰을 물고늘어지는 겨울하늘의 늑대들

여기에 더해서 더욱 어이없는 것은 핀란드의 하늘에서도 압도적인 전력을 자랑하는 소련공군이 얼마안되는 전투기로 맞서는 핀란드 공군에게 연일 큰 피해를 입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전쟁 첫날이었던 11월 30일 소련공군 폭격기들은 핀란드 공군의 저항을 거의 받지 않고 헬싱키 상공에 날아들어 수백발의 폭탄과 소이탄을 투하했었다. 그러나 불굴의 의지를 가졌던 핀란드 국민들은 이런 폭격에 절대 굴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반드시 복수하고 말리라는 결연한 항전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던 것이다. 국제사회는 이런 비인도적인 도시 폭격에 대해서 소련을 비난했으며 억울한 피해를 입은 핀란드에 대해 원조를 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소련공군 지휘부는 핀란드에서의 상황을 낙관했으며 계속적인 폭격으로 핀란드를 굴복시키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

[ 개전 첫날 소련공군의 폭격을 받은 핀란드의 주요 도시들과 요충지들 ]

그러나 12월 1일부터 핀란드공군의 반격이 시작되었고, 지상전에서와 마찬가지로 하늘에서도 숫적으로 우세한 소련공군이 절대적인 전력의 열세에 있는 핀란드 공군으로부터 치욕적인 피해를 입고 연일 곤욕을 치루는 상황으로 돌변했다. 이날 핀란드 전투기들은 소련 폭격기들이 헬싱키로 날아드는 경로에 매복했다가 몇 차례의 기습적인 공격을 가해 10기의 소련 폭격기들을 헬싱키 상공에서 격추시켰으며 헬싱키 주위에 배치된 대공포 부대도 몇 기의 소련 폭격기들을 격추시키거나 파손시켰다.

[ 소련공군이 사용한 회전식 클러스터 폭탄, 내부에 200여개의 작은 소이탄들이 들어있어 투하중 꼬리날개에 의한 회전력에 의해 자탄들이 뿌려지는 방식이다. 핀란드의 목조건물들에 화재를 일으킬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나 눈에 덮힌 핀란드의 도시들에는 별 효과가 없었다고 한다. 인구 밀집지역인 도시에 대한 폭격으로 전세계적인 비난에 직면한 소련외상 몰로토프가 핀란드에 원조용 빵을 투하했다는 억지주장을 하는 바람에 이 폭탄은 몰로토프의 빵바구니 라는 별명을 얻게된다. ]

비록 수적으로도 너무나 적었고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구식 전투기를 타고 날아올라 싸워야 했지만 핀란드군 공군 조종사들 개개인의 기량은 매우 높은 수준이었으며, 정신력에서도 소련 조종사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제대로 된 전투기의 호위도 없이 막무가내식으로 수십기씩 무리지어 핀란드의 하늘로 날아오는 소련 폭격기병단을 요격하는데 있어서 핀란드 전투기 조종사들이 구사한 전술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핀란드 전투기조종사들은 마치 사슴떼를 뒤쫒는 늑대들이 사냥하는 모습을 연상시키듯이 소련 폭격기 무리가 핀란드로 향하는 동안 계속 이들을 추격하면서 기회가 있을때마다 치고 빠지는 전술을 구사하여 적지 않은 피해를 입히고 있었던 것이다.

만일 소련공군이 치밀한 계획하에 철저하게 전투기의 엄호를 충분히 붙여서 폭격기들을 핀란드로 투입했다면 아마도 핀란드 공군은 소련폭격기들을 효과적으로 요격하지 못했을 것이며 전투기 전력이 소모되어 단기간에 모든 전력을 잃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소련공군 지휘부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무질서하고 단조로운 공격명령만을 남발하고 있었다.

