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lyushin Il-2 Shturmovik ◇

♠ Part 1 - 고난의 시절 ♠

♠ Part 2 - 대반격의 선봉에서 ♠

This document was updated at 2007. 10. 24

 

독일 지상군에게 슈투카라는 든든한 우군기가 있었다면 소련 지상군 병사들이 가장 사랑했던 기체는 바로 일류신이 만들어낸 강철의 날개 Il-2 슈트르모빅 (소련식 표기 : Ил-2 Штурмовик)  일 것이다. 물론 이 슈트르모빅은 독일 지상군에게는 악몽과도 같은 존재였으며, 이 기체로부터 끔찍한 경험을 했던 독일병사들은 '흑사병 (Schwarz Tod - Black Death)'이라는 무시무시한 별명을 붙이게 된다.

소련공군의 Il-2는 2차 세계대전에서 사용된 지상공격기중에서 가장 우수한 기체중 하나였으며 지상공격 능력만을 놓고 보면 독일공군의 Ju 87 슈투카를 확실하게 능가하는 성능을 가졌던 위대한 항공기였다. 이 항공기는 독일의 침공으로 소련이 국가존망의 위기에 몰렸을 때부터 최후의 승리를 거둔 소련군이 베를린에 입성할 때까지 전 소련군과 생사를 함께했던 존재였던 것이다. 불타는 하늘의 Great War Planes... 이번에는 하늘의 흑사병 슈트르모빅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 흑사병의 탄생

1930년대 들어서면서 소련군은 적의 지상군을 효과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항공기의 개발에 관심이 있었다. 소련군은 공군을 독립적인 부대로 작전하도록 하지 않았으며 어디까지나 지상군을 지원하는 것이 가장 주된 임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과거의 적백내전에서의 전투경험으로 볼 때 저공으로 날아들어 지상군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는 항공기의 가능성에 많은 점수를 준 것이었다.

그러나 소련국내의 어려운 사정으로 인해 개발작업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전운이 감돌기 시작한 1938년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인 개발과정이 시작될 수 있었다. 스탈린은 지상에 대한 강습, 폭격, 정찰, 근접지원등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다목적 항공기의 개발을 지시했다. 이에 소련공군은 이 항공기 개발계획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는데 각 항공기 설계국에게 새롭게 생산되는 기체가 대지상 공격을 전문으로 하게되는 만큼 튼튼한 방호력과 강력한 화력을 필수적으로 요구했다.

[ 슈트로모빅의 아버지 - 세르게이 일류신 ]

이 차기 지상공격기 개발사업에는 2종의 신형기들이 경쟁하게 되는데 세르게이 일류신이 이끄는 설계국이 만들어낸 2인승 항공기인 TsKB-55가 먼저 선보였으며 2기의 원형기가 제작되어 1939년 10월에 처녀비행을 실시했다. 어렸을 때부터 항공기술에 관심이 있었던 세르게이 일류신은 적백내전당시 적군의 항공기 조종사, 기술자로 종사했으며 이후에도 많은 항공기 프로젝트에 참가했던 공로를 소련공산당으로부터 높이 인정받아 그가 42세가 되던 1936년 8월 17일에 그의 이름을 딴 일류신 설계국을 설립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 일류신은 '날개가 달린 탱크'를 만들겠다고 결심했으며 이미 머리속에서 새로운 지상공격기의 개념을 완성시키고 설계작업을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이 신형기 프로젝트의 승자가 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뒤를 이어 파벨 수호이 설계국이 Su-6 라는 경쟁기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수호이의 기체는 몇 가지 이유로 개발이 지연되어 이미 활발한 성능테스트가 시작된 일류신의 기체에 밀리게 되었고, 슈트로모빅의 양산이 결정된 이후에는 결국 제대로 성능 테스트도 받지 못한채 경쟁에서 탈락했다.

[ 슈트로모빅의 라이벌이었던 수호이의 Su-6, 수호이 설계국은 이 기체가 공냉식 엔진을 채용하여 지상포화로부터 더욱 방호력이 강하다고 주장했으나 그 등장시기가 늦어져 슈트로모빅에게 선취득점을 빼았긴후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역전에 성공하지 못한 비운의 기체이다. 후에는 공냉식으로 개량한 기체도 등장한다. ]

일류신은 자신의 설계국이 만들어낸 기체가 소련공군의 정식 지상공격기로 선정된 것에 크게 고무되었으며 이를 기념하여 자체적으로 Bsh-2라고 명칭을 바꾸게 된다. 여기서 Bsh는 Bronirovannyi Shturmovik의 약자로 '장갑을 가진 강습 공격기 (Armored Assault Aricraft)'라는 의미를 가지게 되는데 비록 이 명칭은 소련공군에 의해 제식 명칭으로 사용되지는 않지만 훗날 유명한 별명인 슈트르모빅의 근원이 된다.