[ 핀란드 상공에서 격추된 소련 폭격기의 잔해 ]

핀란드의 공군력을 너무나 얕보고 있었기 때문에 애초부터 전투기 부대와 폭격기 부대간의 유기적인 상호 협력 같은 세밀한 작전은 전혀 입안되지도 않은 상태였으며, 대부분의 폭격기 승무원들은 자세한 브리핑도 받지 못하고 작전의 세부사항도 알지 못한채 무작정 목표지점으로 날아가 폭탄을 투하하고 돌아오라는 단순한 명령만을 받고 있었다. 폭격기 승무원들에게는 아군 전투기들이 몇기나 엄호작전에 투입되는지? 목표지역까지 핀란드의 대공포화는 어떻게 배치되어 있으며 핀란드 요격기들의 출몰 가능성은 있는지? 와 같은 필수적인 정보는 전혀 주어지지도 않았다.

[ 이 사진속의 기체는 12월 1일 핀란드 상공에서 최초로 격추된 소련 폭격기라고 한다. ]

물론, 핀란드 공군의 전력이 무시해도 좋을 만큼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이 소련공군의 지휘부와 조종사들을 방심하게 만들었을지도 몰랐지만 사실, 스페인내전과 노몽한분쟁을 거치면서 많은 전투 경험을 얻었다는 소련공군이, 아무리 핀란드 공군의 규모가 작다고 해도 이토록 원시적으로 공군력을 운용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물론 이런 상황은 핀란드 공군에게 있어서는 더없이 다행스러운 것이었다. 핀란드 전투기 조종사들은 훈련강도에 있어서는 소련공군 조종사들에 비해서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고, 수는 적더라도 모두들 정예화된 엘리트로 키워졌기 때문에 각 전투기 조종사들의 기량과 전술능력은 매우 높았다. 그들은 소련공군기들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이 적은 전투기들을 이용해서 소련폭격기들을 최대한 많이 격추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늑대들의 전술

핀란드 공군기들중 최고 성능을 가진 전투기 포커 D.XXI의 경우 독일공군의 주력전투기였던 메서슈미트 Bf 109의 절반가격에 불과한 경제적인 이점으로 인해 핀란드 공군의 주력 전투기로 채택된 전투기로서 최고 속도가 겨우 시속 420~440km 에 불과하여 비슷한 시기에 서유럽의 군사강국들이 사용하고 있었던 주력전투기인 Bf 109나 스핏화이어, 허리케인 등과 같이 시속 500km를 가볍게 넘는 기체들에 비해 매우 뒤떨어지는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더구나 고정식 강착장치를 채용하고 있었으므로 저익 단엽기라고는 해도 구식으로 보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객관적으로 볼 때 당시 소련공군의 주력 전투기들이었던 I-153이나 I-16 같은 기체들의 성능과 비교해 보면 소련 전투기들이 포커 D.XXI보다 우수한 성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 유능한 조종사들에 의해 효과적인 무기가 된 포커 D.XXI - 핀란드 공군의 전과를 분석한 자료에서 이 전투기의 기록만을 분석해보면 겨울전쟁기간동안의 공중전에서 무려 16:1의 엄청난 격추교환비를 달성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조종사들의 능력이 기체의 한계를 극복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

더구나 스페인과 몽골지역에서 치열한 공중전을 경험한 소련 전투기 조종사들의 기량도 얕볼 수는 없었기 때문에 만일 전투기끼리의 1대 1의 대결을 벌이게 되면 핀란드 전투기들의 희생도 피할 수는 없을 것이 자명했으므로 핀란드 전투기들은 소련 전투기들과의 대결은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라면 가능한 피하려고 했으며, 오로지 폭격기들만을 공격해 격추하는데 전력을 기울였다.

핀란드 공군은 전쟁 전부터 전투기 숫자의 절대적인 부족으로 인해 대규모 편대전술 훈련은 꿈도 꾸지 못했으며 소규모 편대인 2기 또는 4기의 전투기들이 상호 협동하는 편대 전술을 발전시키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대부분의 경우 핀란드 전투기들은 2기가 서로 엄호해주는 편대 대형을 원칙으로 했으며 이것은 독일공군의 2기 편대인 로터 (Rotte)와 일견 유사한 것이었다.