이 원형기의 테스트가 끝나자 몇 가지 단점이 발견되는데 그중 하나는 기체가 급상승할 때 냉각계통이 쉽게 과열된다는 점이었다. 이는 냉각기를 보다 대형화 시키고 오일쿨러의 위치를 동체하면으로 이동시키는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기체의 고정무장도 4정의 기관총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점이 지적된후 2정의 기관총을 2문의 23mm PTB-23기관포로 교체하도록 했다. 따라서 2문의 23mm 기관포와 2정의 7.62mm 기관총을 고정무장으로 채택하여 당시의 기준으로서는 상당히 강력한 고정무장을 갖추게 되었으며 주익 중앙부에 4발의 100kg 폭탄 수납이 가능한 폭탄고 (Bomb-bay)가 설치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최고속도가 지면고도에서 시속 362km밖에 되지 않는 느린 속도가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느린속도의 원인을 분석해보니 동력원이던 1370마력의 미쿨린 AM-35 수냉식 엔진에 문제가 있었다. (사실 지상공격기의 임무를 수행하는데 있어서 지상포화에 의한 피탄시 손상을 더 잘 견딜 수 있는 공냉식 성형엔진을 채용하는 것이 더 바람직했었지만 일류신은 소련에는 이 신형기를 날릴 수 있는 강력한 출력을 가진 공냉식 성형엔진이 없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수냉식인 AM-35를 채용할 수 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 엔진은 미그-3와 같은 고고도 요격기에 필수적인 슈퍼차저가 부착되어 있었는데, 지상공격기의 특성상 고공에 올라갈일이 없었기 때문에 저공에서는 쓸데없이 중량만 늘리는 것으로 판단한 일류신은 새로운 엔진의 개발을 요구했고, 결국 슈퍼차저를 제거하고 엔진출력을 향상시킨 1600마력의 AM-38 엔진이 개발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소련수뇌부로부터 쓸데없는 간섭이 내려오는데, 그것은 스탈린과 군 수뇌부가 이 항공기를 1인승으로 개량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이다. 그들은 1인승 폐쇄식 조종석을 채용하고 후방석에 연료를 더 탑재하면 이 항공기는 항속거리가 길어지며 보다 빠른 속도로 적진에 침투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일류신은 후방석의 방어용 기관총좌를 폐지하면 이 기체가 적전투기의 공격에 매우 취약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스탈린의 결정이 내려진 상태였으므로 이를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결국 후방석은 폐지되었으며 여기에 41갤런 (약 155리터)의 보조 연료탱크를 탑재하는 것으로 개량이 완료되었다.

[ 두번째 원형기 TsKB-57, Il-2의 양산으로 이어지는 기체이다. ]

이 기체는 '날개가 달린 탱크'라는 일류신의 설계개념에 의해 엔진과 조종사를 보호하기 위하여 전방동체에 무려 700kg 가까운 양의 강철판 (두께 4~8mm)을 폭넓게 사용해서 중장갑을 둘러쳤는데 특히 수냉식 엔진의 특성상 손상에 취약한 냉각장치는 가장 중장갑으로 보호를 받았다. 조종석에는 55~65mm 두께의 K-4 방탄유리가 사용되었으며 주익의 랜딩기어는 인입시에 바퀴가 약간 돌출되도록 설계되어 전투손상에 의해 랜딩기어가 손상되더라도 강행 착륙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그러나 주익에 장비된 PTB-23 23mm 기관포에 문제가 있었다. 이 기관포는 신뢰성에 문제가 있어 자주 급탄이 정지되었으며 반동이 심해 주익의 구조에 심각한 결함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았다. 이에 일류신은 보다 신뢰성이 높은 ShKAS 20mm 기관포로 교체하고 주익의 구조적인 강도를 재설계했다. 이렇게 무장이 변경된후 이 기체는 20mm 기관포탄 420발과 7.62mm 기관총탄 500발을 탑재할 수 있었다.