[ 핀란드 조종사들이 가장 좋아하는 먹이감이었던 일류신 IL-4 장거리 폭격기 ]

핀란드 공군 전투기 조종사들이 반드시 명심해야할 공격전술의 원칙은 바로 '적의 전투기들과는 싸우지 말고 폭격기만을 공격하되 완벽한 기습만을 추구하라!'는 것이었다. 이런 기습을 위해서는 적의 눈에 쉽게 발견되면 안되었으므로 핀란드 전투기들은 2기 또는 많아야 4기의 소규모 편대로 출격했으며 각기간에 100미터 이상의 간격을 유지하면서 적을 찾고자 애썼다. 만일 소련폭격기의 무리를 발견하면 이들은 즉시 상승하여 고공의 태양이나 구름을 이용하여 은밀하게 최적의 공격위치로 접근했다. 이 과정은 마치 먹이를 노리는 늑대들이 나무나 덤불을 이용해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장면을 연상시키는 것이었다.

[ 스키를 장비하고 투입된 I-15bis 전투기, 핀란드 조종사들은 이런 전투기과 가급적 교전을 피했다 ]

이렇게 완벽한 공격위치를 확보하고 소련 엄호전투기들의 상황을 파악한후 유리하다고 판단하면 갑자기 벼락같이 급강하면서 폭격기들에게 기습공격을 가하고는 속도를 이용해 이탈했다가 다시 고공으로 상승한후 비틀거리는 폭격기들을 추격하여 고속 일격이탈 전술을 반복하는 전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만일 이런 와중에 소련 전투기들이 출현해 반격해오면 첫 번째 공격패스 직후 급강하시에 얻어진 속도를 이용하여 전투지역에서 이탈하여 기지로 돌아오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일단 공격이 시작되면 초를 다투는 전투상황에서 공격해야할지 이탈해야할지의 판단은 전적으로 조종사 개개인에게 맡겨졌다.

[ 핀란드 전투기에게 격추당한 소련의 폴리카르포프 R-5 정찰기 ]

만일 소련 전투기들의 숫자가 많은 경우에는 개개인의 판단에 따라 첫 번째 공격패스 직후 각 전투기들이 뿔뿔히 흩어져 도주하는 방법으로 소련 전투기들이 반격할 여지를 아예 주지 않았으며, 전투기의 엄호가 허약한 경우에는 일부는 소련 전투기를 폭격기들로부터 떼어놓기 위해 도주하고 일부는 다시 전투현장으로 복귀하여 다시 공격하는 식이었으니, 어떻게 보면 전혀 신사적(?)이지 않은 전법만을 사용한 것이다. 그러나 보유 기체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핀란드 공군의 입장에서 보면 어떻게해서든 전투기들을 온전하게 보존하면서 소련공군의 공습을 막아내려다보니 이런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겨울전쟁의 중반기까지 대부분의 경우 소련공군의 엄호 전투기들이 폭격기들과 동행하는 경우가 없었기 때문에 소련 폭격기 수십기가 겨우 2~4기의 핀란드 전투기들에게 이리저리 쫒기며 농락을 당하는 경우가 속출했다.

[ 핀란드 상공에서 맹활약한 포커 D.XXI - 일부 기체는 사진처럼 주익에 20mm 올레리콘 기관포를 장비하고 있었지만 전투중 자주 트러블을 일으켜 대부분의 경우 이 기관포를 떼어내고 7.7mm 비커스 기관총으로 교체했다고 한다. ]

물론 핀란드 공군기들이 기대이상의 전과를 계속 올리면서 소련공군을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었던 데에는 핀란드 조종사들의 높은 기량도 한몫했지만 소련공군 지휘의 전술적인 미숙함이 더 큰 문제였다. 대규모 폭격기들을 투입하면서도 충분한 호위 전투기들을 같이 보내지 않았고, 세밀한 작전 계획의 부재로 인해 10배이상의 수적 우세를 가지고도 별 전과를 올리지 못한채 연일 많은 피해만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겨울전쟁 기간동안에만 12와 5/6기를 격추시켜 핀란드 공군 최고의 에이스로 명성을 높였던 요르마 사반토같은 조종사는 1940년 1월 6일 핀란드 상공에서 벌어졌던 단 5분간의 전투에서 혼자 6기의 IL-4 폭격기를 격추시키는 전설적인 전투를 기록하기도 했을 정도로 소련 폭격기들은 핀란드 전투기들에게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으며, 반대로 핀란드 공군은 105일간의 겨울 전쟁에서 200기가 넘는 소련 공군기들을 격추시키는 엄청난 전과를 올렸던 것이다. (12와 5/6기라는 격추기록 산정은 핀란드군의 방식으로 요르마 사반토는 사실상 13기의 격추를 기록한 것으로 인정됨)