[ 슈트르모빅의 조종석, 계기판이 매우 간단한 편이다. ]

이렇게 탄생한 두 번째 원형기는 TskB-57로 명명되었고, 영국본토항공전이 그 고비를 넘겼던 1940년 10월에 이르러서야 첫 번째 비행을 할 수 있었다. 고도 6600피트에서 시속 470km의 최고속도를 보였으며 무엇보다 조종성이 매우 뛰어나 대부분의 테스트 파일럿들은 이 기체의 비행성능에 매우 높은 평가를 내렸다.

소련공군 테스트파일럿들이 이 기체의 성능이 대단히 만족스럽다는 보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된일인지 군수뇌부에서는 이 기체의 생산을 허가하지 않았으며 이에 초조해진 일류신은 1940년 6월 이 기체의 양산을 허락해달라는 우편을 보냈으나 몇 개월을 기다려도 답변이 없었다. 1940년 11월 7일 기다리다 못한 일류신은 스탈린에게 직접 기체의 생산을 허락해 줄것을 호소하는 편지를 보내게 되는데 이것은 당시 피의 대숙청 상황에서는 매우 위험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의외로 스탈린은 이 편지의 내용에 고개를 끄덕이며 적극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결국 12월말이 되서야 양산을 허락한다는 공문과 함께 모스크바 근교의 포로네즈에 위치한 GAZ-18 공장이 기체의 생산을 맡게될 공장으로 배정되었다. 공장을 배정받은 일류신은 곧장 포로네즈로 이동하여 이 공장의 설비를 신형기의 생산에 맞도록 전면적인 공사작업을 했고 서둘러 양산작업에 들어갔는데 결국 GAZ-18 공장에서 작업을 시작한 지 100일도 안되는 1941년 3월 10일에 양산 1호기의 첫 비행을 실시할 수 있었다. 이런 우여곡절끝에 결국 양산이 시작되자 소련공군은 이 기체에 Il-2 슈트로모빅이라는 제식 명칭을 부여했다.

[ TsBK-57과 양산형 Il-2의 차이를 보여주는 일러스트, 양산형은 보다 세련된 외형을 보여준다. ]

양산형에서는 TskB-57의 반복적인 테스트 과정에서 지적된 마지막 문제점이 개선되는데, 그것은 AM-38 엔진의 탑재에 따라 기수가 너무 직선으로 길 게 설계되어 조종석에서 볼 때 전방 아래쪽의 시야가 매우 좋지 않다는 점이었다. 이것은 지상공격을 주특기로하는 기체로서는 매우 불만족스러운 것이었기 때문에 일류신의 설계팀은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엔진을 17.5cm 아래쪽으로 이동시킨후 기수를 유선형으로 재설계하고 조종석의 크기를 축소하고 높이를 5cm 높여서 조종사의 전방시야를 좋게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슈트르모빅의 특징적인 돌출형 캐노피가 탄생하게 된다. 이렇게 개선된 기수의 형태는 전체적인 비행성능의 향상효과도 나타냈다. 여기에 TsKB-57의 동체에 일부 사용된 목재재료들은 양산형에서는 경금속으로 바뀌게 되었으며 기체 설계의 변경과 함께 무장 탑재량도 약간 증가되어 20mm 기관포탄 500발과 7.62mm 기관총탄 720발을 탑재할 수 있었으며, 여기에 지상공격기 답게 주익 하면에는 82mm RS-82 로켓탄을 발사할 수 있는 레일을 총 8개 부착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전차와 같은 장갑차량에 대한 파괴력을 증가시킬 수 있었다.

Ilyushyn  Il-2 초기 양산형

엔진: 미쿨린 AM-38 수냉식엔진 (1600 마력)

전폭: 14.6m

전장: 11.6m

전고: 4.11m

기체중량: 4200kg

최대중량: 5788kg

최대속도: 420km/h

최대고도: 13120피트 (4000m)

항속거리: 740km

무장: 20mm 기관포 2문, 7.62mm 기관총 2정

        82mm RS-82 로켓탄 8발 & 총 400kg 일반폭탄 탑재가능

 

* 고난의 시절

이런 저런 이유로 슈트르모빅은 다른 소련의 신예기들처럼 그 등장시기가 너무 늦었다. 양산 1호기가 첫 비행을 실시한후 불과 3개월도 안되는 시점인 1941년 6월 22일에 독일군이 전면적인 침공을 개시했기 때문에 Il-2가 실전에서 활약하기에는 너무나 시간이 부족했다. 독일이 침공할 때까지 총 249기정도의 슈트르모빅이 생산되었는데 이중에서 실전부대에 배치된 기체는 고작 18기에 불과했다고 하며 독일의 침공이 시작되자 부랴부랴 잔여기체들이 전선으로 보내지지만 이 인도분량 조차도 제대로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조종사가 거의 없었던 것이다.