[ 요르마 사반토가 기록한 전설적인 5분 격추장면을 담은 항공아트와 사반토의 사진 ]

이런 치열한 공중전을 통해서 현대 공중전을 처음으로 경험했던 핀란드 조종사들은 공중전에서 적기를 격추하고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하여 그들의 실력을 더욱 업그레이드 시키게 된다. 이들 중에는 겨울전쟁이 끝난후 1년여만에 다시 시작된 계속전쟁 (continuation war)까지 무려 94기와 1/6기의 격추기록을 올려 핀란드의 최고 에이스로 등극하게 되는 아이노 유틸라이넨과 75기의 격추기록으로 2위의 에이스가 되는 불멸의 영웅 한스 빈트 (특히 한스 빈트는 구식으로 치부된 버팔로 전투기로 39기의 소련 전투기를 격추하여 버팔로의 탑 에이스라는 특이한 기록도 남김)와 같은 슈퍼 에이스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핀란드 공군은 겨울전쟁과 계속전쟁에서 소련공군과의 처절한 사투를 통해 무려 96명의 에이스를 배출한 것으로 유명하다.

[ 훗날의 계속전쟁에서 버팔로를 몰고 맹활약하게되는 슈퍼에이스 한스 빈트, 그의 에이스 경력도 겨울전쟁에서 시작되었다. ]

겨울전쟁 기간동안 핀란드 공군은 무려 240기의 소련공군기들을 격추했다고 주장했는데 이중 70%정도가 폭격기들이었다고 한다. 특히 핀란드 공군의 손실은 43기였으며 이들중 공중전에서 잃은 기체수는 단지 35기에 불과했다고 하니 핀란드 전투기들의 활약상이 얼마나 뛰어난 것이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해서 소련측은 소련공군이 전투에서 잃은 손실은 190기이며, 소련 전투기들이 62기의 핀란드 공군기들을 격추시켰다고 주장했는데 양측의 주장을 실제로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대부분의 전사가들은 자국의 손실은 최소화시켜 발표하고 전과는 극대화시키는 관행을 고려한다고 해도 겨울전쟁 기간동안 핀란드공군이 실제 소련공군에게 8배 이상의 손실을 안긴 것은 분명한 사실로 보고 있다. 소련의 입장에서 더욱 난처한 것은 전투 손실이 아닌 각종 비전투 손실로 인해 추락하거나 전열에서 이탈한 기체가 무려 400여기에 이른다는 점이었다.

분노한 스탈린

전세계가 쳐다보는 가운데 북구의 작은나라에서 벌어진 전쟁에서 붉은군대가 보여준 한심한 상황은 자신을 대단한 정복자로 생각하고 있었던 스탈린에게는 너무나 치욕적인 것이었다. 그의 붉은 군대는 보잘것없는 작은나라 핀란드군에게 지상에서도 하늘에서도 굴욕적인 패배만을 거듭하며 한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스탈린은 '도대체 왜 우리 소련군은 폴란드에서의 독일군처럼 멋지게 승리를 해내지 못하는가?' 라며 노발대발했고 결국 또다시 피바람이 몰아치게 되었다. 그는 장성들의 무능함에 크게 분노하여 키릴 베르츠크프 대장을 포함한 4개 군사령관들을 소환하여 책임을 물어 숙청작업에 들어갔고, 그들 휘하의 장성급 간부들도 이런 스탈린의 분노를 피해갈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런 숙청을 통해 얻어질 수 있는 것은 그저 공포분위기의 조성뿐이었다.

[ 매복에 걸려들어 괴멸한 소련 전차들의 행렬 - 이런 실망스런 장면은 스탈린을 노하게 만들었다. ]

스탈린이 이런 사태에 대해서 부하들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길길이 날뛰자, 한때 스탈린의 혁명동지였던 현 국방장관 클레민트 보로시로프는 자신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화를 내는 스탈린에게 즉시 저주스런 비난을 퍼부었다.