[ JG 5의 Bf 09F에게 격추된 슈트로모빅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중인 독일병사들 - 바바로사 작전중의 스냅 ]

이후 독일공군의 맹공으로 소련공군이 괴멸적인 타격을 입고 전선의 전면적인 붕괴상황이 계속되자 전선에 투입되는 Il-2는 대부분의 소련기들과 마찬가지로 거의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한 독일 전투기들의 사냥감 신세가 되어 버렸다. 이 무렵 거의 와해상태에 빠진 소련공군은 Il-2를 출격시킬 때 호위 전투기를 딸려보낼 만한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슈트로모빅은 무작정 이륙한후 홀로 적진으로 돌격해야 했으며, 후방석의 기총수마저 없었기 때문에 독일 전투기들이 후방으로 돌아들어 공격해오면 속수무책으로 격추 당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실 슈트르모빅의 비행성능은 매우 좋은 편이었기 때문에 우수한 조종사가 탑승하는 경우 독일전투기의 공격으로부터 충분히 벗어날 수 있는 매우 뛰어난 운동성을 과시하기도 했으며, 어떤 경우는 독일전투기와 1:1의 공중전을 벌여 승리를 기록한 적도 있을 정도였다. 이중에서도 랴보스코 상사는 1942년 3월에 투입된 몇차례의 공격작전에서 일군의 독일전투기들이 요격해왔을 때 희피하지 않고 즉시 공중전에 돌입하여 싸웠으며, 슈트로모빅으로 총 4기의 Bf 109를 격추하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전과를 올리게 된다. 이 전과는 동료조종사들의 증언으로 확인되어 그는 '소비에트 연방의 영웅' 칭호를 수여받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Il-2는 출격한후 돌아오지 못했으며 불과 몇 달만에 전선에 투입된 슈트로모빅의 3/4에 달하는 숫자가 손실되는 막대한 피해를 입는다.

 

[ 독일군이 자국군의 승리를 과시하기위해 파괴된 슈트로모빅을 헝가리 대중에게 공개한 선전용 사진 ]

독소전이 발발했을 당시에 소련의 주요 군수공장들은 모스크바 주위에 있었는데, 독일군의 진격속도가 너무 빨라서 곧 소련의 수도인 모스크바가 위협받을지 모르는 상황이 되자 스탈린은 모스크바 주위의 주요 군수공장들을 독일 폭격기들의 항속거리가 미치지 않는 우랄산맥의 동쪽으로 이동시키라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 그러나 1500여개가 넘는 군수공장들과 여기서 일하는 1000만명의 노동자와 그들의 가족들을 1000km이상이나 떨어진 거리로 옮기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지만 국가존망의 위기가 닥쳐오자 소련국민들은 1941년 가을이 지나갈 때 까지 90%가까운 공장들을 이전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Il-2를 생산하고 있던 GAZ-18 공장은 전선의 수요가 폭증하면서 계속 생산을해야 했기 때문에 이전작업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포로네즈에도 1941년 9월 19일 독일공군의 하인켈 He 111 폭격기들이 최초로 나타나 폭격을 가했으며, 이에놀란 스탈린은 GAZ-18도 가능한 빨리 이전작업에 들어갈 것을 지시했다.

GAZ-18이 이전하게될 지역은 볼가강 근처의 퀴비쉐프라는 곳이었는데 여기까지 공장설비와 노동자들을 이동시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어서 1941년 10월 26일 철수작업이 시작된후 35일이 지나서야 그럭저럭 이전작업을 완료할 수 있었다. 물론 이기간동안에는 Il-2의 생산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너무도 혼란한 상황속에 이전작업이 이루어지다보니 퀴비쉐프에 새롭게 건설된 공장의 상황은 그야말로 혼돈과 절망, 그자체였다. 급조된 공장건물은 지붕도 얹지 못한채로 기계들을 가동해야 했으며 노동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은 허름하게 지어진 오두막집에서 돌처럼 딱딱한 빵으로 연명하면서 일해야 했던 것이다. 이전과정에서 생산설비가 손상되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도 속출했으며, 지원물자도 턱없이 부족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당에서 가능한 많은 Il-2를 생산하라는 독려가 계속 내려오다보니 생산되는 기체들의 품질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고 불량품들의 발생률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 국가존망의 위기속에 불철주야 가동되던 슈트로모빅의 생산라인 ]