'이런 사태는 내가아니라 바로 스탈린 당신의 책임이오! 당신이 그동안 저지른 짓을 보시오. 붉은 혁명을 주도하며 혁혁한 전공을 세웠던 수많은 동지들과 유능한 장성들을 스탈린 당신이 바로 모조리 처형해 버리지 않았소? 만일 그들이 제자리에 있었더라면 이런 참담한 결과는 없었을 것이오.'

어쨌든 소련군 전체의 실력이 이렇게 형편없는 수준이라는 것은 전 세계적인 망신이 아닐 수 없었다. 소련에 비호의 적이던 서방의 언론들은 연일 '소련군 1개군단 하루만에 전멸!', '핀란드군 영웅적인 분전을 하다!' 등과 같은 제목의 기사들을 1면에 실으면서 소련군의 무능함을 대놓고 비웃고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이런 소련군의 활약상(?)은 서유럽 정복전을 한창 구상하고 있던 히틀러에게 또하나의 야망을 품도록 만들었다. 폴란드전이 끝난후 형식상의 우방국인 소련군이 핀란드에서 완전히 스타일을 구겨 버리는 모습을 매우 흥미롭게 지켜보던 히틀러는 군 장성들과의 저녁식사도중 다음과 같은 말로 훗날에 벌어질 소련정복전에 대한 암시를 했다.

"내가 저 소련놈들을 너무 과대평가했군... 이건 정말 큰실수야. 저 따위 바보 멍청이놈과 폴란드를 나누어 가지다니... 이제보니 그루지아의 백정놈 (스탈린)은 허풍만 가득한 무능한 작자가 틀림없어. 좋아! 두고보라지 저놈과 불가침 조약을 맺은 것은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파기해 버릴 수 있으니..."

그러나 스탈린의 분노는 소련군 전체가 다시 정신을 차리도록 만들었다. 새롭게 사령관이 된 세이언 티모센코는 90만의 추가병력과 2800문의 대포를 투입하여 전세를 뒤집어 버리려고 했다. 소련군도 지난기간의 치욕적인 전투결과에서 자신들의 실수에 대해 고쳐나가려는 노력을 점점 기울였다.

1940년 새해가 시작되면서 지상에서는 그동안의 무질서했던 공격작전이 점점 수정되어 전차부대와 보병부대, 포병부대간의 유기적인 공격작전이 다시 계획되어 핀란드군을 압박해 들어갔으며, 소련의 붉은 공군도 엄호 전투기들의 숫자를 늘리고 보다 전술적인 목표물들을 선별하여 집중적으로 폭격을 퍼부어 무력화하는 새로운 전술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 핀란드로 차출되기전 우크라이나의 기지에서 정비중인 일류신 IL-4 폭격기 ]

상황이 이렇게 변하면서 소련군은 점점 공세를 강화하여 핀란드군을 서서히 조여들어갔으며 1940년 1월과 2월에는 그야말로 양측간에 일진일퇴의 치열한 공방전이 연일 벌어졌다. 그러나 이렇게 소모전이 계속되면서 수적으로 너무나 열세인 핀란드군 전체가 점점 전력을 소진하게 되었고 결국 핀란드 군에게 점점 종말이 다가오는 것 처럼 보였다.

피눈물 속의 종전

이런 어려운 상황은 핀란드의 하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소련공군은 1940년 1월 1일부터 북서방면군의 전력을 대폭 증강한후 총 40개 폭격기 연대와 14개 전투기 연대를 동원하는 등 약 3000기에 달하는 압도적인 전력으로 무장하고 핀란드에 대한 대대적인 공습작전을 전개했던 것이다. 더구나 그전까지와는 달리 소련 폭격기대에는 철저한 호위 전투기들의 엄호가 붙여지기 시작했으며 너무나 많은 공습이 동시 다발적으로 이루어져 불과 몇 십기인 핀란드 전투기들로서는 이런 공습을 도저히 막아낼 수 없는 중과부적의 상황이 전개되었다.