설상가상으로 전선의 상황이 계속 악화되면서 만성적인 물자의 부족이 심각해졌는데, 특히 항공기 제작에 필수적인 경금속들이 너무나 부족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많은 기체를 생산해야 하는 압박을 받게된 일류신의 설계팀은 후부 동체와 수직안정판을 목재를 사용해서 제작했다. 그러나 목재를 사용해서 튼튼하게 제작해야하다보니 기체의 중량이 오히려 증가했으며 견고성은 떨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실제로 이 목재 재료가 사용된 Il-2 들은 야전에서 이루어지는 거친 착륙 과정에서 기체의 구조적인 손상이 발생하는 경우가 속출했다고 한다. 일류신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후부동체에 4개의 강철뼈대를 덧대는 방법을 사용해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더욱이 겨울이 찾아오면서 퀴비쉐프의 지붕이 없는 공장은 영하 30도를 밑도는 강추위와 눈보라로 인해 생산이 중단되는 사태까지 발생하게 되는데, 이런 악재속에서 날아든 한 장의 우편엽서가 엄청난 충격을 몰고온다. 이 우편엽서는 바로 그들에게 있어서 독일군보다도 훨씬 무서운 독재자 스탈린이 보낸 것이었다.

'지금 우리의 붉은군대는 더욱 많은 일류신을 필요로 하고 있다. 전선에서 죽어가는 병사들에게 일류신은 빵과 공기처럼 소중한 것이다. 현재의 생산속도는 매우 실망스럽다고 밖에는 볼 수가 없다. 나는 그대들이 더욱 많은 일류신을 생산해줄 것을 강력하게 원하는 바이다.'

이것은 만일 더 많은 일류신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일류신과 공장의 모든 노동자들이 숙청될 수도 있다는 스탈린의 최후통첩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 충격요법은 큰효과를 발휘하여 일류신을 비롯한 모든 간부들과 전 노동자들이 불철주야 항공기의 생산작업에 전력을 다하게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공장의 운영이 안정기로 접어들고 생산량도 점점 많아졌다.

[ 드디어 겨울이다! 얼어붙은 동부전선의 하늘을 비행중인 Il-2 ]

1941년 첫해동안 총 1134기의 Il-2가 생산되었다고 하는데 전쟁전에 생산된 기체를 제외하면 독소전의 개전이후에 885기의 Il-2가 생산되어 소련군에 인도되었다. 당시의 혼란스럽던 상황으로 볼 때 이 수치는 기적과도 같은 것이었다.

 

* 후방을 강화하라! IL-2M의 등장!

1941년 겨울이 찾아오면서 동장군의 위세앞에 독일군이 드디어 모스크바를 목전에 둔 상태에서 얼어붙게되고 소련은 절대절명의 위기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이무렵 일류신은 일선 지휘관들로부터 독일전차들을 공격하는데 있어서 20mm 기관포탄의 위력이 약하다는 의견을 듣게되었고, Il-2의 무장을 더욱 강화하는 방법을 고심하다가 주무장이던 ShKAS 20mm 기관포를 보다 강력한 VYa-23 23mm 기관포로 교체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이 VYa-23 기관포는 포구속도가 초속 905m에 달하는 고속 탄환을 발사할 수 있었는데 400m 거리에서 발사했을 때 25mm의 철판을 관통하는 위력을 가지고 있어 독일육군이 보유한 대부분의 장갑차량들을 손쉽게 파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관포와 탄환의 무게가 증가하다보니 탑재 탄수는 300발로 줄어들 게 된다.