[ 더욱 강화된 소련공군의 공습을 보여주는 지도, 이렇게 되면서 핀란드 공군에게도 위기가 찾아온다. ]

그동안 외로운 늑대들처럼 적은 숫자로도 훌륭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던 핀란드 공군의 용사들도 벌떼처럼 몰려오는 소련전투기들과의 교전을 점점 피하기 힘들어졌다. 이러다보니 전투기끼리의 전투도 자주 벌어졌으며 이런 상황에서 핀란드 조종사들의 기량이 아무리 뛰어나더더라도 수적으로 너무나 열세인 상황이어서 전과를 올리기는커녕 각 전투기가 자신의 안위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상황이 나빠졌다.

이러다보니 어떤날은 요격에 나선 핀란드 전투기들이 폭격기의 엄호 전투기들과의 교전에 말려들어 1기의 소련전투기를 격추시켰으나 3기의 글로스터 글라디에이터를 잃어 오히려 격추한 소련기에 비해서 더 많은 숫자가 격추되는 최악의 경우도 발생했다. 이렇게 점점 전력이 소진되자 핀란드 공군은 비행이 가능한 상태로 노획된 소련의 항공기들을 수리하고 정비한후 도색을 변경하고 사용하는등 필사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노력했다.

소련공군은 1월 한달간 총 2500여회의 출격으로 약 5500톤의 폭탄을 핀란드의 주요도시와 전략적인 목표물에 퍼부었으며, 2월초부터는 전선으로 향하는 도로와 철도망을 파괴하여 핀란드 육군의 보급과 이동을 저지하는 작전에 돌입했다. 이 기간동안부터는 I-16 전투기들이 외부 연료탱크를 장착하고 제공권 장악을 위해 대거 날아올랐으며 이에 맞서는 핀란드 공군기들의 전력을 점점 소모시켰다.

[중과부적의 상황에 소련의 무자비한 폭격으로 불길에 휩쌓인 헬싱키의 한 건물의 모습 ]

1940년 3월이 되면서 전병력의 절반에 달하는 7만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핀란드군은 이제 괴멸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실감해야 했다. 강철의 의지를 가진 국가지도자 만네르하임 원수조차도 이제는 소련에게 항복하는 수 밖에는 없다는 생각에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무렵 핀란드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보면 다행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핀란드군이 입은 손실의 10배를 넘는 엄청난 피해를 입고 있었던 소련이 전쟁을 끝내자는 제안을 먼저 해왔던 것이다. 만일 핀란드의 실상을 소련이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더라면 소련이 전쟁을 접고자 했을리 없었지만, 3개월이 넘도록 핀란드의 숲속에서 헤메이며 20만명이 훨씬넘는 어마어마한 전사자가 발생한 소련군도 이제는 어느정도의 체면만 세운다면 이 지옥같은 동토에서의 전쟁을 하루라도 빨리 접고 싶었던 것이다.

[ 핀란드군이 노획한 소련의 I-15bis 전투기, 전투기 부족에 시달리단 핀란드 공군은 이런 소련 기체들을 다시 도색한후 전투에 투입하기도 했다. ]

물론 이 휴전 제안에는 핀란드의 영토중 주요 군사적 요충지가 포함된 전체 면적의 12%에 달하는 땅을 소련에게 넘기는 것과 앞으로 핀란드에서 생산되는 주요 광물자원을 모두 소련에게 헐값에 넘긴다 것등 핀란드 정부에게는 매우 굴욕적인 조항들이 붙어있었지만, 핀란드군 전체가 붕괴될 절대절명의 위기에서 핀란드정부로서는 이를 거부할 만한 여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만네르하임 원수는 모스크바에 사절단을 파견하여 조금이라도 조건을 완하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협상은 없으며 소련으로서는 한치의 양보도 있을 수 없다. 싫다면 끝장을 보자'며 강경한 자세를 고수하는 소련외상 몰로토프의 협박으로 인해 결국 위의 조건에 합의하고 전쟁을 끝내기로 했다.

[ 겨울전쟁 후반기 프랑스로부터 원조된 모랑솔니에 MS.406 전투기의 사진들 - 소련공군의 공세강화로 별다른 활약은 못한 것으로 알려진다. ]

결국 1940년 3월 13일 오전 11시를 기해 105일간의 혹독했던 겨울전쟁은 공식적으로 끝이났다. 전쟁의 결과만을 놓고본다면 핀란드의 굴욕적인 항복이었지만 사실 소련군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온통 망신스러운 승리에 불과한 것이었으니, 소련의 한 간부는 다음과 같은 말로 겨울전쟁이 소련군에게 남긴 상처를 표현했다.

"우리가 비록 핀란드에게 승리했다고는 하지만 우리가 얻어낸 것이라고는 20만이 훨씬넘는 전사자들을 묻기에도 부족한 얼어붙은 땅뿐이었다."

전쟁에는 졌지만...복수의 칼날을 갈다

비록 굴욕적인 종전협상에 응해야 했지만 핀란드군이 겨울전쟁을 통해서 보여준 불굴의 투지는 전 세계인들에게 그들이 얼마나 강인한 민족인지를 보여주었다. 핀란드 국민들은 겨울전쟁의 종전일인 3월 11일을 국치일로 여겼으며 언젠가는 그들에게 이런 치욕을 안기고 땅을 빼았아간 소련인들에게 반드시 복수하고야 말리라는 다짐을 했다. 그러나 이 복수의 날이 불과 15개월 뒤에 찾아오리라는 것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핀란드의 입장에서 그나마 다행한 것은 소련이 핀란드의 군사력에 대해서는 아무런 통제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소련외상 몰로토프는 핀란드가 이번의 겨울 전쟁으로 군사력의 대부분을 상실했기 때문에 별다른 간섭을 할 필요가 없으며 소련에게는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한다는 입장이었지만, 핀란드는 전쟁이 끝나자마자 겨울전쟁의 참담했던 군사력의 부족을 교훈삼아 군사력의 강화에 지속적인 열정을 기울이게 된다.

[ 핀란드가 이탈리아로부터 구입한 피아뜨 G.50 전투기 - 핀란드는 전력강화를 위해서라면 국적과 기종을 가리지 않고 구입했다. ]

특히 현대식 전투기의 부족으로 큰 곤경에 처했던 핀란드 공군은 전투기의 확보에 혈안이 되어있었다. 사실 겨울전쟁 기간중 핀란드의 필사적인 외교로 각국으로부터 수입하거나 원조 받기로 계약한 총 92기의 전투기들을 우선적으로 확보해야 했는데 이 전투기들중 이탈리아 피아뜨의 G.50 전투기나 영국으로부터 원조받은 글로스터 글라디에이터 복엽전투기, 프랑스로부터 수입한 모랑솔니에 MS.406 전투기들은 전쟁 후반기에 핀란드에 도착하여 실전에 참가하고 있었으나, 미국으로부터 도입하기로 한 F2A 버팔로 전투기 44기와 영국으로부터 수입하기로한 10기의 호커 허리케인 Mk.I 의 인도는 늦어져 전쟁이 끝난후에야 핀란드에 도착할 수 있었다고 한다. 특히 버팔로 전투기는 훗날의 계속전쟁에서 기대이상의 뛰어난 전과를 올려 핀란드공군으로부터 보물 취급을 받게 된다.

[ 전쟁이 끝난후 핀란드에 도착한 버팔로 전투기, 계속전쟁이 벌어지자 그 잠재력을 과시하게 된다. ]

겨울전쟁이후 소련에대한 핀란드 국민들의 적대감은 극도로 달아올라 있어서 핀란드는 독일의 정치적인 동맹국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소련에 대한 복수의 일념으로 독일의 군사적인 지원을 마다하지 않았다. 결국 1941년 6월 22일 독일군의 바바로사 작전이 시작되면서 독소전이 시작되자, 잃어 버린 땅을 되찾기 위해 기회를 옅보던 핀란드군은 소련군을 같이 공격하게 되고, 이로서 또다시 스칸디나비아 반도에는 전쟁의 폭풍이 몰아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이른 바 '계속전쟁 (continuation war)'이라 불리우는 소련-핀란드간 전쟁의 2차 라운드인 것이다.

foxmouse : 계속전쟁에 대해서는 나중에 시간이 허락하면 리뷰를 하기로 하고 이만 겨울하늘의 전쟁편의 연재는 정리하기로 하겠습니다. 예고만 해놓고 너무 업데이트가 늦어져 죄송합니다. 그나저나 웬지 정리가 영 만족스럽지만은 않네요. 여력이 되면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