[ Il-2M 슈트로모빅의 주익에 장착된 VYa-23 기관포와 로켓탄을 잘 보여주는 사진, 강력한 파괴력이 느껴진다. ]

그러나 사실 실전에서 드러난 가장 큰 문제점은 화력이 아니었다. 실전에서 독일전투기의 후방공격에 의해 Il-2가 쉽게 격추되 버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심지어 독일공군 조종사들은 후방사수가 없는 Il-2를 매우 만만한 먹이감으로 생각하고 Il-2를 만나게 되면 후상방에서 따라가면서 내리덮치면 된다는 공격법을 매뉴얼로 만들어 놓고 있을 정도였다. Il-2의 장갑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우군 전투기의 엄호가 없는 상태에서 독일공군의 전투기로부터 정조준된 기관포탄을 연속으로 얻어 맞게되면 치명적인 손상을 입고 추락할수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일류신은 조종석 후방의 장갑판과 측면 장갑을 강화하면서 측면의 유리창은 작게 축소하는 방법으로 조종사의 생존성을 높이려고 했다. 하지만 일류신은 후방으로부터의 공격에 대한 방어책으로는 장갑판의 강화보다는 후방석을 배치하여 후방사수를 탑승하게 하는 방법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사실 일류신이 애초에 설계했던 대로라면 Il-2는 애초에 2인승기로 탄생했었겠지만, 애초에 소련지휘부의 쓸데없는 간섭으로 후방석을 폐지했던 것이 Il-2의 치명적인 약점을 만들었던 것이다. 이무렵 많은 손실을 경험한 야전부대의 지휘관들로부터 쓸데없이 장갑판만 달지 말고 후방사수석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 쇄도하게 되는데, 일류신도 후방사수석의 필요성을 절감했지만 감히 소련지휘부의 의견에 반기를 들 수 없었기 때문에 속으로만 끙끙 앓고 있었고 결국 Il-2는 즉각적인 개선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계속 1인승 모델만 생산되어 전선에 배치되고 있었다.

[ 야전에서 설치된 후방사수석을 보여주는 일러스트 ]

이에 일부 야전 부대에서는 정비사들을 동원해서 조종석 후방의 동체를 잘라내어 공간을 확보한후 간이 후방사수석을 만들었고, 야전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던 ShKAS 7.62mm 기관총 1정을 장착하여 실전에서 사용하는 경우까지 속출했으며 이렇게 야전에서 개조된 2인승 Il-2가 호평을 받게 되면서 소련공군의 정비사들 사이에는 '후방사수석을 만드는 방법'에 대한 매뉴얼이 공공연하게 나돌 게 되었다. 이런 야전 개조법은 실전부대 지휘관들사이에 유행처럼 번져 많은 기체들이 야전 개조를 통해 후방사수석을 추가하게 된다.

[ 야전에서 개량된 후방사수석을 볼 수 있는 사진, 소련 정비요원들의 능력을 잘 보여준다 ]

상황이 이렇게 되자 스탈린이 직접 참석한 회의에서 소련군 수뇌부도 일류신의 요구를 받아들여 2인승으로의 설계변경을 허가했으며 1942년 8월에 이르러 드디어 정식으로 2인승기로 개발된 기체의 생산이 시작되었으니 이 기체가 바로 Il-2M형이다.

애초에 일류신은 후방석을 완전 방탄처리가 된 회전형 터렛을 장착하고자 했지만 중량이 너무 많이 나가며 가동부위의 신뢰성에 문제가 있다는 점이 지적되어 그냥 조종석의 전체적인 길이를 연장시키며 후방석의 양측면에만 방탄판을 덧대는 식으로 설계되고, 후방기총으로는 UBT 12.7mm 기관총이 부착되었다. 그러나 너무 서둘러 개량작업을 진행하다보니 후방석은 매우 열악한 상태였는데 제대로된 의자도 없이 양측으로 걸쳐진 천조각위에 앉아있어야 했으며 방탄판이 설치되었다고는 하지만 후상방으로부터는 거의 무방비상태로 노출되어 있었다.

[ Il-2M의 후방석 일러스트 - 매우 열악한 천으로 걸쳐진 의자(?)를 잘 보여준다. ]

더구나 이렇게 후방석에 사용되는 기관총, 탄환, 방탄판등의 증가로 인해 기체의 중량은 950kg 정도 증가했고, 중량을 감소시키기 위해 주익의 로켓 레일을 총 8개에서 4개로 축소했음에도 후방석이 기체의 무게중심보다 약간 뒤쪽에 위치하면서 기체의 비행 안정성과 운동성이 1인승형에 비해서 나빠졌다고 한다. 이외에 조종사가 사격시에 조준을 보다 용이하게하는 신형 VV-1 광원조준경이 장비되었다.

[ 정식으로 후방석을 채용한 Il-2M과 기존형의 차이를 보여주는 일러스트 ]

이 신형 Il-2M은 1942년 10월 30일에 이르러 중부전선의 스몰렌스크 지역에서 처음으로 실전에 투입되는데 이날 Il-2M의 후방사수들이 총 7기의 Bf 109를 격추시키는 놀라운 성과를 올렸다. 이것은 독일조종사들이 Il-2M형을 기존의 1인승기로 착각하고 후상방에서 최대한 가까이 접근한후 사격하려고 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로서 후방사수들이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지를 증명하는 것이었다. 더욱이 실전에 투입된이후 후방사수가 가진 또하나의 장점이 나타나는데, 그것은 독일 전투기들이 후방에 나타나는 경우 후방사수가 미리 발견하고 조종사에게 경고하여 효과적으로 도주하거나 희피기동이 가능해진 점이었다. 이로서 그동안 독일 조종사들이 주로 사용했던 후방으로 몰래접근해 기습하는 공격방법이 갑자기 통하지 않게 되었다.

[ Il-2M의 무장작업중인 정비요원들과 그주위에 둘러앉아 노래를 부르는 병사들 ]

그러나 Il-2의 후방사수라는 임무는 극도로 위험한 것이었다. 슈트르모빅의 후방사수 출현에 놀란 독일 조종사들은 슈트로모빅을 만나면 후방사수를 먼저 처리하려고 했으며 후방석의 방탄처리가 미흡하다보니 소구경 총탄이 명중해도 후방사수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가 많았다. 점점 많은 수의 Il-2M들이 전장에 투입될 때마다 후방사수들의 희생비율은 급속도로 올라가게 되었으며 전후의 집계를 분석해보면 슈트로모빅의 조종사 1명이 전사할 때마다 후방사수는 7명이 전사했을 정도였다고 하니 얼마나 위험한 임무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 슈트르모빅을 잡아라! 독일공군의 공격전술 교범 -

후방사수석을 가진 슈트르모빅이 등장하자 기존에 쉽게 사용하던 후하방에서 내리꽃히며 공격하는 방법이 매우 위험해 졌으므로  당황한 독일공군 조종사들도 곧 새로운 공격방식을 개발해야 했다. 고참 조종사들이 신참들에게 슈트르모빅의 공격법을 설명한 야전 교범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적기가 2인승의 슈트르모빅을 확인되면 후상방에 위치하는 것은 위험하다. 즉시 후하방으로 내려가 몰래 접근해야 한다.

2) 이후 사정권안에 들어오면 기체를 약간 상승시켜 적기의 정후방에서 똑바로 따라가며 기관포와 기관총을 퍼부어라! 이 위치에서는 적의 후방사수가 자기 비행기의 꼬리날개에 가려 잘 볼 수 없을뿐더러 자기 꼬리날개에 맞을까봐 대응사격을 할 수가 없다. 이렇게 해서 적의 후방사수를 먼저 처리해야 한다.

3) 적의 후방사수가 총탄에 맞아 죽거나 부상을 입으면 후방기총이 고개를 푹 숙이게 되는데, 이렇게 된 다음 부터는 적기는 쉬운 먹이감이 된다. 기체를 적의 후상방으로 상승시켜 내려 꽃히면서 공격하면 손쉽게 격추할 수 있다.

4) 만일 후하방으로 적기에 가깝게 접근하는데 성공한다면 기체 하면의 오일쿨러를 집중 사격하면 큰 피해를 줄 수 있다.

여기서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3)항에서 후방사수가 죽거나 부상하면 후방기총이 고개를 푹 숙인다는 대목인데...  독일 조종사들은 멀리서도 이것만 보면 후방사수의 생사여부를 쉽게 알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를 눈치챈 소련측이 후방기총의 지지대에 약한 스프링을 설치하여 손을 놓치더라도 기총이 고개를 숙였다가 서서히 고개를 들도록 하는 방법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러다보니 슈트르모빅의 후방사수 자리는 병사들 사이에 기피대상 1호가 되었으며 탑승할 인원이 태부족인 상황이 벌어지자, 소련공군은 부족한 후방사수의 자리를 채우기위해 육군의 형벌대대 (사형수들을 총알받이로 내세웠던...)와 같은 개념으로 사형수나 무기징역수, 정치범들을 후방사수로 탑승시키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2차대전을 통해서 전설적인 존재로 기억되는 슈트르모빅의 후방석은 사형수들의 자리였던 것이다.

조종석은 두터운 장갑으로 둘러쳐져있고 조종사는 낙하산을 기본으로 가지고있었는데 반해, 후방사수를 위한 방탄판은 매우 빈약했으며 후방사수가 죄수인 경우에는 낙하산조차 지급되지 않았다. 그래도 워낙 위험한 임무였다보니 이들에게는 1번의 출격을 마칠때마다 형기를 줄여주어 결국 10번 의 출격을 마치면 형기가 만료되어 풀어준다는 것이 약속되었다고하는데, 이는 후방사수가 적극적인 전투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사실 10번의 출격동안 살아남기도 힘들었고, 설사 9번까지라도 성공을 시키면 바로 지상 형벌대대로 전출시켜 버렸다는 뒷이야기가 전해진다. (물론 위와 같은 이야기는 전후에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일뿐이며 소련정부는 공식적으로 위와 같은 수인부대가 존재했던 사실을 인정한적이 없다.)

[ Il-2M의 명콤비로 유명한 조종사 K. 리아보프와 후방사수 N. 파블로프, 둘이서 총 4기의 독일기를 격추시켰다고 한다 조종석 아래에 그려진 킬마크는 이들이 올린 격추전과를 합쳐서 마킹한 것이다. ]

물론 영웅적인 전과를 올렸던 후방사수들도 일부존재했는데, 이중에서 가장 전설적인 업적을 남긴 알렉산더 카람샤코프 하사같은 경우는 무려 189회나되는 출격행에서 살아남았고, 게다가 총 7기의 독일전투기를 격추시켜 후방사수로는 독특하게도 에이스의 반열에 올랐으며, 니골라이 뚜르빈 하사는 5기의 적전투기를 격추시켰으나 이중 1기가 공동격추로 인정되어 에이스로 등록되지는 못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후방사수들은 이런 행운을 만나지 못했다.

[ Il-2M 후기형의 후방사수석, 방풍효과와 시야확보를 위해 디자인된 캐노피가 도입 되었다. ]

슈트르모빅은 주로 지상전위주의 전장이었던 동부전선에서 전선에서 싸우던 소련군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였으므로 전선에서의 수요는 놀라울 정도로 늘어나게되고 1942년 후반에는 매월 1000여기 이상이 생산되어 모든 기체가 즉시 전투에 투입되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1942년의 혹독한 겨울, 스탈린그라드를 배경으로 동부전선 전체의 운명을 좌우하게 될 엄청난 전투가 시작되었고 5개월여의 피비린내나는 격전끝에 소련군이 최후의 승리를 쟁취하면서 동부전선에서 독일군이 일방적인 공세를 펼치던 시기는 종말을 맞이했다. 바야흐로 소련의 붉은군대가 독일군을 서쪽으로 몰아붙이면서 대 반격작전에 나설시기가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지상군의 수호신 슈트로모빅도 고난의 시기를 벗어나 대반격의 주역으로 맹활약하게 된다.

[ 출격대기중인 흑해함대 소속의 Il-2M ]

 

* 슈트르모빅 일러스트레이션 *

1941년 가을 중부전선에 배치된 슈트르모빅 초기형의 일러스트, 전형적인 하계 도색을 하고 있으며 동체 측면에 도색된 끼릴어 문구는 영어로는 for Otradnov 로서 전사한 동료 조종사를 기리는 것이라고 한다.

 

1941년 7월, 바바로사 작전 직후 독일군에게 포획되어 성능테스트를 받았던 기체로서 동체와 수직미익의 국적마킹이 다시 도색되었으며 동체에는 동부전선의 독일공군을 상징하는 노란띠가 그려져있다.

 

1941년 독일의 동맹국이던 헝가리군이 노획한 Il-2, 이 기체는 야전에서 급하게 헝가리 공군의 마킹으로 도색되었다. 헝가리군은 이 기체를 실전에서 사용했다고 한다.

 

1942년 소련해군 흑해함대 소속의 Il-2M, 측면의 문구는 '조국방위의 영광을 위하여'라는 의미이며 수직미익위의 작은 별 3개는 이 기체가 독일기 3기를 격추했음을 의미하는 킬마크이다.

 

1943년 남부전선에서 활약하던 Il-2M형의 일러스트, 동체 상면의 하계도색 스타일을 잘 볼수있다.

- 본 리뷰는 2부 '대반격의 선봉에서'편으로 이어집니다! -